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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 역주행 특집 VOL 1. 가요 10곡

역주행의 역사는 되풀이 된다. 방송, SNS 등 다양한 매체와 더불어 밈(Meme), 추억, 감성 등 그 의미 또한 가지각색인 이 현상에 음원 시장과 유행이 급변한다. 대중의 취향과 기호가 과거만 맴돌며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는 씁쓸한 실정이지만, 기억 속으로 사라질 뮤지션에게 생명을 불어넣거나 몰랐던 노래의 진가를 발견한다는 장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옛 노래가 굽이치는 물결을 타고 지금 우리의 곁으로 몰려온다. < 슈퍼스타 K >, < 나는 가수다 >, < 복면 가왕 >, <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을 찾아서 > 등의 TV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과거의 음악과 추억을 되새김질했지만, ‘역주행’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돌아온 곡은 인터넷을 떠도는 ‘작은 영상 하나’에서 비롯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MZ세대가 만든 디지털 문화가 그 중심에 있음을 뜻한다.

2021년 상반기만 해도 벌써 브레이브 걸스와 SG워너비 두 팀이 어떤 연어보다 힘차게 차트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왔다. 매년 찾아오는 연금과 시즌 송처럼 연례행사에 가까운 이 현상을 이즘에서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차선을 반대로 달리는 노래가 다시 나오기 전에 이즘 필자들이 대표곡 10개를 선정했다.

EXID ‘위아래'(2014)
아이돌 역주행의 역사를 새로 쓴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이 등장하기 이전, 전국을 위아래로 들썩이게 했던 원조 역주행 걸그룹이 있다. 팬 한 명이 촬영한 직캠의 파급력은 놀라웠다. ‘위아래’는 2년의 공백을 가진 무명 걸그룹이 존폐를 논의하던 시점에 사활을 내걸었던 곡이다. 활동 당시의 반응은 미진했으나 발매 3개월이 지난 후 SNS를 통해 멤버 하니의 안무 직캠이 입소문을 타면서 뒤늦게 대중의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들의 역주행 열차는 쾌속으로 질주하며 그해 연말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우연히 영상 하나에서 시작된 이 드라마는 해체 위기의 걸그룹을 완연한 대세로 탈바꿈해 주었다.

포화한 아이돌 시장에서 대중에게 각인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고 일찍이 기회를 잡지 못한 팀들에게 성공의 벽은 높기만 하다. 3년이 꼬박 걸렸던 EXID의 역전은 새로운 성공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이들의 역주행 공식에는 방송 출연도, 유명인의 홍보도 없다. 오로지 팬이 만든 2차 창작물의 힘으로 일어섰다. 이는 아이돌 그룹이 주목받을 수 있는 제 3의 경로가 되었으며 아직 빛을 보지 못한 후배 그룹들에게는 포기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희망을 주었다. 아이돌 최초의 역주행을 이뤄낸 EXID의 발자취는 새로운 역주행 스타들이 탄생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영향력이 닿고 있다. (김성엽)

볼빨간사춘기 ‘우주를 줄게'(2016)
‘하늘만큼 땅만큼’은 사랑의 척도에서 가장 유구한 관용어지만 볼빨간사춘기는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며 우주를 안겨줬다. ‘난 그대 품에 별빛을 쏟아 내리고 / 은하수를 만들어 어디든 날아가게 할 거야’라는 귀여운 고백은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고막 여친’ 안지영의 애교 섞인 목소리와 대학 축제를 비롯한 많은 공연에서 보여준 사랑스러운 모습이 대중을 사로잡았다.

< 유희열의 스케치북 > 출연을 계기로 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1개월 만에 10위권에 진입한 ‘우주를 줄게’ 뿐만 아니라 이 곡이 수록된 < Red Planet >의 전곡이 한 해 동안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특히 사춘기의 우울하고 의기소침한 면에 주목한 ‘나만 안되는 연애’나 ‘X Song’은 폭넓은 감정선을 드러냈다. 볼빨간사춘기는 역주행의 수혜를 받은 원 히트 원더에 머무르지 않고 여전히 ‘썸 탈꺼야’, ‘여행’으로 20대 청춘의 찰나를 포착하고 있다. (정수민)

신현희와김루트 ‘오빠야'(2015)
시작은 인터넷 방송가다. ‘오빠야’를 배경음으로 차용한 한 리액션 영상이 우연히 화제를 끌어 각종 SNS의 파고에 탑승하고, 이후 수많은 패러디를 낳으며 젊은 층을 상대로 급속도로 퍼져 나간 것이 열풍의 시초다. 전파 과정만 본다면 다른 이유가 컸을지 모르지만 영상에 대한 관심은 곧 음악으로 이어지기 마련. 결국 그 기세는 영상의 업로드 일자 기준 16일 만에 차트 정상이라는 가시적인 기록으로 환산되었다.

반등의 기회는 생각보다 많이 찾아오지만 정작 제대로 거머쥐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빠야’의 성공 요인은 단박에 꽂히는 강렬한 인트로다. 한번 들으면 도통 잊기 힘든 신현희의 이 한 마디는 영상 너머 노래에도 관심을 가지게 했고, 뒤이어 등장하는 ‘썸’의 관계를 재치 있는 랩으로 풀어낸 코러스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노래방 애창곡 파트로 부상하며 상승 곡선에 박차를 가했다. ‘오빠야’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까지 걸린 시간, 인트로의 첫 2초였다. (장준환)

마크툽, 구윤회 ‘Marry me'(2014)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는 차 안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는 사랑 노래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바로 옆에서 불러 주는 듯 가공하지 않은 음원, 이게 승부수였다. 이 영상이 페이스북의 인기 페이지 < 일반인들의 소름 돋는 라이브 >에 올라왔고 일명 ‘신호대기남’이 큰 관심을 일으키며 영상 속의 곡도 덩달아 주목받았다.

노래의 인기를 살갗으로 느낄 수 있었던 곳은 결혼식장 안이었다. 음원 순위 상위권을 차지했을 당시 예식장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원곡 가수의 음원보다 말 그대로 ‘일반인들의 소름 돋는 라이브’를 더 많이 들었을 것이다. 축가 타이밍엔 어김없이 ‘Marry me’가 흘러나왔고 한동근의 ‘그대라는 사치’와 함께 결혼식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다. 프러포즈 대표곡으로 안착한 노래는 역주행시점 음원 시장에서 일위를 달성한 베스트셀러였고 결혼 시장에서는 스테디셀러가 되면서 그때나 지금에나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김도연)

김연자 ‘아모르 파티'(2013)
수 없이 겪어낸 고난에도 김연자는 제 운명을 사랑했다. 4년의 시간이 흘러 재조명된 윤일상표 EDM으로 기존의 트로트 작법을 과감히 탈피한 이 ‘인생 찬가’는 실로 위력적이었다. ‘연애는 필수 / 결혼은 선택’이 형성한 공감의 힘은 가벼운 세대 통합을 일궈냈고 대학가 축제에 출연한 최초의 트로트 가수라는 이변을 낳았다. BTS, 엑소, 트와이스 등 최정상 위치의 글로벌 케이팝 스타들이 백댄서를 자처한 2018년 KBS가요대축제 엔딩 무대는 이 곡의 위치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젊은 감성과 화려한 후렴구 멜로디는 역주행의 존재감을 높이는데 빼놓을 수 없는 조연이다. 진가는 시대를 꿰뚫은 노랫말에 담겨있다. ‘작사의 신’ 이건우의 역작으로 가사 한 줄, 한 마디가 우리의 근원적 스트레스에 구원자 역할을 자처한다. ‘자신에게 실망 하지마 / 모든 걸 잘할 순 없어’라며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고 ‘나이는 숫자 / 마음이 진짜 /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는 용기를 북돋으며 스스로 실현한 김연자식 명언에 방점을 찍는다. 찰나의 반짝임으로 끝나지 않을 주옥같은 격언들이 시대를 대변한다. 어쩌면 ‘아모르 파티’의 역주행은 당연한 절차였다.(김성욱)

윤종신 ‘좋니'(2017)
역주행 신화를 쓰기 가장 유리한 장르는 역시 발라드일 것이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범대중적인 장르인 데다 노래방에서 부르기도 좋으며, SNS에 올라오는 보컬 실력자들의 커버 영상을 통해서도 인기가 쉽게 번지기 때문이다. 2017년 미스틱엔터테인먼트의 음악 플랫폼 ‘리슨'(LISTEN)을 통해 발매된 ‘좋니’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부를 노래가 없다’는 젊은 세대의 수요를 공략한 아티스트는 유튜브 음악채널 ‘딩고 뮤직’의 ‘세로라이브’로 신세대와 교류를 형성했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라이브 영상이 성공을 판가름하며 노래는 가장 많이 들리고, 가장 많이 불리는 곡이 됐다. ‘애청’과 ‘애창’의 동시 포획이었다.

차이는 ‘깊이’였다. 꼭 모은 두 손, 잔뜩 찌푸린 미간으로 열창하는 베테랑 가수의 라이브는 대중의 가슴 한편에 간직하고 있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했고, 이별한 이의 심정을 대변하는 현실적인 노랫말은 결정적이었다. 원곡을 리메이크한 민서의 ‘좋아’로 차트 정상을 다시 꿰차며 발라드계 ‘답가 유행’을 일으키기도 했다. 음악인으로서 그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각인한 제2의 전성기의 서막이었다. (이홍현)

비 ‘깡 (GANG)'(2017)
허세와 거리가 멀다면서도 ‘백 달러 지폐(Hundred dollar bills)’, ’30 sexy 오빠’를 흥얼대며 여전히 9년 전 ‘레이니즘(Rainism)’에 도취되어 있었다. 향수에 젖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던 2000년대 슈퍼스타는 이후 영화 < 자전차왕 엄복동 >까지 혹평을 받으며 ‘비’급 연예인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미지 타격에 쐐기를 박았던 이 실패작이 컬트적인 역행을 일으킨 ‘나.비 효과’였다.

작품이 별로일 수 있다는 주연의 취중진담과 그를 뒷받침하는 누적 관객 수. 성적은 처참했지만 놀림거리로 이만한 흥행도 없었다. 망작에서 비롯한 각종 패러디는 과거를 들추기에 이르렀고 발매 당시에도 잡음이 많았던 ‘깡’이 그 중심을 차지했다. 비록 조롱이 만들어낸 관심이지만 본인도 밈의 인기를 즐겼고 오히려 광대를 자처하며 열풍에 불을 지폈다. 비주류의 인터넷 유행을 대중의 영역으로 견인한 40대 꾸러기의 깡다구는 급변한 콘텐츠 시장을 대변하는 희귀한 역주행 사례다. (정다열)

블루 ‘Downtown baby'(2017)
음과 음 사이의 작은 낙차로 덤덤하게 흐르다가도 ‘너는 나의 다운타운 베이비야’란 훅을 던지는 모습은 과장보다 쿨함을 견지하는 Z세대의 사랑법과 닮아있다.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 감미로운 소리는 연인과의 추억을 환기하고 ‘너의 눈은 밤하늘에 별이야’란 구절은 라라랜드(로스앤젤레스)의 푸른 밤을 형상화하며 낭만성을 확보한다.

린다G(이효리)가 < 놀면 뭐하니? >에서 불러 스트리밍 차트 정상까지 도달한 ‘다운타운 베이비’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래퍼 블루가 2017년 말에 발매한 곡으로 2년 6개월 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이효리의 허스키한 저음은 멜로디의 좁은 폭을 구원하고 기교보다 감각으로 노래하는 가창이 곡에 잘 달라붙는다. “결국 뜰 곡은 뜬다.”는 운명론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실은 대중을 아는 이효리의 감과 공중파 프로그램의 위력이 작용한 결과다. (염동교)

브레이브걸스 ‘롤린 (Rollin’)'(2017)
역주행의 힘을 여실히 증명한 곡. 수익이 거의 없음에도 자식 키우는 심정으로 군부대 공연을 보낸 프로듀서 용감한 형제부터 “음악을 떠나 평범하게 살자고 이야기를 나눴다.”던 유정의 인터뷰처럼 팀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멤버들까지 해체를 앞두고 터진 대박 뒤에는 감동 실화가 숨어있다. 2021년을 뒤집은 이 흥행의 시작은 유튜브 알고리즘이었지만, 실질적 원인은 전심으로 아이돌 그룹을 응원하며 군통령, 군인픽, 밀보드라는 신조어까지 만든 ‘군인들’에게 있었다. 힘든 군 생활 중의 위문에 대한 보답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이들의 성공 형태에서는 특이하게도 영상을 통한 현시대의 홍보 방식과 소자본 인디 뮤지션의 활동 양식이 함께 보인다. 무명의 독립 뮤지션이 길거리와 홍대 클럽을 전전하며 공연하는 모습이 군부대를 도는 브레이브 걸스의 모습과 닮았다. 이는 대형 미디어도, 유명인의 언급도 없이 멤버들 스스로가 일궈낸 노력의 결과임을 증명한다. 이엑스아이디가 팬들에 의한 2차 창작물의 중요성을 알렸다면 브레이브 걸스는 무대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일깨운, 사실상 역주행이 아닌 ‘정주행’인 셈이다. (임동엽)

SG워너비 ‘Timeless'(2004)
역시 < 놀면 뭐하니? >는 강력했다. 프로그램에서 부르기만 했을 뿐인데 또 다수 음원차트의 정상에 올랐다. SG워너비가 출연한 이번 방송은 영향력이 더 셌다. ‘Timeless’, ‘내사람: Partner for life’, ‘라라라’, ‘살다가’ 등 여러 곡이 동시에 차트를 휩쓸었다. 톱스타 아이유, 대세 걸 그룹으로 등극한 브레이브걸스도 MBC 예능 < 놀면 뭐하니? >의 정기를 받은 노래들 앞에서 추풍낙엽이 됐다. 특히 ‘Timeless’는 SBS < 인기가요 > 1위 후보로 오르기까지 했다. < 놀면 뭐하니? >는 십수 년 전 나온 노래에 새 생명을 안겨 줬다.

전적으로 방송에 의해 다시 히트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차트에 들어선 노래들은 모두 발매 당시에 큰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를 경험하고, 그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세대로서는 SG워너비와 그들의 노래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보컬 그룹이 요즘 얼마 없는 현실도 SG워너비를 돋보이게끔 했다. 가창력이 뛰어난 멤버들이 서로 눈을 맞춰 가며 하모니를 만드는 모습은 많은 시청자에게 근사하고 살갑게 다가갔다. 인기 미디어, 과거를 향한 대중의 향수, 희소한 체제, 번듯한 가창이 합쳐진 힘이 ‘Timeless’를 비롯한 노래들을 한 번 더 유행의 궤도에 들여놨다. (한동윤)

정리 :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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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빈 게이 < What's Going On > 50주년 특집


음악을 좀 들었다 싶은 사람들은 누구나 마빈 게이의 < What’s Going On >을 얘기한다. 참 쉽고 편하게 언급한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은 거의 다 누구에게 들어본 말이고, 어디선가 본 글들이다. 자기의 경험과 생각이 없이 학습에 의해서 다른 사람이 했던 얘기를 전달하니 멋지고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모타운 음반사의 사장 베리 고디 주니어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정치, 사회, 역사, 환경 등 온갖 무거운 주제를 담론으로 끄집어낸 < What’s Going On >은 마빈 게이의 아티스트적인 고집과 음악인으로서의 열정이 집약된 음반이다.

이즘 필자들 역시 1971년 5월 21일에 발표된 이 음반을 처음부터 쉽고 편하게 듣지 못했다. < What’s Going On >은 그런 앨범이 아니니까. 50년 동안 축적되고 숙성한 20세기의 유물이 과연 21세기에는 어떻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지는지 살펴본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독특한 드럼소리..

199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흑인음악은 인기가 없었다. 마이클 잭슨, 휘트니 휴스턴, 라이오넬 리치 등 몇몇 가수들과 소수의 알앤비 노래만 라디오에서 선택받았다. 흑인에 의한, 흑인을 위한 진짜 흑인 음악은 늘 찬밥 신세였고 마이너리그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음악 평론가들과 < 월간팝송 >, < 음악세계 > 같은 잡지에서는 < What’s Going On >을 명반으로, ‘What’s going on’을 명곡으로 언급했다. 라디오에 나오지도 않는 노래를 왜 명곡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허세에 찌든 나는 그 LP를 구입했다.

앨범을 듣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유사하게 들렸던 노래들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과 드럼 소리가 독특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Mercy mercy me’, ‘Inner city blues’, ‘Right on’의 통통 튀고 명징한 드럼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는 왜 이런 드럼 사운드를 못 만들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이 드럼 소리는 특별했고 첫 곡 ‘What’s going on’부터 마지막 노래 ‘Inner city blues’까지 유기체처럼 연결된 앨범 구성도 신기했다.

월남전에서 돌아온 친동생한테 직접 들은 전쟁의 참상, 아버지와의 갈등, 모타운 레코드 사장 배리 고디 주니어의 여동생과 행복하지 않은 정략결혼 등 마빈 게이가 겪었던 개인적인 문제들을 알고 나서야 < What’s Going On >의 진가를 깨달았다. 원석은 보석으로 세공됐지만 솔직히 ‘Flyin’ high’와 ‘Save the children’, 두 곡은 지금도 재미없다. (소승근)

진보적 소울을 알려주는 아프로 사운드

마빈 게이의 < What’s Going On >을 처음 접한 건 중학생 무렵이다. 한창 팝을 듣고 있던 터라 ‘명반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던 그 앨범을 지나치기 어려웠고 얼마 후 당대의 사회 문제를 노래했다는 부가 정보를 얻었다. ‘What’s going on’이나 ‘Mercy mercy me’처럼 즉각적으로 귀에 가닿는 곡도 있지만 익숙지 않은 작·편곡 방식에 조금은 당황했다. 이후 친구 녀석 MP3에 들어가 있던 ‘Sexual healing’과 초기작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 최근에 감상한 1976년 작품 < I Want You >로 그와의 연을 이어갔지만 <What’s Going On>’과의 재회는 실로 오랜만이다.

이번에 앨범을 다시 들으며 꽂힌 ‘Right on’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현악기 세션과 플루트, 빨래판 긁는 소리의 라틴 아메리카 전통 악기 귀로를 얹은 7분 30초짜리 즉흥 합주곡이다. 통일된 리듬 아래 놓인 봉고와 콩가 연주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집단성을 드러내고 플루트는 사랑과 사이키델릭을 드리운 1960~1970년대 히피의 정서를 환기하며 ‘True love can conquer hate every time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미움을 이길 수 있다)’라는 노랫말에 힘을 싣는다.

코모도스와 쿨 앤 더 갱 등 어린 시절 흑인음악 하면 자동반사적으로 떠오르던 흥겨운 펑크(Funk)와는 거리가 있고 커티스 메이필드의 <Superfly> 정도가 ‘Right on’의 알싸함을 공유한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노랫말에 반영했던 게이와 메이필드는 소리 체계에서도 경계를 허무는 여러 시도로 시대를 대표하는 진보적 소울 음악가가 되었다. (염동교)


처연한 커버도 시대대변의 명작

겉옷은 물로 젖어 있는 반면 머리 위엔 무언가 하얗게 서려 있는 걸로 보아 촬영 당시 진눈깨비가 내렸던 모양이다.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는 생각에 잠긴 듯한 눈으로 카메라가 아닌 어딘가를 응시할 뿐이다. 배경지식 하나 없이 바라보더라도 앨범 커버 속 흑인 남성에겐 분명 사연이 있어 보인다. 그 주인공이 소울 음악의 대부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엔 이 처연한 사진 한 장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된다.

약소국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강대국 간의 힘겨루기는 숱한 희생자를 낳았다. 전선에서 목숨을 다한 군인은 물론이고 무자비한 학살을 당한 베트남인과 반전 시위 중 총격을 당한 미국 대학생들처럼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사회적 약자들도 있었다. 전쟁으로 피해를 보았던 많은 이들의 눈물은 냉랭한 전황을 대변하듯 하늘에서 얼어붙어 떨어졌다.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걸친 마빈 게이는 이 슬픔의 조각을 닦아내지도 스며들게 하지도 않았다. 에나멜 원단 위에 그 시절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며 애도를 표했다. (정다열)

그루브만으로 소울 R&B의 뿌리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던 시절로 기억한다. 귓속에 찔러 넣은 이어폰엔 롤링 스톤즈와 비치 보이스의 기타 리프가 흘렀고 비틀스를 추앙하던 20살의 나에게 흑인 음악이라고는 스티비 원더, 로린 힐 정도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소위 ‘명반’이라 칭송받는 앨범들을 탐색하는 일에 심취해 취향과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숙제하듯 음악을 소비하기도 했는데 마빈 게이의 < What’s Going On >이 대표적인 사례다. 가벼운 비평적 정보만 습득한 채 온전한 감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터라 당시 총평으로는 ‘신성한 목소리 톤이 주는 안정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발매 50주년에 재차 들었던 이 흑인 음악 바이블은 억지로 채운 지난날의 잔상과는 사뭇 다르다. 먼저 정연한 구조의 콘셉트 앨범 속 스며든 구성품들에 금세 사로잡혔다. 다양한 악기들을 뚜렷하게 솎아내고 도처마다 코러스를 노련하게 배치하는 정갈한 프로듀싱이 지금에서야 와닿았다. 사회적 메시지를 견지하고 미래 환경 이슈마저 예견하는 화자의 비범한 견해와 같은 것들을 제쳐 두고도 듣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내 몸에 형성된 그루브만으로 < What’s Going On >은 소울 알앤비의 뿌리이자 근원지로서 기능을 완수했다.

< What’s Going On >은 장인의 혼이 깃들어 있는 명품 중의 명품으로 대중음악사에 영원히 간직되었다. 어느덧 반세기의 세월을 거쳤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회자할 것이다. < 롤링스톤 > 선정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의 2020년 개정판 1위를 차지하며 더욱 고평가될 여지가 있을지 의문이지만 머지않아 30줄에 접어들어 다시 꺼내 듣는다면 전과는 또 다른 차원의 진경을 보여줄 작품임은 확실하다. (김성욱)

흑인음악의 바이블…롤링스톤 선정 명반 1위

미국의 음악 잡지 < 롤링스톤 >은 2020년 500개의 명반 순위를 업데이트했다. 이 목록은 2003년 처음 발표되었고 이후 2012년과 2020년 총 두 번의 개정을 거쳐왔다. 가장 최근 발표된 순위에서 눈여겨볼 점은 1위였던 비틀스의 <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가 24위로 내려가고 6위였던 마빈 게이의 < What’s Going On >이 1위에 올라간 것. 시간이 흘러 더욱 고평가된 작품이라는 것을 보여줬지만 6위에 위치했던 앨범을 8년 만에 1위에 올려놓은 저의가 궁금하다.

이는 보수적인 느낌이 강했던 잡지가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2012년에는 마빈 게이를 제외하면 백인 뮤지션들이 상위 10위권을 차지했지만 개정된 목록에는 흑인 아티스트인 스티비 원더와 로린 힐이 탑텐에 안착했다. 흑인 또는 여성의 인권과 관련된 사례가 문제화되고 있는 현재의 시대적 흐름을 읽은 것이다.

문화는 돌고 돈다. 고전 록 음반의 순위가 하락하고 최근 유행하는 펑크(Funk), 알앤비, 힙합 등 흑인 음악 앨범이 상위권에 올라왔다. 그중 사회 고발적인 가사, 유려한 멜로디, 부드러운 보컬로 흑인 음악의 바이블이라는 명칭을 얻은 마빈 게이가 자연스레 일위에 오르게 된 것. 이로써 명작은 시간이 지나도 명작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김도연)

50년이 흐른 현시점에도 의미를 갖다

마빈 게이의 이름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즐겨 듣던 찰리 푸스와 메간 트레이너의 듀엣곡 ‘Marvin gaye’를 통해서였다. 이때 마빈 게이라는 가수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그의 노래를 직접 찾아 듣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노래 제목 ‘Marvin gaye’가 아닌 실제 마빈 게이의 노래, 그중에서도 명반 1위로 꼽히는 < What’s Going On >을 들어보았다. 발매한 지 50주년을 맞은 앨범이지만 내게는 첫 경험이다.

70년대 흑인 음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가사와 메시지에 집중하며 감상하는 편이 곡들을 이해하는데 수월했다. 앨범을 관통하는 사회 고발적 메시지는 월남전, 실업, 인종차별, 빈곤과 같은 고통으로 점철된 당대의 참담한 시대상을 들려주었다. 무거움으로 지배된 가사는 부조리를 향한 치열한 분노로 표출되기보다는 그의 호소력 짙은 보컬로 전하는 평화와 공존에 대한 읍소에 가까웠다.

혼돈과 질서를 중재하고자 했던 음악의 의식은 50년이 지난 현시점에도 일갈을 날린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성별, 정치적 신념, 나이,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향한 공격과 비난이 오가는 첨예한 갈등이 들끓고 있다. 총칼을 들고 물리적인 싸움을 벌이지는 않지만 소통과 화합이 이뤄지지 않는 사회는 일촉즉발의 아노미 상태와 다를 바가 없다.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데, 왜 상대방을 짓밟지 못해 안달일까. 무의미한 싸움에 분노하며 울부짖고 서로를 해치는 이들에게 꼭 < What’s Going On >을 들려주고 싶다. (김성엽)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할 수 있는 앨범

록과 같은 백인 음악이 취향인 필자에게 알앤비와 소울은 접근하기 어려운 장르다. 특히 기타 사운드를 중심으로 확실하고 뚜렷하면서도 선 굵은 멜로디를 선호하는 입장에서 < What’s Going On >에 대해 남은 기억은 ‘What’s going on’을 여는 가사 ‘Mother, mother’ 뿐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듣는 이유는 단순하다. 전설이니까. 특정 스타일로 치우치지 않고 대중음악을 공부하기 위해서 챙겨야 할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기에.

1960년대 미국의 흑인 사회, 베트남전, 공해 문제 등을 향한 저항 정신을 지구 반대편의 1990년대 생 ‘록 키드’가 이해하기란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웠다. 장르도 친숙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자주 들어 익숙해지면 좋게 들리는 효과 덕에 첫 곡 ‘What’s going on’부터 영적 기운의 ‘What’s happening brother’, 남미 향의 ‘Right on’까지 그래도 음악만은 무리 없이 들었지만 무엇보다 메시지가 중요했기에 늘 반쪽짜리 감상에서 끝났다.

50주년을 기념하는 그의 앨범은 세상을 바꿨지만 아직까지 한 인간의 세계는 뒤집지 못했다. 가장 아끼는 노래가 변함없이 타미 테렐과 함께 부른 ‘Ain’t no mountain high enough’인 이상 이변은 없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그 의미와 해석이 달라지고, 재평가가 이뤄지는 마당에 음반 몇 번 듣는다고 깊은 해석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60주년이 된다고 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영원히 사랑할 수는 있다. (임동엽)

명반 그 너머의 의미를 지니다

흑인 음악의 발전과 아티스트 권리 주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마빈 게이의 < What’s Going On >이 오늘날 수많은 아티스트에게 귀감이 된 역사적 명반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처음 접하는 이에게 친절을 배제한 채 그저 학술적 설명만을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반복하기만 한다면 그 흥미가 반감되는 것도 명백하다. 그렇다면 반세기 역사를 감안하면서도 초심자에게 쉽게 다가갈 방법이 있을까. 아마 그 해답은 후세가 마빈 게이를 소비하는 저마다의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퍼블릭 에너미의 척 디(Chuck D.)는 컨셔스 랩 불후의 명반 <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 >(1988)의 탄생 배경을 두고 ‘힙합의 < What’s Going On > 같은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사회적 문제를 다룬 선배의 의지를 본인의 언어로 계승하겠다는 의미다. 다만 진정 세대를 초월한 명반이라면 진중하기도, 때로는 가볍게 다가오기도 해야 한다. 2014년, 미국의 디제이 아메리고 가자웨이(Amerigo Gazaway)가 기획한 기묘한 조합의 장 < Yasiin Gaye > 시리즈를 보자. 마빈 게이와 래퍼 모스 데프(Mos Def) 음악의 매시업이라는 영감에서 시작된 이 앨범은 ‘Inner city travellin’ man’ 같은 독특한 리믹스곡을 발표하는 방향으로 일종의 현대식 변용을 탄생시킨다. 메시지에 국한되지 않은 발상의 전환을 펼친 셈이다.

< What’s Going On >은 범인종적, 범장르적으로도 접근이 가능하다. 블루지한 기타 리프를 감각적으로 녹여낸 존 메이어의 ‘Inner city blues’와 스트록스, 에디 베더, 조쉬 옴므 등이 참여하여 퍼지 톤 사운드를 가미한 ‘Mercy mercy me’ 펑크 커버가 그렇다. 이들은 단순 연주하는 것이 아닌 신선한 해석으로 곡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또한 마빈 게이는 비교적 젊은 뮤지션의 음악에서 카메오처럼 등장하기도 한다. 찰리 푸스는 그의 이름을 딴 ‘Marvin gaye’라는 곡으로 영국 차트 정상을 거머쥐었고,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곡 ‘Yonkers’는 무려 그의 이름을 이용한 파격적인 펀치라인으로 힙합 신의 큰 화제를 가져오기도 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그의 영향권에 존재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가끔은 곧이곧대로 반복 청취만 거듭하는 관습에서 벗어나 다방면으로 바라보고 체득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장준환)

현실의 부조리를 해부한 직관적 가사

1년 전 처음 접한 마빈 게이의 < What’s Going On >은 스펙터클에 익숙한 귀에 심심한 음악이었다. 명반이라면 시대를 뛰어넘은 어떤 보편성이 있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었다. 익숙지 못한 멜로디 대신 직관적인 가사에서 그 답을 찾았다.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단면을 넓게 펼친 가사는 현대까지 맞닿아 있다. ‘What’s going on’은 폭력에 증오로 맞서는 대신 어머니, 형제를 차례로 부르며 개인과 공동체를 연결하고 사랑의 힘에 무게를 싣는다. ‘What’s happening, brother’의 베트남 전쟁, ‘Inner city blues’가 담고 있는 빈민가 흑인들의 일상, ‘Mercy mercy me’가 말하는 환경오염 모두 현실의 부조리와 은폐를 드러내 균열을 가한다.

마빈 게이가 제기한 문제는 여전히 종식되지 않았다. 그래도 공동체의 동력은 BLM 운동으로 이어지며 현대에도 지속되는 일상적 위협을 타파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나타났다. 한 시대의 공감을 얻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50년 동안 수그러들지 않은 힘을 가진 작품이다. 타인인 내가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 앨범을 명반 1위로 선정한 < 롤링스톤 >지의 의도를 어렴풋이 깨닫는다. (정수민)

1970년에 환경문제를 꼬집다

20살, < What’s Going On >을 처음 접하고 가장 먼저 눈길이 간 건 ‘제목’이었다. 대단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표제였다. ‘What’s going on?’. 흔히 안부나 진행되는 상황을 물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마빈 게이의 < What’s Going On >에는 ‘물음표’가 없었다. 해석하면, ‘무슨 일이야?’가 아닌 ‘일어나고 있는 일’이 됐다. “물음이 아닌 대답이라는 뜻일까?” 강한 호기심을 안고 앨범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작품 감상 후, 여러 비평가의 첨언까지 곁들이고 나서야 이 음반이 당대 미국 사회를 직시한 마빈 게이의 ‘진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소울 음악 역사상 최초의 콘셉트 앨범답게 일률적인 편곡으로 수록곡 간의 경계가 무의미했고, 이는 마빈 게이가 바라본 당대의 암면들을 엮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았다. 전쟁의 참상,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 가난과 마약 등 처참한 실상의 내용 중에서도 유독 강하게 다가온 곡은 ‘Mercy mercy me (The ecology)’였다. 빌보드 싱글 차트 4위에 오른 이 노래는 당시의 ‘환경 문제’를 꼬집고 있었다. “파란 하늘은 어디 갔나요? / 방사선 폐기물이 땅 아래에 퍼지고 바다에는 기름이 버려져요.”. 이번 특집 기획을 위해 다시 듣고는, 서울을 뒤덮은 미세 먼지와 최근 불거진 일본 오염수 방류 관련 논란이 자연스럽게 겹쳐져 놀랐다.

반세기 이전 저술된 기록이 지금도 유효한 메시지로 생동한다는 점이 이 걸작을 특별하게 만든다. 작품에서 마빈 게이가 전하고자 한 교훈은 결국 사랑(‘Love’)이다. 음반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총 서른두 번이나 언급하며 그것을 절실히 강조한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참 자비에 목마르다. (이홍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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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전찬일의 영화수다 – 왜 < 미나리 >인가!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윌 패튼 등 주·조연에 40대 초반의 재미교포 감독 리 아이작 정(한국 이름 정이삭)이 연출한 네 번째 장편극영화 < 미나리 >는, 오는 26일(한국시간 기준) 개최될 제93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과연 몇 개의 트로피를 거머쥘까?

1980년대 초반, 희망·구원을 찾아 이민을 간 미국 캘리포니아를 10년 만에 떠나 시골 마을 아칸소로 막 이주한 한국 가족을 축으로 펼쳐지는 휴먼 가족 드라마. 한국적 정서·감성 가득한 이 미국 영화는 총 6개 부문에 후보 지명돼 있다. 영예의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음악상이다. 노미네이션으로만 치자면 봉준호의 < 기생충 >을 압도한다. 그 역사적 걸작은 미술상, 편집상까지 역시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고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쥐었으나, 연기상으로는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윤여정의 수상 및 노미네이션 퍼레이드는 특히 눈이 부실 정도다. 그 여걸은 11일(현지 시간)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BAFTA)상 여우조연상을 안으며 37번째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로써 오스카에 한 발 더 다가섰다. 후보만으로도 역사적 쾌거였는데, 이제는 상을 차지하지 못할 경우 ‘이변’으로 회자될 상황이다. 70대 초반의 늦은 나이에 미국이라는 국제무대에서 ‘대세 배우’가 된 것. 당사자도 말했듯,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대체 왜 < 미나리 >일까?

곧 유튜브에 업로드돼 첫 방송될 ‘전찬일 이덕일의 종횡무진: 영화와 역사를 탐하다’ 등에서도 적시했듯, < 미나리 >의 주목할 만한 덕목‧화제성은 크게 서너 가지다. 우선은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안정적이면서도 단단한 연출력으로 자유롭게 극화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클라이맥스적 사건을 이민 가족으로 으레 겪을 수밖에 없을, 인종차별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니라 가족 내 캐릭터―다름 아닌 윤여정이 분한 극 중 할머니 순자다!―의 불가항력적 선의의 실수로 구현‧처리한 선택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을 영화의 으뜸 미덕이다. 어느 모로는 의외이면서도 영화에 남다른 신선함‧수준을 안겨주기 모자람 없다고 할까.

정이삭 감독은 사실, 첫 장편 < 문유랑가보 >로 단연 주목할 만한 데뷔전을 치른 바 있다.  비록 수상은 못 했어도, 서른을 바라보던 지난 2007년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 영화제 공식 섹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대됐고, 데뷔작인지라 신인감독상에 해당하는 황금카메라 상 후보에 올라 일찌감치 큰 화제 몰이를 했던 것. 당시 칸을 찾았던 필자는, 영화의 화제성도 그렇거니와 그 속내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전 와중에 있던 아프리카 르완다 두 소년의 이야기를 르완다인들의 협조를 받아 가며 르완다 어로 찍었으니,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런 성취는 사상 최초였다. 두 영화 사이에는 13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이 놓여있긴 해도, < 미나리 >의 ‘영광’은 그때 이미 예고됐던 셈이다. 다소 성급한 진단일 수도 있어도, 그에게서 ‘포스트-봉준호’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은 그래서다.

두 번째 화제성은 더 이상 부연이 필요 없을 연기에서 연유한다. 윤여정을 필두로, 봉준호의 < 옥자 >(2017)와 이창동의 < 버닝 >(2018) 등을 통해 그 연기력을 공인받은 스티븐 연, 오스카 후보지명엔 실패했어도 인생 일대의 연기를 선보인 한예리,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건만 우리말 연기도 곧잘 해낸 앨런 김과 노엘 조 등이 구현한 앙상블 연기는 < 기생충 >에 비견되기 부족함 없다. 윤여정에게 여우조연상을 안긴 미국배우조합(SAG)상에서는 <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아론 소킨)에 영화 부문 앙상블상이 안기긴 했어도….

< 미나리 >가 누리고 있는 작금의 연기를 향한 상찬들은 물론, 연기도 연기거니와 성격화(Characterization)에 기인한다. 당장 할머니이면서도 손주에게 화투를 가르쳐 함께 치고, 상소리들이 두루 섞인 거친 입담을 과시하며, 천연덕스럽게 요리를 못한다면서도 미안해하지 않고 엉뚱(?)하게 미나리의 질긴 근성을 설파하는 등의 순자부터가 얼마나 ‘별난’ 캐릭터인가. 그야말로 역대급 캐릭터의 완승이다.

흥미로운 점은 < 미나리 >가 자신의 연기 최고작이 아니라는 것을 윤여정 본인이 잊지 않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그녀는 영화 데뷔작 < 화녀 >(김기영, 1971)―그 ‘청불 영화’를 필자는 초등학교 4년 적 청량리에 있었던 동일 극장에서 관람했다!―에서부터 이미 발군의 연기력을 과시했으며, < 꽃피는 봄이 오면 >(유장하, 2004), <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2016) 등을 통해 최상의 연기력을 선보인 ‘연기의 달인’ 아닌가. 그럴 법한데도 전혀 우쭐대지 않고 늘 겸허한 수상 소감을 피력하는 윤여정의 모습이야말로, 연기를 넘어 후배 배우들이 배우고 벤치마킹해야 할 진정한 그 무엇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상기 덕목들보다 더 아름다운 < 미나리 >의 (영화) 역사적 의의는, 자발적이든 타의적이든 강압적이든 간에 상관없이, 우리네 한국인들의 이민 역사‧현실, 다시 말해 무려 750만에 달한다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해 비로소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는 데서 나는 찾고 있다. 영화적 수준에서는 다소 못 미칠지언정, < 미나리 >의 영화사적 의미가 < 기생충 >을 능가한다고 평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일전에 다른 지면에서 밝혔던 내 진단을 여기에 옮기며, 이 글을 마치련다.

“나는 < 미나리 >의 가장 큰 의의를 다른 지점에서 찾는다. 영화는 이른바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 문제를 전격적으로 소환·환기·각인시키는데 전환점(Turning Point)적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위성에서는 그래선 안 되나, 조국 대한민국조차도 거의 잊다시피 주변부화시켜온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슴 아픈 주요 현실 중 하나….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배창호와 이장호, 김호선, 조정래 등이 각각 < 깊고 푸른 밤 >(1985)과 < 명자 아끼꼬 쏘냐 >(1992), < 애니깽 >(Henequen; 1996), < 귀향 >(2016) 등을 통해 일찍이 다룬 바 있는 주요 이슈다.

< 미나리 >는 문화예술과 오락이 얼마나 밀접하게 (현실) 정치와 연관돼 있는가를, 영화가 얼마나 인상적으로 정치 사회적 이슈를 문화 콘텐츠·스토리텔링으로 극화시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가를 새삼 증거한다. < 기생충 >이 가족 희비극을 통해 이 세상의 비정한 신자유주의를 향해 통렬한 화살을 날렸듯. 그럼으로써 < 미나리 >는, 비평가로서 필자가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해온 영화의 공론장(Public Sphere)적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 얼마나 위대한 성취들인가!”

 전찬일(영화평론가/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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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라 vs. 콩(Godzilla vs. Kong)

평가: 3/5

다중 우주론(Multi-verse)에 대한 개념적 공유는 요즘 현대 영화에서 매우 중요히 다뤄지는 부분이다. 장르불문, 성공한 신작영화의 대다수는 이 다중 우주론에 근거하고 있으며, 원작이 이어 여러 파생작품으로 거듭난다. 속편 및 전편을 포함하도록 범위의 확장성을 필요충분조건으로 여긴다. 이는 특히 공상(Fantasy)과 과학소설(Sci-Fi)을 결합한 유니버스에서 더욱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 터미네이터 >(Terminator)를 위시해 < 퍼시픽 림 >(Pacific Rim), 그리고 마블(Marvel)과 디씨(DC) 코믹스의 프랜차이즈 시리즈물들이 가장 유명한 범례.

최신작 < 고질라 vs. 콩 >(Godzilla vs. Kong)은 동일한 관점에서 “레전더리 픽처스(Legendary Pictures)”가 거의 10년여에 걸쳐 이룩해온 프로젝트의 정점이며, < 고질라 >(Godzilla, 2014), < 콩: 스컬 아일랜드 >(Kong: Skull Island, 2017), <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Godzilla: King of the Monsters, 2019)와 같은 연대기적 영화들의 연장선상에서 신화적 괴수들의 패권다툼을 위한 최대 격전을 스크린에 투영한다.

영화는 2019년 <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 이후 5년 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거대 로봇을 만드는 사악한 기업과 지구 중심이 실제로 비어 있다는 이론에 근거해 믿거나 말거나 복잡한 음모를 추적한다. 이러한 기본 전제조건은 다소 터무니없는 설정이지만, 고질라와 킹콩이 홍콩의 고층 빌딩에서 거대한 몸싸움을 벌이는 화면은 실로 엄청나다. 최첨단 기술력이 이정도야 라고 과시라도 하듯, 대단히 놀라운 장관을 전시한다. 그야말로 기억에 남을 스펙터클의 진수를 보여준다. 일견, 외계에서 온 수퍼맨과 조드 장군의 공방전을 무색케 할 만큼 성공적이다.

두 거대 괴수의 상상초월 대결의 배후에서 극적 구성을 완성하는 등장인물에는 배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Alexander Skarsgård), 밀리 바비 브라운(Millie Bobby Brown), 레베카 홀(Rebecca Hall),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Brian Tyree Henry), 카일 챈들러(Kyle Chandler), 데미안 비치르(Demián Bichir), 그리고 케일리 호틀(Kaylee Hottle)이 출연했다. 주요배역이 대체로 전편들과 연관해 다시 등장하는 한편, 콩과 소통하는 지아 역에 첫 출연한 케일리는 태생적으로 수화에 능통해 극중 특별히 애정이 가는 소녀배우.

감독 애덤 윈가드(Adam Wingard)는 영화구성의 마지막 방점으로 작곡가 탐 홀켄보그(Tom Holkenborg)를 낙점했다. 각기 다른 작곡가에게 맡겨진 이전의 연대기적 계보의 작품들과 같이 또 다른 작곡가를 선택한 것. 알렉상드르 데스플라(Alexandre Desplat)가 < 고질라 >(Godzilla)에 영감을 준 것을 시작으로, 헨리 잭맨(Henry Jackman)이 < 콩: 스컬 아일랜드 >(Kong: Skull Island)의 오케스트라 지휘봉을 잡았고, 베어 맥크리어리(Bear McCreary)가 <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Godzilla: King of the Monsters)에 제각기 다른 음악을 써넣었다.

음악의 주제별 일관성은 따라서 시리즈의 우선순위 중 하나가 아닌 셈. < 고질라 vs. 콩 >은 그래서 홀켄보그가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진배없다. 다른 세 작곡가가 이전의 순차적 작품들에 쓴 스코어와 거의 무관한 한편, 원래 쇼와 시대(1954-75년) 토호(Toho)영화사의 < 고지라 >(Godzilla)를 위해 아키라 이후쿠베(Akira Ifukube)가 쓴 주제적 악상을 극히 부분적으로 환기할 뿐이다. 지난 영화에서 맥크리어리가 쓴 스코어가 토호 사의 원작 음악을 깊이 인정해 고질라 테마의 원형을 유지 재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것과는 또 다르다. 현악으로 반복되는 경쾌한 3화음을 특징으로 하고, 4박자와 5박자, 3박자를 오가는 변주 형식이 원형 사운드의 기본 틀을 고수하고, 거기에 상징적인 괴수들을 위해 부수적인 테마들을 써내 오리지널 작곡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한편 새로움을 추구한 전임 작곡가 맥크리어리 나름의 성과를 고려할 때 아쉬울 수 있는 대목.

대신 홀켄보그의 스코어는 명징하게 심금을 울리는 선율적 악상보다 세 가지 특정 질감을 기반으로 한다. 고질라의 등장을 예고하는 ‘Pensacola, Florida’(펜서콜라, 플로리다), 오프닝 큐는 가장 낮은 옥타브에서 연주된 금관악기를 중심으로 구축한 고질라 테마의 기초이다. ‘밤, 밤밤밤, 밤.’과 같이 동일성부 화음을 반복해 변주하는 웅대한 브라스 사운드가 특징. 두 번째 큐인 ‘Skull Island’(해골 섬)는 콩의 테마이며, 두 가지 특정 음악적 질감을 기반으로 한다. 고질라와 다른 한편에서 하강하는 4화음 모티프를 선명하게 나타내는 테마는 덩치 큰 관현악과 합창 시퀀싱이 포효하듯 등장하는 콩의 시각적 자태를 보강한다.

홀켄보그는 콩을 위한 주제음악은 다량의 액션장면에 쓰인 지시악절 가운데, 풍부한 멜로디가 섞여있어 다채로운 반면, 고질라의 테마는 비교적 단순하다고 말했다. 성격이 좀 더 표현력 있고 인간적인 콩과 달리 파충류 괴수인 고질라는 많은 감정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곡가는 콩의 주제음악에는 두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그가 일어서서 고질라와 싸울 때 포효하는 타악기 주도의 거센 사운드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자연과의 조화로운 상태일 때 베이스 마림바와 선율적인 퍼시픽 아일랜드 플루트를 중심으로 오케스트레이션된 테마의 감성적인 버전이라는 사실.

언급했다시피 홀켄보그는 그의 스코어가 이후쿠베의 고질라 테마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대신 튜바와 트롬본이 빠르게 연속적으로 충돌하는 소리를 반복해낸 화음을 새롭게 창출해냈다. 원작에서 고질라의 울퉁불퉁한 존재의 음악적 특징을 표방하되 독자성을 찾은 것. 60여 년 전의 고질라와 콩 영화와 달리 시각적 색조나 분위기는 물론 여러 면에서 기술적으로 향상된 면모에 포커스를 맞췄다. 2013년의 < 맨 오브 스틸 >(Man of Steel)이 1978년의 < 수퍼 맨 >(Superman)과 다르게 재해석되면서 내용에 따른 음악적 접근도 달라진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그는 맥스 스타이너(Max Steiner)의 킹콩 테마나 이후쿠베의 고지라 테마를 직접 참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결국 두 괴수 킹콩과 고지라의 원형테마를 자기 식으로 스코어에 통합해낸 베어 맥크리어리와 또 다른 차별성을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Pensacola, Florida’는 타악기와 왜곡된 전자음이 융합해 긴장감을 불러내는 화성으로 전개되기 전, 극저음에서 고동치듯 서서히 증대되어 폭발하는 금관악기의 반주로 서막을 고한다. 고질라의 등장을 나타내는 지시악곡. ‘Skull Island’는 다소 서사적으로 들리는 금관악절에 현과 목관악기의 친근한 악절을 결합해 불안감을 야기하는 곡 구성이 흥미롭다. 해골 섬을 나타내는 플루트 모티프는 2분 35초경에 처음으로 등장해 콩의 성격에 평화롭고 자연친화적인 면이 있다는 걸 강조해준다.

극의 주인공인 두 괴수를 위한 테마 외에 스코어의 나머지 주된 악상은 어둠의 기술회사인 “에이펙스 사이버네틱스”와 그 회사가 괴수를 영원히 없애기 위한 수단으로 “메카고질라”를 만든 것과 연관이 있다. 메카고질라를 만드는데 사용된 첨단과학기술을 포착하기 위해 작곡가는 전자음악에 의한 일렉트로니카의 장르적 성향에 크게 의존했다. 일련의 맥박처럼 진동하는 신디사이저 펄스와 폭포수처럼 소용돌이치는 전자음을 배후로, 때로는 상당히 강력한 인더스트리얼 소음으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뒷받침한다.

사운드에 수반되는 오케스트라 악상 중 일부는 흥미진진하다. 특히 지시곡의 도입부에서 휘젓는 클라리넷 반주가 그러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메카고질라’ 음악은 고질라 테마의 화음적 모티프를 공유해 가혹하고 가차 없이 반복되며, “뉴 웨이브”, “신스-팝”으로 정의되는 1980년대 유행음악사운드의 질감을 환기한다.

나머지 스코어는 본질적으로 이 세 가지 주요 악상의 반주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케스트라와 전자 소음으로 둘러싸여 있다. 2015년 <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Mad Max: Fury Road)와 마찬가지로 매우 강력하고 시끄러운 소음에 가까울 정도로 소란스럽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없다. 내러티브에 따른 음악적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 중요한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음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고 과격하지만, 콩과 고질라의 무시무시한 대격돌을 초월한 음악의 미묘한 차이가 거의 공존하지 않는다. 음악이 세면 싸우는 것이고, 부드러우면 싸움을 멈춘 것이고, 양단간의 명확한 이분법적 판가름을 달리할 뿐이다.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작곡가의 전작들에서 나타난 오케스트라의 정교함과 디테일의 수준이 대부분 여기에 자취를 감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엄청나게 잔인한 스코어의 내면에는 고질라와 콩이 누구이고 무엇인지 고려하고 음악으로 치환해내기 위해 원시적인 힘을 강조하는 악상을 화면에 펼쳐냈다는 것을 포착할 순 있지만, 그것이 극의 다른 부분들까지 상쇄해 희생해야하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전에 고질라를 상대한 두 영화음악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와 베어 맥크리어리는 모두 스코어에서 멋진 오케스트라 터치를 희생하지 않고도 괴수의 엄청난 괴력을 포착 할 수 있었던 걸 감안하면 더욱 비교되는 일면이다.

그렇다고 낙관적 이면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New Language’(새로운 언어)의 전자음은 외세에서 온 것 같은 신비로운 소리를 내며 매력적이다. ‘Through There’(거기를 통해서)에서 콩의 주제에 대한 반주는 적절하게 영웅적이며, 이어지는 ‘Antarctica’(남극)에서 더 신비한 플루트와 마림바 버전이 그러하다. ‘Hollow Earth’(공동지구)의 처음 몇 분은 부족의 타악기와 모험심으로 가득 찬 이국적인 정글 사운드를 들려주는 한편, 일렉트로 댄스비트가 4박자로 반복해 음형을 만들어내고 전자 배음이 공간감을 더해준다. 흡사 방겔리스(Vangelis)의 <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영화음악을 연상시킨다. 동일하게 ’The Throne’(왕좌)의 서사적 브라스 화음은 극의 맥락에서 적절하게 웅장한 감동을 준다. ‘Just Now’(바로 지금)에서 현악과 신디사이저 전자화음의 조화는 2006년 < 판의 미로 >(Pan’s Labyrinth)의 테마를 연상하게 할 만큼 인상적이다.

‘Tasman Sea’(타즈만 해)로 시작하는 대부분의 대형 액션 시퀀스를 반주하는 음악은 전자 타악기의 끊임없는 망치질 사운드로 채워졌으며, 금관악기에 의한 웅대한 사운드와 현악기의 활기 넘치는 사운드를 특징으로 폭발적인 대규모의 관현악협주를 들려준다. 때때로 다소 추상적인 합창이 가미되기도 했다. 죄르지 리게티(György Ligeti)의 고전걸작 ‘Requiem’(레퀴엠)을 기반으로 괴수들의 격돌에 전조로서 후에 벌어질 참상을 예고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고질라의 테마와 콩의 테마를 중심으로 영화의 내용전개를 뒷받침하는 음악은 전체적으로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장엄하지만, 전혀 새로울 게 없다. 지속적인 타악기 패턴과 금관악기에 의한 영화의 본질적 사운드, 거기에 신디사이저가 결합해 괴이하고 변형된 사운드 텍스처를 증폭해내는 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Nuclear Blast’(핵폭발)로 시작해 ‘Hong Kong’(홍콩)으로 끝나는 종반부의 네 큐는 홍콩을 배경무대로 고질라와 콩 사이의 마지막 전투, 그리고 콩과 고질라가 협력해 메카고질라에게 맹공을 가하고, 물리치는 최후의 결전을 강조한다. 악보의 세 가지 주요 음악적 정체성 ‘콩의 테마’, ‘고질라의 테마’, ‘메카고질라’ 사운드질료가 모두 나타나며, 오케스트라의 대량살상적 폭음을 감지할 수 있다. 괴이한 전자 음향 효과, 타악기 강타, 합창의 가세와 화면의 전개에 필적하는 음악의 충돌이 실로 대단하다. 드럼 및 타악기 군을 이용해 동일성부를 반복 연주해 일정한 음형을 만들어내고, 때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해주는 합창, 그리고 금관악기 군의 우렁찬 사운드와의 융합을 통해 괴수들의 역동적이고 웅대한 활극을 더욱 강력하게 조명해주는 식의 대규모 액션 음악이 종반부의 장대한 전투 장면을 휘덮는다.

이 음악은 거대한 거대 괴수들이 서로를 강타하고, 건물에 충돌하고, 거대한 전투 도끼를 휘두르고, 핵 불꽃을 뿜어내는 장면을 수반해 시각적 위용을 웅대하게 강조하기 위해 쓰였다. 홀켄보그가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DJ로서의 명성으로 정키 XL(Junkie XL)이라는 예명으로 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전자음악에 비중을 두고 클래식 오케스트라를 적절히 조합해낸 결과로 거대한 액션의 파괴력은 음악을 통해서도 공히 전해지지만, 그 광경을 깊이 있게 만드는 명확한 스토리텔링 측면의 부재는 안타까울 따름.

‘메카고질라’ 모티프의 불협화음에 가까운 거대한 전자 팡파르, ‘홍콩’의 오프닝 순간은 특히 합창단이 콩의 테마와 고질라의 테마와 결합될 때 웅장함을 더하고, 나중에는 현, 드럼, 전자 타악기가 결합하여 조성해내는 순간은 한편 귀를 솔깃하게 한다. 무자비하고 스릴 넘치는 전진의 움직임, 큐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지막으로 정키 엑스엘은 전자음악보다 선율적 방식으로 태세를 전환한다. 드럼 루프와 함께 온화한 현악과 타악, 키보드 연주가 조화를 이루면서 더욱 강렬하고 절제된 곡의 전개를 들려준다.

< 고질라 vs. 콩 >(Godzilla vs. Kong)은 확실히 작곡가 홀켄보그가 영화음악가로서 2010년대 초에 비해 확실히 성장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극의 내용전개를 더욱 풍성하게 해줄 음악적 스토리텔링이 미비한 점은 개선이 여지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전통에 대한 존경과 유지 보수 및 개발에 따른 혁신을 추구할 것이냐의 자문자답에서 스스로를 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6년 < 배트맨 대 수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을 한스 짐머(Hans Zimmer)와 공작한 이력 때문인지, < 맨 오브 스틸 >(Man of Steel)의 액션장면에 쓰인 음악을 대부분 재연했다. 액션음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타악 리듬패턴을 그대로 빌려온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콩을 위해 우는 현악과 목관악기, 그리고 처연한 느낌을 주는 신디사이저 화음을 꼭 써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도 남는다. 덕분에 왠지 모를 애잔함과 고독에 공감하게 되기도 하지만, 신파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단, 그게 의도적 설정이었다면 결과적으로 통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위해 쓰인 오리지널 스코어와 별개로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에 수미상관으로 사용된 두 곡의 노래는 바비 빈튼(Bobby Vinton)의 ‘산 넘고, 바다를 건너’(Over The Mountain, Across The Sea), 홀리스(The Hollies)의 ‘내가 숨 쉬는 공기’(The Air that I Breath)이다. 1957년 자니와 조이(Johnnie&Joe)가 부른 곡을 1963년 바비 빈튼이 다시 불러 히트시킨 오프닝 송은 해골섬 어딘가에서 아침을 맞는 콩을 깨우는 기상음악과 같이 사용되었고, 고질라와 협공으로 메카고질라를 파괴한 후 콩이 집으로 돌아와 아침산책을 하는 마지막 장면에 사용된 ‘내가 숨 쉬는 공기’는 1972년 공개되어 히트한 팝송. 발표된 연대와 무관하게 제목과 가사, 그리고 분위기가 영화에 맞춤 선곡되었다. 또한 < 콩: 스컬 아일랜드 >가 다수의 1970년대 대중음악을 선정해 넣음으로써 베트남전을 방불케 한 것과 더불어 상호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 오리지널 스코어 목록
1. Pensacola, Florida(Godzilla Theme)[플로리다 주 펜사콜라(고질라 테마)] (2:18)
2. Skull Island(Kong Theme)[스컬 아일랜드(콩 테마)] (7:24)
3. Apex Cybernetics(에이펙스 사이버네틱스) (2:02)
4. A New Language(새로운 언어) (2:29)
5. Just Now(바로 지금) (1:50)
6. Tasman Sea(태즈만 해) (9:30)
7. Through There(거기를 통해) (1:25)
8. Antarctica(남극 대륙) (2:36)
9. Hollow Earth(지구 공동설) (3:48)
10. The Throne(왕좌) (2:11)
11. Lunch(점심) (1:59)
12. Nuclear Blast(핵폭발) (3:59)
13. The Royal Axe(왕의 도끼) (4:48)
14. Mega(메가) (7:39)
15. Hong Kong(홍콩)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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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의 영화음악 – #4 조커(Joker, 2019)

영화 <조커>(Joker)의 오리지널 스코어(Original Score)는 제76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비공식 음악 부문인 “프레미오 사운드트랙 스타즈 어워드(The Premio Soundtrack Stars Award)”를 수상한 데 이어, 영국아카데미영화상(BAFTA)은 물론, 미국의 양대 영화상인 골든 글로브(Golden Globe)와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에서도 최우수상(Best Original Score)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더욱이 2000년부터 드라마와 뮤지컬 코미디 부문을 통합 수여한 오스카와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공히 여성 최초 수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2019년 최고의 영화음악에 이견의 여지는 없었다. 그야말로 싹쓸이.

트로피를 쓸어 담은 주인공은 힐두르 구드나도티어(Hildur Ingveldardóttir Guðnadóttir), 아이슬란드 출신 여류 작곡가였다. 현악기 첼로와 타악기 퍼커션 연주에도 능통한 그녀는 일찍이 전자악기를 이용해 다양한 실험적 음악을 추구한 영국 펑크밴드 스로빙 그리슬(Throbbing Gristle)과 협연 및 녹음을 했고, 2019년 미국의 “HBO”와 영국의 “SKY” 채널에서 방영한 미니시리즈 < 체르노빌 >(Chernobyl)과 2018년 영화 <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Scicario: Day Of The Soldado)의 작곡가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렸다. 2015년 < 시카리오 >(Scicario)와 <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The Revenant), 2016년 < 컨택트 >(Arrival)의 음악에 첼로 독주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2018년 < 막달라 마리아 >(Mary Magdalene)에서 < 시카리오 >와 < 컨택트 > 이후 동향 작곡가 요한 요한손(Jóhann Jóhannsson)과의 공작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2019년 힐두르는 마침내 영화 < 조커 >(Joker)를 통해 그간 축적한 자신의 음악경력에 방점을 찍었다. 37세에 그는 음악가로서 최대의 공적달성과 동시에 후대에 길이 남을 명성을 떨쳤다. 영화감독 토드 필립스(Todd Phillips)와의 운명적인 조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

필립스 감독으로부터 입수한 < 조커 >의 대본을 읽은 후의 감정을 바탕으로 영감을 악보에 옮겨낸 그는 영화 자체의 거친 경향과 주인공 아서 플렉(Arthur Fleck)의 우울한 인간적 내면을 결합하는 수단으로 단조로운 선율이 포함된 작곡 샘플을 감독에게 보냈고, 복잡한 화음 없이 주연배우 호아킨 피닉스(Joaquin Phoenix)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오케스트레이션을 확장하는 식으로 스코어를 완성해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이 스콧 실버(Scott Silver)와 함께 각본을 맡은 < 조커 >는 그 어떤 영웅적 초능력자도 등장하지 않는 “슈퍼 히어로” 영화다. 매우 현실적인 주제로 내용을 구성했다. 영웅 배트맨과 다른 한편에서 서로 다른 상처를 공유하지만, 영웅에 반하는 캐릭터 조커의 내면을 파고드는 영화는 정신질환에 대한 암울하고 어둡고 폭력적이며 허무주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잭 니컬슨의 희극적인 조커를 생각했다면 큰 오산. 인생의 모든 시점에서 최악의 상황을 겪게 되는 주인공 아서 플렉이 사회적 왕따에서 입장을 바꿔 뒤돌아섰을 때 그의 가슴 아픈 곤경에 진심으로 공감하도록 초대하는 영화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약자 또는 낙오자의 정서로 점철된 주인공 아서가 폭력적 자경주의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치달아 결국 조커로 거듭나기까지 그를 위한 최후의 지지자가 될지 말지는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오스카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튀어나온 갈비뼈, 기묘한 웃음, 불안과 초조의 줄담배 흡연 연기가 그야말로 압권이다. 시각적 관점에서 매우 스타일리시하고, 로렌스 쉐어(Lawrence Sher)의 아름답게 채도가 낮은 영화 촬영법과 마크 프리드버그(Mark Friedberg)의 불편할 정도로 지저분한 프로덕션 디자인을 자랑하지만, 영화의 기술적 측면 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아이슬란드 작곡가 힐두르 구드나도티어의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TV계 최고의 상인 에미상(Emmy Awards/Television Academy)을 수상한 < 체르노빌 >의 스코어와 마찬가지로 < 조커 >에 쓴 구드나도티어의 음악은 보통 고전 클래식에 근거해 작곡된 감성적인 스코어와 결이 다르다. 그녀는 식별 가능한 선율(Melody) 음악보다 전자악기로 내는 음향효과, 즉 윙윙거리는 드론(Drone) 사운드를 단조로운 리듬과 혼합해내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보통 기악편성에 있어 신시사이저와 첼로 독주로 제한된다. 이러한 스코어는 음악의 범위, 맥락에서의 정서적 영향, 직접성과 특이성으로 영화의 주요 문제를 다루는 방식 측면에서 구드나도티어에게 큰 도약의 계기를 제공한다. 여전히 친숙한 첼로 독주와 신시사이저의 조합이 현저하지만, 훨씬 더 큰 관현악 협주 음악과 때로는 합창단을 통합하기 위해 중요한 순간에 오케스트라를 확장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 체르노빌 >이 영화에 수반되는 음악이라기보다 완전히 분리되어 그 자체로 탁월한 음향 효과를 경험하게 해준 것과 달리, 조커는 관객이 영화를 경험하는 방식에 완전히 필수적이며, 호아킨 피닉스의 인물묘사에 생명력과 깊이를 부여한다. 때로는 그에게 영향을 끼치는 외부 힘을 대변하는 외적 변인 역할로 작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내면 깊숙이 잠재해있는 혼돈의 자아를 전면에 나타나도록 표출하는 내적 변인 역할을 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구드나도티어는 캐릭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그는 실제로 세상에 기쁨을 가져다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의 내적 난기류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외부 환경 때문에 실제로 성공하지 못합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정말 동정적이었습니다. 매우 비극적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좀 더 부드러운 면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구드나도티어는 본질적으로 캐릭터에 대한 첼로 레퀴엠(Requiem)을 썼고, 영화가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순전히 각본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을 기반으로 그를 위해 테마를 썼다.

그 초기 첼로 녹음은 실제로 구드나도티어가 개발을 도왔던 홀도로폰(Halldorophone)이라는 전기 첼로 악기로 연주되었다. 이 연주는 ‘Bathroom dance’라는 제목의 곡으로 아서의 연약한 정신이 마침내 깨지고 광적인 분신으로 변모하는 장면에 사용되었다. 이 음악은 극 중 등장인물의 머릿속에 있는 음악이고, 호아킨 피닉스는 실제로 당시 작곡가의 곡에 맞춰 춤을 추면서 역할에 몰입했다고 한다.

첼로는 조커의 악기로 내면의 목소리인 반면, 음악의 오케스트라 측면은 그의 연약한 마음이 부서질 때까지 너무 세게 압력을 가하는 외부 세력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구드나도티어는 인터뷰에서 또한 “최초의 곡은 거의 첼로만 들리지만, 영화에 더 들어가면 오케스트라가 점점 더 커지고 첼로를 질식시킵니다.

그의 캐릭터에 대한 우리의 공감은 첼로가 이끄는 것과 거의 같고, 그의 어두운 면인 그의 내면의 혼란은 오케스트라입니다. 오케스트라는 거의 들리지 않게 시작하다가 점점 더 들어감에 따라 천천히 이어집니다.”라고 부연해 이 사실을 증명한 바 있다. 악보가 전개됨에 따라 아서의 고립감을 대변하는 첼로와 외부 세계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의 불협화음이라는 두 세계가 충돌하여 최종 협연에서 모든 것이 분출된다.

이러한 관현악 편성은 그러나 전적으로 주인공 조커를 표출하기 위한 것으로, 구드나도티어의 음악은 종종 영화 자체만큼이나 암울하고 도전적이며, 첼로에서 나오는 고문의 신음소리와 울부짖음은 주인공의 내면의 생각처럼 의도적으로 왜곡된다. 그러한 캐릭터의 메인 테마는 ‘Defeated clown’, ‘Meeting Bruce Wayne’, ‘Arthur comes to Sophie’와 같은 지시 악곡에서 일종의 신호로 전반과 중앙에서 명확하게 들을 수 있다.

음악은 슬픔에 잠기고, 자기 연민에 휩싸이며, 격노한 감정을 함유해 굽이친다. 이 음악은 고문당한 영혼을 악몽처럼 반영한 것이며 결코 잊지 못하게 한다. ‘Hoyt’s office’, ‘Following Sophie’, ‘Penny in the Hospital’, ‘Hiding in the fridge’, ‘A bad comedian’와 ‘Confession’과 같은 지시 곡도 조커의 첼로 악상을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어둠이 가득한 드럼 타악, 금속성 강한 리듬, 전자음 분위기로 곡을 구성하는 식이다.

이러한 곡들에서 구드나도티어는 그녀의 첼로 사운드가 매우 강력한 음향과 엄청나게 윙윙거리는 화음을 만들어내게 했다. 이는 곧 불안한 감정을 강렬하게 불러내고 휘저어 주인공 아서와 그를 지켜보는 관객이 상호 동일시하게 유도하는 효과로 작동한다. 때때로 이러한 코드 중 일부는 한스 짐머(Hans Zimmer)의 < 인셉션 >(Inception)의 ‘BRAAAM’을 연상하게 한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불협화음이 너무 강하고 생생하여 음악을 듣는 것이 거의 육체적으로 고통에 가깝게 느껴진다.

또 다른 핵심적인 장면에 사용된 지시 악곡 ‘Subway’는 극중 이야기의 전개에 중요한 계기가 되는 설정에 중대하게 작용한다. 처음으로 금관악기 군을 악보로 가져와 조커 테마를 상쇄하고, 본질적으로 그의 끔찍한 폭력이 발생하는 첫 번째 행동에 두 스타일이 충돌하는 방식과 그 주변에서 전자음이 울부짖는 방식은 실제로 매우 효과적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추적인 ‘Bathroom dance’는 합창단을 처음으로 믹스로 가져와서 조커 테마의 잔인한 어둠과 직결된 첼로 코드와 맥락에서 엄청나게 강력한 천상의 보컬 요소를 나란히 배치한다. ‘병원에 데려간 페니’는 또한 강렬하게 맥동하는 대위적 리듬을 생동감 넘치게 활용한 춤곡이다.

아서가 지하철을 빠져나가는 연속장면에 사용된 지시 악곡 ‘Escape from the train’은 액션 음악으로 두 명의 뉴욕 경찰이 조커를 뒤쫓다 모방용 가면을 쓴 조커 무리들에게 발포 후 집단 린치를 당하는 아비규환의 상황에 빠진 전철 내의 혼란과 광기를 다양한 타악기 리듬과 신음하는 첼로 선율, 그리고 웅대한 금관악기의 오케스트레이션 반주로 강조했다.

종결짓는 ‘Call me Joker’는 모든 지시 악곡에 쓰인 소리의 질료들을 모집한 총화와 같다. 조커를 위한 첼로 테마, 첼로와 연관해 신음하듯 연주되는 현악의 질감, 맥박처럼 강약을 반복하는 타악기 리듬이 시계 초침 소리와 같은 음향효과나 굉음에 가까운 전자음과 얼개를 이루며 영화의 종막을 고한다. 아서가 조커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의 신랄한 운명을 기막히게 효과적으로 반주하는 종곡.

아서는 편모슬하에서 키워진 자신의 원초적인 충동과 유기된 세상에서 느끼는 불의에 맞서 싸우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이다. 구드나도티어는 어떻게든 그러한 주인공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중간 지점을 찾고자 했다. 한편 그가 자기를 부정하고, 끔찍한 폭력과 잔인함을 표출하는 순간이 임박했음을 예고하는 음악으로 금관악기 군을 통해 메인테마를 강조한 곡의 구성은 피날레로 완벽하다.

< 조커 >를 위해 구드나도티어가 쓴 스코어는 음악적 관점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성취된 성과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존재감을 높이는 한편, 기본적으로 자신의 장기인 첼로와 실험적 전자음악을 혼합해낸 방식으로 힐두르 특유의 음악성을 확증했다. 극의 주제에 적합한 테마음악이 선명한 것 또한 스코어의 완성도를 높였다. 대다수의 취향을 고려하면서 꾸준히 연마해 터득한 독자적인 자기 방식에 근거해 예술성까지 확보한 힐두르 구드나도티어, 아이슬란드 최초의 여류 작곡가인 그녀에게 상복이 쏟아진 일대 사건이 그냥 일어난 일이 아님을 입증한 스코어. 음악 속에서 힐두르는 조커 그 자체였다.

※ 영화 외적으로 영화의 장면 전개에 따라 장소의 배경음악이나 스토리텔링의 일부로서 부가적으로 삽입되어 사용된 노래나 연주곡에 대한 해설.

영화 < 조커 >에는 다수의 기성 가창곡 및 연주곡이 사용되었다. 광대와 미소에 대한 명백한 언급으로 선정된 곡들이다. 이중 최대 히트곡인 ‘Send in the clowns’는 원래 스티븐 손드하임(Stephen Sondheim)이 자신의 뮤지컬 “A little night music”을 위해 쓴 곡. 영화에서 두 번 나온다.

지하철에서 아서를 공격하는 월스트리트 사업가 3명이 부르고, 후에는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가 부른 버전으로 종영 인물 자막과 함께 나온다. 노래 자체는 가사에서 어릿광대를 반복해서 부르고 있지만, 사실 내용은 후회에 관한 것이며, 특히 관계가 끝날 때 느꼈던 후회를 의미한다. 아서의 절망을 기막히게 대변하는 노래로 애조 띤 가창과 고전적인 양식의 반주가 진한 감동을 불러낸다.

영화에서 직접 언급된 다른 노래로는 ‘If you’re happy and you know it’이 있다. 아서가 병원의 어린이 병동에서 함께 부르는 곡이다. 프레디 아스테어(Fred Astaire)가 영화 < 쉘 위 댄스 >(Shall We Dance)에서 공연한 ‘Slap that bass’는 아서의 아파트 TV에서 나타난다. 잭슨 C. 프랭크(Jackson C. Frank)의 ‘My name is Carnival’은 아서의 라디오 청취를 통해 공유된다. 카니발은 아서의 광대 캐릭터를 대변하는 이름에 다름 아니다.

영화가 후반으로 향하면서 아서는 스스로를 조커로 완전히 수용하고 음악은 세 가지 대담한 노래 선택으로 그의 변화를 반영한다. 그중 첫 번째는 또 다른 시나트라의 노래 ‘That’s life’, 아서가 상징적인 녹색 머리칼로 염색하는 동안과 아캄 정신병원의 내부통로로 달려 도망할 때, 각각 등장한다.

다음은 실제든 영화든 스포츠 경기장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노래 ‘Rock ‘n’ roll (Part 2)’, 개리 글리터(Gary Glitter)로 유명한 글램 록(Glam Rock) 가수 폴 프랜시스 갯(Paul Francis Gadd) 곡으로 조커로 거듭난 아서가 저녁 TV쇼에 데뷔하러 가는 장면에서 사용되었다. 여러 개의 내리막 계단 위에서 보여주는 조커의 흥겹고도 역동적인 춤동작이 압권.

마지막으로 ‘White room’은 전설적인 록밴드 크림(Cream)의 명곡으로 경찰차에 실려 압송되는 조커가 충돌사고로 차량이 전복되면서 거리의 조커 숭배자들에게 구출되는 장면을 반주한다. 이상 후반부에 사용된 세 곡의 노래는 전반부와 확연히 다르다. 조커가 된 이후 아서의 변화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더 어둡고 더 도전적인 곡조의 분위기가 그러하다.

– 영화에 사용된 기성 가창곡 및 연주곡 목록

01. ‘Everybody plays the fool’(모두가 바보를 연기해) – 메인 인그레디언트(The Main Ingredient): 직장동료 랜달이 탈의실에서 아서에게 총을 빌려주는 장면에서 라디오를 통해 연주.  

02. ‘The moon is a silver dollar’(달은 은화예요) – 로렌스 웰크와 그의 오케스트라(Lawrence Welk & His Orchestra): 소피를 만나 방아쇠를 당겨 자살하는 흉내를 낸 아서가 아파트로 돌아와 어머니를 목욕시키는 동안 라디오에서 플레이됨.  

03. ‘Here comes the king’(왕이 행차하신다) – 스티브 카멘(Steve Karmen): 아서가 집에 돌아왔을 때 TV에서 방송 중

04. ‘Rooftop’(옥상) – 힐두르 구드나도티어와 요한 요한슨(2018년 < 막달라 마리아 >(Mary Magdalene)에서 발췌 수록): 아서가 머레이 프랭클린(로버드 드니로 분) 쇼에서 청중들 중 자신을 발견할 때. 쇼에 자신이 출연하는 환상을 반주함.

05. ‘Temptation rag’(유혹 랙타임) – 클로드 볼링(Claude Bolling): 아서가 정리 세일 홍보용 표지판을 돌리는 동안 거리의 악사가 피아노에서 이 노래를 연주함.

06. ‘Slap that bass’(그 베이스를 튕겨라) – 프레디 아스테어(Fred Astaire) (영화 < 쉘 위 댄스 >(Shall We Dance)에서): 아서가 총으로 장난하고 있을 때 텔레비전에서 방영 중인 영화 < 쉘 위 댄스 >에서 흘러나온 노래.

07. ‘Spanish flea’(스페인 벼룩) – 레이 데이비스와 그의 버튼 다운 브라스(Ray Davies and His Button Down Brass): 머레이 프랭클린 쇼 방송이 중단될 때 인디언-헤드 테스트 패턴(Indian-Head Test Pattern)과 함께 배경에 깔린 곡.

08. ‘Murray’s theme’(머레이의 테마) – 주드슨 크레인과 마크 S.  홀링스워스(Judson Crane and Mark S. Hollingsworth): 머레이 프랭클린이 텔레비전 생방송에 등장하는 장면.

09. ‘Murray’s late night’(머레이의 한밤) – 빌리 오코넬(Bill O’Connell): 머레이 프랭클린의 한밤의 쇼 주제곡.

10. ‘If you’re happy and you know it’(당신이 행복하고 그걸 알고 있다면) – 체임 테넨바움(Chaim Tenenbaum): 아서가 어린이 병동에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장면. 춤을 추다 실수로 총을 떨어뜨림.  

11. ‘Send in the clowns’(광대를 들여라) –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12. ‘My name is Carnival’(내 이름은 카니발) – 잭슨 C. 프랭크(Jackson C. Frank): 아서가 호위트의 직장을 떠날 때 “웃는 것을 잊지 마세요.”라는 표지판의 일부를 지움.

13. ‘Smile’(웃음/미소) – 지미 듀란테(Jimmy Durante): 아서가 스탠드 업 코미디언으로 첫 공연을 마친 후

14. ‘That’s life’(그것이 인생) –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아서가 소피와의 데이트 후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춤추고 잠자리에 눕힐 때 연주곡으로, 머레이 프랭클린 쇼에 출연하기 전 메이크업할 때와 쇼가 끝난 후.

15. ‘Rock ‘n’ roll (Part 2)’(로큰롤 파트2) – 개리 글리터(Gary Glitter): 조커로 거듭난 아서가 머레이 프랭클린 쇼에 출연하러 가는 중, 긴 내리막 계단에서 흥겹게 춤을 추는 장면.

16. ‘White room’(하얀 방) – 크림(Cream): 수송 차량 뒷좌석에서 고담시의 폭동을 관망하는 장면.

17. ‘Laughing’(웃음) – 게스 후(The Guess Who) : 첫 번째 변신.  

– 영화의 오리지널 스코어 목록

01. ‘Hoyt’s office'(호이트의 사무실)(1:25) – 표지판을 잃어버린 대가만큼 월급에서 제외하겠다는 말을 듣고 쓰레기 더미를 차 내버린다.

02. ‘Defeated clown'(패배한 광대)(2:39) – 아서가 뒷골목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

03. ‘Following Sophie'(소피를 따라서)(1:33) – 소피와 그녀의 아이를 따라가는 아서.

04. ‘Penny in the hospital'(병원에 페니)(1:18) – 병상에 있는 어머니 페니를 돌보는 아서와 옆에 함께 한 소피.

05. ‘Young Penny'(젊은 페니)(2:02) – 아캄 정신병원에서 어머니 페니의 파일을 본 아서.

06. ‘Meeting Bruce Wayne'(브루스 웨인과의 만남)(4:36) – 웨인의 저택 문밖에서 브루스와 이야기하는 아서.

07. ‘Hiding in the fridge'(냉장고에 숨어)(1:23) – 토마스 웨인을 만난 후 냉장고에 숨은 아서.

08. ‘A bad comedian'(나쁜 희극인)(1:28) – 스탠드 업 코미디를 수행한 아서.

09. ‘Arthur comes to Sophie'(아서 소피에게 오다)(1:39) – 아서가 소피의 아파트 방으로 간다. 아서의 실제 상태와 망상의 정도가 겹쳐 드러난다.

10. ‘Looking for answers'(응답을 찾아서)(0:51) – 페니의 편지를 읽은 아서는 욕실 문을 통해 어머니에게 토마스 웨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11. ‘Penny taken to the hospital'(페니를 병원으로 데려가다)(1:49) – 병원으로 이송된 아서의 어머니 페니.

12. ‘Subway'(지하철)(3:34) – 월스트리트의 세 남자는 같은 열차 칸에 탄 여성에게 치근대고, 아서를 폭행하기에 이른다.

13. ‘Bathroom dance'(욕실 댄스)(2:08) – 범죄 후 홀로 춤을 추고, 아캄 병원에서 근무자와 대화하고, 머레이 프랭클린 쇼의 무대에 오르기 전에 춤을 춘다.

14. ‘Learning how to act normal'(정상적으로 행동하는 방법 배우기)(1:18) – 무대에 나오는 연습을 하고 쇼에 나와 청중들을 맞이하는 장면. 프랭클린 머레이 쇼에서 농담을 하기 시작한다.

15. ‘Confession'(고백)(1:29) – 머레이 프랭클린 쇼에서 세 남자를 사살한 범죄를 실토하는 장면.

16. ‘Escape from the train'(열차에서 탈출하다)(2:31) – 경찰들의 추적을 따돌리는 아서. 아서가 머레이를 죽이려 할 때.

17. Call me Joker(조커라고 불러줘요)(4:49) – 추종자들이 그가 신인 것처럼 그를 응원하자 아서는 얼굴에 피로 미소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