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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SURL) ‘Aren’t You?'(2018)

평가: 3.5/5

거친 질감으로 질주하는 ‘9지하철’은 근래 최고의 오프닝 트랙이다. 간단한 대칭 구조를 설계한 다음 디테일의 변주를 통해 퇴근길 ‘지옥철’을 실감 나게 묘사해나가는 솜씨가 근사한데, 투박하게 내뱉는듯한 메시지도 높은 흡인력을 가졌다. 건조한 베이스 리프로 ‘살과 살이 부딪치는’ 열차 속을 버티다 ‘문이 열리면서’ 에너지를 분출해내고, 리드미컬한 컷팅으로 신경질적인 심리 변화를 그려나가다 무력한 코러스로 종착지를 기다린다.

1998년생 동갑내기 4인조 밴드 설(SURL)의 시각은 꾸밈없이 젊다. 그 세대가 향유했던 얼터너티브 록과 블루스, 브릿팝의 영향을 숨기지 않는 이들은 과장 없는 시각으로 개성을 만들어나간다. 무기력한 로파이(Lo-Fi) 테마를 받치는 에너지와 캐치한 멜로디 제조 능력으로 클리셰의 함정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것이 인상 깊다.

제목과 스타일, 메시지 모두에서 존 메이어의 초기 커리어를 연상케 하는 ‘The lights behind you’는 튼튼한 연주력이 빛난다. 타이틀 ‘눈’은 브릿팝의 감성을 팝적인 파워 코드로 풀어내며 익숙함을 확보한다. 뉴웨이브 트랙 ‘Candy’는 언뜻 < 22 >의 혁오와 겹쳐 보이지만 잔향 가득하고 선명하지 않은 사운드가 다르다.

밴드는 슈게이징 드림팝의 짙은 소리 안개를 의도하면서 명료한 설호승의 목소리로 멜로디 역시 놓지 않는다. 둔탁한 드럼 인트로와 대비되는 하늘하늘한 기타 리프, 힘찬 코러스를 교차해서 달려 나가는 ‘Like feathers’가 그 증명이다. 익숙함을 바탕으로 개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인데 약간의 기시감은 있어도 긍정적이다. 복잡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아 좋은 청춘의 이야기(說).

  • – 수록곡 –
  1. 9지하철
  2. The lights behind you
  3. Candy
  4. Like fea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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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Various Artists) ‘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 (Soundtrack)'(2018)

평가: 4/5

브루클린 출신 스파이더맨이 보여준 성장 스토리에는 지금의 대중음악과 젊은 세대의 문화가 함께 녹아있다. <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는 골든 글로브 장편 애니메이션상 수상을 비롯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도 5위에 안착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작품성과 트렌디한 음악을 동시에 품은 영화는 여러 평행 세계에서 나타난 다채로운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중에서도 흑인-히스패닉 혼혈인 주인공 마일스 모랄레스에게 어울리는 음악으로 오늘날의 모습을 데칼코마니처럼 펼쳐낸다.

새로운 스파이더맨이 된 10대 소년 마일스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나 디지털 환경에 둘러싸여 성장한 Z세대의 특징을 갖췄다. 이들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취향을 저격하는 음악을 찾아 듣고, 유튜브와 사운드클라우드에는 자신의 작업물을 업로드한다. 앨범 참여진을 보면 잘나가거나 떠오르고 있는 힙합 뮤지션들이고, 1990년대에 태어나 앞서 언급한 플랫폼에서 인지도를 높인 래퍼들이 많다는 점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이러한 신예들의 음악은 젊은 세대에게 큰 영향력을 미친다. 영화 속에서도 포스트 말론(Post Malone)과 스웨 리(Swae Lee)의 ‘Sunflower’는 마일스의 ‘인생 곡’이자 긴급한 상황에서 편안함을 안겨주는 곡으로 쓰인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상황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음악이 모인 앨범이라 더 의미가 있다. 히어로 영화에 어울리는 긴박한 분위기의 곡도 있지만 감성적인 이모(Emo) 힙합이 많다는 건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고려했다는 증거가 된다. 원하지 않는 전학을 앞두고 아버지의 경찰차에 탄 마일스는 ‘Invincible’로 꿈과 친구들 그리고 자유를 외치며 불안정한 그의 마음을 드러낸다. 이렇듯 앨범은 오늘날 젊은이들이 끌릴 수밖에 없는 음악들로 채워진 근사한 플레이리스트이자 캐릭터의 심리를 대변하는 역할로 확장된다.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가 담긴 ‘Scared of the dark’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가 스파이더맨의 세계로 진입하는 전환점에 등장해 별다른 대사 없이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동료들과 달리 능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없어 좌절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Hide’는 자신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마일스의 상황과 맞아떨어진다. 진한 인상을 남긴 곡들도 있다. 공식 예고편에 삽입되어 주목을 받은 ‘Home’과 마일스가 진정한 슈퍼히어로로 거듭나는 장면에 쓰인 ‘What’s up danger’는 둔탁한 비트와 웅장한 편곡으로 속도감, 빛나는 도시의 밤을 탁월하게 묘사한 음악이다.

주인공의 방 안에서 목격할 수 있는 챈스 더 래퍼의 < Coloring Book >은 유형의 음반을 내지 않아도 그래미상을 받을 수 있고, 주목받는 래퍼가 될 수 있다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한다. 플랫폼 속 콘텐츠를 소비하는 젊은이들은 다시 생산자가 되고,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며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성장한다.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이뤄진 스파이더 슈트를 검은색으로 칠해버리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정해진 정답 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젊은 세대의 음악을 <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가 그려낸다.

– 수록곡 –

1. What’s up danger – Blackway, Black Caviar 
2. Sunflower – Post Malone, Swae Lee 
3. Way up – Jaden Smith
4. Familia – Nicki Minaj, Anuel Aa (feat. Bantu)
5. Invincible – Amine 
6. Start a riot – Duckwrth, Shaboozey
7. Hide – Juice WRLD (feat. Seezyn) 
8. Memories – Thutmose
9. Save the day – Ski Mask The Slump God, Jacquees (feat. Coi Leray, lougotcash)
10. Let go – Beau Young Prince
11. Scared of the dark – Lil Wayne, Ty Dolla $ign (feat. XXXTENTACION) 
12. Elevate – DJ Khalil (feat. Denzel Curry, YBN Cordae, SwaVay, Trevor Rich)
13. Home – Vince Sta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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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 자카파(Urban Zakapa) ’05′(2018)

평가: 3/5

최근 회자되는 어반 자카파 위기론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비슷한 감정의 호소, 이지 리스닝 혹은 너무 짙은 감성 발라드 ‘계열’의 음악. 그 언저리를 오간 것이 지난 정규 4집 < 04 >이었고, 결과적으로 그 음반은 힘을 잔뜩 준 채 끝나 버렸다. 타이틀 ‘위로’, ‘미운 나’를 비롯해 수록곡은 어두운색으로 느리게 늘어지며 흘러갔고, 힘을 푼 트랙은 반대로 너무 가벼워 그 어떤 잔상도 남기지 못했다. 한 마디로 각자의 자리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여유를 놓친 것이다. 선율, 주제, 무게감으로 대변되는 여유를 말이다.

연장 선상에서 이번 앨범은 꽤 훌륭한 재귀를 이뤄낸다. 밤의 이미지로 시작해 사랑, 인생, 외로움을 자연스레 오간 뒤 다시 쓸쓸한 밤(‘그런 밤’)의 잔상으로 마무리하는 이 여정은 어느 곡에 기대도 여운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잘 다져졌고, 무엇보다 멀어졌던 대중 감각을 되찾았다. 머리 곡 ‘이 밤이 특별해진 건’과 ‘뜻대로’는 고음에서 더 섬세한 떨림을 주는 권순일 음색과 조현아, 박용인의 호흡이 맞닿아 감성 저격 호소력을 만들어내고, 뒤이어 ‘혼자‘는 달콤한 백 코러스로, ‘목요일 밤’은 빈지노 피처링으로 잔뜩 힘준 어깨에 쉴 틈을 준다.

물론 그래서 이 작품이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것이냐 묻는다면, 내 대답은 이렇다. 적어도 그간의 슬럼프, 그 고리는 깔끔하게 잘라냈다. ‘나쁜 연애’에서 선보이는 조현아의 래핑은 (크게 이질적이지는 않더라도) 어딘가 부족한 리듬감을 드러내고, 연이은 ‘허우적허우적’, ‘비가 내린다’는 #미드템포, #피아노, #현악기의 해시 태그 안에서 별다른 특이점을 쟁취하지 못한다. 다만 이건 한 곡 한 곡을 현미경으로 확대해 들여다보고 분석했을 때의 문제다. 조금 떨어져 전체의 흐름을 느껴보자면 음반은 어둡고, 밝고, 외롭고, 쓸쓸한 장면을 들숨에서 날숨 불듯이 흘려보낸다. 즉, 쉽게 와 닿고 편안하게 소화된다는 것이다.

되찾은 대중 감각이 반갑다. 흐린 마음을 달래주던 ‘그날에 우리’, ‘똑같은 사랑 똑같은 이별’, ‘널 사랑하지 않아‘와 같은 초창기 곡들이 타이틀로 다시 한번 멋지게 부활했고, ‘허우적허우적’은 극 후반 선명한 떼창 유도 포인트로, ‘비가 내린다’는 작은 힘으로 살포시 누르는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가 빚어낸 포근한 멜로디로, ‘비틀비틀’은 되려 덤덤한 보컬로 저마다 적절히 청취 욕구를 자극한다. 일상의 갖은 소재를 곁에서 듣기 좋게 노래해주니, 어떤 곡에 ‘나’를 투영해도 잘 어울린다. 그간의 아쉬움을 털어내기에 충분하다.

  • – 수록곡 –
  1. 이 밤이 특별해진 건
  2. 뜻대로
  3. 비틀비틀
  4. 혼자
  5. 목요일 밤 (Feat. 빈지노)
  6. 나쁜 연애
  7. 허우적허우적
  8. 비가 내린다
  9. 그때의 나, 그때의 우리
  10. 그런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