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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IZM이즘x문화도시 부평] #41 박준형

개그맨이지만 DJ 활동으로 음악에 대한 감성과 식견을 드러내고 있다. 소위 “음악광”이지만 개그 분야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음악을 사랑하지만 개그는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라디오 세대로서 라디오에 대한 마음이 남달랐기 때문에 실제 어릴 때부터 라디오 DJ를 하고 싶다 생각을 품었다. 그런데 DJ를 아무나 시켜주는 것은 아니잖나. 그래서 개그맨으로 먼저 자리를 잡고,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던 시기에 방송국에 DJ를 하고 싶다는 제안을 보냈다. 그렇게 맡은 첫 프로그램이 ‘우비소녀’ 김다래와 함께했던 2000년대 초반 KBS의 < 천하무적 >이다.

개그맨 중에서 음악을 잘 아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감성과 공감 능력이 없으면 개그를 짜기 힘들다. 개그맨들이 그런 쪽에 특화된 사람들이다 보니 자연스레 음악과도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벌써 MBC에서 < 2시만세 >를 진행한 지 10년이 넘었다. 정말 긴 세월 동안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에 강하다는 사실을 많이 어필했는데, 그렇다면 어릴 적 롤모델로 삼은 DJ는 누구였는지 궁금하다.
역시 우리 때는 < 별이 빛나는 밤에 > 인기가 대단했다. 이문세 DJ의 < 별밤 >을 들으면서 수학을 공부했는데, 방송이 끝나고 확인하면 두 시간 동안 < 수학의 정석 >에서 푼 문제는 겨우 하나 정도였다. 그만큼 집중해서 들었다는 뜻이다. 당시 잼 콘서트나 보조 MC였던 이경규 선배가 맡은 코너 등이 기억에 남는다. 배우 박중훈 선배가 10시에 진행했던 < 밤을 잊은 그대에게 >나 < 인기가요 > 등도 많이 들었다.

음악에 대한 감수성의 원천은 어디인가?
부모님이 음악을 좋아하신 영향도 있고, 주말에 < 오미희의 가요산책 >을 들으며 인기 있는 가요 20곡을 열심히 듣기도 했다. 정말 재밌게 들은 터라 공테이프로 열심히 녹음도 했고, 배터리가 아까워서 리와인드는 볼펜을 꽂아 수동으로 돌리기도 했다. 당시에는 음악 중간에 DJ 목소리가 들어가면 싫기도 했다.

21~22세 사이에는 영등포에서 리어카를 끌며 가요 테이프를 파는, 이른바 ‘길보드’ 아르바이트도 했다.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절의 일이었다. 하루는 어떤 아저씨가 리어카에 있는 테이프를 200만원에 전부 사면서 다시 오지 말라고 한 적도 있었는데, 알고 보니 길 건너 음악사 사장님으로 나 때문에 장사가 안되어서 그런 것이었다. 내 치기가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일은 바로 접었다. 재미도 있고 사회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도 실감한 경험이었다. 가요의 실제 인기를 체감하기는 정말 좋았다.

당시 가장 잘 팔린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기억의 습작’이 수록된 전람회의 데뷔 앨범 < Exhibition >이다. 실제 훗날 라디오 진행을 하다가 방송국에서 김동률을 만났을 때 덕분에 대학 등록금을 벌었다고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외 당시 서태지는 말할 것도 없었고,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과 룰라의 음악이 함께 들어간 테이프나 ‘일과 이분의 일’을 부른 투투, 신승훈 등도 잘나갔다. 이런 독집뿐만 아니라 컴필레이션이나 클럽 댄스 메들리도 많이 팔렸고, 그중에서 눈에 확 들어온 테이프 표지가 사실 구준엽의 작품이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전체적으로 가요가 막 살아나던 시기였다.

학창 시절 음악을 일깨워 준 가수와 노래도 알고 싶다.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당시 7~8살이었던 나에게 화성을 쌓아 만든 가성이 정말 인상 깊었다. 조용필을 너무 사랑해서 12월 31에 방송하는 MBC의 < 10대 가수제 >도 흥미진진하게 시청할 정도였다. 조용필이 아니라 이용이 상을 타는 바람에 1982년을 올바르게 시작하지 못한 것도 같다. (웃음)

이문세의 4집 < 사랑이 지나가면 >도 충격이었다.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 이야기’, ‘그女의 웃음소리뿐’ 등을 들으면서 음악을 제대로 듣기 시작했고, 당시 조하문의 음악도 많이 들었다. 두 번째 충격은 중학교 2학년 여름 평상에 누워 라디오를 들으면서 만난 유재하의 ‘지난날’이었다. 이듬해로 넘어가면서는 ‘서울 서울 서울’, ‘모나리자’, ’87년 서울’ 등이 실린 < 10집 Part. 1 >과 함께 조용필로 돌아왔다. 친구들은 서서히 조용필과 멀어졌지만 나는 꾸준히 좋아했다. 중학교 3학년 겨울에는 들국화의 ‘제발’을 정말 좋아해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 들국화 II > 앨범을 들었다.

소위 ‘팝 세대’라 불릴 수 있는 1970~75년생에 속해 있지만 팝 음악은 잘 안 들은 것 같다.
가요만 파기에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히트곡 중심으로 들어도 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A면 네 번째 곡까지 듣는 스타일이었다. 그래도 팝 음악 중 내가 국내에 전파한 노래가 있는데, 바로 < 개그콘서트 > ‘패션 7080’ 코너의 오프닝 음악이었던 킨(Keane)의 ‘Everybody’s changing’이다. 나중에 밴드가 페스티벌로 내한 공연을 펼쳤을 때 관중들이 노래에 맞춰 원을 만든 채 코너 속 우리처럼 워킹을 하고 춤을 췄다더라. 보고 희열을 느꼈다.

음악을 좋아했으니 직접 음악을 제작하는 ‘갈프로젝트’도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갈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는 이유는.
‘대박을 쳐야지’ 하는 마음은 없고, 그저 창조적이고 싶다는 생각에 꾸준히 하고 있다. 실제 중학교 2~3학년 당시 기타를 열심히 피면서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는 했다.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녹음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글 쓰는 일도 좋아해 원래는 작사를 꿈꿨는데 점차 음악을 배우다 보니 자연스레 작곡까지 하게 되었다.

공식적인 첫 작곡 결과물은 무엇인가.
‘부킹협주곡 G단조 줄리아나 아리아’. 웃기려고 만든 4분짜리 노래로 클럽에서 여자들을 유혹하는 남자의 입장에서 쓴 곡이다. (웃음) 노래를 만들면서 내가 웃겨도 정작 듣는 사람은 웃기지 않을 수 있음을 배웠다. 과거 영화 < 챔피언 마빡이 >를 찍으면서도 그랬다. 나를 포함한 개그맨들이 코미디를 다 짜면서 재미있다 싶어도 정작 촬영된 영상을 보면 별로였던 것이다. ‘부킹 협주곡’도 나중에 들으니 웃기지 않더라. 영화에서 느낀 괴리감을 음악에서 다시 만난 순간이었다. 그래서 코미디 요소는 처음에만 있고 요즘에는 잘 안 넣는 편이다. 내 노래가 사람들이 돈 내고 들을 만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돈을 떠나 음악 창작을 하지 않았으면 많이 답답했을 것 같다.
그렇다. 노래는 사람의 흥을 돋우니까. 이것이 음악의 힘이라 생각한다.

라디오 시그널 음악도 많이 작곡한 것으로 안다. 제작에 있어서 주안점을 둔 것이 있다면.
히트를 거둔 MBC 시그널 음악을 비롯해 꽤 많이 만들었다. 라디오는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하니 신나게 갈 수밖에 없다. 빠른 템포에 맞춰 활기찬 가사로 ‘우리 다 함께 라디오를 듣는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등의 메시지를 넣는다. DJ가 직접 로고송을 만드니 PD도 정말 좋아했다.

‘갈프로젝트’에서도 ‘To… 쯔위’라는 나름의 히트곡이 있다.
원제는 학창 시절 책상 서랍 속, 시간표 등에 사진을 붙여 놓을 정도로 좋아했던 배우 ‘왕조현’이다. < 천녀유혼 >을 보고 반해, 그날 밤새 공부를 하면서 서울대학교 수석 입학생이 되어 인터뷰에서 왕조현의 이름을 외치는 상상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 추억을 담아 만들었는데, 유통사 친구가 왕조현으로 하면 노래를 누가 듣겠냐 하면서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트와이스(TWICE)의 쯔위로 제목을 바꿨다. 유튜브 조회수가 300만을 찍을 정도로 이슈가 되어서 쯔위도 노래를 알 것 같다. 가사를 보고 유부남이 왜 이러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트와이스의 팬 원스(ONCE)는 오히려 좋아해 줬던 기억이 난다. 다만 이슈만 만들어 주고 노래 흥행까지는 안 시켜주더라. (웃음)

음악과 관련해서 실현하고 싶은 목표가 있나?
로직이나 큐베이스 등의 쉬운 툴 덕분에 음악을 만드는 저변이 넓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옥석은 가려지는 시대다. 뭇 인디 밴드처럼 기막힌 음악을 내가 만들지는 못하겠다고 생각한다. 그저 꾸준히 하고 싶을 뿐이다.

인천 사람은 아니지만 인하대 출신이다. 인천이 일명 ‘음악 도시’이기도 한데, 이에 대해 가진 이미지는 어떠한지 묻고 싶다.
인하대 후문 앞 용현동에서 자취했던 사람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물가가 아주 좋은 곳이라는 사실이다. 술 마시러 가면 안주가 엄청나게 나오는 곳이 많았다. 풍요롭고 낭만 가득했던 모교 주변 풍경에 지금도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대학생 시절 자유공원, 수봉공원, 월미도 등을 돌아다니며 견문도 많이 넓혔다. 대학생 새내기 때 월미도로 데이트를 가게 되면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섬인 줄 알았던 월미도가 사실 택시 타고 가는 유원지임을 깨달은 에피소드도 있다. 공부만 하던 고등학생에서 막 대학생이 되었으니 아는 게 있었겠나. (웃음)
그리고 인천이 음악 다방도 많고, 하드 록과 메탈의 고장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연히 음악이 강한 도시라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박준형의 캠퍼스 생활도 들려줄 수 있나.
개그맨을 꿈꾸고 있던 당시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개그 동아리를 만들었다. 인하공전과 붙어있는 탓에 인하공전 학생들도 우리 학교 쪽으로 많이 다녔는데, 이를 보고 연합 개그 동아리를 만들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푸하하’라는 동아리를 만들고 전단지를 온갖 곳에 붙인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점차 그렇게 되면서 인원이 200명까지 모였다. 회장이었던 나 외에도 < 웃찾사 >의 ‘LTE 뉴스’로 알려진 김일희가 ‘푸하하’ 출신 개그맨이다. 지금도 가끔 동아리 친구들을 만나 밥을 사주고는 한다.

코미디 얘기로 들어가 보자. 박준형 코미디의 핵심은 무엇인가.
‘참신함’이다. 오래 연명하다 보니 진부해진 감도 있지만 그래도 파생 코너가 많이 나온 것은 내가 보여준 신선함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실제 요즘 유튜브에서 활약 중인 < 피식대학 > 채널의 ‘Daily Korean’ 시리즈도 내가 만들었던 ‘생활사투리’와 유사한 면이 있지 않나.

코미디에 대한 영향은 주로 어디서 받았나?
잡지와 신문을 많이 본 덕분에 아이디어는 많았지만 사실 어릴 때부터 웃긴 사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1998년도부터 4년 동안 대학로에서 매일 공연을 하는 극장 생활 덕분에 단련된 것에 가깝다. 극장 출신인 나와 갈갈이 패밀리 사단이 이렇게 경험이 쌓이면서 공개 코미디에 최적화된 호흡을 얻었다. ‘사랑의 가족’ 등의 코너에서 보여준, 한 템포 뒤에서 들어가는 개그도 이렇게 체득한 것이다.

소극장에서 관객을 만나며 연습한 사람들이니까 다른 코너보다 앞설 수 있었다. 정종철이 잘 살려준 ‘마빡이’도 극장 시절부터 ‘건들건들 건달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만든 아이디어였다. 우리의 성공을 보고 이후 < 웃찾사 > 개그맨들이 벤치마킹하여 극장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 개그 콘서트 >는 우리나라의 새천년 웃음의 동의어와 다름없다. 본인이 여태 아이디어를 낸 코너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정말 많지만 그래도 ‘갈갈이 삼형제’다. 내가 아직도 기억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이 코너가 없었으면 내가 이렇게 잘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잘 사는 것 같아 ‘갈갈이 삼형제’에게 고맙다.

박준형을 포함한 여러 개그맨에 힘입어 < 개그콘서트 >가 정점을 찍었지만 지금은 코미디가 거의 사장된 시기다.
사실 모든 것에는 흥망성쇠가 있는 법이니까. 관객을 앞에 둔 당시 코미디 문화가 나와 잘 맞아 성공할 수 있던 것이고, 지금은 또 다른 형식의 코미디가 흥행을 하고 있다. 나한테는 크게 먹히지는 않고, TV 포맷에 어울리는 스타일도 아니라 생각하지만 애초에 요즘 사람들이 TV를 거의 안 보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런 변화를 따르는 것이다.

박준형도 이제 나이가 50을 앞두고 있다. 중장년층에 돌입한 시점에서 박준형의 앞으로의 목표를 묻고 싶다.
선배들을 보면 50세에 들어서 엄청난 아이디어를 내서 성공한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 30대 초반에 성공하고 이후에는 인기를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한계가 있나 하는 생각도 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바둑이나 게임도 경험이 많은 50세보다 젊은 20세의 실력이 더 뛰어나지 않나. 전성기가 지나가면 이제 남은 게 없는 것인지, 초기에 비해 내가 무뎌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래도 이런 의심을 최대한 없애기 위해, 더 노력하고 다른 것을 생각하려 한다. 50대만의 ‘촉’으로 계속 뻗어 나가고 싶다.

진행: 임진모, 장준환, 정다열, 한성현
정리: 한성현
사진: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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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POP Album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 ‘Guts’ (2023)

평가: 3.5/5

지난 2021년 9월 멧 갈라(Met Gala) 행사에 등장한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새까만 깃털 의상을 보고 불과 4개월 전 발매한 데뷔 앨범과는 너무나도 다른 패션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 보니 ‘디즈니 소녀’ 꼬리표를 재빨리 떼려는 시도이자 차기작에 대한 예고가 아니었나 싶다. 전 남자친구를 제물로 바쳐 뒤틀린 신데렐라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뮤지션이 돌아왔다. 완전한 성숙 이전, 혼란스러운 성장 단계에 선 채로.

‘배짱’을 뜻하는 제목처럼 청승맞은 데뷔 앨범에 비해 조금 더 과감해졌다. 첫 트랙 ‘All-American bitch’는 미디어가 그리는 미국 여성의 이상향을 조롱하고, “그저 발이 걸려 침대에 넘어진 것뿐이야”(’Bad idea right?’), ”넌 밤에만 모습을 드러내지“(’Vampire’) 등 섹슈얼한 표현도 스스럼없이 내뱉는다. 웃음기 빠진 디즈니 하이틴에서 파스텔톤 HBO 드라마로의 장르 변경. 한 끗 차이지만 뉘앙스에 분명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Good 4 u’의 성공으로 팝 펑크 리바이벌의 주축이 되었지만 사실 < Sour >에서 그러한 트랙의 비중은 극히 낮았다. 두 배 넘게 증가한 신보의 일렉트릭 기타 함유량은 세 가지를 목표로 한다. 덜컥 얻어버린 수식어에 부합하기 위한 보강공사, 전작과의 차별화 조성 및 성장의 은유, 그리고 좀비 상태인 록 장르의 부흥을 꿈꾸는 평단의 호감 얻어내기다. 속 보이는 전략임에도 포스트 펑크의 털털한 허세와 화끈한 2000년대 팝 록 기타 리프를 재현하는 솜씨에 음악이 결코 밉지 않다.

너무 빨리 무게를 잡은 탓에 퇴행을 택할 수밖에 없던 에이브릴 라빈의 선례를 의식했는지 여전히 나머지 절반은 일기장을 눈물로 적실 10대 백인 소녀 계층을 위한 발라드로 채웠다. 과거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그랬듯 소녀와 성인 사이 회색지대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관습적인 끼워 넣기로 보인다. 목소리부터 울먹이기 바쁜 ‘Logical’, ‘The grudge’ 등은 마땅한 존재 가치를 찾기 어려울뿐더러 고음의 답답한 음색이 테일러 스위프트와의 유사성을 한층 부각한다.

해답은 양극을 달리는 구성 가운데 제3의 길을 제시하는 ‘Pretty isn’t pretty’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1980년대를 신스팝과 펑크(funk), 디스코로 추억하는 천편일률적 양상에서 살짝 벗어나 블론디(Blondie)나 아웃필드(The Outfield)의 서정적 선율과 선선한 뉴웨이브 기타 톤을 결합했다. 감정과 에너지의 과잉 모두 억제한 절충의 미학은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날것의 언어에 통찰력의 아우라를 부여한다. 앨범 후반부에서 가장 번뜩이는 트랙이다.

보편성의 추구로 대중의 지지를 얻었기에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끊임없이 독창성의 증명을 요구받는 처지에 있다. 곳곳을 빼곡하게 채운 주석은 그를 기존 데이터를 끌어와 배합하고 요약하여 내놓는, 마치 챗GPT와 같은 가수로 보이게끔 한다. 그렇다면 원본 대신 그의 음악을 들어야 할 근거는 무엇일까? < Guts >는 이 물음에 정면으로 답하는 대신 나이를 무기 삼은 뻔뻔한 태도로 거침없이 밀고 나간다. 눈치 보지 않는 맹랑한 가수를 목도하고 있으면 점차 의심은 호기심으로, 불신의 시선은 업데이트에 대한 기대로 바뀐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추세라면 언젠가는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할 날이 분명 찾아올지도 모른다.

-수록곡-
1. All-American bitch
2. Bad idea right?
3. Vampire
4. Lacy
5. Ballad of a homeschooled girl
6. Making the bed
7. Logical
8. Get him back!
9. Love is embarrassing
10. The grudge
11. Pretty isn’t pretty
12. Teenage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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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뮤(AKMU) ‘Love Lee’ (2023)

평가: 3/5

‘뮤지션은 나이를 먹는 만큼 성숙해져야 한다.’ 악뮤는 이 고정관념을 충실하고 알차게 따른 팀이다. 라면을 노래하던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로 시작해 사춘기를 거친 남매는 드넓은 바다를 누비며 다음 에피소드를 예고했고, 이런 궤적이 있기에 ‘Love Lee’에는 분명한 설득력이 있다. 그동안 쌓아온 시간이 있기에 지난날의 추억을 기꺼이 재현할 수 있는 것이다.

‘디비디비딥’, ‘비기비기닝’, ‘빌리빌리진’ 등의 유치하고도 유쾌한 운율과 말끔한 화음 사이 공간적 여유를 챙긴 사운드 구성이 첫 정규 앨범 < Play >의 타이틀곡 ‘200%’를 떠오르게 한다. 꽤 많이 선명한 원본의 존재에 자연스레 비교를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래도 여전히 싱그러움을 간직한 남매의 목소리와 노래의 지향점이 전적으로 초심 복귀에 있음을 고려하면 이 충실한 자가복제는 목표 달성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계속해서 이어질 악뮤의 이야기를 채우는 플래시백 같은 싱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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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한로로 인터뷰

데뷔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첫 싱글 ‘입춘’이 주목을 받고 그 여파로 한국대중음악상 두 부문에 후보로 지정되는 등 알찬 성과를 보였는데, 먼저 이에 대한 소회를 듣고 싶다.
회사와 함께 열심히 달려온 성과를 빠르게 이루고 있는 것 같아 신기하고, 당연히 기분도 좋다. 물론 운이 따라준 것도 있으니 지금의 이 행운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고자 한다.

실제 데뷔곡 ‘입춘’은 방탄소년단 멤버 RM의 SNS에 공유되기도 했다.
DM(다이렉트 메시지)에 외국인 사용자가 보낸 영어 메시지가 많이 들어와서 처음에는 해킹이라도 당했나 싶었다. 그런데 찬찬히 보니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곡이 올라왔다”, “노래 잘 듣고 있다” 등의 내용이라 SNS에 공유된 소식을 알게 되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다 보니 힘듦을 토로하는 노래도 “내가 잘해야지” 식의 가사가 많다. 후렴에서 “도와줘요”를 외치는 ‘입춘’이 더 와닿은 이유였다. 노래의 배경을 소개해 줄 수 있나?
제목처럼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쓰인 곡이다. 계절도 그렇지만 현실도 차갑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냉혹함 속에 살아가는 ‘우리’를 생각했다. 청춘이 아프고 시들다가도 다시 꽃을 피우고 싶어 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도와달라”는 가사도 특정한 대상보다는 살아가는 세상에 시원하게 외치고 싶은 마음을 간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넘어지더라도 꽃을 피우고 싶은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달라는 의도를 담았다.

사실 가장 처음 쓴 노래는 ‘비틀비틀 짝짜꿍’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힘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나와 회사의 공통적인 생각에 ‘입춘’을 쓰게 되었다.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었기에 지금까지 낸 노래 중에 가장 아끼는 곡이기도 하다.

현재 국어국문과에 재학 중인 영향인지 가사를 보고 있으면 표현이 참 세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나?
보통 세상을 둘러보다가, 또는 주변 사람들과 평범하게 대화하다가 가사가 시작된다. 거창한 소재보다는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가지는 생각을 꾸밈없이 표현한다. 취업에 대한 청춘의 걱정이나 흉흉한 세상 등 여러 소재를 어떻게 음악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면 ‘따뜻한 세상을 함께 만들고 싶다’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두 번째 싱글인 ‘거울’도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깨달은 생각을 집에 가져가서 가사로 만든 곡이다.

문학 작품에서 가사의 영감을 받은 적도 있는지.
소설보다는 시를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다루는 주제에 어울리는 문체에 대해 많이 연구하고 있다. 특히 허연 시인의 시집 < 불온한 검은 피 >를 정말 좋아한다. 날카롭고 어두운 문체가 내가 쓰고자 하는 분위기와 맞는다 생각한다.

노래 제작 과정은 어떻게 되나? 작사와 작곡 모두 본인이 다 하는 것으로 아는데.
글을 먼저 쓴 다음 가사를 추출하고, 이후 어울리는 멜로디를 붙인다. 편곡은 얼마 전에 데뷔한 같은 어센틱 레이블 소속 가수 이새(Jesse)가 담당한다.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의 결이 나와 비슷해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다. 내가 레퍼런스를 제시하거나 사운드 측면에서 의견을 내면 찰떡같이 알아듣고 작업해 준다.

결이 비슷하다는 것은 록 장르를 의미하는 것인가?
그렇다. 둘 다 록 사운드와 장르 특유의 기승전결을 좋아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을지도 함께 연구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록이 매니아는 있어도 대중적으로 잘 소비되는 장르는 아니다. 그럼에도 록으로 가닥을 잡은 이유가 궁금하다.
평소에 의견을 직설적으로 표출하는 성격은 아니고, 오히려 남의 의견을 많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그러나 음악을 할 때만큼은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답답하더라도 록을 들으면 해소가 되곤 하는데, 이처럼 내가 받은 영향을 남에게 다시 주는 뮤지션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록에는 외치는 듯한 그런 울림이 있지 않나. 나도 세상에 소리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록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그렇다면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나 음악은 어떻게 되나.
장르는 대체로 다양한데 가사에 울림이 있어 몰입할 수 있는 곡을 좋아한다. 선배 뮤지션으로는 이소라와 자우림을 정말 좋아하고, 해외 가수 중에서는 코난 그레이를 꼽고 싶다. 세상을 따뜻하게 표현하는 가수다.

노래 자체도 좋지만 라이브 무대에서 보여주는 실력도 뛰어나다. 원래 좀 노래를 했는지, 아니면 피나는 연습의 산물인지.
내 경우는 확실히 후자다. (웃음) 아무것도 없이 회사에 연습생으로 들어온 후 지금까지도 꾸준히 레슨을 받고 있다. 연습을 계속하면서 점차 구실을 갖추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느껴서 미래를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회사에 다짜고짜 음악을 배우고 싶다는 메일을 먼저 보낸 후 계약했다고 알고 있다.
원래 음악에 대한 직업적인 생각이 딱히 있지는 않았는데, 어느 순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연락을 보냈다.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조금 더 노력하면 충분히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으로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그때 치기 어린 내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참 신기하다.

인디 레이블에서의 연습생 시스템은 다소 생소하다. 어떻게 돌아갔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
프론트맨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을 배우는 시기였다. 앞서 말했듯 보컬 레슨도 받았고 미디(MIDI)도 배웠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한로로’라는 아티스트의 브랜드를 어떻게 구축할지 함께 고민했다. 처음에는 귀여워 보이는 팝 쪽으로 갈까도 했지만 아무래도 내게 맞는 옷이 아니라 판단했고, 차근차근 과정을 거치면서 록으로 방향을 잡았다.

전반적으로 노래가 어둡고 서정적인 느낌이 있다 보니 듣고 있으면 어떤 삶을 살아왔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학창 시절은 사실 생각보다 활발한 편으로, 오히려 친구들을 웃겨주거나 얘기를 나누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다 같이 입시로 힘든 상황에서 터놓고 대화하다 보니 자연스레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친구들을 넘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인 뮤지션이지만 드라마 < 나의 해방일지 > 사운드트랙 ‘다이아몬드’에 작사가로 참여했다. 신인 가수에게 작사 의뢰가 가는 것이 흔한 경우는 아닐 텐데.
마침 같은 소속사의 가수 최기덕의 곡이었다. 원래 작사 작곡 능력이 뛰어난 분이지만 내 작사 역량을 좋게 보고 기회를 먼저 주셨다. 다행히 드라마 측에서도 좋게 봐주셨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쓴 곡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악뮤 이찬혁이 진행하는 이찬혁비디오 프로젝트의 < 우산 > 앨범 수록곡 ‘Romantico'(TETE 원곡)도 그렇고, 이외 다른 사운드트랙도 다른 작곡/작사가의 노래에 보컬로 참여했다. 본인의 곡을 직접 만드는 싱어송라이터의 입장에서 이런 경우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는지 궁금하다.
작곡가나 원곡자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보컬을 연습한다. 아무래도 내가 쓴 곡이 아니다 보니 원작자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최대한 화자의 이야기에 몰입해서 녹음하려 한다. ‘Romantico’의 경우도 녹음하면서 이찬혁에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부르면 되는지 솔직하게 질문했다.

< 우산 > 앨범 참여는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
구체적인 것은 나도 잘 모르지만 이찬혁 측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곡을 고르고, 이에 어울리는 보컬을 찾다 나를 발견해서 연락을 줬다고 알고 있다. 내가 가진 무드가 음반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그 후로도 간혹가다 SNS에서 재밌는 영상을 보내거나 하는 그런 식으로 말을 주고받고 있다. (웃음)

폭발적인 전개를 보여준 ‘입춘’과 ‘거울’ 이후 발표한 ‘비틀비틀 짝짜꿍’은 다소 발랄했고, ‘당신의 밤은 나와 같습니까’와 ‘정류장’은 잔잔한 편이었다. 그런데 데뷔 1년을 넘기고 발매한 ‘자처’는 처음 두 곡과 편곡 면에서 느낌이 비슷해서, 이를 듣고 한 바퀴 여정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비틀비틀 짝짜꿍’을 제외하면 나머지 곡은 당시 느끼는 감정을 순차적으로 담아서 바로 발표했다. 따라서 순서에 특별한 의도가 담기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내 생각이 돌고 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파했다가도 힘을 내며 열심히 살고, 그러다 후회가 들기도 하는 그런 그림. 그런데 이것이 그저 내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오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민이 아닐까 한다. 앞으로도 그때마다의 감정에 따라서 곡을 쓰고 공개할 것 같다.

가수 전에는 시나리오 작가를 꿈꿨다고 했는데, 이렇게 보니 음악에도 느슨하게 서사가 있는 것 같다. 나중에 콘셉트 앨범을 낼 수도 있지 않나 싶은데.
구체적으로 주제를 정한 것은 아니지만 욕심은 있다. 조금 더 살아봐야 생각이 구체화되지 않을까 싶다.

▶ 좌 : 디지털 앨범 커버 / 우 : 실물 음반

마침 8월 29일 공개한 신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제목은 < 이상비행 >, 여섯 곡이 담긴 EP로 4월에 발매한 ‘자처’와 라이브 공연에서 부른 ‘해초’를 수록했다. “이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동음이의어잖나. 현실에서 벗어나 꿈과 ‘이상(理想)’을 좇는 이들을 ‘이상(異常)’하게 보는 사람들이 특히 요즘 늘어나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시선에서 벗어나 나의 ‘이상(理想)’을 찾아 비행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사운드 면에서는 발매 시기인 여름에 맞게 조금 더 청량하고 과감해졌다. ‘입춘’보다 밝고, ‘비틀비틀 짝짜꿍’보다는 강하게. 여름에 들을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그전까지는 다 싱글만 발매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틀을 먼저 다지고 싶었다. 음반을 서두르게 내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완벽하게 풀어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대신 싱글을 하나씩 내면서 입지도 다지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알고 싶었다. 이제는 그래도 될 것 같아서 EP를 발매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싱글 단위로 내다보니 이야기가 이어진다 하더라도 뚝 끊어지는 느낌이 있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 이상비행 >이라는 제목 아래에서 한 편의 영화 같은 느낌을 내고 싶었다. 나 또한 메시지에 집중하고 몰입해서 EP를 작업할 수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들거나 열심히 작업한 곡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타이틀곡인 ‘금붕어’다. 음반 제목을 가장 잘 표현한 곡이라 생각해서 타이틀로 결정하게 되었고, 어항 속에 살다가 자유로워지고 싶어 바다로 나간 금붕어의 이야기를 다룬 곡이다. 막상 나가보니 바다는 어둡고 무서운 것으로 가득했고, 다시 생각한 끝에 자신이 원했던 것이 공기가 있는 푸른 지상과 맑은 하늘이라고 깨닫게 된다. 사실 금붕어는 공기에 닿으면 숨을 못 쉬어 죽지 않나. 그렇지만 죽음을 무릅쓰고도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겠다는 당당한 포부를 표현하는 곡이다. ‘입춘’에서 새싹에 우리를 비유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금붕어에 나를 대입해서, 여러 시선을 다 제치고 도전하고 싶다는 용기를 담아봤다.

EP니까 언젠가 정규 앨범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인가.
당연히 그렇다. 일단 지금은 이번 < 이상비행 > EP에 집중하고 있고, 발매하자마자 본격적으로 다음 단계를 밟아가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 쉬면 오히려 불안한 스타일이다.

목표로 삼은 무대가 있나? 코첼라 이런 것도 좋다.
딱히 없지만 그렇다면 코첼라로 하겠다. (웃음) 사실 특정한 목표를 잡고 이를 성취했을 때 노력했던 것이 사라지는 기분이 좀 이상하다. 개인적으로 네이버 온스테이지를 정말 나가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서게 된 것이 기쁘면서도 다음 목표를 어디로 두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그래서 차라리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대신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넓게 보려 한다. 무대에 건강하게 오를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다는 생각의 결과다.

이즘의 공통 질문이다. 한로로를 음악으로 이끌었거나, 또는 계속 음악을 하게 만드는 인생 음악/음반 또는 아티스트는?
바네사 칼튼(Vanessa Carlton)의 ‘A thousand miles’를 정말 꾸준히 들었다. 중학교 시절 우연히 곡을 처음 듣고 이후 앨범 < Be Not Nobody >도 즐겨 들었다. 지금도 기분 전환이 필요하거나 슬플 때, 산책할 때 등 기분 가리지 않고 종종 찾는다. 어떻게 보면 이 노래를 처음 들으면서 음악에 대한 매력을 본격적으로 알게 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로로가 생각하는 한로로의 음악을 설명해달라.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과 아픔을 최대한 솔직하게 풀어내려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다시 일어날 용기와 살아갈 의지를 주려 노력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것 아닐까.

진행: 한성현, 장준환, 정다열, 김태훈
정리: 한성현
사진 제공: 어센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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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에스(tripleS) ‘LOVElution <ↀ>‘ (2023)

평가: 3.5/5

고강도 트레이닝과 규격화된 공정에 힘입어 지금의 K팝은 현실과의 거리를 더욱 늘리고 있다. 탐구를 요하는 세계관과 뛰어난 퍼포먼스 능력은 아직 어릴 뿐인 청소년 아이돌을 ‘우상’으로 추켜세운다. 트리플에스는 정반대다. 뮤직비디오 속 그들은 길거리를 배회하며 춤을 추고, 숏폼 콘텐츠를 촬영하며, 소셜 미디어 게시물을 올리기 바쁘다. 세 번째 유닛 러블루션(LOVElution) 또한 이런 동질감 조성에 힘쓰며 더욱 뚜렷한 팀만의 개성을 마련한다.

타이틀곡 ‘Girls’ capitalism’은 같은 작곡가의 작품이었던 애시드 엔젤스 프롬 아시아(Acid Angels from Asia) 유닛의 ‘Generation’을 계승하는 곡이다. 펑크(funk) 사운드에 반복적인 ‘랄랄라’를 결합한 기본 구성과 한 번 들어도 쉽게 익숙해지는 멜로디 모두 동일한데, 3분 중반대로 늘어난 러닝타임에 맞춘 정석적인 팝 전개와 높아진 음정이 낳는 화사함으로 변별력을 획득했다. 생소한 특수문자 앨범 제목(‘무한’이라 읽는다)과 흔치 않은 ‘자본주의’ 키워드와 달리 노래는 여전히 쉽다.

이 지점이 그룹의 승부수다. 여타 걸그룹이 환상적인 비주얼 또는 실험적인 음악으로 일반 대중과의 거리감을 조성한다면 트리플에스는 시각, 청각적 요소 모두 친숙함으로 어필한다. 미흡한 가창력과 퍼포먼스 역량, “귀여운 건 이제 지루해”“예쁜 건 다 나의 소유” 등 일차원적 가사가 걸리지만 이를 수행하는 미성숙한 청소년 화자를 고려하면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생각 혹은 착각을 품게 된다. 완벽을 꿈꿀 수 없다면 오히려 그 흠을 무기로 삼겠다는 역발상으로 볼 수 있다.

앨범 전체로 시야를 넓혀도 태도는 동일하다. 직선적인 팝 트랙 ‘Black soul dress’와 ‘Cry baby’, 각각 덥스텝과 재즈스텝 차용으로 리듬을 부각한 ‘Seoul sonyo sound’와 ‘Speed love’, 그리고 그 중간지대라 할 수 있는 ‘복합성 (Complexity)’의 구조를 볼 수 있는데, 변덕 가득한 심리나 어린 연령대 눈높이에 맞춘 가사를 부여해 타이틀곡이 제시한 콘셉트를 유지하고 있다. 이른바 ‘철저하게 어설픈’ 전략이다.

설득력은 아무래도 ‘Black soul dress’와 ‘Cry baby’ 쪽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해맑은 표정을 감추고 진지해지는 순간 어색함이 역력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멤버들의 음색이 묘하게 겉도는 ‘복합성 (Complexity)’은 선배 그룹 오드아이써클에 더 어울릴 법한 곡이고, 지하철 2호선과 청담역을 언급하는 ‘Seoul sonyo sound’의 가사와 냉랭한 톤 사이에는 분명한 이질감이 존재한다. 음악적 시도와 캐릭터 간 우선순위 조율이 조금 더 필요하다.

부족한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로 극복하는 방안에도 한계는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미숙한 이미지를 언젠가는 떨쳐내야 할 순간이 올 것이다.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여태까지의 곡 수급 능력과 기획으로 보아 청신호가 쉽게 꺼질 듯 보이지는 않는다. 다음 유닛 에볼루션(EVOLution)이 남아있지만, 이 정도면 얼추 믿고 듣는 이름이 되었을지도.

-수록곡-
1. &#8576;
2. Girls’ capitalism
3. 복합성 (Complexity)
4. Black soul dress
5. Seoul sonyo sound
6. Cry baby
7. Speed love
8. Number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