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영광이 사라진 홍대 거리에는 처연함만이 남았다. 낮게 가라앉은 보컬, 전면에 내세운 우울한 기타 톤, 그리고 현실적으로 묘사한 가사가 제대로 어우러진다.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며 쓴 노래이기에 그 진심은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비판적인 시각을 과감하게 음악으로 승화하던 비비의 능력이 다시 또 한 번 힘을 발휘한다.
기운 없이 내뱉는 넋두리 닮은 노래와 랩에서도 솔(soul) 감각은 여전히 날이 선채 살아있다. 인디 음악의 메카에서 겉만 번지르르한 번화가로 변해버린 홍대에서 스스로를 비춰보며 하는 자아성찰이 직설적이다. 유명했던 음악의 성지에서 꿈을 꾸던 그가 꿈이 사라진 그곳에서 새로운 꿈들을 향해 쏟아내는 취중진담이 멋지다.
마지막 ‘하입 보이(HYBE boy)’의 차례가 다가왔다. BTS 뷔가 뉴진스 신드롬을 일으킨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프로듀서를 등에 업고 첫 솔로 앨범 < Layover >를 예고했다. 선 싱글 중 하나인 ‘Love me again’은 재즈 스타일을 가볍게 가미한 알앤비로 여유로운 그루브를 구사한다.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는 그간 뷔가 보여주던 중저음의 감미로움을 부드럽게 감싼다.
나른한 인상의 곡을 차분히 즐기다 보면 시선은 자연스레 보컬로 향한다. 글로벌 보이 그룹의 한 일원에서 홀로 서는 그의 상황과도 딱 맞는 음악적 장치다. 이런 모양새 자체는 조화로운 데 반해 선율과 가창에 집중할수록 처음 느껴지던 매력은 점점 떨어진다. 음악이 보유한 고유의 이미지를 과하게 포장해 듣는 이를 늘어지게 만든다. 노래와 가수가 같은 공간, 그러나 다른 리듬 속에 있다.
팝의 본거지 미국은 더 이상 미지의 국가가 아니다. 블랙핑크, 트와이스의 성공에 이어 지금도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는 피프티 피프티와 야금야금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뉴진스까지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국내 시장을 선도하던 걸그룹들의 위세가 만만치 않았음을 증명한다. BTS라는 왕좌가 비면서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Tomboy’, ‘퀸카 (Queencard)’ 등으로 한국을 접수한 (여자)아이들도 미니 앨범 < Heat >를 예고하며 본격적으로 참전을 선언했다. 많은 팀이 해외 대중 음악을 수입하고 재가공해 다시 본국으로 수출하며 가공 무역을 이뤄내고 있다. 역시 수출 강국답다.
다양한 콘셉트와 개성으로 무장했던 탈을 벗고 누구나 듣기 편한 음악으로 돌아왔다. 방향성은 최근 세계 시장에서 화제를 모았던 사례 중 20주 가까이 핫 100 차트를 유영하고 있는 ‘Cupid’와 유사하다. 비교하자면 후바스탱크의 ‘The reason’, 왬!의 ‘Last christmas’, 위켄드의 ‘Save your tears’와 비슷하다. 음악 기술적으로 닮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곡들이 모두 갖고 있는, 음악을 들었을 때 어떤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그 아련함이 ‘I do’에서도 두드러진다. 대단한 능력이지만, 앞선 예시들과 달리 피니쉬가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노래가 끝났을 때 감도는 잔잔한 여운이 아쉽다. 시작은 창대하나 그 끝은 미약하다.
브레이브 걸스가 떠난 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에 결국 다크비만이 남았다. 2021년 ‘롤린 (Rollin’)’ 역주행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소속사를 등에 업고 이제는 단독 주행을 시작한다. ‘미안해 엄마’, ‘Samsung’, ‘난 일해’ 같은 다소 당황스러웠던 과거 콘셉트를 조금씩 내려놓으며 부담감을 줄이고 있다. 대중과의 물꼬가 트인 덕일까. 자신들만의 무대를 펼칠 수 있었던 보이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 < Peak Time >의 영향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평범한 댄스 음악으로 접근성은 높였지만 크게 와닿는 지점은 여전히 부재한다. ‘I need love’라는 심플한 제목과 거슬리는 부분 없는 랩 파트는 편하게 다가오는 반면, BTS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가 떠오르는 곡의 시작점을 지나면 개연성 없는 멜로디와 중구난방식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확 빠져나가는 이질적 파트가 아쉬운 실망감을 안긴다. 중독성과 흡인력, 이를 견인할 매력적 선율과 반주의 빈자리, 결국 음악을 듣고 나면 산산이 흩어져 기억에 남은 것이라고는 없다.
36년만에 나온 속편 < 탑건: 매버릭 >에서 ‘I ain’t worried’를 부르며 화제를 모았던 원리퍼블릭이 다시 시동을 걸었다. 이번 곡도 ‘지친 일상을 벗어나’자는 주제를 담아 다시금 긍정적 에너지를 뽐낸다. 성공가도에 따른 일상을 공유하듯 ‘Runaway’는 아시아 투어를 돌며 완성됐다.
브루노 마스의 흥겨운 리듬 한 스푼, (그나마) 밝은 위켄드의 감성 한 스푼이 들어간 노래는 끊임 없이 활기차다. 행복한 기운을 끊임 없이 분출한다. 지금의 원리퍼블릭을 무엇보다 잘 대변할 기분 좋은 싱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