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Album POP Album

사샤 슬론(Sasha Sloan) ‘I Blame The World'(2022)

평가: 3/5

시작은 조력자였다. 시카고 출신 디제이 케스케이드를 시작으로 스티브 아오키, 그레이 등 EDM 뮤지션들에게 곡을 제공했던 사샤 슬론은 카밀라 카베요, 존 레전드로 장르 폭을 넓혔다. 2017년 EP < Sad News >로 싱어송라이터의 직함도 얻었고 2020년 첫 번째 정규 앨범 < Only Child >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팬데믹을 거쳐 2년 만에 나온 신작 < I Blame The World >는 조력자 이미지를 걷어냈다.

‘Sad Pop’. 샌프란시스코의 라디오 방송 KYLD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을 규정했고 이번 앨범에도 어두움이 관류하지만 지독한 우울로 빠지진 않는다.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라는 가사로 비관주의를 투영한 ‘I blame the world’와 선공개 싱글 ‘Wtf’는 가사와 상반되는 밝은 사운드를 지녔다. 그녀의 뿌리인 러시아 동토에 본거지 로스앤젤레스의 햇살이 내려앉은 듯한, 마냥 어둡지 않지만 밝다고 하기도 어려운 분위기다.

리얼 악기와 전자 음향은 절제된 프로듀싱 아래 조화롭고, 좁은 음역의 가창은 답답함 대신 소곤소곤 공감대를 쌓았다. 미니멀한 사운드가 외려 담담한 울림을 주는 ‘One trick phony’와 어쿠스틱 질감의 ‘Hardest thing I’ve ever done’이 가창의 매력을 드러내며 ‘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을 뜻하는 뉴노멀, 지구온난화 같은 용어를 곡명으로 활용하는 재치도 보였다. 근원적 불안감을 노래하는 기조는 2년 전 발표한 정규 1집 < Only Child >와 비슷하나 조금 더 템포감 있는 팝 록이 주를 이룬다.

‘어찌하여 이토록 많은 아픔을 품었을까?’ 삶이 궁금해지는 음악은 세상이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라고 말해주지만 슬픔의 연합은 희망으로 피어난다. 마음 따스한 염세주의자 사샤 슬론은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 손을 내밀고 < I Blame The World >는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도약대다.

-수록곡-
1. Intro
2. I blame the world
3. Adult
4. Live laugh love
5. Thank you
6. Wtf
7. New normal
8. Global warming
9. I h8 myself
10. One trick phony
11. Hardest thing I’ve ever done

Categories
Album POP Album

블록 파티(Bloc Party) ‘Alpha Games'(2022)

평가: 3/5

척 베리와 리틀 리차드 같은 로큰롤의 창립자들은 불가피하게 엘비스 프레슬리의 조연에 머물렀고 펑크(Funk) 록을 구사했던 피쉬본과 ‘Cult of personality’ 같은 히트곡을 발표했던 리빙 컬러는 무게감이 덜했다. 피부색을 따지는 건 구태의연하지만 흑인 프론트맨은 여전히 낯설고 리드 보컬이자 구심점 켈리 오케릭을 제한 멤버 전원이 백인인 밴드 블록 파티가 독특한 이유다. ‘동네잔치’라는 뜻의 Block party에서 따온 듯한 밴드명은 조화와 화합을 암시한다.

평단의 찬사를 받은 2005년 데뷔 앨범 < Silent Alarm >과 빌보드 앨범차트 12위까지 올라 미국 시장에도 얼굴을 내민 2집 < A Weekend In The City >가 전성기였다. 해피 먼데이스, 샬라탄스의 매드체스터 사운드와 픽시스, 소닉 유스의 펑크 록의 자양분을 담은 1집 수록곡 ‘Helicopter’와 ‘Banquet’는 블록 파티 음악의 정수. 6년 만의 신보 < Alpha Games >는 1집의 에너지에 연륜을 더한 사운드로 휴지기가 무색하다.

아트 펑크와 댄스 록을 뒤섞는 실험성의 중심엔 원년 멤버인 기타리스트 러셀 리색이 있다. 장기인 이펙트 페달로 ‘Traps’의 사이키델릭한 기타 톤을 주조했고 희망찬 분위기의 ‘Of things yet to come’에서는 물 흐르듯 부드러운 피킹으로 테크니션의 면모를 보였다. 독특한 변박의 ‘In situ’는 1970~80년대의 포스트 펑크를 소환했으며 오켈리의 저음 보컬이 돋보이는 ‘The peace offering’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전위성을 도입했다.

다채로운 스타일에 반해 상대적으로 선율의 힘은 약하고, 간혹 부자연스러운 악곡 전개도 드러난다. 명쾌한 댄스 록으로 몸을 들썩이게 했던 1집과 비교되고 그간 쌓은 음악적 자의식이 일부분 역효과로 드러났지만 ‘If we get caught’와 ‘You should know the truth’는 풍부한 코러스로 대중성을 담보했다.

새롭게 참여한 여성 드러머 루이즈 바틀의 역할이 돋보인다. 크레디트에 표기되지 않았으나 이미 전작에서 < Hymns >에서 보컬을 제공한 바 있는 그녀는 셀레나 고메즈, 영국 알앤비 가수 테리 워커와 협업한 바 있다. 신보에서도 배킹 보컬과 수려한 드러밍으로 활력을 불어넣었고 속도감 넘치는 ‘Callum snake’가 하이햇 사운드가 매력적인 ‘Rough justice’로 이어진다.

현시점에서 블록 파티가 유행을 선도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아직도 이들은 특별하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사운드스케이프와 흑과 백의 만남, 뛰어난 여성 드러머의 가담까지. 펑크(Funk)가 아닌 포스트 펑크(Punk)를 재현한다는 점에서 블록 파티는 루퍼스, 타워 오브 파워 같은 밴드와는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수록곡-
1. Day drinker
2. Traps
3. You should know the truth
4. Callum is a snake
5. Rough justice
6. The girls are fighting
7. Of things yet to come
8. Sex magik
9. By any means necessary
10. In situ
11. If we get caught
12. The peace offering

Categories
KPOP Single Single

싸이(Psy) ‘That that’ (Prod. & Feat. 슈가 of BTS) (2022)

평가: 2.5/5

싸이는 분명 독특했다. 엽기적인 데뷔곡 ‘새’부터 2012년 전 세계를 강타한 ‘강남스타일’까지 B급 정서를 관통하는 ‘싸이월드’를 구축했다. 금기시된 욕망을 까발리며 대중들에 쾌감을 안겼고 명료한 멜로디와 퍼포먼스로 메시지를 각인했다.

‘That that’의 첫인상도 강렬하다. 로데오가 떠오르는 라틴 댄스 사운드가 뮤직비디오 속 서부극을 청각화하고 리드 래퍼 슈가는 쿨한 랩과 공동 프로듀싱으로 싸이의 파트너 역할을 수행했다. ‘That that I like that’의 후렴구도 여전히 중독적이나 반복되는 외침이 끝나면 ‘그래서 무얼, 혹은 왜 좋아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포스트 팬데믹을 낙관주의로 노래하지만 뾰족한 개성이 무뎌진 채 두루뭉술하고 과녁 없는 총질에 공허한 총성만이 뒤따른다.

유쾌한 에너지의 ‘That that’은 후크 송의 조건을 확보했지만, 싸이의 고유성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우리가 그에게 원하는 건 대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다.

Categories
Interview

장호일 인터뷰

그룹 공일오비는 톡 쏘는 가사와 진보적인 사운드가 떠오르는 1990년대 X세대의 아이콘이었다. 그룹의 전신은 ‘그대에게’의 무한궤도로 신해철을 제외한 조형곤, 조현찬이 1990년에 데뷔한 공일오비에게 흡수되었으나 대중에겐 장호일과 정석원, 듀엣 포맷의 잔상이 강하다. 음악적 두뇌인 동생 정석원이 은둔자였다면 형 장호일은 연예인적 끼가 넘치는 인물로 두 사람의 묘한 시너지가 그룹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장호일 하면 동시다발적으로 공일오비가 떠오르지만, 이외의 경력도 다채롭다. 공일오비 이전의 첫 시작이었던 서울대학교 밴드 갤럭시와 신성우와 함께한 프로젝트 밴드 지니 등 음악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최근엔 솔로 1집 < Retro >에 수록되어 있던 주곡 ‘Aneka’를 재발매했고, 장호일밴드를 결성했다.

하우스와 일레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 공일오비지만, 장호일의 DNA엔 헤비메탈이 흐르고 특히 딥 퍼플과 밴 헤일런에 강한 자극을 받았다. 기타 연주가의 축제 < 골든기타핑거 기타페스티벌 >에 첫회부터 내리 5회 연속 참여할 정도로 기타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그는 기타만큼은 절대 질리지 않는다고 했다.

여전히 공일오비의 장호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데, 근황은 어떠한가요.

요즘 저희가 윤종신의 < 월간 윤종신 >처럼 월간 싱글을 내고 있습니다. 곡마다 객원 가수를 선별하는 체계죠. 정석원은 그룹의 안 살림을 도맡는 메인 프로듀서 역할이고 저는 예전부터 그랬지만 팀의 대변인 역할들 하며 공연 및 방송을 도맡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떄때 급격히 줄어들었던 공연을 슬슬 다시 시작하게 될 것 같네요.

코로나가 완전히 해제된 건 아니지만 거리두기가 완화되었는데 공연 계획을 잡고 있나요? 라인업이나 공연 진행 방식도 궁금합니다.

당장의 단독 공연은 계획에 없지만 각 지방의 문화센터 등 다른 공연들은 많이 잡혀 있습니다. 따로 준비한다기보다는 상황에 맞춰서 공연하게 될 것 같습니다. 밴드 이젠(EZEN) 당시 보컬이었던 헥스와 하고 정석원은 단독 공연에만 출연합니다.

정석원과 친동생인데 왠지 모르게 공식적으로,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거리감이 있어 보입니다.

정서적으로는 거리감은 전혀 없습니다. 워낙 팀을 오래 해오다보니 화해의 과정에서 생긴 규칙 혹은 묵계가 딱 정해져 있고, 그 선은 안 넘어가기 때문에 아마 그렇게 느끼실 것 같습니다.

혹시 그 묵계 중에 하나만 공개해주신다면?

음악에 대한 전권은 정석원이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끔 기타 연주를 요청하거나 ‘이 곡 모니터링 한번 해줘’해줘’라고할 때는 제 의견을 얘기하얘기하지만, 일반적으로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음악과 예술적인 측면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겠군요.

간섭하지 않는 거죠. 대신에 공일오비가 바깥으로 공연하러 다니거나 외부 활동을 할 때도 정석원이 전혀 관여하지 않습니다. 딱 선이 정해져 있어요. 그래도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인생의 파트너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형은 외부로, 그다음에 동생은 내부로 딱 나눠지는군요. 그래도 정석원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원래 정석원과 공일오비의 베이시스트 조형곤이 방송과 외부 활동을 기피하는 아웃사이더적인 성격이고 공일오비 당시에 단독 공연도 몇 번 안 했습니다. 그래서 정석원은 프로듀싱만 하고 외부 활동은 제가 하겠다고 공언한 거죠.

드물긴 하지만 단독공연을 하면 정석원이 나오기 때문에 팬들이 반가워합니다. 단독 공연과 행사성 공연과의 차별화라고나 할까요. 일반적으로는 헥스가 보컬을 맡지만, 지방에 다닐 때는 가끔 원년 객원 가수 중 한 명인 이장우가 동행해서 향수를 채우기도 합니다.

*이장우: 공일오비 2집 < Second Episode >의 수록곡 ‘떠나간 후에’에 참여한 객원 가수.

< 장호일 음악 인생의 세 가지 순간 >

장호일의 음악 인생에 가장 결정적이었던 세 가지 모멘트가 있었다면, 언제입니까?

공일오비의 결성입니다. 결성 당시엔 동아리 모임처럼 기념만 하고 흩어지는 일회성 프로젝트로 여겼거든요. 저희가 프로 뮤지션이 된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 했는데 이렇게 30년을 넘게 음악을 하다니 운명인가 봅니다.

사실 동물원 같은 팀엔 대학생들의 풋풋한 느낌과 아마추어리즘이 있었는데 공일오비의 음악은 그렇게 아마추어적인 느낌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당시 출현한 악기의 영향이 큽니다. 2집 때는 시퀀서가 등장하고 저희가 30대쯤 되면 샘플러가 나오게 됩니다. 사실 리얼 밴드로만 녹음한 1집은 저희가 들어도 어설플 수밖에 없었지만, 미디가 나오면서 프로그램으로 기본적인 틀을 잡고 가니 연주의 빈틈을 보완할 수 있었죠.

*시퀀서: 연주 데이터를 재생하여 자동 연주하는 프로그램 장비
샘플러: 음을 디지털화하거나 저장하며, 그 음을 소리 신호로 바꾸는 장비.

2집에서 시퀀서가 등장하면서 프로그래밍과 리얼 밴드가 공존하는 상황이 되었군요.

사실은 모든 앨범에 걸쳐 공존을 하죠. 기본 틀을 미디로 설계하고 그 위에 건반이나 색소폰 같은 실제 악기들이 같이 더해지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런 음악 스타일이 이미지에 더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요즘 레트로가 유행인 것과 달리 당시에는 디지털이 트렌디하고 세련된 느낌이었죠. 대학생 오빠들이 최첨단 미디 프로그램으로 찍은 음악에서 미국 음악에서나 듣던 톤 메이킹과 편곡이 나오니까 요즘 말로 ‘너무 힙한 거 아니야?’ 약간 이런 느낌을 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순간은?

음악에 대한 마인드가 바뀐 카투사 시절입니다. 당시 국내 대중음악계엔 ‘이건 안되고 저건 되’라는 자기들만의 이상한 법칙이 있었고 그게 창의성을 저해했습니다. 미군들과 연주하며 ‘이렇게 하면 왜안되?’ 라는 자유로운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군들하고 밴드를 같이 했던 건데 거기서 얻은 건 무엇입니까?

음악에는 틀이 없다는 걸 배웠고 늘 관습에 반기를 들었던 공일오비의 음악적 마인드와도 통하는 지점입니다. 한 가지 특별한 기억이 있습니다. 흑인 친구가 펑키(Funky)한 키보드 치는데 거 너무 잘 치더라구요. 연주에 감동 받아 몇 년이나 쳤냐고 물어보니 일주일이라고 답하더군요. 타고난 리듬감으로 소리를 느껴가며 연주하는 거죠.이후에 ‘음악은 배워서 되는 게 아니구나,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느끼는 대로 하는 게 음악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모멘트는 무엇인가요.

1999년 말 장호일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1집 < Retro >를 냈던 것입니다.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의 어려움을 비롯해 벽을 많이 느꼈습니다.

장호일이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할 때 마음가짐은 무엇이었습니까?

어차피 가야 할 길이 아니냐는 생각을 좀 했었어요. 이미 그전에 신성우와 지니를 조직한 경험도 있고, 대부분의 밴드가 영원히 함께 가기엔 쉽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는 혼자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컬 능력의 부족을 느끼며 차라리 방송이나 아니면 연기 쪽으로 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1집 외에도 솔로 앨범 몇 장 내셨나요?

제 명의로 된 솔로 앨범은 1999년에 나온 1집 < Retro > 한 장입니다. 공일오비 때 각 멤버가 한 장씩 솔로 앨범을 냈고 저는 < Kloma >를 발표했는데 정확하게 장호일 이름을 걸고 발매한 것은 그 한 장이에요.

< 객원 가수 체제의 배경 >

공일오비의 두 축 정석원과 장호일은 정통 보컬과는 거리가 멉니다. 정석원 씨 같은 경우는 아마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같은 경우를 보고 음악에 대한 희망을 얻었을까요?

그것은 아까 얘기했던 ‘Why not?’ 정신과 통합니다. 내가 노래를 못하는데 음악을 해야 하겠고, 작곡에는 자신이 있다면 말씀하신 대로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라든지, 아니면 이레이저(Erasure)처럼 멤버가 2명인데 프로듀싱만 하는 그런 모양새를 그대로 저희가 닮아간 거죠.

객원 가수의 아이디어는 정석원이, 아니면 장호일이 제시했나요?

아무래도 정석원 씨 같습니다. 그는 무한궤도 정식 멤버였고 저는 초기엔 세션 멤버에 가까웠기 때문에 발언 기회가 적었습니다.

결국 공일오비는 정석원의 음악과 장호일의 퍼스널리티가 융화되는 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지금 돌이켜 봤을 때 강조하고 싶은 장호일의 공헌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공일오비의 미싱 링크(전체를 이해하거나 완성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장호일이 없었으면 공일오비도 그저 음악 잘하는 여러 팀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장호일이라는 멤버가 들어오면서 아이돌 적인 특성을 부여했기 때문에 음악성 중심의 팀들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을 준 것 같아요. 약간 날라리 오빠들 같은 모습을 좋아해 주신 것 같습니다.

< 기타를 잡게된 계기 >

두 형제는 계산된 음악, 머리로 하는 음악 같지는 않았고 약간 몸적인 음악을 한 것 같아요. 음악을 오랫동안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는데, 음악을 향한 관심이 형성되었을 어린 시절 풍경이 궁금합니다.

저는 잠깐 피아노를 배우다가 접었는데 대타로 간 정석원 씨가 재능을 발견한 거죠. 어차피 전공할 건 아니니까 당시 유행이었던 팝 피아노를 몇 개월 배우다가 선생님께서 더 가르쳐줄 것이 없다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쯤에 록 음악에 눈을 뜨게 되었고 기타라는 악기에 푹 빠졌습니다. 대구 MBC에 계셨던 아버님의 엘피를 통해 음악을 쉽게 접했던 것 같습니다. 제 인생이 이제 바뀌게 되는 순간은 딥 퍼플의 베스트 앨범 < Deepest Purple: The Very Best Of Deep Purple >을 들었을 때입니다. 딥 퍼플이라는 팀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들은 앨범인데 첫 곡에 ‘Highway star’가 나왔어요. 곡 중간 전설의 기타 솔로를 듣고 충격을 받았죠. 그렇게 기타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월간 팝송을 읽고 딥 퍼플과 레드 제플린이라는 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타를 쳐야 하겠다 결심하게 된 순간인 거죠.

*월간팝송: 1971년 창간한 국내 최초 팝 음악 잡지

그렇게 기타 연습을 시작하셨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어를 번역해 놓은 엉터리 타브 악보로 기타를 배웠습니다. 일렉트릭 기타가 주요 악기인 록을 보고, 용돈 받아서 기타도 사면서 점점 기타에 빠져들게 된 거죠. 그렇게 정석원과 다른 길을 가게 된 거예요.

음악을 평생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이 없었는데(카투사 복무를 마치고 그는 나라기획이라는 광고 회사에 몸담기도 했다.) 무한궤도에서 다른 밴드가 파생되는 과정에서 어쩌다 보니 함께하게 되었고 정신 차려보니까 어느덧 공일오비의 30주년이 되었습니다.

무한궤도와의 인연은 어떻게 되나요?

제대하고 나니 정석원은 무한궤도에 들어가 있었고 신해철도 집에도 자주 놀러 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제 라이브 세션으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신해철이 기타를 쳤지만, 라이브 할 때는 노래를 해야하니 기타 세션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 장호일이 뽑는 공일오비 베스트 5 >

7집 정규 앨범 < Lucky 7 >까지 했으니까 일곱 장에 다 참여하셨습니다. 그 가운데서 장호일이 꼽는 공일오비 베스트 다섯 곡은 무엇입니까?

1. 텅 빈 거리에서

그 곡이 없었으면 지금의 공일오비도 없었을 겁니다. 밴드 역사의 시작점이라서 지금도 연주할 때마다 가슴이 약간 짠한 느낌이 있어요. 원래 타이틀 곡도 아니었고 노래를 한 윤종신도 다른 곡들의 녹음을 마치고 마지막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래서 초판에는 아마 B면 제일 마지막에 있었다가 인기에 힘입어 나중에 나온 판들에는 타이틀로 올라옵니다. 9개월~10개월가량 역주행한 곡이라 어떻게 보면 팔자를 스스로 개척한 곡이라고도 할 수도 있습니다.

‘텅 빈 거리에서’는 공일오비가 일회성 프로젝트라는 느낌을 사라지게 했죠. ‘이젠 안녕’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2. 이젠 안녕

그래서 노래도 팔자가 있다고 합니다. 정규 2집 < Second Episode >에 들어있는 ‘이젠 안녕’도 알아서 잘 팔자를 개척했는데 원래 이게 제목 그대로 밴드 활동에 작별을 고하는 노래였습니다. 정규 1집 < 공·일·오·비 >를 내고 멤버들이 흩어졌다가 앨범이 잘 팔리는 바람에 사장님의 부름을 받고 낸 2집이거든요. 우리는 각자 취직하고 복학해야 하니 그래 여기까지 ‘이젠 안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노래 인기가 높아져 한동안 노래방 보너스 타임의 단골이 되고 이제는 졸업식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습니다.

이게 왜 졸업 노래가 됐나를 유래를 좀 살펴보니까 저희 팬 중 선생님이 되신 분들께서 졸업 노래로 ‘이젠 안녕’을 골랐고 그게 마치 구전 가요처럼 퍼지고 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3.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애증의 곡입니다. 유재학 대영 AV 사장님께서는 소속 뮤지션들에 큰 간섭은 안 하셨는데 이 곡만큼은 ‘랩을 해보자’라고 제안하셨죠. 저희 입장에서는 서태지를 비롯한 몇몇 뮤지션이 빠른 랩을 구사했으니 반대로 느린 랩을 시도해보려고 했지만, 사장님 마음에 안 드셨나 봐요. 그래서 리듬 없는 내레이션을 해봤는데 이번엔 저희 마음에 안 와닿았고 원래 의도대로 진행했죠. 내정된 2집의 타이틀 곡은 ‘4210301’이었는데 팬 음 감회에서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의 불호가 많아서 청개구리처럼 이 곡을 선택했죠.


*대영 AV: 1990년대의 대표적인 레이블로 김동률, 신해철과 공일오비가 소속되어 있었다.

4. 아주 오래된 연인들

‘아주 오래된 연인들’의 데모가 참 좋았는데 1차 녹음이 생각대로 안 나왔죠. 보컬도 따로 없는 상태였다가 윤종신의 친구였던 김태우가 급작스럽게 투입되었어요. 다행히 김태우의 목소리 톤이 너무 좋아서 정석원도 바로 녹음에 들어가자고 했죠. 다만 첫 녹음은 생각 밖으로 별로여서 비상 회의 끝에 새벽 4시까지 숙소에 모여서 결국 멜로디를 바꾸고 수정된 버전을 내게 되었습니다. 그 곡으로 덕분에 언더그라운드에 있던 공일오비가 오버그라운드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김태우: 1969년 출생으로 그룹 뮤턴트 및 솔로로 활동

이 곡에 힘입어 후속곡들도 인기를 얻었는데 타이밍 좋게 < 내일은 늦으리 > 콘서트에 나가게 되었죠. TV 출연 한 번도 안 하다가 방송에 나오게 된 셈인데 사람들은 공일오비 하면 서울대 출신 모범생을 예상하였나 봐요. 그런데 김태우가 야생마처럼 무대를 휘젓고 무슨 날라리 같은 애들이 나와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니까 약간 문화적 충격을 줬던 것 같습니다. 소위 말하는 오버 나잇 센세이션이라고 하룻밤 만에 스타가 되었죠. 마니아에서 대중으로 팬의 범위가 넓어진 거죠.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늘 김태우를 기준으로 다른 보컬들을 판단하는 것 같아요. 그 정도의 가창력과 무대 장악력을 가지고 있긴 쉽지 않습니다.

*내일은 늦으리: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환경보전 슈퍼 콘서트.

5. 신인류의 사랑

원래 정규 4집 < The Fourth Movement >의 타이틀 후보곡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 영화사에서 X세대 남녀 간의 사랑에 관한 음악을 요청해왔고, 감독님께서 모던한 스타일을 원한다고 하셔서 ‘신(新)인류의 사랑’을 가지고 갔더니 거절당했죠. 욱하는 마음에 이 곡을 타이틀로 밀었는데 대박이 나서 전체 앨범 판매량은 4집이 가장 높았습니다. < 응답하라 1994 >에 나왔던 가요 톱텐 연속 5주 1위와 골든컵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곡이죠.

*KBS 가요 순위 프로그램 < 가요톱텐 >에서 5주 연속으로 1위를 하면 골든컵이라는 명예 졸업 제도가 있었다.

가사가 상당히 화제 되었습니다.

여성단체에서 최악의 가사 중 하나로 뽑을 만큼 당시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었죠. 조금 억울한 게 전체적으로 찌질한 정서의 남자 얘기고 ‘신(新)인류의 사랑’이라고 한 것 자체가 이미 비꼬는 제목이거든요. 논란이 있었지만 ‘맘에 안 드는 그녀에게 계속 전화가 오고’처럼 다들 속으로 말 못하는 데 공감하는 그런 내용들을 담았죠.

정석원이 기본적으로 소심한 마인드기 때문에 가사도 억지로 만들어낸 게 아니라 본인에게서 나오는 소심남의 정서를 표현하는 거죠.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아도 속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너를 생각하며 집 앞에서 기다린다.’ 이런 심상들이 공일오비 발라드에 공통으로 흐르는 거죠. 여기에 약간 기술적인 방식이 추가되는 건데 구체적 날짜나 장소명을 가사에 넣어서 대중의 공감을 끌어냅니다.

정규 5집 < Big 5 >에서는 리메이크 곡인 ‘슬픈 인연’과 ‘단발 머리’가 히트했습니다. 유재학 사장이 이전에 조용필의 매니저였기에 허락을 받을 수 있었을텐데 ‘단발머리’를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슬픈 인연’은 소리의 완성도가 높은 곡이고 ‘단발머리’는 저희가 항상 꾸준하게 추구해온 복고 사운드의 완성형입니다. 사실 지금의 복고 유행이 저희들 시선에서 재밌고 신기합니다. 옜날에 우리도 복고를 추구했는데, 2~30년 후의 대중음악도 복고를 지향한다는 지점에서요.

원래는 앨범 전체를 리메이크 곡으로 만드려고 했는데 사장님께서 결사 반대를 했죠. 한국에서는 그건 안 된다. 의견을 절충해서 두 곡을 만들기로 했고 저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조용필 선배님을 빼놓을 수 없었죠. 선배님의 여러 곡 중 ‘단발머리’로 낙점했고 힘들게 허락 받다보니 부담감이 커져 녹음을 약 10차례 진행했습니다. 타이틀 곡으로 밀었는데 인기는 ‘슬픈 인연’이 더 많았죠.

돌이켜 보면 5집 < Big 5 >를 정점으로 공일오비가 하향세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레트로로 가는 선택은 지혜로웠으나 창작곡으로 승부를 겨뤘다면 앨범 두어 장은 더 발표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개념이 공일오비의 음악 인생을 관통하는 모토군요.

말씀처럼 뮤지션은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길로 가면 잘 되는 게 너무 뻔하게 보이는 거죠. 밴드 초기에는 이것저것 고민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많이 경험이 쌓였으니 ‘가고 싶은 데로 가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 장호일 기타 연주의 핵심- 범용성 >

장호일의 기타 연주의 핵심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범용성이라고나 할까요. 록밴드 갤럭시로 시작한 만큼 하드락이나 헤비메탈 DNA가 있지만 공일오비는 정반대의 발라드를 했거든요. 저한텐 제일 어려운 장르가 발라드예요. 발라드 편곡법이 굉장히 어려운데 반강제로 연습하다 보니 실력이 쌓이고 스펙트럼이 되게 넓어진 거죠. 그래서 웬만한 장르는 이제 자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우스갯소리긴 하지만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덕에 한국 힙합의 시조새이기도 합니다. 힙합책에도 적혀 있어요. 신성우와 한 프로젝트 그룹 지니의 1집 < Cool World >가 한국 펑크(Punk)의 시조가 되더라고요. 1995년 작이니 크라잉 넛보다 1년 먼저 나왔거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도움이 됐던 일이 하나 있어요. 서울대학교 밴드 갤럭시에 2기로 들어가 선배들에게 사랑과 평화 스타일의 펑크(Funk) 음악을 사사하였죠. 소위 말하는 ‘쨉쨉이’ 연주 스타일을 반강제로 주입받게 되었는데 나중에 엄청난 도움을 준 거죠. 장기간 수련이 돼 있기 때문에 또 제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가 이 펑크 장르입니다. ‘아주 오래된 연인들’ 같은 경우도 피아노가 워낙 분리해서 잘 일이지만 사실은 펑키 기타가 꽤 많이 들려요. 

이번 ‘Aneka’의 재발매도 기타리스트로서의 장호일은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기타 축제 <골든핑거기타페스티벌>에도 수년째 참여하고 있구요.

보컬 멤버가 그룹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공일오비의 앨범에는 항상 연주곡이 하나씩 들어 있었고, 그 전통이 제 솔로 앨범에도 이어져 1번 트랙은 기타 연주곡 ‘Aneka’입니다. <골등핑거기타페스티벌>에서 제 곡을 들려드리면 의미가 더 깊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좋아해주시더라구요.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의미가 있는 곡이고 대중들로 하여금 기타리스트로서 장호일을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곡이라서 뿌듯합니다.

< 장호일 인생의 결정적인 앨범 >

오늘날 장호일을 만든 결정적인 앨범은 무엇이 있나요? 

1. < Deepest Purple: The Very Best of Deep Purple > – 딥 퍼플

2. < 한동안 뜸했었지 > – 사랑과 평화

1번은 앞서 언급한 < Deepest Purple >입니다. 가장 중요한 ‘인생 기타리스트’는 리치 블랙모어고 가장 결정적인 곡은 ‘Highway star’겠죠. 기타라는 악기를 잡게 된 터닝 포인트가 되었으니까요. 국내 앨범은 사 ‘한동안 뜸했었지’ 들어간 사랑과 평화의 1집 < 한동안 뜸했었지 >입니다. 이 앨범을 들으며 펑크(Funk) 음악을 수련했죠.

3. < Van Halen > – 밴 헤일런

리치 블랙모어 때문에 기타를 잡았지만 가장 많이 좋아하고 따라했던 기타리스트는 에드워드 밴 헤일런입니다. 최근 우연히 밴 헤일런 음악을 쭉 듣다 보니 제가 그들의 리프를 거의 다 칠 줄 알더라구요. 옛날에 연습했던 감각이 남아있는거죠. 태핑 주법을 대중화한 ‘Eruption’은 일대 충격이었습니다.

4. < Are You Experienced > –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오히려 최근 한 10년 사이에 지미 헨드릭스를 되게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한참 기타를 배울 1980년대에는 밴 헤일런과 잉베이 맘스틴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등장하다보니 지미 헨드릭스는 올드한 스타일이다라고 인식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에 이미 기타를 완성한 사람이구나’라는 걸 깨달은 건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습니다. 제가 만약 1970년대 사람이고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를 본다면 ‘저 사람은 진짜 외계인으로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전에는 엘피로 소리만 접했는데 요즘은 수많은 라이브 영상들을 보다보니 느낌이 새로워요.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가 않고 공연 사진들 보면 옛날 흑인들 무시당하던 시대에 관객이 전부 백인이에요. 지미 헨드릭스는 기타의 조상신이죠. 

최근에 주목한 뮤지션이 있습니까?

잔나비. 대중들에게 많이 뜨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알고 지냈는데 취향 저격입니다 반복해서 듣는 음악이 몇 없는데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가 수록된 < 전설 > 앨범이 무척 좋아서 반복해서 들었어요. 혁오도 좋아하는 밴드입니다.

진행: 임진모, 손민현, 염동교
사진: 염동교
정리: 손민현, 염동교

Categories
Album POP Album

쥬얼(Jewel) ‘Freewheelin’ Woman'(2022)

평가: 3/5

약관의 나이에 발표한 데뷔 앨범 < Pieces Of You >의 초기 성적은 부진했으나 2년 후인 1997년 밥 딜런 콘서트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며 형세를 뒤집었다. 숨 가쁘게 역주행한 앨범은 미국에서만 1,100만 장 이상 팔렸고 ‘Who will save your soul’, ‘You were meant for me’, ‘Foolish games’ 세 곡의 싱글이 탑 20에 안착했다. 포크 록을 시작으로 컨트리와 키즈팝, 일레트로 팝을 경유한 미국 싱어송라이터 쥬얼은 7년 만의 새 앨범 < Freewheelin’ Woman >에서 그간의 자양분으로 미국의 음악 정신과 전통을 혼합한 아메리카나(Americana)를 시도했다.

컨트리와 포크 풍의 전작 < Picking Up The Pieces > 이후 7년간 충전한 음악적 에너지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삶의 좌절과 희망에 관한 진솔한 고백은 개인의 서사를 공감대로 확장했고 쥬얼은 에이브릴 라빈과 폴 아웃 보이의 앨범을 제작했던 프로듀서 부치 워커와 공동 프로듀서를 맡아 다채로운 스타일을 아울렀다.

청소년 노숙자에 관한 다큐멘터리 < Lost Memories >에서 영감받아 작곡한 ‘No more tears’는 조지 해리슨의 ‘All things must pass’처럼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라고 위로를 건네며 미국 록밴드 후티 앤 더 블로피시의 보컬이었던 다리우스 러커와 하모니를 이룬다. 가사 전체에 ‘Half’(반)이라는 단어를 심은 ‘Half life’는 컨트리와 가스펠을 섞은 가창으로 삶의 반환점을 노래한다.

미국이 백인 만의 것이 아니듯 아메리카나는 흑인 뿌리의 소울과 블루스를 포괄한다. 이미지 고착화를 지양했던 쥬얼은 신보에서 영국의 소울 가수 더스티 스프링필드나 전설적인 재즈 싱어 사라 본, 엘라 피츠제럴드의 영향력을 드러냈고 보컬 이펙트와 펑키(Funky) 그루브가 복고적인 ‘Alibis’와 브라스 사운드가 돋보이는 ‘Living with your memory’에서 흑의 아메리카나를 소환했다.

‘You were meant for me’를 불렀던 목소리는 세월의 더께가 쌓여 성숙해졌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서사가 ‘Foolish games’의 풋풋함과는 또 다른 독립적 여성을 노래했다. 29년 차 베테랑 뮤지션의 품격과 중년 여성의 여유가 두루 묻어나오는 앨범이다.

– 수록곡 –
1. Long way ’round
2. Dancing slow (Feat. Train)
3. Alibis
4. Grateful
5. Half life
6. Almost
7. Dance sing laugh love
8. Living with your memory
9. No more tears (Feat. Darius Rucker)
10. When you loved me
11. Love wins
12. Nothing but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