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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마리(Anne-Marie) ‘Therapy’ (2021)

평가: 2.5/5

< Therapy >는 ‘Friends’와 ‘2002’가 수록된 < Speak Your Mind >에 이은 앤 마리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이다. 경력의 시작점을 함께 했던 영국 드럼 앤 베이스 그룹 루디멘탈이 소울풀한 댄스곡 ‘Unlovable’의 비트를 주조했고 ‘2002’의 선율을 책임졌던 에드 시런이 다시 한 번 ‘Beautiful’의 산뜻한 멜로디를 제공했다. 원 디렉션의 나일 호란까지 ‘Our song’에 피처링 아티스트로 참여해 전작보다 협업의 비중을 대폭 늘렸지만 외려 앤 마리 본인의 역할은 축소되고 고유색은 옅어졌다.

미디엄 템포의 곡을 군데군데 배치하며 완급 조절에 성공한 전작과 달리 이번 앨범은 트랩 비트 기반의 댄스곡들이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미국의 가수 겸 래퍼 루미디의 ‘Never leave you (uh oooh, uh ooh)’를 샘플링한 라틴풍의 ‘Kiss my (uh oh)’와 ‘Fill me in’에서 크레이그 데이비드가 사용한 투스텝 리듬의 ‘Don’t play’처럼 간혹 스타일의 변화를 주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비슷한 질감의 사운드 프로덕션이 몰개성으로 작용했다.

‘네 여자 친구에게 네가 얼마큼 거짓말쟁이인지 말해줄 거야’ (Tell your girlfriend), ‘네가 나한테 한 모든 짓, 내가 두 배로 돌려줄 거거든’ 같은 가사는 직설적이지만 당당한 애티튜드의 방증이고 실연으로부터 자존감을 회복하는 그의 방식이다. ‘2002‘에서 추억을 들추어 촉촉한 노스탤지아를 그려냈던 앤 마리는 이번 앨범을 통해 낭만 이면의 비정한 현실을 주저 없이 맞닥뜨린다.

< Therapy >는 21세기 유행가들을 갈무리한 인상이 짙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샤키라의 과거 댄스 넘버에 트랩 비트를 덧씌운 느낌의 곡들이 무책임한 익숙함을 안겨주고 독자성을 저해했다. 스토리텔링의 주체성을 확립한 앤 마리는 음악적으로도 자신의 색깔을 찾아야 한다.

– 수록곡 –
1. x2
2. Don’t play
3. Kiss my (uh oh)
4. Who I am
5. Our song
6. Way too long
7. Breathing
8. Unlovable (feat. Rudimental)
9. Beautiful
10. Tell your girlfriend
11. Better not together
12. Thera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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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미 ‘Dumb dumb'(2021)

평가: 2.5/5

프로젝트 그룹 아이오아이의 중심축으로 활약했던 전소미는 2년 동안 단 세 장의 싱글을 발표하는 미비한 음악 활동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약 1년 만에 나온 신곡 ‘Dumb dumb’은 ‘What you waiting for’의 당돌함과 ‘Birthday’의 상큼함을 혼합했으나 보컬과 랩, 드롭으로 압축된 2분 30초의 곡 구성은 베테랑 프로듀서 테디의 매끈한 손길마저도 힘이 반감된 채 변화무쌍과 산만으로 작용하는 양날의 검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더 연약해 청초해 보일까’라는 가사가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에 전소미는 노래 속 주인공은 순진하지 않고 ‘네 머리 꼭대기에서 춤출’만큼 모든 내숭이 계산되어 있다며 반전 매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계산된 행동도, 연약한 척도 사라지지 않는다. 적극적인 유혹으로 카리스마를 드러낸 이효리의 ’10 minutes’가 나온 지도 20년이 되어간다. 어설픈 가사, 어설픈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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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지 워너비(SG Wanna Be+) ‘넌 좋은 사람'(2021)

평가: 2.5/5

2000년대 중반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은 당시 노래방에서 SG워너비의 노래들이 멈추지 않고 울려 퍼졌다는 것을 기억한다. 소몰이창법과 획일적 곡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상업적 성공을 거뒀음을 부정할 수 없다. 3년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신곡 ‘넌 좋은 사람’은 ‘내 사람’ ‘라라라’같은 전성기 곡을 함께 했던 조영수가 작곡을, 그룹 멤버 김진호가 작사를 맡았다.

현악 세션의 전면 배치와 명확한 기승전결의 구조, 비교적 빠른 템포까지 대중에게 익숙한 SG워너비 표 발라드 공식을 그대로 가져간다. 곡 후반부로 갈수록 퍼커션과 현악기 소리에 악센트를 주어 극적인 효과를 부여하지만 특별함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가창에서 김진호의 비중이 높고 그의 폭발적인 애드리브를 이석훈의 깔끔한 창법과 김용준의 섬세한 음색이 중화한다. ‘내 곁에서 날 믿어주는 넌 좋은 사람’이라는 노랫말은 사랑 고백 임과 동시에 팬들을 향한 고마움의 메시지. 남성 보컬 그룹의 감성을 그리워했던 이들에겐 선물이지만 여전히 과거 히트곡의 답습이라는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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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기저드 앤드 리저드 위저드(King Gizzard & Lizard Wizard) ‘Butterfly 3000’ (2021)

평가: 4/5

전형적이지 않은 악곡 전개와 정신 착란적인 사운드스케이프, 사이보그와 괴물이 등장하는 ‘Gizzverse’라는 세계관까지 컬트적 요소를 두루 갖춘 호주 출신 킹 기저드 앤드 리저드 위저드는 지난 10년 동안 무려 18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발표했다. 사이키델릭 록과 재즈 퓨전, 헤비메탈 등 각기 다른 장르의 앨범을 만들어온 이들은 전작 < L.W. >가 나온 지 불과 4달 만에 19번째 정규 앨범 < Butterfly 3000 >을 내놓았다. 넘치는 개성과 대중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은 이 괴짜 밴드는 이번엔 여름에 잘 어울리는 산뜻한 신스 팝을 선사한다.

난해한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 < Polygondwanaland >와 과격한 스래시 메탈 < Infest The Rats’ Nest >처럼 대중성과 거리가 먼 음악을 펼쳐온 이들은 홈레코딩으로 제작한 이번 신작에서는 선율을 강조한 신스 팝을 내세워 감상의 진입 장벽을 대폭 낮췄다. 덕분에 그들의 경력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듣기 쉬운 음반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10곡에 걸쳐 반복되는 신시사이저 루프는 잊히지 않는 잔상을 남기며 앨범에 일관성을 부여했다. 앨범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느낌을 받는 이유지만 소리의 실험자답게 신시사이저에만 의존하지 않고 여러 가지 악기를 배합해 곡의 개별성을 확보했다. 어쿠스틱 피아노와 기타가 상쾌한 ‘Interior people’과 월리처 피아노에 멜로트론을 더해 풍성한 소리를 구현한 ‘Blue morpho’가 대표적이다. 가창보다 기악에 방점을 찍는 모습은 류이치 사카모토가 소속했던 일본의 신스 팝 밴드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와 아방가르드한 전자음악을 구사했던 영국 밴드 아트 오브 노이즈가 떠오르는 지점.

만화경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킹 기저드 앤드 리저드 위저드의 경력은 다양한 음악에 목마른 마니아들의 갈증을 해소해왔다. 3~4분의 러닝 타임 안에서 익숙하고 비슷한 것들이 펼쳐지는 팝에서 벗어나 안전장치를 풀어버린 이들의 음악은 상대적으로 대중성이 높은 이번 앨범에서도 유지됐다. 취향이 확고한 팬들과 일반 대중을 동시에 포용할 가능성을 모두 포획한 독특한 앨범이다.

– 수록곡 –
1. Yours
2. Shanghai
3. Dreams
4. Blue morpho
5. Interior people
6. Catching smoke
7. 2.2 killer year
8. Black hot soup
9. Ya love
10. Butterfly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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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리 뉴먼(Gary Numan) ‘Intruder’ (2021)

평가: 3.5/5

사후세계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철학, 전자음악과 재즈를 오가는 섬세한 음악으로 호평 받은 애니메이션 < 소울 >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받으며 진가를 확인받았다. 수상자 존 바티스트, 애티커스 로스, 트렌트 레즈너 가운데 눈에 띄는 건 트렌트 레즈너. 밴드 나인 인치 네일스를 이끌며 1990년대 인더스트리얼 록의 총아로 떠오른 그가 영향을 받았다고 공공연하게 언급한 뮤지션이 개리 뉴먼이다.

개리 뉴먼은 1979년에 영국차트 1위, 1980년에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9위까지 올라 신스팝의 역사가 된 노래 ‘Cars’의 주인공으로 뉴웨이브에서 인더스트리얼 록까지 전자음악의 타임라인에서 그가 남긴 족적은 지대하다. 그런 그가 인더스트리얼 록 사운드의 탐구를 지속한 21번째 정규 앨범 < Intruder >는 영국 앨범차트 2위에 오르며 두 번째 전성기를 예고한다.

로버트 무그 박사가 발명한 무그 신시사이저는 특유의 소리로 대중음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 영국 뮤지션도 그 수혜를 받아 ‘I die you die’와 ‘Are ‘friends’ electric?’처럼 쉬운 선율의 신스팝 곡들을 남겼다. 그는 산업사회를 테마로 한 거칠고 공격적인 인더스트리얼 록에서도 지분을 차지한 뮤지션이었지만 차가운 소리에도 팝적인 감각을 포용하는 유연성도 소유했다. < Berserker >, < The Fury > 같은 1980년대 중반 작품들이 뉴먼식 인더스트리얼 록의 본격화를 알렸고 1990년대 앨범들은 나인 인치 네일스와 스타일을 공유하며 쌍방향적 음악 교류였음을 암시했다.

이번 앨범은 온난화로 고통 받는 지구의 심경을 대변한 콘셉트 앨범이며 환경오염과 종말론적 관점을 엮었다는 점에서 2017년에 발표한 < Savage (Songs from a Broken World) >의 연장선에 있다. 인트로 곡 ‘Betrayed’의 “당신은 날 해치고 나는 피 흘립니다.”라는 직설적인 가사로 인간의 행태를 비판한다. 과거의 인더스트리얼 록 밴드들이 자본주의의 역설이나 기계문명에 따른 개인의 부품화 같은 당시의 ‘현재’를 노래했다면 그는 미래로 시제를 옮겨 일종의 예언가 역할을 수행했다.

앨범 전체의 메탈릭한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는 매끈하게 다듬어졌고 눈앞에 영상을 펼치듯 극적인 곡 구성으로 주제 의식을 표현한다. 후렴으로 넘어가기 전 서늘함 효과음이 숨을 조이는 ‘And it breaks me again’이 대표적. 음반의 하이라이트 ‘Intruder’와 ‘A black sun’은 몽환적인 폴리무그 사운드가 금속성 소리 위를 유영하면서 인더스트리얼 록과 뉴웨이브 스타일이 절묘하게 교차한다.

전자음악 선각자 개리 뉴먼의 음악 인생은 굴곡졌다. ‘Cars’의 영광은 원히트원더의 오명으로 되돌아왔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제작된 1992년 작 < Machine And Soul >은 낮은 완성도로 혹평받았다. 하지만 훗날 피어 팩토리와 마릴린 맨슨같은 후배들이 그의 음악을 커버해 재조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는 결코 데이비드 보위의 반열에 오를 수 없었고, 트렌트 레즈너같은 아이콘이 되지 못했지만 그것이 개리 뉴먼의 제1의 목표는 아니었다. 평생 과제는 신시사이저로 원하는 소리를 구현하는 것. 어둡고 음울하며 꿈꾸는 듯 신비로운 소리 뭉치를 쫓는 항해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 수록곡 –
1. Betrayed
2. The gift
3. I am screaming
4. Intruder
5. Is this world not enough
6. A black sun
7. The chosen
8. And it breaks me again
9. Saints and liars
10. Now and forever
11. The end of dragons
12. When you f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