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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Album

추다혜차지스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2020)

평가: 4/5

국악계에 젊은 바람이 분다. 그것도 여러 방향에서 꽤 굵직한 풍향을 타고 불어온다. 오랜 기간 젊은이들의 취향과 먼 거리에 서 있던 국악에 서양 악조를 가미, 펑키(Funky)하고 로킹한 국악으로 재탄생했다. 젊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동서양 장르 간의 화합은 다시 젊은 사람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유튜브 라이브 채널 < 앤피알 뮤직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NPR Music Tiny Dest Concert) >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린 그룹 씽씽을 시작으로 오방신과, 한국남자(이희문x프렐류드), 이날치 그리고 추다혜차지스 등이 새로운 ‘힙 사운드’의 제격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중 씽씽 출신 소리꾼 추다혜가 주축이 되어 만든 추다혜차지스의 위치는 특별하다. 팀을 꾸린 지 이 년 만에 발매한 첫 정규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는 한국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던 무가 그러니까 굿 음악을 중심 에센스로 삼고 그 곁을 레게, 재즈, 펑크(Funk), 록으로 감쌌다. 무속 음악이 주는 오싹함을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와 맞닥트려 시원한 쾌감을 만들고 군데군데 중독적인 펑크 리듬과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장착해 무가인 듯 무가 아닌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평안도, 제주도, 황해도에 전해져 내려오는 작자 미상의 무가를 바탕으로 필요에 따라 가사를 개사한다. ‘비나수+’는 노랫말 사이 ‘서울하고도 특별시라 서대문구 연희동 로그스튜디오로’란 서사를 넣어 곡에 현재성을 부여하고 ‘차지S차지’의 경우 대부분의 가사를 추다혜가 직접 다시 썼다. 돋보이는 것은 추자혜의 존재감이 비단 앨범의 뒤편에만 놓인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전체 음반에서 주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 추자혜의 목소리다. 가사와 가창을 전면에 세우고 악기의 음색은 후면에 배치, 본래 소리가 가지고 있는 정수를 흔들림 없이 밀어붙인다.

이렇게 우리 음악의 정형성이 주가 될 수 있는 건 충실히 바탕을 다지는 악기 덕택이다. 노선택과 소울소스에서 기타를 쳤던 이시문, 윈디시티, 까데호 등에서 활동한 베이시스트 김재호, 김오키뻐킹매드니스에서 드럼을 연주한 김다빈이 덜도 없고 더도 없이 딱 적당한 조미를 가한다. 한마디로 어우러짐의 시너지가 상당하다. 또 한 마디로 어우러짐의 무게중심이 신선하다. 몽환적이고 넘실대는 기타 사운드에 색소폰이 부서질 듯 합류하는 ‘사는새’, 기필코 춤추게 만들겠다는 듯 펑크로 중무장한 ‘리츄얼댄스’를 거쳐 ‘에허리쑹거야’는 레게를 핵심 소스로 삼아 곡을 끌어간다. 마지막 곡 ‘복Dub’에서는 앞선 ‘에허리쑹거야’를 다시 소환해 전자음을 입혀 몽롱한 아웃트로로 탄생시켰다.

거친 록의 질감으로 시작해 포효하듯 날 선 음색이 휘어잡는 첫 곡 ‘Undo’, 작품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무당 방울 소리와 드럼이 마치 북처럼 귓전을 울리다 이내 블루지한 기타가 호흡을 다잡는 ‘비나수+’. 또 비슷한 기타톤으로 ‘비나수+’와 노래 끝의 멜로디를 맞춘 ‘오늘날에야’까지. 음반의 재해석은 생생하고 장르의 교차는 매력적이다. 변주를 통해 신나는 춤판을 만들고 흥겨운 추임새를 강조한 ‘차지S차지’는 또 어떤가. 이건 새 시대 청년들을 움직일 트렌디한 뽕필 댄스 음악이다.

국악을 타장르와 뒤섞은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국악, 그중에서도 무가라는 토속적인 소리를 무너트리지 않고 머리에 둔 채 이토록 젊게 꾸려낸 음반은 많지 않다. 통속성을 격파하고 한국적 질감을 유지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독특하다. 코리안 펑키 샤머니즘 뮤직. 추다혜차지스가 새 문을 열었다.

– 수록곡 –
1. Undo
2. 비나수+
3. 오늘날에야
4. 사는새
5. Unravel
6. 리츄얼댄스
7. 에허리쑹거야
8. 차지S차지
9. 복D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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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선미 ‘보라빗 밤’ (2020)

더도 없고 덜도 없이 딱 알맞은 대중성을 지녔다. 아니 딱 알맞은 대중 댄스팝이다. 3분 30초의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러닝타임에 커팅된 기타 리듬, 신시사이저가 만나 흥겨운 분위기를 뽑아낸다. 담백한 곡 구조도 ‘팝’스러움에 한몫했다. 깔끔하게 절 사이 후렴을 배치하고 마무리 브릿지는 시원하게 고조되는 일렉트릭 기타로 맛을 살렸다. 딱 필요한 요소들만 들여 설득력 있게 완성한 대중 지향 곡. 그간 꾸려온 자신의 색도 놓치지 않았다는 면에서 더블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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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개코, Nitti Gritti, KAKU ‘Pass out'(2020)

평가: 2.5/5

국내외 아티스트의 콜라보송 발매에 주력하는 레이블 ‘코넥티드’를 통해 나온 노래다. 미국 출신 프로듀서 니티 그리티(Nittie Gritti)와 도쿄 태생으로 아시아 활동을 이어가는 DJ 카쿠(KAKU)가 개코와 손을 잡았다.

조금은 인기가 시들해진 강렬한 저음과 힘 센 비트의 트랩이 문을 연다. 요새 열렬한 주목을 받는 비의 ‘깡’이 연상되는 와중 개코의 콕콕 박히는 래핑이 좋은 에너지를 쏟아낸다. 딱 거기까지. 화합의 명목은 좋지만 전체적인 사운드 조합이 시기를 (많이) 놓친 듯 싶고 오직 개코의 랩만 생생하게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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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Album

레이디 가가(Lady Gaga) ‘Chromatica'(2020)

평가: 3.5/5

팝스타의 ‘팝’스타화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 돌아왔다. 컨트리 장르를 내세워 커리어 상 독특한 변곡점을 남겼던 정규 5집 <Joanne> 이후 무려 4년 만의 복귀다. 허나 그 공백의 체감이 그리 길지 않았다. 제2의 전성기를 안겨 준 영화 < 스타 이즈 본 >의 인기 덕택이다. 사운드 트랙이었던 ‘Shallow’는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했으며 그는 이후 그래미, 오스카 시상식의 수상자로 무대 위에 오른다.

늘 대중의 관심 안에 있었지만 그의 음악은 완벽히 대중적이지 않았다. 일렉트로닉, 댄스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가져왔던 1집 <The Fame>(2008), 2집 <Born This Way>(2011)가 데뷔 초 그를 세상에 각인시킨 건 키치하고 세상을 앞서(?)간 바로 그 퍼포먼스 때문이었다. 음악 자체의 중독성도 한몫했겠지만 분명 독특한 외부적 요소가 주는 파괴력이 있었고 이게 역으로 가가 작품에 높은 활기를 가져다주었다. 키치한 차림으로 세상을 끌어당기고 이와 잘 맞는 시너지의 또 한 차례 키치한 그의 노래 ‘Bad romance’, ‘Telephone’, ‘Poker face’ 등이 세계를 울렸다.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Artpop>(2013)의 지나친 개성, 재즈로 의외의 장르 전환을 선보인 <Cheek To Cheek>(2014)을 거쳐 컨트리까지 섭렵했던 그가 그렇게 다시 본토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대놓고 대중을 지향한다. 국내 인기 아이돌 블랙핑크를 비롯해 아리아나 그란데, 엘튼 존 등 화려한 라인업의 피처링 진이 눈에 띄고 음악적 장르는 말 그대로 백 투 더 8090을 2020으로 경유해 당겨왔다. 디스코, 유로댄스, 하우스가 곳곳에서 생명력을 뽐내고 광폭한 EDM의 드롭이 요즘 날의 청취 입맛을 사로잡는다.

그 어느 때보다 밝고 에너지 넘치는 댄스 플로우의 한쪽에는 짙은 눈물 자국이 가득하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함께 자신들이 겪은 트라우마를 떨어지는 비에 빗대 노래하는 ‘Rain on me’, 대중 가수로서 늘 가면을 쓸 수밖에 없음을 토로하는 ‘Fun tonight’, 성폭력 등의 상처로 인한 아픔을 고백하는 ‘911’까지 곡의 제작 원료는 ‘아픔’이다. 이 발아하고 발화하는 개인성은 지난 <Joanne>과 연장 선상에 서 있지만 이 앨범의 속내는 더 깊고 더 연약하고 때론 더 강하다. 이 이질적인 양가성이 작품의 의미를 드높인다.

3개의 짧은 인터루드 ‘Chromatica’ 1~3을 사이사이에 배치에 앨범을 쫀쫀하게 이어붙이고 대부분의 수록곡을 3분 중반으로 끊었다. 그만큼 ‘전체연령가’를 목표한다. 인터루드는 자연스레 다음 곡과 이어지는데 특히 ‘Chromatica II’의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과 자연스레 이어지는 유로 디스코 풍의 ‘911’이 인상적이다. 미국의 인기 가수 셰어(Cher)의 대표곡 ‘Believe’가 떠오르기도 한다. 끝 곡 ‘Babylon’도 마찬가지다. ‘Born this way’의 뒤를 이은 퀴어 앤섬인 이 곡은 명백히 마돈나의 ‘Vogue’에 영향받았다.

장르의 활용에서 연유된 윗세대 선배와의 교류가 대중 취향을 전면에 내세운 가가의 목표를 잘 보여준다. 전면을 감싸고 있는 복고의 향취가 좀 더 새로운 것을 기대했을 누군가에게는 밋밋한, 그저 반복되며 고조될 뿐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실제로 블랙핑크와 호흡한 ‘Sour candy’는 강하게 튀어나오는 가가의 음색과 블랙핑크의 목소리가 어긋나 전체 흐름에 잘 맞지 않는다. 자신을 상표 붙은 인형에 비교한 ‘Plastic doll’ 역시 가사의 묵직함이 없었다면 흐려졌을 노래다.

그럼에도 영리하다. 초기 스타일의 복고를 차용하나 ‘Free woman’, 엘튼 존과 함께한 ‘Sine from above’, ‘Replay’ 같은 곡에는 EDM의 드롭을 살려 트렌드를 반영하고 곡 단위를 넘어 앨범 단위를 지향하게 한 음반의 구성력도 좋다. 다만 작품의 승리는 가장 밝은 사운드를 담았지만 가장 어두운 자전적 이야기를 가사에 녹여낸 지점에서 기인한다. 16개의 수록곡, 45분이 채 안 되는 러닝타임. 짧고 강렬하게 리듬에 취해 뛰다 땀을 닦을 때쯤 가가의 메시지가 뒤늦은 울림을 준다.

이 진솔한 고백에 응답하듯 ‘Rain on me’는 빌보드 싱글차트에 1위로 데뷔했고 앨범차트 정상 역시 그에게 돌아갔다. 가가, 제2의 전성기가 더욱 높게 닻을 올린다.

– 수록곡 –
1. Chromatica I
2. Alice
3. Stupid love
4. Rain on me(Feat. Ariana Grande)
5. Free woman
6. Fun tonight
7. Chromatica II
8. 911
9. Plastic doll
10. Sour candy(Feat. Blackpink)
11. Enigma
12. Replay
13. Chromatica III
14. Sine from above(Feat. Elton John)
15. 1000 doves
16. Baby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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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Album

조동익 ‘푸른 베개'(2020)

평가: 4/5

이 음반에는 짙은 안개가 가득 들어차 있다. 26년 만의 신보. 대중음악사에서 결코 뺄 수 없는 한 자리를 차지한 포크 듀오 ‘어떤날’로 시작해 1994년 첫 솔로 음반 < 동경 >을 세상에 내놓은 조동익이 이제 서야 발매한 소포모어는 묵혀온 것들을 성급하게 내려놓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들을 지글거리는 엠비어트 뒤로, 낮고 무거운 첼로음 뒤로, 자연의 소리 뒤로 묻고 아주 천천히 꺼내 올린다.

총 12개의 수록곡 중 절반을 연주곡으로 채워 감상을 앞세운다. 이 소리의 어울림이 특히 첫 장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씁쓰레하고 몽환적인 공간음으로 천천히 빗장을 여는 ‘바람의 노래’부터 ‘날개 1’, ‘푸른 베개’는 한 곡처럼 이어진다. 그 중 ‘날개1’은 얇게 깔리는 코러스의 힘을 받아 음악적 황홀경을 넓게 펼쳐 그려내고 10분이 훌쩍 넘는 ‘푸른 베개’는 글자 그대로 서정성이 극점에 다다른다. 피아노를 하나씩 두들겨 소리를 쌓고 소음을 빼는가 하면 맑은 종소리를 가미해 사운드를 정화한다. 작품을 휘감은 어두움에서 위로를 느낄 수 있는 건 바로 이 영롱함 덕택이다.

그림 그리듯 채색된 사운드와 더불어 꼭꼭 씹어 뱉은 가사 또한 마음을 울린다. 작품은 ‘그간’ 못다 한 말들을 전하는 대신 오늘날 기억의 ‘편린’을 노래한다. 2017년 암으로 세상을 뜬 선배 뮤지션이자 친형인 조동진과의 추억을 내레이션으로 회고한 ‘Farewell. jdj,knh[1972]’, 어느덧 자라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딸과 손녀를 위한 연주곡 ‘Song for chella’ 등 앨범에는 온통 나 조동익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 들어차 있다.

오늘 바라본 그때의 기억과 지금 풀어낸 현재의 기억에는 그 어떤 아쉬움이나 고통, 회한이 없다. 이제 인생의 동반자가 된 포크 가수 장필순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 온 ‘슬픔은 잠시 마음속에 머물다 가기를 / 아픔의 꽃도 잠시 마음속에 피다지 기를’ 이란 수록곡 ‘내가 네게 선사하는 꽃’의 메시지는 조동익의 염원이라기보다 먼저 살아온 선배의 경험담에 가깝다. 젊음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그래서 젊음은’과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을까’ 자문하는 ‘내 앞엔 신기루’ 역시 치열함보단 관록의 토닥임이 더 큰 묵직한 곡들이다.

내달리지 않고 천천히 문을 열고 천천히 문을 닫는다. 이 기이하리만큼 부재하는 조바심은 곧 음반이 쉽지만은 않다는 걸 뜻한다. 금방 익숙해지는 중독적인 후크도, 볼륨 높여 일상을 잊게 할 강력한 리듬감도 없다. 대신 그 자리는 전곡을 하나로 이어 꿰는 의도된 부유하는 잡음과 몇몇 자리에서 소리의 맥을 바꾸는 전자음이, 피아노가, 현악기가 채우고 있다. 새벽녘 세상을 메운 안개의 심상이 그러하듯 잔잔하게 다가와 살며시 적시고 서서히 사라진다. 연륜 있는 음악가의 자전적 풍경과 깃 세운 위로를 담고 있는 음반. 곁을 주면 넉넉히 잠식당할 위엄까지 품고 있다.

-수록곡-
1. 바람의 노래
2. 날개 I
3. 푸른 베개
4. 내가 네게 선사하는 꽃(Feat. Soony)
5. Song for chella
6. 그 겨울 얼어붙은 멜로디(Feat. Soony)
7. 비가 오면 생각나는
8. 그래서 젊음은
9. Farewell. jdj,knh[1972]
10. 내 앞엔 신기루
11. 날개 II
12. Lulla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