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5주년 기념 음반의 타이틀이다. 풍성한 신시사이저로 문을 열고, 베이스라인을 강조하며 훅훅, ‘When I move’를 외치는 전개 사이 먼지 쌓인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영상 속 그들은 여전히 활기차고, 히트곡 ‘Step’과 같이 ‘뒤돌아보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몸을 움직여봐’라는 응원은 전과같이 에너지를 준다.
2015년 내놓은 EP < In Love >이래 긴 시간 활동을 쉰 이들이 원년 멤버 니콜, 강지영과 함께 재결합, 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법도 하지만 곡에는 이를 치하하는 요소가 없다. 도리어 그때 그 시절의 모습과 메시지 그대로, 관록을 더해, 멋진 음악과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2세대 아이돌의 대표 주자로서 보다 변화한 시점을 강조하지 않고 그때와 같은 결을 유지한 복귀에 많은 이들이 반응하고 있다. 카라가 나타났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 모습으로!
“록 그 폭발하는 젊음의 미학”이란 불멸의 타이틀이 모네스킨만큼 잘 어울리는 근래 밴드는 없다. 사운드는 ‘쎄’고, 의상은 화끈하며, 무대는 뜨겁다. 젠더 구분을 무너뜨린 스타일리쉬한 의상과 모든 규범에 반기를 들려는 듯 바삐 악기를 때리고, 소리를 지르는 이들에게 마음까진 몰라도 시선을 빼앗기는 건 시간문제다. 록스타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1999년에서 2001년 출생의 평균 연령이 낮은 그룹이지만 카리스마 있는 퍼포먼스가 베테랑급이다. 이게 이들의 한방이다. 2015년 로마에서 고등학생 시절 결성한 그룹이 2021년 유로비전 송테스트에서 우승하고, 2023년 그래미 시상식 신인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성장한 데에는 남부럽지 않은 무대 매너가 한몫했다. 에너지. 강렬한 록을 기반으로 공연장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관하는 에너지는 단숨에 이들을 주목하게 만든다.
신보는 이러한 세간의 관심에 대한 영리한 화답이다. 2장의 정규 음반을 가득 채웠던 모국어 이탈리아어의 비중은 확연히 줄었고, 사운드 질감은 조금 더 ‘팝’스러워졌다. 강하게 밀어 부딪히던 과거와 달리 메인 선율에 공을 들인 기색이 역력하다. 히트곡 메이커 맥스 마틴이 프로듀서로, RATM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가 수록곡 ‘Gossip’에 참여하며 힘을 보탠 것 역시 앨범 변화에 일조했다.
시작부터 ‘내 마음을 가지고 싶으냐’ 물으며 내달리는 ‘Own my mind’, 톤 다운된 록 발라드 ’Time zone’, 비장미 넘치는 펑키한 기타 연주와 후킹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Baby said’가 정신없이 교차한다. 곡 러닝타임도 짧아 앨범에 박진감이 넘친다. 자유분방한 외침과 너절하지 않은 가사. 음반명처럼 ‘Rush’한 서두름이 여기저기 용솟음친다.
이 치기의 끝에 ‘Bla bla bla’, ‘Kool kids’가 서 있다. 이 곡들은 에너지로 밀고 나가던 이들이 여기에 함몰 됐을 때 어떤 결과를 빚어내는가에 대한 나쁜 예다.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하며 코러스로 멋진 음악 감각을 보여주는 ‘Gasoline’이나 뇌쇄적 매력을 펄펄 풍기는 ‘Feel’이 메시지, 이미지적 측면에서 질 좋은 성과를 낸 데 반해, 상기한 노래를 비롯한 몇몇 곡은 껍데기만 있고 내용물이 없다.
그리하여 껍데기는 가라. 단타로 훅훅 선율을 내리꽂으며 부각한 음악 파워에 같은 농도로 호응하는 수록곡 부재에 틈이 생긴다. 농도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 관건은 여기에 있다.
– 수록곡 – 1. Own my mind 2. Gossip (Feat. Tom Morello) 3. Timezone 4. Blab la bla 5. Baby said 6. Gasoline 7. Feel 8. Don’t wanna sleep 9. Kool kids 10. If not for you 11. Read your diary 12. Mark chapman 13. La fine 14. Il dono della vita 15. Mammamia 16. Supermodel 17. The loneliest
말하고자 하는 욕망과 전하고자 하는 욕심이 가득하다. 2022년 방탄소년단의 단체 활동 중단 선언 이후 내놓은 리더 RM의 정규 음반 < Indigo >에는 인간 김남준의 생각과 사고가 빼곡하게 적혀있다. 팝스타로서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함 혹은 평온한 일상의 필요성과 타인에게 전하는 위로가 동시에 교차하는 식이다. 지난 솔로작 < Mono. > 역시 직접 가사를 쓰며 ‘나’를 적극 드러냈지만 이번 음반만큼의 ‘듣는 맛’은 부족했다. 전작이 모노톤의 단조로운 사운드를 바탕으로 감정을 토해냈다면 신보는 적소에 록, 일렉트로닉, 포크 등을 배치해 듣는 즐거움을 높였다.
이 같은 장르의 다양성은 ‘Still life’, ‘건망증’, ‘들꽃놀이’와 같은 트랙에서 빛을 발한다. 펑키한 힙합곡 ‘Still life’는 클랩 사운드, 관악기 등을 밀도 있게 배합해 ’94 livin’ in 한남대로 91 look at my 탄탄대로 / 갈 일이 없어 이젠 강남대로 월세 밀린 넌 빨리 당장 방 빼고’ 노래하며 스웨그 넘치는 삶을 그린다. 어쿠스틱 기타 반주 위에 포근한 멜로디를 얹은 ‘건망증’은 자칫 건조할 수 있는 노래에 맑고 청아한 뮤지션 김사월의 보컬과 따뜻한 가사를 엮어 매력을 높이고, 빌보드 싱글 차트 83위까지 오른 록 트랙 ‘들꽃놀이’는 힘 있는 곡 전개로 작품의 중심을 단단히 묶어낸다.
여러 장르를 끌어왔지만 핵심은 치우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앞서 언급한 < Mono. >를 비롯한 RM의 이전 작품과 슈가(Agust D), 제이홉이 발표한 솔로 음반 등이 강렬한 음악적 이미지 제공에 일차적 목표를 뒀다면 신보는 음악 청취의 난이도를 낮추고 ‘이지 리스닝’을 대표 키워드로 내세운다. 그 결과 현재의 상념을 표현한 작품의 메시지가 생생히 귀에 걸린다. 해외 팬들을 고려한 듯 영어 가사로 전반을 채색한 ‘Closer’가 전형적인 팝송의 부드러움을 따라가고, 날카로운 전자음이 부서지는 ‘Change pt.2’가 다소 이질적 인상을 전하기는 하나 이를 상쇄할 대중성이 이 음반엔 있다.
월드 스타로 자리매김한 이후 방탄소년단의 음악적 행보는 ‘대중 지향적’이었다. ‘Dynamite’, ‘Butter’, ‘Permission to dance’, ‘Yet to come’ 등 근래 그들의 히트곡은 분명 쉬웠고, 편했으나 음악적으로 평이했다. RM의 이번 음반은 쉽고, 편함 사이 적절한 음악성까지 겸비한다. 정신없이 바쁜(‘Hectic’) 삶 속에서 호텔에 혼자 떠 있는 것 같은 외로움(‘Lonely’)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 시대 대표 팝스타가 전하는 이야기가 좋은 음악 위 쉬운 선율을 타고 전해진다.
“No lookin’ back, no / 이젠 니가 널 지켜줄 거야”
끝 곡 ‘No.2’의 뒤돌아보지 말고 뮤지션인 ‘내’가 아닌 ‘너’ 스스로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외침까지 작품엔 선명한 위로가 스친다. 조타를 쥐고 움직일 줄 아는 뮤지션 RM의 현재를 매끄럽게 녹이며 그가 지닌 음악성, 대중 감각을 증명했다.
– 수록곡 – 1. Yun(with Erykah Badu) 2. Still Life (with Anderson .Paak) 3. All Day (with Tablo) 4. 건망증 (with 김사월) 5. Closer (with Paul Blanco, Mahalia) 6. Change pt.2 7. Lonely 8. Hectic (with Colde) 9. 들꽃놀이 (with 조유진) 10. No.2 (with 박지윤)
뭔가, 어딘가 다르다. 타이틀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를 듣자마자 든 생각이다. 이내 5개의 신곡과 2개의 보너스트랙이 담긴 신보를 재생, 역시나 처음의 감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다. 2022년 싱글 ‘Athletic girl’로 건강한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이들이 1년 만에 내놓은 EP는 기존에 주목한 ‘건강함’의 범위를 더욱 넓히려 든다. 궤는 흔히 말하는 4세대 아이돌 즉, 아이브의 ‘Love dive’, (여자)아이들의 ‘Tomboy’와 같은 ‘주체성’이나 접근이 다르다. 더 쉽고, 더 넓고, 더 두껍다.
밴드 데이식스의 영케이가 가사를 쓴 타이틀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가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전 국민 히트송 거북이의 ‘빙고’가 생각날 만큼 멜로디가 쉽고 노랫말이 따뜻하다. 전자가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했다면 이 곡은 스스로를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로 지칭하며 ‘삭막한 이 도시가 아름답게 물들 때까지’ 힘내자고 노래한다. 가사 속 ‘I’ll be alright’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위로와 다짐이 곡과 음반의 핵심을 관통했다.
이들의 주체성은 사랑과 성별 다시 말해 고착된 여성적인 이미지를 깨부수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삶에 굴복하지 않고 이겨내리라는 접근에서 주체적이다. 이는 첫 곡 ‘Ring the alarm’에서도 나타난다. 일면 블랙핑크의 ‘뚜두뚜두’가 떠오르는 노래는 힙합 질감을 기초로 해 미니멀한 전자음과 휘파람을 효과음으로 얹어 ‘시간 됐어 일어나요 Ring the alarm’을 너머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 다 잘 될 거니까’는 외침을 농도 깊게 전한다.
아이돌의 맑고 청량한 정형화된 모습을 내비치는 팬쏭 ‘You are my key(for m1-key)’를 제외한 ‘Crown jewel’, ‘Dream trip’ 역시 메시지는 같다. 특히 ‘Crown jewel’은 태국 아티스트 Tachaya의 힘을 빌려 태국 악기인 라나트, 자케와 우리나라 전통 악기 꽹과리를 한데 뒤섞어 선율을 만들어 냈는데 그 조합이 매끄럽다 못해 감칠맛 난다. 블랙핑크 ‘Pink venom’, 어거스트디 ‘대취타’, 송민호 ‘아낙네’ 등 한국의 소리를 노래에 넣은 이전 곡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AI가 그룹의 멤버가 되거나 멤버가 초월적인 힘을 가진 캐릭터로 소개되곤 하는 작금의 복잡한 K팝 월드에 단순하지만 힘센 그룹이 나왔다. 오빠, 삼촌에게 말을 걸거나 혹은 언니, 누나의 모습으로 손 내밀지 않고 ‘나’로서 다가오는 하이키식 위로가 범대중적인 호소력을 터트린다. 계산됐든 계산되지 않았든 부담 없고 불편하지 않은 ‘대중 가수’의 시작이다.
-수록곡- 1. Ring the alarm 2.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Rose Blossom) 3. Crown jewel (Feat. Tachaya) 4. You are my key(for m1-key) 5. Dream Trip 6.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Rose Blossom) (Inst.) 7. Athletic girl (2023 Remaster)
공들인 성장, 반짝이는 서사 2011년 즈음 홍대에 발을 들인 이후 줄곧 ‘코스모스 슈퍼스타’로 활동하던 그가 본명인 ‘한정인’으로 첫 번째 정규 음반을 냈다. 앞서 발매한 2개의 싱글 ‘Extra’, ‘슬픔의 맛’을 포함한 총 14개의 수록곡. 음반은 긴 시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정성을 대변하듯, 많은 곡 수와 꾹꾹 눌러 담은 감정들로 용솟음친다. 한 곡, 한 곡, 탄생 내막을 묻게 하는 노랫말. 매끄럽게, 또 때론 예상 밖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곡 배치도 힘 있다. 한정인이 주도권을 쥐고 듣는 이의 호흡을 이끈다.
전자음을 중심으로 어둡고 맑은 신시사이저를 교차하며 선율을 뽑았다. 이는 전작 < Eternity Without Promise >(2019)와 비슷한 구성이나, 그는 신보에서 목소리를 보다 앞으로 끌어온다. 어둡고 몽롱한 꿈속 한 가운데를 헤엄치던 것 같던 과거의 보컬 사용에서 탈피, 선창하듯 제 색을 내는 목소리의 운용은 더 이상 음악 뒤에 숨지 않으려는 뮤지션의 의지로 읽힌다. 이 의지는 외로움, 두려움, 괴로움, 사랑 등의 감정을 적극 드러내는 노래 속에서도 천명한다.
‘네가 원하는 것은 친구가 아닌’ ‘특별한 단 한 사람’이라 말하는 ‘Listen & repeat’. 경계에 서 있는 것만 같은 불안한 삶을 고백하는 ‘Borderline’,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슬픔의 맛’을 노래하는 ‘슬픔의 맛’ 등 곡 안에서 한정인은 노래와 함께 실컷 나를 풀어낸다. 이 적극적인 고백의 기조가 특히 돋보이는 지점은 타이틀 ‘Wallflower’에서 ‘Badluckballad’를 지나 ‘도시전설’로 이어지는 전반부.
레트로한 댄스팝 ‘Wallflower’는 중무장한 대중 선율로 듣는 이를 댄스 플로어 위로 데려간다. 땀 흘리며 흠뻑 뛴 후 음반의 정체가 이 흥겨움 속에 놓여 있는가 할 때, 무너져 내리는 어두움으로 가격하는 ‘Badluckballad’가 흐르고, 반전되는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새침한 어조의 ‘도시전설’이 재생된다. 종잡을 수 없는 항해가 쫀쫀하고 쫄깃해 음반 단위 청취의 즐거움을 높이 끌어 올린다.
‘인디 음악’으로 통용되는 오늘날 인디씬에 내 색으로 내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살아가고 있다. 긴 시간 공들여 쓴 이 음반으로 한정인은 자신이 독보적으로 맑고 청아한 창법에 뒤통수를 때리는 멜로디로 삶의 양가감정을 노래하는 음악가임을 증명한다. 그 제목도 웅장한 ‘Badluckballad’에서 ‘불행한 미신’에 의해 ‘행운을 불러온다는 미신을 믿는 마음’을 잃게 된 그가 앨범명을 Spells 즉, ‘주문들’로 지은 이 간극을 깨달을 때까지 앨범을 두 손에 꽉 쥐어 보길 추천한다. 그 의미를 깨달았을 때, 무엇을 시작할 수 있는가.
– 수록곡 – 1. Extra (Feat. 이이언) 2. Listen and repeat 3. Wallflower 4. Badluckballad 5. 도시전설 6. 차라리 7. Festival 8. Borderline(Feat. 천미지) 9. The boy named luke and the girl named lily(Feat. 김사월) 10. One second time machine (Prod. Piano Shoegazer) 11. 나나의 졸업식 12. 슬픔의 맛(remastered) 13. 하지 14. 묵시록(Feat. 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