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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아 ‘더 궁금할 게 없는 세상에서’ (2021)

평가: 3/5

이설아의 음악은 보편적이지 않다. 오리엔탈 무드의 ‘별이 내리는 길목에서’와 장엄한 편곡이 돋보이던 ‘시간의 끈’ 등 다소 난해하던 첫 번째 미니앨범 < 네가 곁에 있었으면 해 >, ‘말’에 대한 단상을 한없이 느린 템포로 노래하던 < 못다한 말들, Part. 1 >까지. 리듬에 몸을 맡기지도 못한 채, 그렇다고 노랫말을 미처 흡수하지도 못한 채 음악은 단지 유유히 흘러간다. 철저히 비(非)대중의 지점에 서 있는 그의 음악,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삶’이다.

품어내는 삶과 사랑의 폭이 넓다. ‘그대 인해 나의 슬픔은 도망갔지만 그댄 나의 가장 큰 슬픔이 되었어요'(있지)의 대상은 이성을 향하는 연애 감정이 아닌 인간 대 인간의 사랑에 가깝고, ‘허튼 생각은 그만하고 / 우리 이렇게 웃고 / 우는 시간 여한이 없다 / 지금 이대로 그냥 살아주라'(집28)는 삶에 대한 간절한 애원은 가지런한 낱말로 치장되지 않았다. 감정에 접근하는 태도는 거침이 없고 그래서 더 묵직하다.

이설아의 이야기는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곡을 쓰는 것부터 프로듀싱까지 모든 과정이 이설아의 손에서 시작되고 끝을 맺었다. 음악적 완성도와 메시지 모두 출중하다. 단출한 미니앨범 형식 안에 폭넓은 짜임새를 구성했다는 점. 앨범 설명에서 예고했듯 외로움과 희망의 발견,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고백과 마침내 반짝이는 것들에 도달하기까지 다양한 구성으로 극의 전환을 유도한다. 노랫말 없이 피아노 연주로만 진행되는 연주곡 ‘고립’, ‘사랑의 모양’과 동양의 멜로디가 돋보이는 ‘보물찾기’, 그리고 잠잠하게 흘러가는 ‘있지’와 ‘집28’은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서사를 그려낸다. 하나의 수필집과 같다.

이는 몰입도로 이어진다. 1분가량의 짧은 곡부터 5분에 달하는 긴 길이의 곡이 혼재하지만 유연한 진행으로 앨범 단위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다. 앨범 전반을 지배하는 주된 정서는 외로움이다. 자욱한 피아노 페달 소리가 삐거덕거리는 ‘고립’은 날 것의 질감으로 ‘오늘 하늘엔 별이 없’다는 쓸쓸함을 내뱉는다.

뭉근한 아날로그 패드 사운드로 곡과 곡 사이를 이어낸 ‘보물찾기’도 비슷한 맥락이다. 민요스러운 멜로디와 노랫말(‘먼 길을 돌아 이곳에 오신 줄을 압니다’)은 없던 과거의 향수까지 불러오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대중에게는 낯설지만, 이설아에게 전혀 새롭기만 한 작법은 아니다. 그의 첫 싱글 ‘별이 내리는 길목에서’도 오리엔탈 성향을 빌려왔다. 그가 좇는 것이 확실히 대중성은 아님을 방증하는 대목.

잘 짜인 곡의 구성과는 별개로 연주곡 등 동양적 스타일의 곡들이 대중에게 낯선 것은 당연하기에 소구력 또한 배제된다. 그럼에도 꾸준하고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 제24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에서의 금상 수상도, < K팝 스타 >에서의 굵직했던 주목도, 과거의 영광과는 무관히 그의 음악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 이설아이기에 설명 가능한 이설아만의 앨범.

-수록곡-
1. 고립 
2. 보물찾기 

3. 빠바바
4. 사랑의 모양
5. 있지 
6. 집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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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먼스 이어(DAMONS YEAR) ‘HEADACHE.’ (2021)

평가: 3/5

역대 최다 지원자가 몰렸다는 2019년 튠업 20기의 뮤지션으로 선정, 같은 해 < 유희열의 스케치북 >에 출연한 데이먼스 이어의 첫 번째 정규앨범이다. 떠오르는 루키라 표현하기에는 나름 데뷔 4년 차 뮤지션이고, ‘Busan’, ‘Josee!’, ‘Yours’로 이미 대중에게 자신을 각인시킨 바 있다. 다수의 공연, 그리고 다수의 싱글에서 서툰 피아노 연주와 목소리만으로 노래하는 모습이 익숙하던 그가 < HEADACHE. >에서는 밴드 사운드로 돌아왔다. 기념적인 첫 번째 정규앨범답게 자신의 음악적 성장을 기록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가 직접 밝혔듯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게서 오는 두통, 그로 인한 스트레스’라는 긴 서사는 앨범의 결정적 주제로 자리한다.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키지 못했을 때 오는 박탈감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 만큼이나 핵심 정서는 우울함이다.

첫 가사가 ‘자살’로 시작되는 ‘Scarlett’은 ‘언제 죽어도 될 몸이 됐어’와 같은 가사로 침울한 감상을 선사한다. 잔향이 가득 채워진 보컬, 기교 없이 흘러가는 기타 연주, 잔잔하지만 거센 파도처럼 감정의 파동을 끌어내는 콰이어는 그 요소가 단순해 노랫말의 몰입도를 높인다.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ai’마저도 순수나 아름다움보다는 절망과 애원으로 점철되어있다. 보편적인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해낸 가사와 몽롱한 질감의 사운드가 이를 뒷받침한다.

장르에 한정적인 모습을 보이던 지난날들과 달리, 이번 앨범은 다양한 장르와 소리로 분포된다. ‘아빤 술에 취한 모습으로 소리를 질렀’던 어린 날의 모습을 회상하며, 어른이 되어서야 아빠의 아픈 감정을 이해하게 된 ‘너의 기사’가 그 예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순간을 유쾌한 레게리듬으로 그려냈다. 자글자글한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Cherry’도 마찬가지. 쉽게 타오르다 꺼져버리는 사랑을 록의 성질을 빌려 거칠게 노래한다. 대조의 작법을 명쾌하게 활용해냈다.

모든 곡이 소구력을 이끌지는 않는다. 저절로 귀가 가는 것이 아닌, 귀를 기울여야만 들리는 곡들도 분명 존재한다. 지나간 사랑을 향기에 비유한 ‘Herb’, 사랑이 식어가는 과정과 자신이 원하는 사랑의 온도를 노래한 ‘August’는 멜로디와 편곡 모두 유유하게 흘러가는 방식을 택한다. 그는 듣는 것보다 느끼는 것에 시선을 둔다. ‘나의 도망가는 발걸음마저 사랑이었다고 / 그댄 오늘 나를 지울까요, 남은 것이 그저 상처뿐은 아니기를’(August). 생각을 거쳐야만 이해 되는 노랫말임에도, 낱말 하나하나를 곱씹어보고 삼켜내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위안의 품을 내어준다.

데이먼스 이어는 앨범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유년기의 경험과 우울했던 기억이 지금의 음악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원천으로 삼은 < HEADACHE. >는 언어의 힘을 십분 살리면서도, 뮤지션으로서의 성장을 성취해 낸 안정적인 첫 정규앨범이다. 앨범의 근원이 된 고통이라는 수단이 결코 헛되게 소모되지 않았다.

– 수록곡 –
1. ai
2. 너의 기사
3. 잠이 든 당신곁에 기대어
4. Auburn (Album ver.)
5. Herb
6. Cherry
7. Rainbow
8. Scarlett
9. August
10. 샛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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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Rhye) ‘Home’ (2021)

평가: 3.5/5

마냥 익숙하지는 않은 뮤지션 라이(Rhye)지만, 그의 싱글 ‘The fall’과 ‘Open’은 국내에서 꽤 많은 마니아층을 섭렵하는 것에 성공했다. 캐나다 토론토 출신의 마이크 밀로쉬(Mike Milosh)의 프로젝트성 팀인 라이는 덴마크 출신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로빈 한니발(Robin Hannibal)과 함께 데뷔 싱글 ‘The fall’로 음악 커리어를 시작, 이후 두 번째 정규앨범 < Blood >부터는 마이크 밀로쉬 혼자 음악을 제작했다. 앨범 단위로 보았을 때 변화의 폭은 좁다. 단지 < Home >은 코로나 19라는 전대미문의 재앙 속 로스앤젤레스 봉쇄 조치로 인한 격리된 삶에서 발현되었을 뿐이다.

해안이 보이는 산타모니카의 산 정상, 연인과의 삶이 영감이 되어 탄생한 < Home >은 풍요롭게 채워진 합창단의 ‘Intro’로 앨범의 문을 연다. 이어서 등장하는 수록곡들은 전반적으로 밝기도 어둡기도 한, 그 중도를 지키고 있다. 무력함을 동반하는 사랑을 관능적인 사운드로 풀어낸 ‘Helpless’, 2020년 캘리포니아 산불의 좌절 속 발견한 삶의 고통과 극복이 담긴 ‘Black rain’이 그 예다. 단조의 성질을 띠는 편곡 속에서도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사랑의 순수함, 위로의 언어이다.

라이는 중성적인 목소리와 사운드의 형태가 샤데이(Sade)와 더 엑스엑스(The XX)를 떠오르게 한다는 일각의 의견을 뒤로하고 이번 음반으로 고유의 색깔을 창출해낸다. 부드러운 소프트 팝 혹은 알앤비, 일렉트로닉. 감각적인 사운드의 총집합 속 차별점을 심는 건 현악기의 포진이다. 첼리스트로 활동했던 경력을 적극 활용했다. 미니멀한 비트의 ‘Come in closer’에서는 역동성을 부여하는 역할로, 연인의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Beautiful’에서는 노래의 시작과 끝을 임팩트 있게 끌어올리는 역할로 기능한다. 달콤한 복수와 증오심을 대변하는 ‘Sweetest revenge’에서는 침울한 분위기의 조성을 돕는다. 현악기가 가진 날카롭고도 부드러운 소리의 성질이 음악의 부피를 극대화한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청취감을 선사한다. 앨범 전반에 걸쳐있는 부드러운 질감의 아날로그 신시사이저가 그 중심에 있다. 또한 간소화된 사운드에 얹어지는 일정한 톤의 보컬은 따분하리만큼 유지되지만, 결정적으로 음악의 전체적인 색채를 통일시켜준다. 어두운 기조의 ‘Fire’ 같은 경우에도 일정한 볼륨 안에서 다양한 사운드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곡의 서사를 이끈다. 가사의 의미를 배제하더라도, 듣는 것만으로 만족감을 선사한다.

앨범의 발현부터 과정, 완성까지 모든 건 그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SNS를 통해 고요하게 펼쳐진 시골 자락에서의 삶을 전하기도 하고, 명상하는 장면을 공유하는 등 팬들과의 소통의 장소 또한 집이었다. 뮤직비디오 또한 거리 두기를 지키기 위해 망원렌즈로 촬영했다는 일화도 있다. 철저히 격리된 삶 속 만들어진 < Home >, 기나긴 팬데믹 시대에 그가 머물렀던 작은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 수록곡 –
1. Intro
2. Come in closer 
3. Beautiful 

4. Safeword
5. Hold you down
6. Need a lover
7. Helpless 
8. Black rain 
9. Sweetest revenge 

10. My heart bleeds
11. Fire 
12. Holy
13. Ou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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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빈 ‘향수(PERFUME)’ (2021)

평가: 2.5/5

이쯤 되니 유빈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미지를 창조해나갈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JYP에서의 ‘숙녀’, ‘Thank U soooo much’, ‘무성영화’는 차치하더라도, 1인 기획사를 설립한 후 생동감 있는 마림바 소스로 장난스러운 사운드를 주조했던 ‘넵넵 (Me time)’과도 그 성향이 다르다. 그루비한 알앤비 힙합 색채를 띠던 ‘Wave’를 두고 보아도 그렇다. 몇 번의 싱글이 다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향수(PERFUME)’는 잘 어울리는 옷을 입은 듯 제법 태가 난다.

기이하고 주술적인 인트로를 지나 등장하는 화려한 아르페지오 신시사이저는 그간 유지해온 레트로를 고수하는 역할로 기능한다. 촘촘하게 놓인 사운드의 배치, 짧게 치고 빠지는 래핑과 더불어 노랫말에 따라 다채롭게 표현해내는 보컬 또한 청각적으로 재미 요소를 선사한다. 그간의 과정을 통해 유빈의 윤곽이 뚜렷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분명 일관된 색채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은 필요하다. 음악적으로 좋은 성과를 도출했으나, 오늘의 성과가 유의미할지는 앞으로의 행보가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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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KATIE) ‘Our Time Is Blue'(2020)

평가: 3/5

2020년 우리의 시간은 온통 파랬다(Our Time Is Blue). 무너진 일상은 우리의 삶을 우울에 잠식시켰다.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뮤지션의 ‘코로나 위로송’ 덕분에 온 세계는 음악으로 연대하고 위로받았다. 케이티의 < Our Time Is Blue >도 그 선상에 놓여있다. 2019년 미니앨범 < LOG > 이후 두 번째 미니앨범이다. 코로나 너머에 자리한 우울감(Blue)에 집중한다.

액시스(AXIS)로의 이적 후 발매한 첫 싱글 ‘Remember’와 2019년 발매된 미니 앨범 < LOG >는 퓨처 사운드의 유지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이번 음반도 그 연장선에 있다. 앨범 전체가 일관된 편곡을 선보이며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듯한 음악적 서사를 전개한다.

동시에 전작에서 함께한 프로듀서 쿠야(Kuya)가 대부분의 수록곡에 참여하며 유사성을 견인하나, 사운드의 디테일한 구성으로 차별점을 달리한다. 레드벨벳, 엑소와 작업해 국내에서 이름을 알린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 레이븐 칼리(Leven Kali)와 함께한 ‘Blue’가 그 예다. 바이올린의 피치카토(줄을 튕겨서 내는 소리) 주법과 닮은 둔탁한 신시사이저의 사용으로 우울감을 더한다.

사랑과 이별, 실패와 비상이라는 보편적 감정의 솔직한 발화는 자아를 분출하는 것으로 기능한다. ‘이 호텔 방에서 늦게 일어났죠 별 할 일도 없이 / 그러니 그때가 바로 당신이 내 생각과 시야에 비집고 들어온 때예요’라는 가사의 ‘Our time’이 불시에 찾아오는 미련에 대한 고백이라면, ‘Faux’는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과거에 대한 고백이다. ‘너가 날 진짜 안다면 / 난 보이는 것 그 이상이지’라는 노랫말이 그렇다. < K팝 스타 시즌4 > 이후 대형 기획사와의 계약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음악 활동을 할 수 없었던 때를 회상하며 진짜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택감 있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대조되는 부드러운 목소리는 음악에 강단을 더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문득문득 찾아온 감정들에 대한 기록이 탄생시킨 앨범이다. 그렇다고 따뜻한 언어로 위로를 건네지도 않는다. 정체된 세상에도 우리의 마음은 정체되지 않기에, 좋고 나쁨의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뿐이다. 케이티 자신의 음악을 구축하고 창조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으로써의 성과도 충분하다. 우리 모두의 파랗던 시간이 이 앨범에 담겨있다.

– 수록곡 –
1. Classic
2. Our time
3. Blue (Feat. Leven Kali)
4. Faux

5. Teach a man
6. Lulla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