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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살 ‘AM I A SLAVE’ (2020)

평가: 3/5

넉살의 목소리가 고장 난 기계에서 나올법한 소리들이 고동치는 글리치 합(Glitch hop) 비트를 꿰뚫는다. 랩 실력은 여전하다. 쇼미더머니를 계기로 TV에 진출해 토요 예능 ‘도레미 마켓’에 고정출연 중인 넉살의 공식적인 음악 활동은 2년 만이다. 자전적인 가사를 담은 ‘AM I A SLAVE’는 그런 의미에서 뮤지션으로서의 자신을 지켜내고 싶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성공과 돈을 위해 노력했으나 정상에 선 후에도 마음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다소 진부한 서사지만, 대중이 보아온 넉살의 삶과 일치하기에 일단 믿어볼 만하다.

다만 싱글로서의 소구력은 부족하다. 비트가 난해하게 들릴 수 있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가사에서 제시한 ‘내가 노예냐’고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은 본인이 찾아서 해소해야만 하는 내적 갈등이다. 한 곡에서 풀어내기엔 해야 할 말이 너무 많다. 듣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고뇌의 앞뒤로 맥락이 더 제공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앨범의 일부로 더 빛을 발할 수 있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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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특별 기획 ‘미국’] 4. PRIDE: 팝 음악 속 ‘퀴어 코드’의 이면

댄스음악은 현재 대중음악의 주요 문법이다. 딥하우스나 디스코처럼 클럽 문화에서 탄생한 비트들에 기반한 음악이 인기를 끄는 흐름은, 비주류의 문화가 주류사회로 흘러나오는 흐름이기도 하다. 혐오를 피해 언더그라운드에서 모일 수밖에 없었던 퀴어 커뮤니티는 이 맥락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사회정의(social justice)가 갈수록 큰 화두로 작용하면서 많은 퀴어 뮤지션들의 목소리가 주목받고 있고, ‘퀴어 코드’는 이제 유행의 한 요소로 작용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이 현상들은 어느 날 갑자기 발현된 것이 아니다. 퀴어 커뮤니티의 문화는 알게 모르게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퀴어 문화의 요소를 읽어내려면 그 기저에 깔린 정서를 알아야 한다. 그 출발점은 미스핏(misfit)의 입장이다. 성 소수자는 성 정체성이나 역할에 대한 사회의 통념 속에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이런 ‘부적응자’들, 특히 성 소수자들을 향해서는 노골적으로 혐오와 폭력을 휘두른다. 그렇기에 많은 성 소수자들은 생존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다른 자아를 연기한다. 일상이 일종의 퍼포먼스인 셈이다. 자아를 억누르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열망은 퀴어 예술의 중요한 테마다.

하우스와 디스코에 맞춰 보그를 추며 잠시나마 자신을 내려놓던 퀴어 커뮤니티의 문화는 주류사회의 외면 속에서 피어났지만, 그 정서는 대중음악 깊숙이 침투해있다. 아바의 ‘Dancing queen’이나 글로리아 게이너의 ‘I will survive’ 등 1970년대 디스코곡들로 대표되는 퀴어 찬가(anthem)의 계보는 마돈나의 ‘Vogue’,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를 거쳐 두아 리파의 ‘Physical’까지 내려온다. 모두 화려한 조명과 반짝이는 의상이 어울리는, ‘글램'(glam)이 있는 음악이다. 이런 강렬한 비주얼은 오직 클럽에서만 ‘정상’ 취급 받는다는 점에서 퀴어 커뮤니티와 입장을 같이한다.

맥락이나 정서와 별개로, 퀴어 문화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힙’해진 세상이 왔다. 퀴어 커뮤니티가 주류 담론에서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고, 언더그라운드의 문화는 언제나 주류의 문화보다 한발 앞서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 소수자의 문화를 전유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이 문화를 ‘제대로’ 대표하고 전파하는 게 뭔지에 대한 논란도 보다 크게 불거진다.

케이티 페리의 2008년 싱글 ‘I kissed a girl’을 보자. 빌보드에서 7주 연속 1위 했던 이 곡은 얼핏 보면 동성애를 지지하는 노래 같지만, 막상 성 소수자들은 자신을 대상화하는 시선이라며 반발했다. 케이티 페리 본인이 퀴어 커뮤니티에 기여한 맥락이 없는데 갑자기 이런 노래를 냈고, 가사 내용에서도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다른 행보나 발언에 비추어 봤을 때 이 노래는 그저 ‘여성끼리 키스하면 섹시하다’라는 일차원적인 사고로 읽힌다는 것이다. 실제로 케이티 페리는 곡이 나온 10년 뒤, 가사 내용이 부적절했음을 인정하고 곡을 지금 냈다면 ‘일부 수정’했을 것이라고 인터뷰했다. 실제로 곡을 다시 내지는 않았다.

반면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했고, 성 소수자로서의 경험을 음악에 꾸준하게 담아온 프랭크 오션도 문화 전유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1980년대의 HIV 패닉을 화두로 삼아, ‘만일 퀴어 커뮤니티와 그 문화가 사회적으로 내몰리지 않았다면’을 상상하는 클럽 파티 프렙(PrEP+)을 2019년 개최했다. 그러나 소수의 인원에게만 초대장이 주어졌고, 그 구성원들도 대다수가 백인에 성 소수자도 아니었다고 전해져 파티는 실패로 평가된다. 힙스터 무리에 매몰되어 막상 성 소수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safe space)은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경제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성 소수자의 문화를 다루는 퀴어 베이팅(queer-baiting)과, 실제로 커뮤니티를 지지하기 위한 협력자(ally)로서의 노력은 한 끗 차이다. 이를 구분해낼 때 중요한 것은 무대의 중심을 어떤 캐릭터와 서사가 차지하고 있는지다. 정답은 없고 오답은 많은 영역이지만, 소수자들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사회 전반으로 확대하려면 필요한 시행착오다. ‘퀴어 코드’ 역시 한순간의 유행이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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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특별 기획 ‘미국’] 3. 라틴 음악이 가진, 스페인어 이상의 깊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지만, 연초에 2020년을 정복할 듯 포문을 열었던 건 라틴 음악이었다. 2월 마이애미에서 개최된 슈퍼볼 하프타임 쇼는 1990년대 라틴 팝 열풍의 주역 샤키라와 제니퍼 로페즈가 헤드라인 하며 ‘라틴 프라이드’를 내세웠다. 함께 등장한 가수 제이 발빈(J Balvin)과 래퍼 배드 버니(Bad bunny)역시 201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레게톤의 선풍적인 유행을 이끈 인물들이다. 라틴계는 미국 유색인종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라틴 음악은 이미 한국의 대중음악에도 깊숙이 침투해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그럴수록 그 맥락과 저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시작부터 함께했다. 남서부 영토의 대부분은 멕시코에게서 갈취했고, 샤키라의 출생지 푸에르토리코는 지금까지도 미국의 식민지로 남아있다. 애초에 미국에서 영어 다음으로 사용자가 많은 언어가 스페인어다. 미국의 인종주의와 자본주의는 수많은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을 사회의 최하층으로 밀어 넣어,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3D업종을 맡겼다. 이들 없이는 사회가 돌아가지 않지만 그렇다고 두 팔 벌려 환영하지는 않는 이중성이다.

라틴 음악은 이런 태도와는 별개로 대중에게 사랑받아왔다. 쿠바 이민자 출신 글로리아 에스테판 &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Gloria Estefan & Miami Sound Machine)이 ‘Conga’로 빌보드 싱글차트 10위에 올랐던 1986년은 미국이 공산국가 쿠바와 대립하던 냉전 시절이다. 리키 마틴과 산타나가 인기를 끌고, 라틴 그래미까지 따로 개최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는 미 정부가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을 벌였다. 카밀라 카베요의 ‘Havana’나, 루이스 폰시와 대디 양키의 ‘Despacito’가 대히트를 친 2010년대 후반은 트럼프가 당선돼 이민자 혐오를 부추기고 그 일환으로 멕시코 국경에 벽을 세우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라틴’이라는 단어의 모호함은 이 애증과 뿌리를 공유한다. 막상 ‘라틴 음악’ 하면 스페인어와 더불어 어딘지 모르게 고혹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상하게 되지만, 그 이상으로 일관적인 설명을 덧붙이기 힘들다. ‘라틴’이 아우르는 지역과 역사가 너무 넓기 때문이다. ‘라틴 음악’은 악기나 곡의 구성 같은 음악적 특성 대신 창작 주체의 국적이나 가사의 언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케이팝’만큼이나 두리뭉실한 단어다.

스패니시 기타를 앞세운 정열적인 발라드도, 멕시코의 민요에 현악기와 브라스가 추가된 흥겨운 마리아치도, 피아노를 타악기 쓰듯 사용하는 빠른 리듬의 아프로-라틴 재즈도, 강렬한 비트가 특징인 푸에르토리코의 레게톤도 모두 ‘라틴’이다. 이 음악들이 고리타분한 주류에 대한 ‘대안 음악’으로서 받게 된 사랑의 이면에는 디테일들을 뭉뚱그려 ‘이국의 것’으로 취급하는 일반화의 시선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누가, 혹은 무엇이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중남미, 혹은 이베리아반도 출신이라고 해서 한가지 인종의 사람들이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의 식민활동으로 끌려온 흑인들은 물론이고, 19세기 무렵부터는 많은 아시아 출신 막노동꾼들도 정착해 ‘쿨리'(coolie)로 경멸받으며 살기 시작했으니, 비교적 피부가 하얀 편인 제니퍼 로페즈나 샤키라가 아무리 ‘라틴 프라이드’를 외쳐봤자 얼마나 대표성이 있느냐는 논리다.

게다가 흑인 차별 반대를 위해 경기 시작 전 국가 제창 시간에 무릎을 꿇으며 시위했던 선수 콜린 케이퍼닉(Colin Kaepernick)을 리그에서 퇴출하다시피 한 NFL의 행태 때문에,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출연해 이들의 수익 창출을 도운 샤키라와 제니퍼 로페즈는 아프로-라티노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렇듯 ‘라틴’이 뭔지 한마디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라틴계 사람들이 미국에 살면서 공유하는 경험이나 정서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 중 자신의 뿌리를 사랑하지만 그곳의 붕괴하는 정치, 사회, 또는 경제를 보며 갖게 되는 감정이나, 미국 경제의 최하층으로 편입된 이민자의 입장을 간접적으로나마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에서 마냥 정열과 흥, ‘이국적인 분위기’만 읽어내기엔 그 이면에 너무 많은 맥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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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ingle Single

린킨 파크(Linkin Park) ‘She couldn’t’ (2020)

평가: 3.5/5

2000년대 초반을 살았던 록 팬으로서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곡이다. 2017년 세상을 떠난 체스터 베닝턴(Chester Bennington)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는 것도 모자라, 그가 부르는 곡은 린킨 파크의 상징적인 데뷔앨범 < Hybrid Theory >에 수록하기 위해 녹음된 유명한 데모다. 곡 공개를 위해 밴드의 공식 홈페이지도 20년 전의 웹사이트처럼 모양을 바꿨었으니, 관객의 노스탈지어를 정확히 겨냥한 팬서비스다.

강렬한 기타 리프나 비교적 짧은 런닝 타임 등 다른 곡들을 정의하는 특징들과는 반대되는 발라드 격인 곡이지만, 린킨 파크의 정체성은 곡 속에 그대로 살아있다. 드럼 루프와 보컬 샘플을 적극 활용하는 면모는 누 메탈(Nu Metal) 장르를 적극적으로 탐험할 밴드의 방향성을, 가사에 담겨있는 서글픔과 그 속에서 ‘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는 폭발적인 분노에서 공감과 위로를 향해 나아갈 밴드의 발걸음을 예견한다. 록 음악이 대중문화를 호령하던 시절은 이제 가버렸고, 린킨 파크 역시 과거의 영광에 영원히 사로잡혀있을 수는 없지만, < Hybrid Theory >의 20주년 앨범 발매를 앞둔 지금만큼은 추억에 젖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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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특별 기획 ‘미국’] 2. 동양계의 미국, 아시안 아메리카

미국에서 흑인들이 겪는 차별에 대한 논의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반응이 ‘동양인도 차별을 겪는다’는 말이다. 그 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니지만,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않다는 취지로 미국에 사는 동양인들 사이에서는 ‘Asians For Black Lives’ 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런 운동이 벌어져야 할 만큼 흑인들의 입장에 공감하지 않는 동양인들도 많았다는 뜻이다. 이 미묘한 갈등을 이해하는 실마리는 동양계 뮤지션들이 미국에서 차지해온 입지에서 찾을 수 있다.

흑인이나 동양인이나 유색인종으로 미국 사회에서 배제된다는 사실은 같지만 그 방식은 다르다. 동양인은 흑인들처럼 제도적인 폭력으로 목숨을 위협받기보다는 아예 담론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오래도록 만인의 사랑을 받아온 흑인들의 문화와는 다르게 동양 문화는 특이한 것, 타자의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더 강하다. 대중문화 속에서 동양인의 얼굴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렵고, 그나마 관심을 받는 경우에도 ‘모범 소수민족'(Model Minority)의 전형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명예 백인과 광대의 이분법은 동양인을 옥죈다. 음악으로 예를 들어보자. 요요마(Yo-Yo Ma)와 싸이 모두 미국에서 사랑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전자는 별다른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 모범생처럼 묵묵히 노력해 주류사회에 성공적으로 편입한 신화로 소비되고, 후자는 ‘모범생’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광대의 역할을 자처한것처럼 비친다. ‘강남스타일’ 속 물질만능주의를 풍자하는 뉘앙스는 지워진 채 ‘광대’의 이미지만 남아 세계로 퍼져나갔다.

미국에 살고있는 동양인들의 음악은 이분법을 벗어나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한 여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그 방식은 직설보다는 행동이다. 자신을 받아들여달라고 말로 항의하는 대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공론장으로 밀어 넣는다.

대표적으로 2018년 < Be The Cowboy >로 평단의 화제를 받은 미츠키(Mitski)가 있다. 서양에서 그려놓은 순종적인 동양인 여성의 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니컬한 표정으로 강렬한 록 사운드를 앞세워 일본어로 ‘가슴이 터질 것 같다’며 노래한다. 그 누구도 이 모습을 보고 모범생이나 광대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로 활동하는 미셸 조너(Michelle Zauner)의 노래 역시 동일 선상에 있다. 그의 음악은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아래서 자란 특수한 가족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을 노래한다.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버리는 대신,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특수한 경험에서 보편성을 얻어내는 과정이다.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그가 한국인 어머니와 함께 동양 식료품 마트에 가서 느낀 복잡한 심경은 잡지 뉴요커에 수필 형태로 실리며 수많은 경계인(境界人)들의 공감을 샀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미국 내의 동양인으로서 갖게 되는 타자성을 ‘특이한 매력’으로 치환해 무기로 삼는 뮤지션들도 있다. 인디밴드 슈퍼올가니즘(Superorganism)이 한국어로 ‘무엇인가 정신에 집어넣으세요’ 라고 노래하거나, 뉴욕의 디제이 예지(Yaeji)가 메이크업 튜토리얼 스타일의 뮤직비디오에서 창피했던 기억을 ‘내후년 옆에 도포’하라고 읊조리는 모습은 한국어를 못 하는 사람들은 물론 모국어가 한국어인 사람들이 보기에도 어딘가 조금 어긋나있다. 이들이 공략하는 것은 공감보다는 참신함이다. 주류사회에게 존재를 긍정 받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다.

미국 내 ‘동양인’의 입지에 관해서 이야기한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언급된 뮤지션은 모두 동북아시아계 사람들이다. 아시아를 동북아시아로 국한해서 인식하는 기조는 미국 내 ‘아시안’에 대한 담론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작은 혁명을 일으킨 것이 88라이징(88Rising)이다.

동양의 것을 당당하게 내세우는 이 크루의 얼굴은 인도네시아 출신의 래퍼 리치 브라이언(Rich Brian)이다. 아시아 문화 전체를 아우르겠다는 포부는 필연적으로 그 실현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구현한, 너무 진지하거나 교조적이지 않으면서도 멋진 아시안의 이미지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아시안 아메리카’의 새로운 문화적 구심점이 됐다.

아시안 아메리카는 그 존재를 긍정 받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 고향에서는 ‘교포’ 취급을 받고, 미국에서도 타자의 입장인 제3문화의 아이(Third Culture Kid)로 여겨지지만, 있는 그대로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한 명이라도 더 목소리를 내고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언뜻 부당하게 감옥으로 몰리고 죽임을 당하는 흑인들의 싸움과는 결이 달라 보이고, 이 때문에 동양계 뮤지션의 음악과 흑인 뮤지션의 음악이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코리아타운의 시장’으로 불리는 래퍼 덤파운데드(Dumbfoundead)가 괜히 앤더슨 팩의 ‘Lockdown’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연대한 게 아니다. 한 소수자 집단이 살아남지 못하는 사회는 다른 소수자 집단들에게도 가혹한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