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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Jungle) ‘Volcano'(2023)

평가: 2/5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색감을 제외한 모든 것이 동일한 앨범아트는 정글의 커리어를 함축한다. 어느덧 4번째 앨범까지 달려온 그들에게 펑크(Funk), 디스코, 소울은 이들의 음악적 시발점이자 오랫동안 갖고 놀고 싶은 애착 대상이다. 해당 장르로 골조를 세우고 여기에 무드와 템포만 살짝 바꿔 가면서 세련된 그루브를 유지하는 것은 그들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전작 < Loving In Stereo >는 끈적한 맛을 줄이고 더욱 세련된 댄스 플로어를 구축하며 흥행전략을 이어갔다. 이번 작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동으로 어깨가 들썩이는 그루브를 뽑아내는 능력은 여전하다. 브라스 세션을 앞에 세우고 호소력 짙은 보컬과 코러스의 매력을 한껏 살리는 ‘Dominoes’, 하우스와 소울의 매력 포인트를 가장 절묘하게 교차한 트랙 ‘Candle flame’과 같은 트랙이 작품을 견인한다. 새롭고 신선하기보단 제일 무난하게 듣기 좋은 정도에 가깝다.

그동안 전체적인 매력을 주도하던 베이스는 거의 모든 트랙에서 드럼 비트와 각종 전자음, 과잉된 고음에 파묻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강약 조절 패턴도 획일화되어 있다. 트렌드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세련된 스타일로 놀기에는 좋지만, 뻔하다. ‘Coming back’은 꽤 멋진 베이스라인과 비트를 지녔음에도 세션이 조화롭게 얽히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는 마당에 전자음만이 홀로 허공에 맴돌면서 좋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한다. ‘Back on 74’는 행복하고 평온한 소울이지만, 선명하던 기타 사운드를 뭉개버리는 후반부가 편안한 감상을 해친다. 앨범 내 잔잔한 무드를 담당하는 ‘Good at breaking hearts’는 기존의 ’Casio’ 같은 곡에 비하면 너무 지루한 나머지, 앨범의 흐름을 끊어 먹는다.

즐겁고 편한 감상을 추구하는 정글과 < Volcano >의 방향성 자체는 납득이 된다. 문제는 지속된 반복으로 이 앨범과 그들의 음악이 갖게 된 안전함이다. 다프트 펑크의 < Random Access Memories >가 복고의 재해석으로 물길을 터준 지도 10년이 지났다. 정글은 데뷔로부터 10년이 다 되어감에도 여전히 자신들이 만든 좁은 복고의 틀 안에서 얕은 패턴을 돌려쓴다. 정글의 화산은 화려하고 뜨거울지언정 분출하지 않는 휴화산이다. 겉보기에 멋지고 위험 요소도 없어서 수요는 꾸준하겠지만, 그것이 화산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 수록곡 –
1. Us againt the world
2. Holding on
3. Candle flame
4. Dominoes
5. I’ve been in love
6. Back on 74
7. You ain’t no celebrity
8. Coming back
9. Don’t play
10. Every night
11. Problemz
12. Good at breaking hearts
13. Palm trees
14. Pretty little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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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D.O.) ‘별 떨어진다 (I do)’ (2023)

평가: 2/5

4년 전에 발매한 ‘괜찮아도 괜찮아’의 연장이다. 디오의 음색을 돋보이게 해주는 잔잔하고 소박한 어쿠스틱 사운드, 따뜻한 위로의 가사, 별이라는 소재를 이어간다. 차이가 있다면 ‘별 떨어진다’는 리드미컬한 팝이고, 보편적인 다독임에서 더 나아간 연인 간 사랑의 속삭임이라는 것 정도다. 곡의 미니멀한 구성은 그의 목소리 자체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보이지만, 여타 어쿠스틱 팝과 비교했을 때 별다른 강점이 없다. 달콤한 위로와 연대를 노래하는 것은 좋으나 가사가 진부하다. 별을 따다 준다는 멘트, 풀벌레 소리 같은 투박한 심상은 곡의 강점 확보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스토리텔링이나 서술기법에 공을 들이지 않은 단출한 모양새의 ‘별 떨어진다’가 가진 매력은 보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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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POP Album

블러(Blur) ‘The Ballad Of Darren'(2023)

평가: 4/5

8년 만의 신보 < The Ballad Of Darren >은 어느덧 50대를 훌쩍 넘긴 블러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때 그 시절 블러의 실험정신이나 재기발랄한 매력은 찾기 어렵다. 상실과 고독, 공허함에 사무친 감정이 작품을 감싼다. 프런트맨 데이먼 알반은 본인이 원하지 않은 여러 이별을 겪었다. 기타리스트 바비 워맥, 드러머 토니 앨런 등 친한 동료 뮤지션들이 세상을 떠났고, 20년간 동거생활을 유지한 연인 수지 윈스탠리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그렇기에 블러는 그에게 있어 시간이 갈수록 더욱 소중하며 결코 잃고 싶지 않은 존재다. 그는 블러와 함께 현재의 자신을 차분하게 들여다본다. 그것이 이번 앨범의 첫 트랙, ‘The ballad’의 시작이다.

‘The ballad’는 과거에 대한 추억으로 가득한 데이먼의 쓸쓸한 보컬로 시작해 멤버들이 하나둘 합류하며 풍성해지는 점진적인 진행으로 비로소 블러가 돌아왔음을 알린다. 다시 한 곳으로 집결한 그들은 옛날처럼 통통 튀는 록을 연주해 본다. 1980년대 뉴웨이브로 초기 블러가 연상되는 ‘St. Charles square’와 데이먼 알반의 주력 프로젝트가 된 고릴라즈의 향취가 배인 ‘Barbaric’은 각자 신나는 멜로디 사이에 슬픔과 절망이 묻어 나온다.

우울에 빠진 그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기타 노이즈를 더 키우며 극복하려 한다. ‘The narcissist’는 앨범의 변곡점이다. ‘거울을 보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첫 구절은 그들이 대중 뮤지션으로서 살아온 삶을 은유한다. 오랫동안 넘어지기 쉬운 굽잇길을 걸어온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빛이 되었다. ‘The narcissist’를 지난 뒤의 감정은 대체로 낭만적이다. 왈츠 리듬에 맞춰 홀로 춤을 추는 ‘Far away island’는 쓸쓸함을 덮는 황홀한 사운드로 가득하고, ‘Avalon’은 혼란 속에서도 상대의 행복을 바란다. 마지막 트랙 ‘The heights’는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세션과 귀를 찢는 노이즈의 융합으로 이 애처롭고도 아름다운 삶을 표현한다. 고독은 여전하나 눈부신 이상에 도달하려는 여정은 계속되며 그 끝은 혼자가 아닐 것임을 소망한다.

6번째 앨범 < 13 >이 연상된다. 그 앨범은 멤버들을 괴롭히는 심적 고통이 끊이질 않는 상황에서 만들어져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분위기에 각종 실험적인 사운드를 도입해 복잡한 마음을 표현했다. 20여 년이 지나 다시 찾아온 고통의 시간 위에서 연주하는 < The Ballad Of Darren >은 그때보다는 훨씬 정갈하고 실험보다는 밴드 자체의 합에 집중한다. 베이시스트 알렉스 제임스와 드러머 데이브 로운트리는 늘 그랬듯, 기교를 최소화하고 탄탄하게 뒤를 받친다. 그레이엄 콕슨도 이번에는 대체로 데이먼 알반에게 주도권을 내줬다. 그 결과, 각 트랙의 개성이 덜하고 음악적으로는 고릴라즈와 다소 맞닿아 있으나 트랙 간 유기적인 연결과 감정표현이 뛰어난 작품이 되었다.

블러는 젊지 않다. 1990년대의 기성세대를 풍자하고 비판했던 그들은 이제 2020년대의 기성세대다. 과거의 에너지를 재현하기에는 그 시절만큼의 기력이 없다. 이별의 슬픔도 이전보다 더 자주 겪으며 점점 무뎌지지만 무감하지는 않다. 음악의 기술에는 통달했으나 신선함은 이와 반비례한다. 그런데도 블러니까, 블러기에, 블러라는 이름으로만 할 수 있는 음악이 있다. 작품에 담긴 이야기들은 고릴라즈나 누군가의 솔로 명의로는 절대 노래할 수 없다. 브릿팝의 종말 이후 음악적 실험실에 가까웠던 블러는 돌고 돌아 즐거운 고향이 되었다. 먹구름 낀 광야에서도 수영을 즐기는 앨범커버처럼 우울과 낭만 사이에서 행복을 포착한다.

– 수록곡 –
1. The ballad
2. St. Charles square
3. Barbaric
4. Russian strings
5. The everglades (for Leonard)
6. The narcissist
7. Goodbye Albert
8. Far away island
9. Avalon
10. The he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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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aespa) ‘Better things’ (2023)

평가: 3/5

영미권을 겨냥한 싱글이긴 하나 거창한 모양새를 보여주기보단 오히려 힘을 빼고 가볍게 접근한다. 피아노와 퍼커션 중심의 미니멀한 구성은 멤버들의 몽환적인 보컬 스타일을 부각하고 청량한 여름 느낌을 한껏 살린다. 주체적인 태도와 에스파라는 브랜드 자체에 대한 자신감을 담은 가사는 심오하지 않은 선에서 그치면서도 그룹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Savage’ 혹은 ‘도깨비불’과 같은 공격적인 스타일도 아니고 < My World >의 수록곡들처럼 훅이 강렬하게 꽂히는 것도 아닌지라 기존작들처럼 깊은 인상을 심기에는 부족할 수 있으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편안함을 성공적으로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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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박혜원(HYNN) ‘너에게로 (Europa)’ (2023)

평가: 3/5

‘시든 꽃에 물을 주듯’으로 압도적인 가창력을 선사하며 여성 보컬계에 적잖은 충격을 몰고 온 박혜원의 신곡 ‘너에게로’는 그의 강점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힘차게 몰아붙임에도 편안함이 느껴지는 보컬은 물론, 곡의 주제인 희망과 연대라는 감정의 표현력도 부족함이 없다. 애절한 발라드에서 벗어나 야심 차게 시도한 밴드 사운드는 전체적인 구성이나 멜로디 면에서 특출난 점은 딱히 없다. 청량한 일렉트릭 기타도 무난하지만, 그의 보컬을 탄탄하게 받쳐주는 기초적인 역할은 충분히 해낸다. 인상적인 부분은 시원하게 내지르는 후렴의 고음부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 덕분에 투박한 사운드조차 청춘의 심상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