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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POP Album

걸 인 레드(Girl In Red) ‘If I Could Make It Go Quiet'(2021)

평가: 3.5/5

‘걸 인 레드 음악 들어’는 성정체성을 은유하는 밈(Meme)이다. 틱톡에서 ‘I wanna be your girlfriend’가 유행하며 레즈비언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노르웨이 출신 싱어송라이터는 누구나 자신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며 다른 섹슈얼리티를 가진 사람들까지 포용한다. 데뷔 앨범 역시 이전처럼 퀴어 친화적이지만 더 넓은 팝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음반의 시작부터 빌리 아일리시의 오빠 피니어스 오코넬과 함께한 ‘Serotonin’으로 대중적인 감각을 앞세운다. 자기파괴적인 가사는 빌리 아일리시와 비슷하나 도입부의 빠른 기타 리프와 드럼, 청량한 신시사이저가 노랫말과 대조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며 이미지를 차별화한다. 인디 록 넘버 ‘Did you come?’도 빠른 전개와 선명한 멜로디로 그 기조를 이으며 로킹한 사운드를 고유의 특색으로 각인한다.

이전에 발매한 ‘Bad idea!’, ‘Summer depression’ 등의 싱글로부터 이어진 노랫말은 우울, 강박, 사랑 등 Z세대의 핵심을 파고든다. ‘이 바보 같은 X아, 아직도 모르겠어?/ 네게 딱 맞는 사람이 나란 걸‘이라며 장난스럽게 연인과 신경전을 펼치는 ‘Stupid bitch’도 매력적이지만 발랄한 곡조 위에서 대담한 관능미와 노골적인 성욕을 드러내는 ‘Hornylovesickness’는 발칙하기까지 하다.

몽환적 분위기를 강조한 후반부는 감정의 클라이맥스를 이끌어낸다. ‘Midnight love’에서 짝사랑의 절망감이 일으킨 내면의 파동은 자신의 집을 제목으로 삼아 고독함을 토로하는 ‘Apartment 402’에서 고조된다. 무르익은 감정은 연주곡 ’If would feel like this’까지 이어져 외로움을 형상화한 건반의 울림으로 여운을 남기며 앨범을 마무리한다.

홈 레코딩으로 만든 로파이 기조의 베드룸 팝으로 시작해 점차 영역을 확장해 나아가는 모습은 또래 뮤지션인 클레어 오나 비바두비와 비슷하다. 그러나 섬세한 감성과 트렌드에 맞는 그로테스크함으로 주조한 개성과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지 않는 대범함은 걸 인 레드만의 동력을 형성한다. 예측 불가능한 힘을 가진 소녀의 세계가 감정의 가장 여린 틈을 파고들어 자리 잡는다.

– 수록곡 –

1. Serotonin

2. Did you come?

3. Body and mind

4. Hornylovesickness

5. Midnight love

6. You stupid bitch

7. Rue

8. Apartment 402

9. .

10. I’ll call you mine

11. It would feel like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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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KPOP Album

엔하이픈(ENHYPEN) ‘Border : Carnival’(2021)

평가: 3.5/5

CJ ENM과 하이브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 I-LAND >는 시청자의 기대에 못 미쳤지만 여기서 데뷔한 엔하이픈은 해외에서 관심을 받으며 케이팝 스타의 꿈을 향해 전진했다. 덕분에 이 신인 그룹은 소속사 하이브의 선배 방탄소년단의 후광뿐만 아니라 그 비결까지 집약적으로 전수받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목받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바탕으로 구성해 서사성을 내세운 < Border : Day One >이 대표적이다.

< Border : Carnival >은 방시혁, 원더키드와 함께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쓴 멜라니 폰타나와 미셸린드 그렌슐츠가 작곡자로 올인했다. 인트로의 섬뜩한 합창과 로킹한 사운드는 몽롱한 느낌을 자아내는 사이키델릭 록 ‘Drunk-dazed’로 이어진다. 이 퇴폐적인 이미지는 소속사 선배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록 넘버 ‘Wishlist’나 ‘Ghosting’의 청량함과 대비되며 자신들의 입지를 부각한다.

음반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스토리텔링은 선배로부터 받은 두 번째 유산. 죽음의 축제를 묘사한 타이틀곡에 이어 관능적인 ‘Fever’가 뱀파이어 컨셉트를 표현하고 ‘별안간’의 SNS 용어와 청소년의 내면 갈등은 실제 멤버와 세계관 속의 캐릭터를 연결한다. 엠비언트 넘버 아우트로는 셰익스피어의 < 소네트 43 >을 인용한 내레이션으로 다음 앨범을 예고한다.

소속사의 성공 공식이나 다름없는 탄탄한 기획과 능숙한 작곡진은 이 음반을 든든하게 받쳐준다. 그 틀이 긴장감을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신인 특유의 역동성은 그 진부함마저 상쇄하며 사이키델릭 록, 엠비언트 같은 새로운 시도는 발전가능성을 제시한다. 만족할 만한 완성도를 도출한 엔하이픈은 이 두 번째 EP로 팀의 기반을 착실하게 닦았다. 이제부터는 때를 기다린다.

-수록곡-

1. Intro : the invitation

2. Drunk-dazed

3. Fever

4. Not for sale

5. 별안간(Mixed up)

6. Outro : the worm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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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슬릭 ‘다들 웃고 싶어 하지 (Feat. YIMNAO)’(2021)

평가: 3/5

슬릭은 작년 엠넷의 여성 래퍼 경연 프로그램 < 굿 걸 >에 출연하며 페미니스트, 비건이라는 정체성으로 주목받았다. 신인은 아니지만 2016년 데뷔 앨범 < Colossus > 발매 후 힙합계의 성차별적인 분위기를 꼬집으며 주류와 멀어졌기에 이 프로그램으로 그를 접한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여전히 타자의 위치에서 아무도 해치지 않는 음악을 가치로 내세우는 뚝심도 있다.

배타적인 현대 사회와 대조적인 그의 지향점과 달리 가사는 우리의 삶 한 가운데를 포착한다. 특별한 기술을 뽐내려 하지 않는 래핑은 ‘유튜브’, ‘강아지’ 등 남들이 보증한 웃음만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을 꼬집는다. 또한 적절히 더해진 전자음악 뮤지션 임나오의 색채는 밋밋한 곡의 특성을 부각하고 목소리를 여러 번 중첩한 보컬은 딱딱한 질감으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한다. 어느 한 쪽 덜어내거나 더할 것 없는 두 사람의 화합은 슬릭의 길에 이정표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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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POP Album

데미 로바토(Demi Lovato) ‘Dancing With The Devil'(2021)

평가: 3/5

6년 만의 마약 중독 재발은 데미 로바토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영화 < 캠프 록 >을 통해 얼굴을 알리고 < 겨울왕국 >의 ‘Let it go’를 불러서 사랑받던 팝스타는 생명까지 위협하는 과거의 그늘 때문에 긴 휴식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년 만에 < Dancing With The Devil >을 발매하며 제작 과정이 녹아 있는 유튜브 다큐멘터리를 공개했다. 영상을 통해 예고한 것처럼 이번 앨범은 회한으로 얼룩진 지난날을 총천연색의 빛으로 비추는 만화경이다.

마약의 황홀경과 절망을 묘사한 ‘Dancing in the devil’과 ‘ICU (Madison’s lullabye)’는 자기 고백적인 가사의 빛이 과거의 그늘을 감싸며 첫 번째 마약 파문 후 발매했던 ‘Skyscraper’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현재를 상징하는 노래 ‘Butterfly’가 아버지에 대한 아이러니를 담은 ‘Father’와 같은 주제로 전작의 궤도를 따라가는 지점은 모호하다.

새로운 시작을 선언한 ‘The art of starting over’의 매끄러운 전자 피아노 소리를 타고 전해지는 여유로움이 그의 마음가짐을 대변한다. 뮤트 기타 리프로 시작하는 ‘Lonely people’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며 이전에 발표한 ‘I love me’의 기조를 잇는다. 샘 피셔, 사위티 같은 든든한 피처링 군단은 공고한 위치를 재탈환하고자 하는 데미 로바토의 각오를 담고 있다. 하지만 ‘Met him last night’은 작곡가이자 피처링으로 참여한 아리아나 그란데의 색이 짙어 앨범의 주객이 전도된 양상이다.

음반은 18곡의 장대한 규모와 다양한 장르의 혼합으로 만든 빛의 모음이다. 찬연하나 넓은 폭의 주제와 많은 수의 곡을 한 번에 담아내려 했기에 오히려 명료하지 않다. 이전의 리부트를 떠올리는 구성도 그의 7번째 정규앨범의 의미를 흐린다. 어울리지 않는 화려함은 과거의 영광을 전유하려는 의도로만 느껴질 뿐이다. 내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제가 아닌 오늘을 극복해야 한다.

-수록곡-

1. Anyone

2. Dancing with the devil

3. ICU (Madison’s lullabye)

4. Intro

5. The art of starting over

6. Lonely people

7. The way you don’t look at me

8. Melon cake

9. Met him last night (feat. Ariana Grande)

10. What other people say (with Sam Fisher)

11. Caerfully

12. The kind of lover I am

13. Easy (with Noah Cyrus)

14. 15 minutes

15. My girlfriends are my boyfriends (feat. Saweetie)

16. California Sober

17. Mad world

18. Butterfly

19. Good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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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전진희 ‘낮달’ (2021)

평가: 3.5/5

하비누아주의 피아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전진희의 주된 정서는 차가운 우울이다. 2019년 발매한 <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 >는 외로움을 나직이 고백하고, 피아노 연주곡만으로 구성한 < Breathing >은 서늘한 적막을 표현했다. ‘낮달’ 역시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을 전한다.

5분이 넘는 길이에 비해 가사는 비교적 짧다. 하지만 비대한 감정 덕분에 빈자리는 느껴지지 않는다. 인트로의 기타 사운드와 쓸쓸한 목소리가 자연물을 관조하는 무상한 시선을 담는다. 사운드는 천천히 햇살이 드리워지듯 스트링을 가미하며 점점 풍성해진다. 그에 맞춰, 전진희도 깊은 우울을 비추는 자그만 온기들을 하나하나 그러쥔다. 작은 조각들을 이어 맞춰 만든 ‘낮달’은 마침내 환한 빛으로 모두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애써 힐링을 외치지 않아도 포근한 온기로 마음을 녹이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