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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르 세라핌(LE SSERAFIM) ‘Fearless’ (2022)

평가: 2.5/5

자신을 사랑으로 구원해줄 이를 찾는 수동적인 소녀는 이제 없다. 대신 욕망에 솔직하고 목표를 야성적으로 쟁취하는 신여성상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하이브의 첫 걸그룹 르 세라핌 역시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을 따른다. 곡 전반에서 반복하는 가사이자 문자를 재조합하는 애너그램 방식을 적용한 팀 명의 원형 ‘I’m fearless’가 방향을 암시한다.

핵심 문구는 메리 셀리의 소설 < 프랑켄슈타인 >에서 가져왔다. 약자였던 괴물이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박사의 위에 올라서는 상징적인 문장 ‘Beware, for I am fearless and therefore powerful. (조심해라. 나는 두려움이 없고, 그러므로 강력하다.)’을 차용한 의도가 명확하다. 거대 기업은 은유적인 방식으로 주체적인 여성을 표현하여 시대를 매끈하게 앞서 나가려 한다.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과거의 방식을 버리지 못했다. 둔중한 베이스와 멤버들의 보컬로 구성된 곡은 극도의 절제미를 앞세우지만 메시지를 넘어서는 재미가 없다. 게다가 레이서, 스포츠 선수 등을 표현한 이미지에는 대상화가 남아있다. ‘I’m fearless’의 본질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않고 트렌드로서 차용한 결과 곡은 초점을 잃고 그룹의 정체성은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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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KPOP Album

릴 모쉬핏 ‘AAA’ (2022)

평가: 3.5/5

몇 년 전부터 방송 프로그램과 음악계에 ‘부캐 놀이’ 유행이 휘몰아쳤다. 트렌드의 맥이 끊기기 직전, 프로듀싱 팀 그루비룸의 휘민은 ‘Achoo remix’에서 래퍼의 면모를 드러냈던 릴 모쉬핏으로 다시 등장했다. 갑작스러운 데뷔 앨범 발매 소식이 만우절 장난이라는 추측도 있었으나 이번엔 예상했던 래퍼가 아닌 힙합 프로듀서로서 < AAA >를 내놓았다.

새 페르소나로 음반을 발매한 것은 두 자아를 근본적으로 구분 짓기 위한 선언이다. 릴 모쉬핏은 그루비룸을 대표하는 감각적이고 대중적인 팝 대신 음울하고 거친 분위기와 해외 유행을 이식한 세련미를 장착했다. 나아갈 방향을 알리듯 서두부터 조준점이 명확하다. 인트로 ‘Moshpit only’는 피에르 본식의 트랩 비트와 폴 블랑코의 자신감 넘치는 랩으로 마초 이미지를 불러온다.

본체의 그림자를 완전히 거둬들이지는 않았다. 단짝 박규정과 함께 프로듀싱하며 듀오의 정체성을 유지하되 전체적인 콘셉트 설정은 단독 권한으로 가져왔다. 래퍼 혹은 프로듀서 이상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고 싶다는 인터뷰처럼 릴 모쉬핏은 국내 힙합 플레이어들을 조명하고 외국 힙합의 트렌드를 끌어와 큐레이터의 역할을 맡았다.

키드밀리, 소코도모 등 국내 래퍼부터 미국의 에이셉 앤트, 스트릭까지 힙합 본토와의 연결고리를 마련했다. 유명세를 묻지 않고 기용한 신예 프로듀서들의 신선한 사운드도 든든하다. 특히 비엠티제이와 구스범스가 만든 ‘Yooooo’의 중독적인 신시사이저와 ‘Bo$$’의 분위기 전환은 히트메이커의 번뜩이는 직감을 보여준다. 하트코어 레디와 스월비의 호흡에 세사미의 비트를 더한 ‘Die hard’ 역시 킬링 트랙.

흑인 음악 뮤지션으로 채워 넣은 크레디트와 내적 요소 모두 국내 힙합의 최전선을 포착한다. 최신 경향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지표지만 균열 또한 같은 지점에서 일어난다. 앨범의 제목인 ‘All Arena Access’의 개척적인 의미와 달리 외국 힙합의 규격을 넘어서는 대범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너지를 일으킬 모험적인 시도는 없었지만 스타와 신예, 국내와 해외를 결합한 영역 확장에는 성공했다.

-수록곡-
1. Moshpit only (Feat. Paul Blanco)
2. Gotta lotta shit (Feat. Dbo, Sokodomo, Kash Bang)
3. Yooooo (Feat. 키드밀리, Sokodomo, Polodared)
4. A-Team freestyle (Feat. A$ap Ant, Bill Stax, Strick, 미란이) (추천)
5. Slatty slut (Feat. 식케이)
6. On the block (Feat. 쿠기, Ourealgoat, Leellamarz)
7. Die hard (Feat. Reddy, Swervy) (추천)
8. Bo$$ (Feat. Saay, Big Naughty, Goosebumps) (추천)
9. Back in my area (Feat. Ggm Lil Dragon, Lil Gimchi, Skinny Brown, June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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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아이돌 역사를 빛낸 노랫말 명작 1부

영화 <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의 여주인공 소피는 멜로디가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것이라면 가사는 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음률은 음악의 첫인상을 결정하고 노랫말은 깊이를 만든다. 그동안 유재하, 토이, 서태지 등 싱어송라이터의 가사는 심도 깊게 알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져 왔지만 타인의 손에서 쓰인 아이돌 음악은 배제되었다. 그럼에도 K팝은 10대의 현실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했고 그때 만들어진 형식은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발매된 K팝 중 우리 기억에 또렷하게 새겨진 노랫말 명작들을 소개한다.

젝스키스 ‘사나이 가는 길(폼생폼사)’ (1997)

폼생폼사, 네 글자가 주는 임팩트 덕분에 부제가 더 기억에 남는다. 강건한 제목과 달리 미련한 가사는 웃음을 자아낸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나인데/이제 와 구차하게 붙잡을 순 없잖아’라고 자신을 위로하다가 다시 마음가짐을 바꿔 복수를 다짐한다. ‘기가 막혀 홧김에 군대 갈까 했지만/머리 깎기 싫어서 다시 생각 고쳤지’라는 20대 초반의 치기 어린 랩도 킬링 포인트다. 그 모습이 폼 나진 않지만 어쩐지 첫사랑을 실패한 동생 같아서 ‘사나이다’라고 응원해 주고 싶다.

핑클 ‘영원한 사랑’ (1999)

2021년 말 신인 걸그룹 아이브가 ‘난 몰랐어 내 맘이 이리 다채로운지’라는 가사로 소녀들의 마음을 대변했지만 본래 우리는 단 하나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다. 그 인식에는 미디어가 주입하는 ‘첫사랑의 신화’와 함께 핑클의 영향이 남아있다. 새끼손가락을 올리며 부르는 ‘약속해줘’, 양손을 돌리며 노래하는 ’항상 나의 곁에 있어줘’를 들으면 그때만큼은 사랑을 맹세할 수밖에 없다. 그 시절의 낭만이 시들어버린 지금은 추억 속 음악 혹은 결혼식 축가로 불리지만 순수했던 마음은 아직 살아있다.

에이치오티 ‘아이야!’ (1999)

에스파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SMP(SM Music Performance)의 시초는 에이치오티였다. 이들은 학교폭력을 비판하는 ‘전사의 후예’, 공부를 강요하는 어른들에게 불만을 터트리는 ‘We are the future’ 등 10대의 대변자로서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야’ 역시 ‘피우지도 못한 아이들의 불꽃을 꺼버리게 누가 허락했는가’라고 분개하며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을 추모했다. ‘언제까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반복하고 살 텐가’라며 더 이상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반성을 촉구했지만 2014년 역사는 무자비하게 되풀이되고 말았다.

보아 ‘Girls on top’ (2005)

SM엔터테인먼트의 야심 찬 포부를 안고 출범한 갓 더 비트의 ‘Step back’은 17년 전 보아의 ‘Girls on top’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연애지상주의 대한민국에 등장한 이 곡은 사랑이 없더라도 여성이 오롯한 존재일 수 있다고 말한다. 당당하고 주체적인 현대 여성상은 오늘날 걸 크러시 콘셉트의 원형이다. 비록 ‘나는 나인 걸 누구도 대신하지 말아/내 모습 그대로 당당하고 싶어’라는 가사는 갈 곳을 잃고 ‘내 남잔 지금 Another level/너 따윈 꿈도 못 꿀 Level’로 뒷걸음질 쳤지만.

FT 아일랜드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 (2007)

긴 제목이 낯선 탓에 속담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나만 모르는 구비 설화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FT 아일랜드의 노래였다. 당시 유행하던 인터넷 소설을 가져온 듯 나쁜 남자의 첫사랑을 절절하게 그린 가사를 들으면 2000년대가 새록새록하다. 지금 듣기에는 낯간지러워도 어떤 이들에게는 아직까지 공식처럼 여겨지는 제목이다. ‘사랑의 기준은 언제나 너’였다고 고백하던 아이돌 밴드가 첫사랑의 기준을 다시 세웠다.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2007)

후렴구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을 소녀들의 응원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음악이 지닌 함의가 크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맞이할 때 희생, 폭력, 혁명 같은 단어가 뒤따랐지만 ‘다시 만난 세계’는 사랑으로 감싸안기를 제안한다. 가사가 담고 있는 신념은 곧 연대의 상징으로 펴졌다.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은 경찰의 과잉진압 앞에서 우리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노래를 불렀다. 10대의 문화를 대표하던 K팝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 태국 반정부 시위까지 퍼져 나가며 동시대 민중가요로 탈바꿈하고 있다.

빅뱅 ‘거짓말’ (2007)

원더걸스의 ‘Tell me’를 계기로 후크송이 급물살을 탔던 2007년, 빅뱅은 리더 지드래곤이 쓴 서정적인 가사로 승부수를 던졌다. 가장 인기 있던 부분은 탑이 손가락을 빙빙 돌리면서 외치던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접어둔/이별을 향한 쪽지’였다. 당시 재밌게 따라 부르던 노랫말은 지금 돌이켜보면 구겨져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을 비유한 것 같아 감탄을 낳는다. 가볍게 즐기기 좋지만 마지막까지 거짓말이라고 고백하는 ‘그 말’은 정작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알쏭달쏭한 추측만 남긴다. 모두가 아는 만큼 감춰둔 의미도 많은 노래다.

샤이니 ‘누난 너무 예뻐’ (2008)

투피엠을 위시한 짐승남이 각광받던 시대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샤이니의 데뷔곡은 제목부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아마 그녀는 어린 내가 부담스러운가봐’나, ‘누난 너무 예뻐/그 그녀를 보는 나는 미쳐’라는 미숙한 가사는 지금도 연하남의 교과서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이들이 내세웠던 소년의 성장기와 청량함은 엔시티 드림,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이 여전히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한 편의 노랫말로 출발한 캐릭터의 서사는 후속작 ‘Love sick’을 지나 ‘Marry you’에 와서 마침표를 찍었다.

카라 ‘Step’ (2011)

1월 1일 0시, 신년을 맞이하면 매번 스트리밍 사이트의 실시간 순위에 익숙한 곡들이 오른다. 요즘은 한 해의 소망을 다 이룰 것이라는 포부를 담아 우주소녀의 ‘이루리’를 가장 많이 듣지만 그전에는 카라의 ‘Step’이 있었다. 하우스 튠과 글리치 효과 사이로 훅이 지나가면 ‘넘어 지진 않을 거야 슬픔아 안녕/친해지지 않을 거야 눈물아 안녕’이라는 도입부가 시작한다. ‘Pretty girl’, ‘Wanna’ 등 미숙한 소녀 같았던 초기 이미지를 뒤엎은 그 자리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여전히 한 단계 도약하고 싶은 이들의 당찬 걸음걸이를 책임지고 있다.

비스트 ‘비가 오는 날엔’ (2011)

봄에 벚꽃 특수가 있듯 여름 장마철마다 유난히 사랑받는 음악이 있다. 헤이즈의 ‘비도 오고 그래서’, 에픽하이의 ‘우산’, 샤이니의 ‘투명 우산’ 등이 있지만, 많은 이들은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을 떠올린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지나간 연인의 잔상을 더듬는다는 현실적인 설정은 감성적이고, 멜로디와 완벽히 일체화한 ‘비가 오는 날엔 나를 찾아와/밤을 새워 괴롭히다’라는 구절은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한다. 지금은 부를 수 없는 비스트라는 이름을 되살리는 마법 같은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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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아이브(IVE) ‘Love dive’ (2022)

평가: 3.5/5

사랑, 하이틴, 주체성. 뻔한 키워드를 모아놓았으나 풀어가는 방식은 색다르다. 먼저 하이틴 콘셉트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디스코, 팝 펑크, 록 등 뉴트로의 경쾌함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불길하고 아슬아슬하다. 곡 전반에 레이디 가가의 ‘Monster’, ‘Bad romance’ 등이 떠오르는 어두운 분위기와 긴장감이 맴돌고, 웅장한 퍼커션과 리버브를 먹인 하모니는 ‘숨 참고 love dive’라는 가사에 맞춰 하강하는 느낌을 준다.

특기할만한 부분은 가사다. 주체성을 내세운 대부분의 걸그룹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거나 사랑을 갈구하는 등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Love dive’는 다르다. 아이브는 나에게 빠져들라는 수동적인 주문을 외우는 대신 나르키소스가 자기 모습을 보고 호수에 뛰어들었다는 신화를 따라 스스로에게 빠진다. 나르시시즘은 어떤 외부적인 요인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기애를 완성한다. 다른 이를 향한 사랑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린, 성공적인 큐피드의 재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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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샤 슬론(Sasha Sloan) ‘WTF’ (2022)

평가: 3.5/5

1995년생 젊은 뮤지션임에도 이력이 다양하다. 사샤 슬론은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했고 버클리 음대를 자퇴했으며 찰리 XCX, 카밀라 카베요, 앤 마리와 작업한 작곡가다. 우리나라에서는 방송 프로그램의 배경 음악으로 쓰인 ‘Dancing with your ghost’와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등 K팝 아이돌의 플레이리스트에 안착한 가수로 입소문을 탔다. 화려한 전자음악을 주로 작곡한 경력과 달리 싱어송라이터로서는 자전적 이야기와 그로부터 비롯된 우울을 소재로 삼는다.

퍼커션과 기타 리프 위에 신시사이저를 가끔씩 드리우는 단촐한 구성과 담담한 보컬은 고조되는 부분 없이 평이하다. 쳇바퀴 도는 일상을 표현한 도식적인 연출 덕분에 실존적인 불안을 토로하는 가사는 어떤 방해 없이 와닿는다. 펜데믹으로 인한 고립부터 출생에 대한 의문, 종교적 회의까지 현대인의 불안을 총체적으로 어루만질 땐 비관적인 철학가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2집 < I Blame The World >의 선공개 싱글로서 앨범의 입문서 역할을 깔끔히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