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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한동윤의 러브 앤 어택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떠나는 브라이언 맥나이트

미국 가수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가 지난 6월 새 앨범 < Exodus >를 발표했다. 2017년에 낸 전작의 제목이 ‘창세기'(Genesis)였고, 이번 앨범은 ‘출애굽기’이니 얼핏 성경 시리즈로 여겨질 수 있겠다. 하지만 성서에 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으며, 가스펠이나 CCM의 성격을 띠지도 않는다. 두 작품 모두 내내 연정만 표할 뿐이다. 혹여나 구약을 테마로 했다면 음악 팬들은 개신교 기준 서른일곱 장의 앨범을 더 만나야 한다. 그 기나긴 여정이 펼쳐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종교와 무관하긴 해도 ‘탈출’이라는 뜻의 표제에는 확실히 각별한 의미가 서려 있다. < Exodus >가 마지막 음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뮤지션 경력에 온전한 마침표를 찍는 것은 아니다. 신곡으로 채운 음반은 더 내지 않겠다고 했을 뿐이다. 따라서 공연이나 리메이크 음반 제작 등 여타 활동에 대한 여지는 남아 있다. 은퇴 선언에 훗날을 지혜롭게 대비해 뒀다.

브라이언 맥나이트는 올해 초부터 < Exodus >가 마지막 앨범임을 공언해 왔다. 그는 2003년 이혼 후 2014년 새 인연을 만나 2017년 두 번째 가약을 맺었다. 1992년 데뷔해 지금까지 달콤한 사랑 노래를 상당수 만들고 불렀지만 한 인터뷰에서 사실 자신은 그동안 누군가를 생각하며 곡을 쓴 적이 없다고 했다. 두 아이를 낳았으며, 십수 년을 같이 산 전 부인이 들으면 서러움을 넘어 기분 잡칠 발언이다. 반면에 현재의 아내를 만난 뒤에는 그녀가 거의 모든 노래에 영감이 됐다고 밝혔다. 지천명을 넘긴 브라이언 맥나이트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소중한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창작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사랑과 가정 핑계를 댔으나 거듭된 상업적 부진도 음악계에서 발을 빼는 데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브라이언 맥나이트는 1993년 버네사 윌리엄스(Vanessa Williams)와 부른 드라마 < 비버리힐즈의 아이들 >(Beverly Hills 90210) 사운드트랙 ‘Love is’를 시작으로 ‘One last cry’, ‘You should be mine (Don’t waste your time)’, ‘Back at one’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배출하며 1990년대의 대표 R&B 스타가 됐다. 차트 진입에는 실패했으나 1997년에 출시한 ‘Anytime’은 우리나라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새천년에 넘어와서는 빌보드 싱글 차트 100위 안에도 들지 못할 때가 허다했다. 영광의 시절보다 시련의 시기가 훨씬 길었다.

그럼에도 브라이언 맥나이트는 성적에 초연한 듯 본인만의 어법을 고수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 Exodus > 역시 차분한 곡 위주로 꾸렸다. 포근한 느낌의 반주와 가성이 잘 어우러진 ‘Stay on ur mind’, 어쿠스틱 타악기와 온화한 키보드 연주를 앞세워 담백함을 제공하는 ‘Hula girl (Leilani)’ 적당한 리듬감으로 90년대 R&B 발라드 형식을 재현한 ‘When I’m gone’ 등 편안하게 감상하기에 무난한 노래들이 마련돼 있다. 이따금 나오는 리드미컬한 곡도 번잡하거나 우악스럽지 않다. 앨범은 그저 순하기만 하다.

물론 듣기 편하다고 해서 다 인기를 얻는 것은 아니다. 브라이언 맥나이트의 곡들은 오늘날 R&B 동향과 멀찍이 거리를 둔다. 젊은 음악 애호가들은 대체로 이런 심심한 음악을 선호하지 않는다. 더욱이 젊은 세대는 그들과 비슷한 연령의 가수들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결국 싱글로 낸 노래들과 앨범은 어느 차트에도 입장하지 못했다. 약 30년의 음악 생활을 정리하며 작별을 고하는 자리도 그늘이 잔뜩 졌다. 그래미 시상식에 열일곱 번이나 후보로 호명됐지만 단 한 번도 상을 가져가지 못한 사실을 떠올리면 그의 퇴장은 더욱 초라하게 느껴진다.

작금의 상황은 오랜 세월 한 우물만 판 것에 기인한다. 브라이언 맥나이트는 데뷔 이래 단 한 번도 컨템퍼러리 R&B 영역을 이탈한 적이 없다. < Exodus >까지 열여섯 편의 모든 앨범에 어느 정도 탄력이 있는 곡, 각 시절에 뜨던 R&B 트렌드를 흡수한 곡을 몇몇 싣곤 했으나 큰 줄기는 언제나 잠잠한 R&B, 어덜트 컨템퍼러리였다. 동료 뮤지션들의 초대를 받아 참여한 작품들도 브라이언 맥나이트 개인의 세상과 거의 동일했다. 1994년 힙합 듀오 일 알 스크래치(Ill Al Skratch)와 함께한 ‘I’ll take her’에서도 느른한 비트를 배경으로 나긋나긋한 보컬을 입혔다. 브라이언 맥나이트의 스타일은 어디에서도 계속됐다. 이 확고한 정체성(正體性)은 안타깝게도 고루한 정체성(停滯性)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장기간 무력했고, 피날레마저 볼품없을지라도 브라이언 맥나이트는 분명히 귀한 성과를 남겼다. 한결같은 걸음이 특징을 만들고, 자연스럽게 본보기를 생성했다. 그는 R&B와 팝의 요소를 버무려 이룬 부드러운 곡조, 로맨틱하게 애정을 표하는 가사를 일관되게 펼침으로써 색이 뚜렷한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자극적이지 않은 소리와 노랫말은 R&B가 더 많은 이에게 퍼지는 데 도움이 됐다. 정교함과 절제를 겸비한 발군의 가창은 가수 지망생들에게 교범처럼 여겨진다. 지금도 많은 이가 유튜브에 브라이언 맥나이트를 커버한 영상을 올리고 있다. 브라이언 맥나이트가 지나온 길은 이처럼 빛도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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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KPOP Album

이하루(Haru Lev) ‘문제의식’ (2020)

평가: 3/5

뮤지션 당사자에게 연락을 받지 않았다면 이 앨범을 영영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내 음원사이트에는 음반이 등록되지 않았다. 밴드캠프, 사운드클라우드, 유튜브에만 게재했다. 이들 플랫폼에서 입소문을 타고 뜨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그런 인물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전혀 생소한 무명 음악가가 큰 관심을 이끌어 내기란 매우 어렵다. 그 사정을 알기에 듣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총 아홉 곡으로 구성된 이하루(Haru Lev)의 데뷔 앨범 < 문제의식 >은 힙합을 골자로 한다. 밴드캠프 페이지에 달린 ‘피아노’라는 태그가 일러 주듯 대부분 수록곡에 피아노가 리드 악기로 쓰였다. 우 탱 클랜(Wu-Tang Clan) ‘C.R.E.A.M.’, 몹 딥(Mobb Deep) ‘Shook ones (Part II)’, 빅 펀(Big Pun) ‘Still not a player’,​ 투팍(2Pac) ‘Changes’ 등 피아노가 등장하는 힙합 노래는 많지만 기존하는 곡의 피아노 연주를 장착한 경우가 태반이다. 반면에 이하루는 샘플링 대신 창작 멜로디로 꾸며 신선함을 꾀했다.

피아노가 전반에 자리하니 서정적인 기운이 나타날 법한데, 노래들은 또 다른 태그 ‘멜랑콜리’가 부연하는 대로 하나같이 우울하다. 앨범 타이틀이 함축한 것처럼 제재들이 무거운 까닭이다.​ 게다가 ‘탯줄을 자른 손’, ‘여중생 K’ 등에서는 옅게 울리는 전자음을 넣어 한층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피아노 연주 자체는 비교적 사뿐한 ‘탯줄을 자른 손’의 화자는 현실을 절망적이라고 여기면서 태어난 것을 원망한다. 여기에서는 피임을 하지 않아서 하게 된 임신, 제왕절개도 언급돼 듣는 이로 하여금 그런 문제도 생각해 보게끔 한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연재된 네이버 웹툰 < 여중생A >의 주인공을 모티프로 삼았을 ‘여중생 K’는 ‘탯줄을 자른 손’과 일정 부분 연결된다. ‘여중생 K’의 주인공은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린다. 보통 산부인과에서는 산모의 남편에게 탯줄을 자르라고 권하곤 한다. “탯줄을 자른 손이 나를 때리네.” 이 가사는 생명의 근원이었던 한 축이 자기를 짓밟는 모습을 압축적으로 묘사해서 강렬하게 다가온다.​ 2분 6초쯤 불협으로 흐르는 피아노는 화자가 처한 위태로운 상황을 긴장감 있게 서술해 준다.

이외에도 인간의 입장만 중요시한 채 자행되는 동물학대를 조명하는 ‘Bloody rain’, 자본주의, 외모지상주의,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일부 몰지각한 언론, 들개 떼처럼 먹잇감을 노리는 네티즌들 등 한국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꼬집는 ‘헬조선’으로 이하루는 일관되게 사회비판적 태도를 내보인다. ‘Y에게’는 사랑이라는 명목하에 헤어졌음에도 집착하는 폭력을 담아낸다.​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질 노래는 가사의 지향이 명확한 ‘묻지 마’가 아닐까 싶다. ‘묻지 마’는 여성에게 몸매가 드러나는 옷이나 치마를 입기를 강요하는 직장, 외모와 몸에 대해 얘기하는 회사 사람들의 성희롱, 완강하게 저항하지 않아서, 욕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옷을 입어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여기는 사회의 그릇된 인식, 데이트 폭력 등을 다루며 여성에게 가해지는 불합리한 일들을 지적한다. 타악기 연주를 강조해서 이 노래는 수록곡들 중 가장 리드미컬하다. 보컬은 내레이션 스타일이다. 이 두 사항은 타악기 반주에 높낮이와 빠르기 정도만 바꿔 가며 노래하는 래핑의 기원 ‘스포큰 워드’를 의도했음을 짐작게 한다.

사회 현안들을 소재로 무게감을 갖춘 점은 특별하다. 하지만 앨범은 아쉬운 면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래핑의 플로는 노련함이 깃들지 않았고, 객원 가수와 래퍼의 기량도 달린다. 레코딩, 믹싱 기술이 부족해 사운드가 전반적으로 불안정하다. 아마추어 티가 많이 묻어난다.​

그럼에도 < 문제의식 >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얘기하고, 그런 문제에 대해 고민을 나눈다는 점에서 멋지다. 돈 자랑, 자본주의적 성공, 허세에 힙합의 콘텐츠가 경도된 비참한 시대인지라 이 어두운 내용이 오히려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앨범 제목은 자극과 천박한 사고만 넘쳐 나는 오늘날 힙합에 대한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투박하지만 분명 근사하다.

유튜브 https://youtube.com/c/HaruLev
밴드캠프 https://harulev.bandcamp.com
사운드클라우드 https://soundcloud.com/harulev

-수록곡-
1. 달의 침몰 (Intro)
2. 탯줄을 자른 손
3. 여중생 K
4. 묻지 마
5. Y에게
6. Bloody rain
7. 헬조선
8. Dawn on earth
9. Masa & Omma (Ou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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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데뷔 30주년 공일오비, 빛나는 현재진행형 뮤지션

대중음악은 대중과의 교감을 기본 덕목으로 갖는다. 기쁨, 슬픔, 외로움,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나 설렘 등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을 노래함으로써 대중과 친분을 맺는다. 여기에 많은 이가 공통적으로 접하는 세상의 이모저모를 다루는 일도 공감대 형성의 중요한 면을 차지한다. 정서와 사고를 너르게 나누는 음악가가 많은 이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다.

뮤지션이 길이 기억되기 위해서는 음악성도 필수다. 작품이 견고하고, 매번 산뜻함을 내보여야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여기에 다채로움도 장수를 위한 불가결한 조건으로 따른다. 여러 형식을 두루 소화할 때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기가 수월하다. 이 세력은 활동에 추진력을 부여한다.

정석원과 장호일이 이끄는 공일오비(015B)는 일련의 사항을 만족하는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그룹의 노래들은 획기적인 변화를 도모한 6집을 제외하고 항상 대중적이었다. 그러면서도 곳곳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살폈다. 앨범들은 튼실했고, 호화로웠다.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공일오비는 뛰어난 교감 능력과 탄탄한 작품으로 대중음악계에 선명한 자취를 남겼다.

애틋함을 증대하는 신선한 서정미

공일오비 노래의 으뜸 매력은 참신한 서정성이다. 여느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사랑 얘기를 주로 풀어냈지만 고리타분하지 않았다. 1990년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 ‘텅 빈 거리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잊지 못한 나머지 몇 번이나 전화를 걸려고 하지만 주저하는 화자의 모습을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뿐”이라는 가사로 에둘러 표현한다. 당시 공중전화 통화 요금이었던 20원이 용기를 내지 못하는 화자의 상태를 극적으로 나타냈다. 손에서 사라지지 않는 동전이 처연함을 훌륭하게 연출했다.

2집 < Second Episode >의 ‘변해 간 세월 속에서’는 다른 사랑으로 옛 연인을 잊으려 했지만 “결국 너의 틀에서 비교할 뿐이잖니”라며 지나간 사랑을 갈구하고 있음을 전한다. 5집 < Big 5 >의 ‘그녀의 딸은 세 살이에요’는 이제는 다른 사람과 결혼한 옛 사랑의 아이를 매개로 이별 후 흘러간 시간을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거의 연인을 기억에 붙잡아 두려는 한 남자의 연모를 묘사한다. 다소 지질해 보이긴 하지만 아이를 가사에 들인 덕에 털어놓는 소회가 담담하게 다가온다.

변함없는 일상에 대비해 이별 후의 상실감을 극대화하는 4집 < The Fourth Movement >의 ‘모든 건 어제 그대로인데’, 헤어진 연인이 불행하길 바란다는 말로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함을 역설적으로 말하는 7집 < Lucky 7 > 수록곡 ‘I hate you’도 공일오비 사랑 노래의 뻔하지 않은 모습을 설명해 준다. 그럼에도 이들 가사는 사랑과 이별 때문에 생겨나는 갖가지 감정을 폭넓게 포섭해 많은 이의 공감을 샀다.

사회의 문제점을 녹여 낸 유의미한 메시지

사회와 밀착한 내용도 공일오비 노래들의 특징이었다. 이 역사는 2집의 첫 곡 ‘4210301’로 시작된다. 노래는 소음, 매연, 등 굽은 물고기 등을 언급하면서 날로 심해지는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키우던 개가 산성비를 먹고 죽었다는 간주의 영어 내레이션은 픽션 치고는 지나치게 앞서 나가긴 했지만 노래 덕분에 음악 팬들은 환경 문제를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룹은 3집 < The Third Wave >의 ‘적(敵) 녹색인생’에서 다시 한 번 환경 문제를 다뤘다. 하지만 딱딱하지 않았다. 무스와 일회용 용기 같은 화학제품의 만연, 궁상맞게 보이기 싫어서 식당에서 음식을 어느 정도 꼭 남기는 행위 등 누구나 일상에서 접하는 일들을 기록해 친근하게 느껴졌다. ‘적(敵) 녹색인생’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실천 가능한 환경보호 캠페인송으로 남았다.

4집 중 ‘제사부(第四府)’는 계층 간 괴리를 부추기는 미디어와 진실에 무책임한 황색언론을 비판하고, ‘교통 코리아’는 일부 운전자들의 폭력적인 운전 습관을 꼬집는다. 5집 < Big 5 >에 수록된 ‘Netizen’은 정보화 사회에서 인터넷만 바라보는 탓에 사람들과는 단절되는 상황을, ‘결혼’은 좋은 스펙을 가진 사람을 배우자로 두려고 하는 천박한 결혼 문화를 지적한다. 이때 공일오비가 던진 화두가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한국 사회의 문제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퍽 씁쓸하다.

사회현상에 대한 고찰이 매번 무겁지는 않았다. 2집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장관리’를 하듯이 거리를 두며 대하는 젊은 여성을 소재로 다룬다. 2011년에 낸 EP < 20th Century Boy >의 ‘고귀한씨의 달콤한 인생’은 허세와 포장된 자랑에 집착하는 SNS 삶을 들춰낸다. 4집의 ‘요즘 애들 버릇없어’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간극을 논하며 서로 이해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공일오비가 전한 사회적 메시지는 우리가 생활에서 흔히 마주하는 일들이기에 까다롭지 않게 들렸다.

싱싱하고 다양한 음악

음악은 항상 다채로워 감상을 즐겁게 했다. 전신이었던 무한궤도 때와 마찬가지로 1집은 아마추어 느낌이 나는 풋풋한 팝 록, 발라드가 다수였다. 그러나 2집의 ‘4210301’,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서는 국내에 흔하지 않던 랩을 선보이며 트렌드의 선두에 섰다. 같은 앨범에 수록된 연주곡 ‘동부 이촌동 새벽 1:40’으로는 이지 리스닝 재즈를 소화하며 편안함을 제공했다.

이후 변화와 새로운 스타일의 모색은 더욱 활발해졌다. 3집 중 1분 20초에 달하는 긴 길이의 전주로 파격을 행한 ‘아주 오래된 연인들’로는 하우스 음악을, ‘적(敵) 녹색인생’에서는 아카펠라를 들려줬다. 4집도 서프 음악(‘신(新) 인류의 사랑’), 힙 하우스 성격을 띤 댄스 팝(‘남자들이란 다’), 하드록과 랩을 결합한 댄스음악(‘교통 코리아’) 등을 시도함으로써 음악 스펙트럼을 넓혔다. 5집은 인더스트리얼 음악(‘바보들의 세상’), 포스트 디스코(‘단발머리’), 뉴 잭 스윙(‘마지막 사랑’), 펑크(funk)(‘결혼’), 인텔리전트 댄스음악과 록의 퓨전(‘Netizen’) 등을 아우르며 전보다 더 화려한 면모를 보였다.

1막 마지막이 된 1996년의 6집 < The Sixth Sense Farewell To The World >도 어마어마했다. 테크노(‘인간은 인간이다’, ‘구멍가게 소녀’), 인더스트리얼(‘마르스의 후예들’, ‘Nuclear energy’), 얼터너티브 록(‘콩깍지’), 뉴에이지(‘Femme fatales’) 등 다양한 장르로 꾸몄다.

2006년 7집으로 10년 만에 컴백했을 때에도 유행을 포착하는 민첩성은 그대로였다. ‘처음만 힘들지’로는 비디오게임 음악에 착안한 칩튠을, ‘그녀에게 전화 오게 하는 방법’에서는 피치를 올린 샘플링 기반의 힙합을 들려줬다. ‘잠시 길을 잃다’로는 R&B를, ‘성냥팔이 소녀’로는 라틴음악을 접목한 하우스를 시도하는 등 새로운 양식을 향한 탐구심은 변함없이 강했다.

객원 가수를 통한 독자성 확립

공일오비를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객원 가수 시스템이다. 지금 흔한 피처링 방식이 이들로부터 정착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들이 객원 가수를 둔 국내 최초 뮤지션은 아니었지만 1집부터 게스트 보컬리스트들을 기용해 작품에 개성을 부여해 왔다. 음색과 가창이 저마다 다른 인물들이 노래를 부르니 앨범이 한층 풍성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터줏대감은 현재에도 공일오비와 활발하게 교류하는 윤종신이다. 이후 ‘아주 오래된 연인들’의 김태우, ‘5월 12일’의 이장우, ‘신(新) 인류의 사랑’을 부른 김돈규 등 재능 충만한 가수들을 배출했다. 김태우, 이장우, 김돈규는 솔로로서 각각 ‘날 떠나보내려는 너에게’, ‘훈련소로 가는 길’, ‘나만의 슬픔’ 같은 노래로 큰 사랑을 받았다.

공일오비의 객원 보컬은 3집 중 윤종신과 박선주가 듀엣으로 부른 ‘우리 이렇게 스쳐 보내면’을 제외하고 여가수가 맡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당시 음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장필순, 신윤미 등도 보컬로 참여했으나 백업 보컬만 맡았다.

남성 보컬리스트만 찾던 관례는 컴백을 알린 2006년의 리믹스 앨범 < Final Fantasy >에서 깨졌다. 이곳에서 여성 멤버가 리드 싱어인 블루 샤벳(‘수필과 자동차’), 캐스커(’21C 모노리스’)를 초청해 여성의 목소리를 들였다. 같은 해 출시한 7집에서도 요조(‘처음만 힘들지’), 호란(‘성냥팔이 소녀’), 신보경(‘잠시 길을 잃다’) 등을 초대해 소녀, 숙녀의 감정을 표출했다. 2017년 시작된 3막부터는 여성 가수와의 협업이 더욱 늘어났다. 신현희, 심규선, 유라, 열두달의 나율, 장재인, 와인 등 많은 여성 보컬리스트가 공일오비의 노래에 목소리를 제공하고 있다.

공일오비는 게스트들을 왕창 모은 ‘단체곡’ 포맷으로도 돋보였다.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응당 아는, 친구들과 노래방을 갔을 때 우정을 다지며 꼭 부르던 2집의 ‘이젠 안녕’이 대표적이다. 이 노래가 많은 사랑을 받자 유영석과 송경호의 푸른하늘도 1993년 ‘이젠 안녕’을 흉내 낸 ‘마지막 그 아쉬움은 기나긴 시간 속에 묻어 둔 채’를 발표했다. 그룹의 단체곡 형식은 3집의 ‘수필과 자동차’, 4집의 ‘우리들의 이야기’에서도 만날 수 있다.

데뷔 30주년, 지금도 정력적인 활동

2012년 하반기 들어 갑자기 종적을 감춘 공일오비는 2017년 본인들의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 Anthology > 프로젝트에 착수하며 3막을 열었다. 이듬해부터는 직접 레이블을 설립하고 젊은 뮤지션들과 협업해 신작을 만드는 < New Edition > 시리즈를 병행하고 있다. 이 과업은 7월로 22회를 맞이했다. 2018년 이후 발표해 온 신곡들의 장르 역시 예스러운 솔뮤직(‘나의 머리는 녹색’), 포크(‘서울의 눈’), 사이키델릭 록(‘동백꽃’), 뉴 잭 스윙 스타일의 R&B(‘Murky time’), 얼터너티브 록(‘Random’) 등으로 무척 다양하다.

강한 대중성과 높은 완성도를 함께 나타낸 역사가 30년이 됐다. 연차가 오래된 뮤지션은 대개 느슨해지고 나태해진다. 그런 이들과 달리 공일오비의 음악은 조금도 낡지 않았다. 여전히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으며, 짜임새도 좋다. 야무진 작품 세계를 확립한 거장이 이제는 부지런함까지 갖췄다. 데뷔 30주년이 더없이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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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한동윤의 러브 앤 어택

‘노랫말싸미’, 참신한 기획, 아쉬운 구성

2월 10일 tvN의 음악 예능 < 케이팝 어학당 – 노랫말싸미 >가 처음 전파를 탔다. 이 프로그램은 물릴 대로 물린 가창력 대결의 장이 아니다. 순위를 매기지도 않는다. 특정 출연자를 깎아내리는 가혹한 연출도 없다. 소란스러운 순간이 이따금 발생하지만 대체로 차분한 담소가 이어진다. 훈민정음의 서문 첫 문장을 익살스럽게 바꾼 제목이 암시하듯 이 프로그램은 노랫말, 즉 가사를 주된 소재로 삼는다. 기존 음악 예능이 다루지 않은 분야라서 참신하다.

제목에 들어간 ‘케이팝’과 ‘어학당’이라는 단어는 프로그램의 취지와 형태를 구체적으로 일러 준다. < 노랫말싸미 >는 김종민, 이상민, 장도연이 진행을 맡는 가운데 독일, 미국, 영국, 칠레, 콩고민주공화국, 폴란드, 프랑스 등 일곱 개 국가에서 건너온 외국인들 총 10인이 패널로 출연한다. 여기에 매회 새로운 가수가 강사라는 직함을 달고 나온다. 스튜디오에 모인 이들은 강사로 초대된 가수의 노래를 매개로 한국어와 외국어를 배우고, 우리나라와 타국의 문화를 알아 간다.

첫 방송은 백지영이 강사로 나섰다. 그녀는 2008년 발표한 7집 수록곡 ‘총 맞은 것처럼’과 이듬해 낸 2PM 옥택연과의 듀엣 ‘내 귀에 캔디’로 강의를 열었다. 강의 시작에 앞서 외국어 번역기로 번역한 노래 일부 가사를 해당 언어를 쓰는 외국인 출연자가 읊고, 외국어로 바뀐 가사를 토대로 패널들이 어떤 노래인지 유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과정은 출연자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한테도 각 나라의 언어를 경험하고, 이런저런 표현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을 듯하다.

유익함은 그것으로 동났다. 전반적으로 방송은 ‘백지영의 노래 교실’에 지나지 않았다. 백지영은 직접 노래를 부른 뒤 노래 속 화자의 상태나 기분 등을 설명하며 어떤 식으로 불러야 하는지 신경 써야 할 포인트를 짚어 줬다. 간단한 교습이 끝나면 외국인들이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이 활동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두 번째 노래 ‘내 귀에 캔디’를 배울 때에는 춤에 초점이 맞춰졌다. 댄스음악이니 그럴 만하다. 하지만 두 명씩 짝을 짓기 전 각자 춤 실력을 뽐내고 커플 댄스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마치 명절이면 편성되곤 하는 외국인 장기 자랑 방송 같았다.

1회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 노랫말싸미 >는 우리나라 아이돌 가수들의 무대를 편집한 영상과 함께 “노래를 통해 한국을 이해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문화의 어울림을 만들려 합니다.”, “노래로 배우는 문화 이야기” 등의 자막을 띄우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러나 이날 방송에는 교양에 보탬이 될 나라별 문화, 사회상은 얼마 만나 볼 수 없었다. ‘총 맞은 것처럼’을 언급할 때 콩고에서 온 조나단이 자기네 나라는 내전이 심해서 총을 보유한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한 것이 한 나라의 특수한 사정을 알 수 있는 소식의 전부였다.

출연자들의 얘깃거리는 거의 연애에 국한된다. 다른 나라에서는 사귀는 사람과 진도를 나가고자 할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떤 식으로 애교를 부리는지, 어떤 외모가 이성한테 인기를 끄는지 등 1, 2, 3회 모두 연애를 주제로 한담을 나누는 데 바빴다. 지금까지의 방송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성 얘기가 꽃피는 춤추는 노래 교실’이다. 물론 연애도 문화의 하나지만 그 이상의 깊이와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해서 아쉽다.

신통찮은 대화만 나눠 가뜩이나 따분한 상황에서 홍진영이 강사로 초대된 2회에서는 편향적인 정보마저 담겨 답답함이 가중됐다. 홍진영은 ‘사랑의 배터리’를 설명할 때 “흥으로 시작해서 흥으로 끝나는 것이 트로트예요.”라며 트로트는 흥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댄스음악의 인자를 들인 경쾌한 스타일이 트로트의 부흥을 이끌며 인기 양식으로 자리 잡긴 했어도 모든 트로트 노래가 그런 것은 아니다. 차분한 분위기를 띠거나 애수를 핵심 정서로 둔 노래도 많다. 홍진영의 정의는 트로트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줄 소지가 다분했다.

이제 3회, 두세 술에 배부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헛헛함은 계속 감돌 듯하다. 교양 프로그램이 아닌 예능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가볍게 감상할 수 있거나 재미를 느낄 만한 장치에 신경 쓰느라 취지 구현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진행자들, 혹은 패널들의 시시하고 유치한 설정 연극이 거듭되는 것이 프로그램의 선천적 한계를 나타낸다.

< 노랫말싸미 >가 이 약점을 극복하고 내실 있게 문화를 교류하는 장으로 성장하려면 노래 선정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 대중음악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제재는 사랑이기에 강의에 쓰이는 노래도 대체로 사랑 노래에 한정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재료로 하는 노래 중에 단순한 감정 표출 외에 사회의 양상이나 특정 세대의 생활 습관을 기록한 작품들도 존재한다. 그런 노래를 골라야 문화에 관한 소통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