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젤의 강점은 음색이다. 맑고 부드러우면서 고혹적인 분위기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 매력은 자신의 목소리를 한 겹 더 입혀 화음을 만드는 후반부 후렴에서 증대된다. 멋지긴 하지만 ‘받지 마’, ‘Better this way’, ‘I can’t lie’ 등에서 해 왔던 방식이라서 다소 식상하게 느껴진다.
반주도 강하지 않고, 마지막 후렴 전까지 특별한 돌출 없이 진행되는 가운데 창모의 래핑이 노래에 또렷한 요철 구간을 만든다. 낮게 읊조리다가 음을 확 높이는 도입부, “네 여자와는 요즘 어떠냔 Clique” 이 문장부터 시작하는 평범한 독백 톤과 싱잉 스타일의 교차 래핑이 ‘LANGUAGE’에 탄력을 주입해 준다.
듣는 이에게 멜로디가 가장 잘 기억될 파트는 단연 후렴일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의 선율이 미국 R&B 그룹 블랙스트리트의 ‘Don’t leave me’ 후렴과 약간 비슷한 점이 아쉽다.
반주는 그리 화려하지 않다. 강한 사운드를 장착한 것도, 템포가 빠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PARANOIA’는 듣는 이를 몰입하게 할 만하다. 오밀조밀한 장치들 덕분이다.
후렴 들어가기 전 “Don’t you look behind”에서 ‘비하인드’를 신경질적인 발화로 처리해 화자의 불안한 상태를 효과적으로 나타냈다. 이후 “내 맘속에 있는 monster. Alone in the dark” 부분 음성에 왜곡을 가해서 또 한 번 혼란스러움을 표현한다. 첫 번째 “눈을 가려. Demons in the night”에서는 바탕에 신시사이저가 흐르는 반면, 두 번째 흐를 때에는 드럼을 넣어서 두근거림을 청각적으로 연출했다. 또한 후렴에 쓰인 신스 브라스는 곡이 한층 무거운 분위기를 띠게 한다. 여기에 비명, 남성의 웃음, 차가 급정거할 때 나는 소리 등으로 공포 영화 같은 느낌을 내고 있다. 후반부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루프의 톤과 유사한 휘파람 소리를 끄트머리에 깔아 마지막까지 스산함을 유지했다.
반주에 귀를 붙잡는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으니 보컬이 딱히 도드라지지 않는다. 곡이 가창에 특별한 기교를 요구하는 장르가 아니라서 누가 불러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곡에서 음이 가장 높은 구간인 “번져 가. In your heart”만 인상적이다. 그래도 브리지가 되는 나지막한 래핑 뒤의 후렴에서는 애드리브를 추가해 그나마 강다니엘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모양새를 완성했다. 다행이다.
앤 마리와 KSI의 확연히 다른 목소리와 보컬 스타일은 대화 형식의 진행을 생동감 있게 만든다. 더불어 엑스박스 360 게임기, 샤넬 향수 등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상품을 가사에 넣어서 현실적인 느낌도 확보했다. 사랑 줄다리기를 하는 노래 속 두 남녀의 상황은 현악기 프로그래밍 덕에 한층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UK 개러지의 빠른 리듬으로 ‘Don’t play’는 역동성도 동시에 발산한다. 애틋하면서도 흥겹다.
다수의 머릿속에 쉽게 들어갈 요소를 두루 갖췄다. 전주 없이 바로 노래를 시작해 듣는 이들에게 신속하게 다가간다. 빠른 것을 선호하는 시대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구성이다. 멜로디도 간단하고, 기타 리프 또한 받아들이기에 까다롭지 않다. 후렴 초반 “사랑이었나 봐”, “그땐 몰랐지만” 이 부분에 넣은 간략한 스캣 덕에 노래는 더욱 부드럽게 느껴진다. 연인 간의 다툼과 후회를 다룬 가사는 보편성으로 많은 이의 공감을 이끌어 낼 만하다. 음역이 낮은 데에다가 가창도 특출하지 않아서 꽤 편안하게 들린다. 남자들이 환영할 노래방 애창 모던 록 한 편을 완성했다.
지난달 걸 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이 대중의 도마 위에 올랐다. 모 스타일리스트가 자신의 사회 관계망 서비스에 한 연예인으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글을 올린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글 말미에 레드벨벳의 히트곡 ‘Psycho’, 아이린과 슬기가 유닛으로 냈던 ‘Monster’를 해시태그로 달아서 네티즌들은 문제의 인물이 아이린임을 금방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얼마 뒤 아이린과 소속사 SM 엔터테인먼트는 SNS에 사과문을 게재하며 갑질 의혹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아이린이 당사자를 만나서 사과했다고 하나 후폭풍이 만만찮은 상황이다. 최초 폭로 글이 게시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에 아이린의 평소 태도가 좋지 않았다는 연예계 종사자들의 말이 다수 올라왔다. 물론 이런 글들은 익명으로 작성됐기에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어렵다. 어쩌면 악감정을 지닌 안티 팬이 허위로 쓴 글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15년 동안 업계에 몸담으면서 별별 사람을 경험했다는 스타일리스트가 “철저하게 밟히고 당하는”, “지옥 같은 20여 분”, “혀로 날리는 칼침” 등의 격한 표현을 써 가며 아이린이 모욕적인 언행을 했다고 밝힌 터라 아이린을 향한 대중의 시선은 이미 많이 냉랭해진 상태다. 그룹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니 탈퇴해야 한다는 팬들의 목소리도 거셌다. 근래 갑질을 견디다 못한 근로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사가 왕왕 보도돼 갑질이 공분을 사는 상황에서 아이린이 또 한 번 뇌관을 건드렸다.
이번 일을 거울삼아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는 기획사들은 소속 가수들의 인성 교육을 더욱 신경 써야 할 듯하다. 아이돌은 성공에 도취되기 쉽다. 스타 대열에 들면 가는 곳마다 극렬한 환호가 터지며, 많은 팬에게 선물도 받는다. 공연이나 방송 출연을 앞둔 때에는 여러 사람이 옆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살피고 챙겨 준다. 항상 극진한 대접이 따르니 이를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우월감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크다. 그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잠식되면 어느 순간 안하무인격 행동이 나오고 만다. 그릇된 행실은 개인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그룹과 회사에 불이익을 안긴다. 기획사는 느닷없는 손해를 막을 목적에서라도 소속 가수들의 올바른 성품 함양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실 소속사는 아이돌 가수에게 직장 이상의 역할을 해 줘야 하는 곳이다. 많은 아이돌 가수가 대체로 중학생, 빠르면 초등학생 때부터 기획사에 들어가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다. 숙식은 회사가 마련한 숙소에서 해결하고, 춤과 노래 실력을 연마하느라 상당 시간을 연습실에서 지낸다. 이렇게 집과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기간이 평균 3년에서 5년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소속사는 어른, 선생의 입장에서 사회화가 활발히 진행되는 시기에 놓인 연습생들, 어린 가수들이 바람직한 행동 양식과 도덕적으로 건강한 가치관을 익힐 수 있도록 면밀히 지도해야 한다.
어떤 행동의 강도는 대체로 경험이 축적될수록 높아진다. 스타일리스트가 겪었다는 날카로운 하대는 그날 처음 완성된 것이 아니라 반복의 과정을 통해 에너지와 숙련도를 쌓은 결과일 테다. 따라서 남을 업신여기는 아이린의 좋지 않은 모습은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매니저는 아이린이 다른 스태프에게 모질게 구는 광경을 목격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 매니저는 잘못을 지적하고 반성할 수 있게끔 했어야 했다. 매니저의 임무는 아티스트를 보호하고 수발을 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업무는 소속 아티스트의 ‘전반적인 관리’다. 기획사들은 이번 일로 매니저의 소임에 대해서도 재고해 봐야 할 듯하다.
한편에는 아이린을 변호할 사유도 존재한다. 아이린 같은 아이돌 톱스타들은 빡빡한 스케줄에 쫓기기 일쑤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날이 허다해서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 몸은 천근만근임에도 아이돌이라서 항상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여 줘야 하니 정신적으로도 힘들다. 몸과 마음이 고달픈 상태가 계속되면 신경질적인 행동이 나타나곤 한다. 아이린도 심신이 지쳐 있는데 일에 대한 긴장감과 압박감까지 겹쳐 히스테리를 부렸을 수 있다. 이 같은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기획사는 무리한 스케줄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소속 아티스트가 전문가에게 주기적으로, 꾸준히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소속사의 교육과 지원만큼 개인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큰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 가수들은 지금의 성공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본인이 돋보이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안무가, 댄서 등 여러 관계자의 노고가 언제나 함께 자리한다. 스태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그들을 소중한 동료로서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마땅하다. 이런 자세를 갖춰야 아이린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범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