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명 쉬운 길이 있었다. 팝 펑크가 2020년대 들어 알음알음 유행으로 떠오르면서 파라모어는 그 주축의 일원으로 인정받았고, 특히 프론트우먼 헤일리 윌리엄스는 새로이 부각되는 여성 뮤지션의 발원지로 포착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재조명의 기쁨 너머 도사린 자가복제의 함정을 가볍게 간파했다. < This Is Why >는 출항 20년을 목전에 둔 밴드가 택한 낯설지만 지혜로운 항로다.
1980년대 뉴웨이브 풍의 전작 < After Laughter >에서 포스트 펑크로의 전환은 겉보기에 급작스러운 면이 있다. 변화의 예고편은 리드 보컬 헤일리 윌리엄스가 2020년 발표한 < Petals For Armor >였다. 신보는 솔로 앨범의 엔지니어 카를로스 드 라 가자(Carlos de la Garza)를 프로듀서로 데려와 염세적인 톤을 유지하면서 강렬한 기타 리프를 덧붙였다. ‘Cinnamon’, ‘Creepin” 등이 겹치는 첫 싱글 겸 오프닝 트랙 ‘This is why’는 제목처럼 변신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곡이다.
헤일리 윌리엄스의 직설적인 화법만은 변치 않았다. 다만 격정적인 사운드와 중첩되다 보니 분노의 감정을 다 담기에는 표현의 지름이 부족한 면이 있다. 높은 설득력은 극도로 핵심만을 남긴 ‘Big man, little dignity’나 오랜 파트너에서 연인이 된 테일러 요크에게 바치는 진솔한 ‘Liar’ 등에서 나타난다. 레퍼런스로 삼은 블록 파티의 < Silent Alarm > 느낌을 벗어나 속도를 줄이고 서정성을 높였다는 공통점이 밴드의 흡수력보다는 독자성에 힘을 실어 준다.
거시적인 그림에서 봤을 때 큰 불편이 없는 것은 파라모어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요동치지 않는 유기적 트랙 배열 덕분이다. 경쾌한 댄스 펑크로 출발해 차츰 무게를 늘려가는 후반부로의 흐름이 듣는 이를 정서적으로 작품에 동화되게 만든다. 직전 앨범의 처절한 넋두리나 2013년 셀프 타이틀 < Paramore >처럼 험난한 서사 없이도 동일한 수준의 흡인력을 유지한다는 사실은 밴드가 오랜 시간 쌓아온 단단한 내공을 증명한다.
< After Laughter >가 넝마가 된 마음을 형형색색의 신스팝으로 덧칠해 감췄다면, < This Is Why >는 밴드 사상 가장 안정적인 체제에서 나왔음에도 잿빛 칼날을 빼 들었다. 단단해진 팀워크로 처음으로 멤버 교체가 일어나지 않은 태평성대에도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진리를 깨우친 셈이다. 이끼 낄 틈도 없이 열심히 구르는 돌, 수없이 재건되는 테세우스의 배. 파라모어가 끝까지 살아남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