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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퓸 지니어스(Perfume Genius)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 (2020)

★★★★
삶에 대한 환희와 열정을 후회 없이 담아내고, 이를 가장 존엄한 형태로 전달한다.

평가: 4/5

숭고하게 그려낸 찬미의 기록

퍼퓸 지니어스(Perfume Genius)라는 예명을 가진 마이크 하드레아스(Mike Hadreas)는 거친 외침을 부드러운 소리로 각색한다. 동성애자로서 겪은 삶과 사랑의 어려움, 난치병인 크론병과의 사투. 그럼에도 그가 ‘심장에 불을 지펴달라는’ 강한 생의 의지를 내비치며 아름다움과 고결함을 고수하는 것은 주어진 고난을 전부 감내하고, 더 나아가 이를 탐미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는 욕심에 있다. 이 앨범은 삶에 대한 거대한 경외와 찬사다.

과거의 자신을 씻겨 보낸다는 ‘Whole life’의 경건한 구절이 운을 떼고 의식과도 같은 행위가 지나가면, 다분히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서사가 등장한다. 신체 결함인 크론병을 묘사한 ‘Describe’와 타인과의 하룻밤을 속삭이듯 풀어낸 ‘Jason’, 그리고 짝사랑의 고독한 비애를 다룬 ‘On the floor’ 등 처절하게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가감 없이 고백하는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격정적 무도가 담긴 뮤직비디오로 표현법에 박차를 가하는데, 50분이라는 러닝타임을 통해 마이크는 고해하고 해방한다.

물론 <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 >가 놀라운 이유는 직접적인 시청각 요소 이외의 인간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미세한 떨림에 집중하고 이를 면밀히 탐구한 흔적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마이크는 앰비언트의 질감을 가져와 사운드 위로 뿌연 먼지를 고루 분사하고 여린 파형을 조금씩 흘려보내며 변화를 관찰한다. 묵직한 베이스가 스피커를 지나 공진하는 ‘Describe’와 외딴 숲의 초현실적인 생경함을 담은 ‘Leave’, 그리고 여러 목소리가 미끄러지듯 교차하며 공백을 메우는 ‘Without you’에서 우리는 그의 몸짓이 청각화되고 음성이 시각화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전작 < No Shape >의 프로듀서인 블레이크 밀(Blake Mills)과 한 번 더 호흡을 맞추며 얻어낸 수려한 프로듀싱 또한 놀랍다. 느슨함과 팽팽함을 넘나드는 현악기 세션과, 현장을 풍성하게 채우는 바로크 팝의 웅장함은 앨범이 지닌 진정성과 예술적 의지를 거듭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작업에 있어 영향을 받은 여러 아티스트의 모습이 속속들이 입체화되는데, 앨범은 마치 콕트 트윈스(Cocteau Twins)의 몽환경과 엔야(Enya)의 영험한 기운 사이사이로 로이 오빈슨(Roy Orbison)의 보컬이 스며드는 인상을 자아낸다.

그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점화’에 가깝다. 꺼지기 직전의 촛불이 가장 밝게 타오르듯, 앨범 커버 속 홀로 서서 발가벗은 사내는 누구보다 역동적으로 타오르고 화려하게 춤을 춘다. <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 >는 삶에 대한 환희와 열정을 후회 없이 담아내고, 이를 가장 존엄한 형태로 전달한 작품이 될 것이다.

– 수록곡 –
1. Whole life 
2. Describe 

3. Without you
4. Jason
5. Leave 
6. On the floor 

7. Your body changes everything
8. Moonbend
9. Just a touch
10. Nothing at all
11. One more try
12. Some dream
13. Borrowed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