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채로운 스타일의 아트 팝 앨범 <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 >의 흑백 화면에서 정면을 응시하던 남자는 거친 붓 터치의 일그러진 형상으로 변모했다. 고통의 운명을 타고난 자의 몸부림은 관습과 규율을 깨는 것이 사명인 양 소리를 뒤틀고 콜라주 한다. 퍼퓸 지니어스의 네 번째 정규 앨범 < Ugly Season >은 수줍은 이단아가 펼치는 소리 만화경이다.
케이트 월릭의 현대무용 < The Sun Still Burns Here >을 위해 만들었던 신작은 시각적 체험을 돕는 영화음악에 가깝다. 곡들은 길어졌고 대중적 색채도 옅어졌지만, 퍼퓸 지니어스는 늘 그래왔듯 제약을 거부한다. 뮤지션 겸 프로듀서 블레이크 밀스가 네번째 정규 앨범 < No Shape >와 전작 <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 >에 이어 아방가르드에 일조했다.
성소수자, 크론병 환자로 겪은 아픔은 우회적으로 드러난다. 유대인 남성에게 금단의 장소인 에렘에 자신을 투영한 ‘Herem’은 분열을 암시하고 현악기가 두드러지는 바로크 팝 ‘Ugly season’에선 ‘갈라진 검은 구덩이, 혀를 주목하라’ ‘나는 썩은 신으로부터 돌아온다.’라는 구절로 어두운 심상을 구축한다. 은유와 환유로 점철된, 소리로 표현한 시(詩)다.
반겔리스의 관악기와 현악기 사이에 있는 듯한 시그니쳐 사운드와 로버트 프립이 기타 효과음처럼 실험적이다. 실로폰과 닮은 체명악기 글로켄슈필이 신비로움을 형성한 ‘Teeth’와 거대한 앰비언트 소리벽을 조금씩 뜯어가며 미니멀리즘으로 전환하는 ‘Just a room’은 현대 음악의 거장 필립 글래스를 소환했다. 급진적인 사운드스케이프 사이로 ‘Pop song’과 ‘Photograph’의 선율이 대중성을 확보했다.
퍼퓸 지니어스는 쓰라린 기억을 어둡고 몽환적인 앰비언스에 담아 소수자의 가슴에 흩뿌린다. 예술만이 구원이었고 자아실현이었기에 주저하지 않았고, 주저할 수 없었다. 현대미술처럼 전위적인 사운드와 노랫말은 자유로운 사상을 담기에 최적화되었다. < Ugly Season >은 ‘음악에 모두를 건’ 예술가의 존엄한 수기다.
-수록곡-
1. Just a room
2. Herem
3. Teeth
4. Pop song
5. Scherzo
6. Ugly season
7. Eye in the wall
8. Photograph
9. Hellbent
10. Ce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