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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 ‘Guts’ (2023)

★★★☆
뻔뻔한 태도로 거침없이 밀고 나간다.

평가: 3.5/5

지난 2021년 9월 멧 갈라(Met Gala) 행사에 등장한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새까만 깃털 의상을 보고 불과 4개월 전 발매한 데뷔 앨범과는 너무나도 다른 패션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 보니 ‘디즈니 소녀’ 꼬리표를 재빨리 떼려는 시도이자 차기작에 대한 예고가 아니었나 싶다. 전 남자친구를 제물로 바쳐 뒤틀린 신데렐라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뮤지션이 돌아왔다. 완전한 성숙 이전, 혼란스러운 성장 단계에 선 채로.

‘배짱’을 뜻하는 제목처럼 청승맞은 데뷔 앨범에 비해 조금 더 과감해졌다. 첫 트랙 ‘All-American bitch’는 미디어가 그리는 미국 여성의 이상향을 조롱하고, “그저 발이 걸려 침대에 넘어진 것뿐이야”(’Bad idea right?’), ”넌 밤에만 모습을 드러내지“(’Vampire’) 등 섹슈얼한 표현도 스스럼없이 내뱉는다. 웃음기 빠진 디즈니 하이틴에서 파스텔톤 HBO 드라마로의 장르 변경. 한 끗 차이지만 뉘앙스에 분명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Good 4 u’의 성공으로 팝 펑크 리바이벌의 주축이 되었지만 사실 < Sour >에서 그러한 트랙의 비중은 극히 낮았다. 두 배 넘게 증가한 신보의 일렉트릭 기타 함유량은 세 가지를 목표로 한다. 덜컥 얻어버린 수식어에 부합하기 위한 보강공사, 전작과의 차별화 조성 및 성장의 은유, 그리고 좀비 상태인 록 장르의 부흥을 꿈꾸는 평단의 호감 얻어내기다. 속 보이는 전략임에도 포스트 펑크의 털털한 허세와 화끈한 2000년대 팝 록 기타 리프를 재현하는 솜씨에 음악이 결코 밉지 않다.

너무 빨리 무게를 잡은 탓에 퇴행을 택할 수밖에 없던 에이브릴 라빈의 선례를 의식했는지 여전히 나머지 절반은 일기장을 눈물로 적실 10대 백인 소녀 계층을 위한 발라드로 채웠다. 과거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그랬듯 소녀와 성인 사이 회색지대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관습적인 끼워 넣기로 보인다. 목소리부터 울먹이기 바쁜 ‘Logical’, ‘The grudge’ 등은 마땅한 존재 가치를 찾기 어려울뿐더러 고음의 답답한 음색이 테일러 스위프트와의 유사성을 한층 부각한다.

해답은 양극을 달리는 구성 가운데 제3의 길을 제시하는 ‘Pretty isn’t pretty’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1980년대를 신스팝과 펑크(funk), 디스코로 추억하는 천편일률적 양상에서 살짝 벗어나 블론디(Blondie)나 아웃필드(The Outfield)의 서정적 선율과 선선한 뉴웨이브 기타 톤을 결합했다. 감정과 에너지의 과잉 모두 억제한 절충의 미학은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날것의 언어에 통찰력의 아우라를 부여한다. 앨범 후반부에서 가장 번뜩이는 트랙이다.

보편성의 추구로 대중의 지지를 얻었기에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끊임없이 독창성의 증명을 요구받는 처지에 있다. 곳곳을 빼곡하게 채운 주석은 그를 기존 데이터를 끌어와 배합하고 요약하여 내놓는, 마치 챗GPT와 같은 가수로 보이게끔 한다. 그렇다면 원본 대신 그의 음악을 들어야 할 근거는 무엇일까? < Guts >는 이 물음에 정면으로 답하는 대신 나이를 무기 삼은 뻔뻔한 태도로 거침없이 밀고 나간다. 눈치 보지 않는 맹랑한 가수를 목도하고 있으면 점차 의심은 호기심으로, 불신의 시선은 업데이트에 대한 기대로 바뀐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추세라면 언젠가는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할 날이 분명 찾아올지도 모른다.

-수록곡-
1. All-American bitch
2. Bad idea right?
3. Vampire
4. Lacy
5. Ballad of a homeschooled girl
6. Making the bed
7. Logical
8. Get him back!
9. Love is embarrassing
10. The grudge
11. Pretty isn’t pretty
12. Teenage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