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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겍스(100 gecs) ‘10,000 Gecs'(2023)

★★★☆
올해 등장한,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앨범 중 가장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

평가: 3.5/5

딜런 브래디와 로라 레스로 구성된 미국의 디제이 듀오, 100 겍스에게 음악이란 적어도 타인을 위한 자선 행위는 아니다. 인간의 3대 욕구만큼이나 강력한 창작욕을 해소하려는 본능적인 끌림. 그렇기에 형식적인 악곡은 손에 익지 않는 필기구와 같고, 다수에 의해 규정된 장르는 상상력을 가로막는 따분한 숙제에 불과할 뿐이다. 확고한 신념은 곧 독특한 행보의 근거가 된다. 이들의 음악은 학술지만큼이나 난도가 높고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워도, 어린아이가 한 차례 소꿉놀이를 하고 간 어지러운 방처럼 솔직하고도 묘한 호감이 앞선다.

2010년대 말단을 화려하게 장식한 정규 1집 < 1000 Gecs >(2019)는 다른 의미로 비범했다. 평단에서 주로 언급하는 피치를 극도로 올린 중성적 보컬과 풍선껌처럼 왜곡되고 부푼 신시사이저, 빠른 속도감과 종잡을 수 없는 전개 등 단지 규격을 벗어난 실험적 요소 때문만은 아니다.

돌이켜 보면, 2010년대는 오랜 역사 가운데 위계질서를 쌓아온 팝의 피라미드와 급격한 성장을 거치며 순식간에 권력을 거머쥔 디지털 세계가 혼재하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이 앨범은 그 양면성을 포착한 극단의 결산작에 가까웠다. 하수구에 떠내려온 빌보드 차트의 무수한 레고 블록과 10년간 주류 산업을 거쳐 간 유행의 잔여물, 확산과 소멸을 반복해 온 고전 포털 사이트와 인터넷 밈(meme) 인플루엔자를 잔뜩 섭취하고 소화한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문화의 맨 아래층에서 팝의 새로운 차원으로 입성할 단서를 얻어낸 것이다.

많은 돌풍이 일었다. 먼저 PC 뮤직 레이블의 좁은 양식장 안에서만 교배를 거치던 ‘하이퍼팝’이라는 형체 없는 유령이 생명력을 부여받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성공적인 세포 분화와 돌연변이의 등장을 두 눈으로 확인한 전 세계 추종자들이 더 이상 스포티파이가 이름 붙인 플레이리스트의 산업적 산물이 아닌, 반드시 괄목해야 할 언더그라운드의 진화적 흐름으로 추앙하기 시작한 것이다.

< 1000 Gecs >는 열광적인 인기에 힘입어 어느덧 소피의 < Oil Of Every Pearl’s Un-Insides >의 뒤를 잇는 두 번째 지침서로 떠올랐다. 말 그대로 이들의 결과물은 ‘하이퍼팝’이라는 수식만큼이나 아직 존재하지 않는 다음 세대에 어울릴 법한 음악이었고, 인터넷이라는 무자비한 공유 플랫폼을 매개로 세상의 모든 비주류를 통합할 신(新)주류의 등장이었다.

4년 만의 신보 < 10,000 Gecs >에는 열 배 커진 단위만큼이나 ‘정확히 더 10배 좋은 음악을 준비했다’는 포부가 담긴다. 작업 방식은 또 한 번의 전복. 그들을 지금의 컬트적 위치에 올려놓은 키치의 대명사 ‘하이퍼팝’의 탈피이자 답습에 대한 공손한 거절이다. 여전히 우악스러운 충동의 덩어리에서 영감을 얻고 있지만, 이를 보기 좋게 반죽한 다음 익숙한 형태로 배열하는 친절함이 가장 큰 차이다. 물론 브루노 마스와 에드 시런, 찰리 푸스가 속한 대형 레이블 ‘애틀란틱 레코드’에 합류하면서 낸 메이저 진출작이라는 배경이 타협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중구난방의 수치가 극에 달했던 전작과 달리 대중과의 접점을 마련하고자 비교적 먹음직스럽게 플레이팅을 바꾼 것이다.

더 나아가 소재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크박스에서 ‘틴에이지 에센셜’ 리스트를 튼 것처럼 각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일이 무작위로 타석을 교체한다. 찢어지는 기타 노이즈에 강직한 파워 드러밍이 부각되는 메탈 풍의 ‘Dumbest girl alive’가 기세 좋게 포문을 연 이후, 내리 변화구의 연속이다. 대표곡 ‘Money machine’의 에너지를 응축한 팝 펑크 ‘Hollywood baby’에서 향수 가득한 앤섬이, 개구리 울음소리와 4번의 정박자(four-on-the-floor)의 말장난을 뒤섞은 ‘Frog on the floor’에서 우스꽝스러운 동요가 흘러나온다.

연이은 선조 호출과 독자적인 해석 난무에 정신마저 혼미해진다. 뉴 메탈의 클리셰를 성실하게 묘사한 ‘Billy knows Jamie’부터 EDM 초기 시절의 지저분한 일렉트로(electro) 요소가 등장하는 ‘One million dollars’, 올드스쿨 힙합 비트를 소환하는 ‘The most wanted person in the United States’, 여기에 애절한 발라드와 활기찬 스카 펑크(ska-punk)가 조울증처럼 반복되는 ‘I got my tooth removed’까지. 심지어 공식은 가뿐히 무시하고 기타를 드럼처럼 쓰는 ‘Doritos & Fritos’의 위임 정책에서는 헛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다.

과격함의 강도는 분명 줄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몇몇 비관론자들이 주장하는 정체성의 몰락으로 점치고 싶지 않다. 취향의 호불호나 스타일 변신을 막론하고도 번뜩이는 수많은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허를 찌른다. 구성도 그리 단순한 편이 아니다. 종잡을 수 없는 전개 역시 자세히 보면 록이라는 통일된 구심점을 기준으로 세밀하게 회전하고 있으며, 소모적인 코미디에 몰입의 역할을 담당한 듯 보여도 존재감이 선명한 ‘Hollywood baby’나 ‘Mememe’ 같은 뱅어(banger)의 징검다리가 결코 청취의 감칠맛을 놓지 않는다.

최고작은 아닐지언정 자연스레 이들이 가진 잠재력에 집중하게 된다. 이어질 다음 행보 또한 앨범의 구성만큼이나 쉽게 예상할 수 없겠지만 그 결과물이 무엇이든 간에 기대감을 갖고 눈여겨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올해 등장한,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앨범 중 가장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 < 10,000 Gecs >의 기분 좋은 혼란이 불특정다수에게 영감을 주입하는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10년의 초석이 조심히 놓이는 것만 같지 않은가.

– 수록곡 –
1. Dumbest girl alive
2. 757
3. Hollywood baby

4. Frog on the floor
5. Doritos & Fritos
6. Billy knows Jamie
7. One million dollars
8. The most wanted person in the United States
9. I got my tooth removed
10. Meme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