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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Minari)

★★★★
영화는 음악이 되고, 음악은 영화가 된다.

평가: 4/5

2020년 개봉해 비평가들의 찬사와 더불어 여배우 윤여정이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쓴 영화 < 미나리 >(Minari)는 우선, 한국계 미국인 2세 정이삭(Lee Isaac Chung)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 영화제작사 “플랜 B 엔터테인먼트”(Plan B Entertainment)가 만든 작품이다. 알다시피 “플랜 B 엔터테인먼트”는 <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으로 2013년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작년 < 기생충 >(Parasite)로 아카데미의 총애를 받은 봉준호 감독의 2017년 영화 < 옥자 >(Okja)의 제작사로도 유명하다.

윤여정과 한예리, 두 한국여배우의 출연이 돋보이는 영화는 1980년대 아칸소 시골을 배경무대로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으로 이주한 부부가 주인공이다. 서로를 구해주자고 떠난 미국에서 자녀를 낳고, 아이들을 돌봐줄 엄마이자 할머니까지 합세하면서 전개되는 가족이야기가 그 골자이다. 무엇보다 실제 사실에 근거한 각본이라는 점, 드라마 < 미나리 >는 정 감독의 유년시절 성장기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미국에서 태어난 손주가 보통으로 알고 있는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그야말로 확 바뀌는 5인 가족은 오자크(Ozark Mountains)에서 새로 시작하는 삶의 불안정과 도전 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가족의 회복력과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음악을 위해 정 이삭 감독은 작곡가 에밀 모세리(Emile Mosseri)와 손을 맞잡았다. 에밀은 2019년 < The Last Black Man in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의 마지막 흑인)와 2020년 < Homecoming >(귀향)의 두 번째 시즌에 음악을 맡아 주목받은 신예 유망주, 피아니스트 겸 가수, 제작자로 알려졌다. 그의 애정 어린 스코어는 부드럽고 소소하지만 정말 매력적이다. 온기로 가득해 특히 마음에 와 닿는 한편, 종종 아주 약간의 불협화음에 대비해 대조를 강조하는 사운드를 생성해 흥미롭다. 표면적으로는 일종의 작은 행복감을 구현해내지만, 그 배후에는 묵직한 감동이 있다.

그중 가장 명징하게 오는 음악은 배우 한예리가 한국어로 부른 노래, ‘Rain Song(비의 노래)’라는 자장가와 만화경처럼 계속 변화하는 ‘Wind Song(바람에 바람)’가 있다. 주제가 되는 ‘테마’에 노랫말을 덧붙인 곡으로 두곡 다 매혹적이다. ‘비의 노래’는 어린 시절의 순수한 동심을 불러내는 차분한 곡조가 몽환적인 전자음향효과와 어울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바람의 노래’는 웨스턴 서부영화를 보는 것 같은 어쿠스틱 기타 리듬과 전자음악의 융합이 노래와 함께 농장의 자연을 주요무대로 한 극의 정감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영화 전반에 쓰인 음악은 이상의 각 주요 테마에 가사를 넣은 곡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어쿠스틱 기타를 통한 자연적인 포크(Folk)와 피아노, 목관악기, 금관악기 등을 통한 클래식(Classic)을 결합해낸 목가적인 악풍이 가장 두드러진다. 거기에 전자악기를 혼용해 시대적 분위기를 강화했다. 구체적으로 1980년대 들어온 LFO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테레민(Theremin) 풍의 음향효과를 낸 것이 그러하다.

스코어의 중심은 ‘Grandma Picked a Good Spot'(할머니가 좋은 자리를 고르셨구나)으로, 전체적으로 클래식 피아노 솔로가 현악으로 뒷받침되며 변주를 통해 극적인 감동과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는 곡. 대부분의 지시악곡들과 마찬가지로 차분하고 명상적이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새 보금자리가 될 하우스트레일러로 가족이 차로 이동하는 동안 영화를 반주하는 ‘Big country’와 다른 한편에서 일정한 화음을 반복해 연주하는 악구가 특징. 스코어에 편성된 주요악기인 피아노와 어쿠스틱기타가 아름다운 화음으로 명징한 선율을 자아내는 ‘Garden of Eden’과 함께 영화의 극적 핵심을 관통하는 음악. 몇몇 테마를 중심으로 다른 멜로디와 코드진행을 이용한 방식을 추구했다.

‘Big country’를 서두로 모세리는 때때로 말없는 보컬을 사용하여 큰 효과를 낸다. ‘Jacob’s Prayer(야곱의 기도)’와 ‘Paul’s Antiphony'(폴의 교창), ‘Find it Everytime'(매번 찾아내지)는 그 범례. 매우 아름답고 황홀하다. 전자음악은 때로 일종의 최면효과를 만든다. 여러 면에서 음악은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를 위한 안젤로 바달라멘티(Angelo Badalamenti)의 음악을 상기시킨다. < 트윈 픽스 >(Twin Peaks)처럼 꿈을 듣는 것과 같다. 하이라이트는 의심할 여지없이 ‘Minari Suite'(미나리 조곡), 피아노와 허밍 보컬을 위한 메인 테마의 정감 넘치는 버전을 들려준다.

< 미나리 >에 쓰인 음악은 독특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감성적 인지를 얻는 독특한 악보로, 영화의 내용적인 일면을 보충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과하게 감동을 강요한다거나 영화의 부족한 면을 음악으로 대신하지 않는다. 때론 소소한 일상의 소품처럼, 때론 진심어린 울림처럼 화면전개를 차분하게 받쳐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렇게 영화는 음악이 되고, 음악은 영화가 된다. 고전과 현대음악 양식의 조화가 시적인 영상과 마음의 소리, 두 세계를 하나로 잇는 교량역할을 완벽히 해냈다. <미나리>의 음악은 2021년 제 74회 영국아카데미시상식(BAFTA)에서 음악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김진성)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1. Intro(도입)
2. Jacob and The Stone(야곱과 돌)
3. Big Country(대 서부)
4. Garden of Eden(에덴 정원)
5. Rain Song (feat. Han Ye-ri)(비의 노래)
6. Grandma Picked A Good Spot(할머니가 좋은 자리를 잡으셨네)
7. Halmeoni(할머니)
8. Jacob’s Prayer(야곱의 기도)
9. Wind Song (feat. Han Ye-ri)(바람에 바람)
10. Birdslingers(한방날리기)
11. Oklahoma City(오클라호마 시)
12. Minari Suite(미나리 조곡)
13. You’ll Be Happy(행복할 걸세)
14. Paul’s Antiphony(폴의 교창/성가)
15.Find It Every Time(매번 찾아내지)
16.Outro(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