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니다. 2012년 데뷔부터 록과 랩의 결합을 시도하며 음악적 지향을 밝힌 래퍼 머신 건 켈리는 3집 < Bloom >의 ‘Let you go’ 등 계속된 실험을 통해 구체적인 미래를 제시했지만, 기대치보다 부족했던 결과물은 그가 나아가는 방향에 의문을 품게 했다. 무엇보다 카밀라 카베요와 함께 부른 팝 넘버 ‘Bad things’와 에미넴과의 디스전으로 얻은 유명세는 그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유보하며 이슈, 발언 등 대외적인 요소에 집중하게 했다.
실망스러운 상황에도 머신 건 켈리는 멈추지 않았다. ‘Floor 13’의 묵직한 뉴 메탈 등 낮게 깔린 사운드가 가득 찬 2019년 작 < Hotel Diablo >는 빌보드 앨범 차트 5위를 기록하며 나름의 성과를 얻었고, 앨범 내 유일한 팝 펑크(Punk) ‘I think I’m okay’가 예상외의 호평을 끌어내며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는 충분한 지지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록커로의 노선 변경을 선언했고, 출사표이자 다섯 번째 정규 < Tickets To My Downfall >로 반전을 노린다.
‘title track’부터 의지를 다진다. 잔잔한 기타 연주로 시작하는 곡은 곧바로 강렬한 변주로 추락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개인의 시선을 표현해낸다. ‘Kiss kiss’ 역시 불안을 술, 마약으로 해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단순하게 반복되는 후렴구와 밝은 분위기의 반주로 포장하며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가볍게 덜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팝 펑크(Punk)를 중심으로 한 형태의 작법은 앨범 대다수를 지배하며 상처와 회복의 과정을 다루기에 일련의 유기성을 지닌다.
다만 그 짜임새가 견고하진 않다. 구조가 비슷한 곡들의 되풀이는 감상을 방해하며 청자를 피로하게 하는 요인이다. ‘bloody valentine’과 할시와 함께 부른 ‘forget me too’ 등 싱글 단위의 트랙은 매력적이지만, 장르의 재현이란 목적 안에 배치된 수록곡 구성은 이어 들었을 때 서로의 개성을 흐릿하게 만들기에 단조롭다. 환기의 역할을 맡아야 할 ‘kevin and barracuda (interlude)’도 유치하고 의미 없는 역할극으로 흘러갈 뿐이다.
작품 전체에 밴 프로듀서 트래비스 바커의 흔적도 짙다. 밴드 블링크 182의 드러머가 주도한 < Tickets To My Downfall >은 낯익은 연주와 문법은 탄탄하게 뼈대를 유지하지만, 그 자체로 구속력을 가져 신선하지 않으며 과거시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시대극에 주인공 머신 건 켈리는 정해진 대본만 읽는 모양새이다.
현 연인에 대한 감사와 딸에 대한 진심을 담은 ‘banyan tree (interlude)’와 ‘play this when I’m gone’으로 마무리되는 < Tickets To My Downfall >은 아티스트의 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인생 첫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는 결실을 본다. 하지만 머신 건 켈리가 기존을 답습하며 제안한 펑크(Punk)는 추억을 자극할지언정 극적인 대안은 되지 못한다. 몰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롭게 새긴 캐릭터는 선명하지만, 그 깊이가 아직 얕다.
-수록곡-
1. title track
2. kiss kiss
3. drunk face
4. bloody valentine
5. forget me too (Feat. Halsey)
6. all I know (Feat. Trippie Redd)
7. lonely
8. WWIII
9. kevin and barracuda (interlude)
10. concert for aliens
11. my ex’s best friend
12. jawbreaker
13. nothing inside (Feat. iann dior)
14. banyan tree (interlude)
15. play this when I’m g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