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랩 힙합의 한 분파인 드릴 뮤직(Drill Music)을 대표하는 래퍼 릴 더크의 여섯 번째 정규 음반. 2010년대 초 발매한 양질의 믹스테이프로 시카고의 촉망받는 래퍼로 거듭난 그는 거친 생활을 경험하며 감옥에도 여러 차례 드나든 이력이 있는 갱스터 출신이다. 그에 반해 음악가로서는 매년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온 성실한 다작 아티스트인 그는 드릴 뮤직 특유의 어두운 허무주의를 노래하며 최근에는 드레이크와의 합작 ‘Laugh now cry later’로 확고한 인지도를 다지기도 했다.
그의 색깔로 특징지어진 멜로디컬한 래핑은 신보에서도 이어진다. 가라앉은 피아노를 중심 삼은 트랩 프로덕션 위 한층 간소해진 플로우가 안정적이다. 자신을 ‘거리의 목소리’라 칭하며 갱스터의 삶을 이야기하는 내용도 여전하다. ‘누가 죽는 게 쉽댔어’라 총살당한 그의 오랜 친구를 연민하는 ‘Death ain’t easy’, ‘나는 내가 믿는 사람에게 투표조차 할 수 없다’며 중범죄자가 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The voice’는 그의 감정을 잘 녹여낸 곡이다. 빠른 템포의 알앤비 트랙 ‘Stay down’에서 래퍼 블랙(6LACK)과 영 떡(Young Thug)을 대동해 좋은 합을 이루는 콜라보 감각도 주목할만하다.
그러나 이렇다 할 발전이 감지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무난한 프로덕션이 안정성을 보장하지만 특이점 없이 안전하기만 한 비트는 유튜브에 무료로 풀린 타입 비트처럼 밋밋하다. 스트링 세션을 쌓아 올린 ‘Coming clean’과 어쿠스틱 기타로 분위기를 환기하는 ‘Not the same’ 정도가 개성적인 사운드를 선사한다. 또한 멜로디의 감도가 그리 높지 않은 데다가 반복에 매진하고, 콘셉트에 맞춘 전략인지는 몰라도 랩 끝을 흐리는 발성과 어색하게 겹쳐진 오토튠도 몰입을 방해한다. ‘Laugh now cry later’나 퀸 나이자(Queen Naija)와 함께한 ‘Lie to me’에서 보여준 활기찬 퍼포먼스가 없어 수록곡 간의 경계가 흐릿하고 음반은 몹시 길게 느껴진다.
야심 차게 자신을 ‘시카고의 제이 지’라 칭한(‘The voice’) < The Voice > 속 그의 목소리에 커뮤니티를 대변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 비슷비슷한 감성을 이루는 열여섯 수록곡에서 뮤지션으로서의 존재감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작년 고인이 된 오랜 친구 킹 본(King Von)과 꾸린 ‘Still trappin”같은 뱅어가 그나마 중독을 의도하며 빌보드 싱글 차트 순위권에도 얼굴을 내밀었지만 이 역시 2013년 그의 대표곡 ‘Dis ain’t what u want’에 견줄 정도는 아니다. 이번에는 너무 정직했다.
– 수록곡 –
1. Redman
2. Refugee
3. Death ain’t easy
4. The voice
5. Backdoor
6. Still trappin’ (Feat. King Von)
7. Stay down (Feat. 6LACK, Young Thug)
8. Free jamell (Feat. YNW Melly)
9. Misunderstood
10. Not the same
11. India pt. 3
12. Coming clean
13. Going crazy
14. Changes
15. Lamborghini mirrors (Feat. Booka600)
16. To be hon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