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뇌를 탐험해 보고 싶은 음악가다. 세대를 망라한 음향을 끌어와 각 질료를 엮어내는 기량은 기법은 다르나 벡을 연상하게 한다. 단조 위주의 신스팝 하위 장르인 다크웨이브와 미국 밴드 제임스 앤 더 콘토션스를 시초로 하는 펑크(Punk) 재즈가 음악적 배경으로 거론되나 크룰의 음악을 해당 장르의 융합물로 도식화하긴 어렵다. 진부하나 아티스트와 장르가 동치되는 사례다.
록과 재즈, 힙합 등 요소의 개별성보단 2~3분대 짧은 악곡의 테마 혹은 분위기에 집중하는 방식은 신보 < Space Heavy >에도 적용된다. 침잠(沈潛)의 오프너 ‘Filmsier‘를 뒤집는 ‘Pink shell’은 1994년생 아치 마샬(킹 크룰의 본명)을 통해 프리 재즈 거장 패로아 샌더스와 다크웨이브의 대표 밴드 클랜 오브 엑시모스를 역추적하게 된다. 첫 싱글로 내건 ‘Seaforth’와 미국 싱어송라이터 라비나 오로라를 투입해 몽환성을 살린 ‘Seagirl’은 전작 < Man Alive! >의 ‘The dream’과 ‘Slinky’의 궤를 잇는 상대적 온건파 트랙이다.
‘Pink shell’ 이후 흐물흐물 흐르는 나른함에 뾰족한 변곡점을 기대할 때쯤 ‘Hamburgerphobia’가 음산하다. 2017년 작 < The Ooz >의 ‘Dum surfer’와 ‘Biscuit town’을 잇는 포스트 펑크적 정서가 몽롱을 깨운다. 한 폭의 추상회화같은 앨범아트와 알 수 없는 시어 조합의 아방가르드 시의 물결은 컨셉트 앨범 적 특성을 부여했다. 우주와 비 물질계 부유의 대주제는 ‘Empty stomach space cadet’의 가사 “당신은 우주를 항해하고, 시간을 항해합니다(You sail through space, you sail through time)”에서 직접적으로 암시된다. 저음 보컬이 돋보이며 즐겨 사용하는 Space cadet(마약 중독자를 일컫는 은어)을 다시 꺼내들었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늪지대 같다. 이런 형식으로 전위성을 풀어내는 뮤지션은 과거를 거슬러 가도 찾기 어렵고 설령 있더라도 트렌디함까지 확보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만 19세 생일에 발매한 트립 합 계열의 < 6 Feet Beneath The Moon >부터 조숙한 천재의 이미지를 그려냈던 킹 크룰은 확고한 음악색으로 기대에 부응했다. 하이브리드 시대에 그가 제시하는 비전과 방향성은 독보적이다.
-수록곡-
1.Filmsier
2.Pink shell
3.Seaforth
4.That is my life, that is yours
5.Tortoise of independency
6.Empty stomach space cadet
7.Filmsy
8.Hamburgerphobia
9.From the swamp
10.Seagirl (Feat. Raveena)
11.Our vacuum
12.Space heavy
13.When vanishing
14.If only it was warmth
15.Wednesday overc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