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등장이었다. 4년 전 ‘Issues’로 괄목할 성과를 거둔 이래 현재 팝 시장에서 줄리아 마이클스의 이름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저스틴 비버의 ‘Sorry’와 에드 시런의 ‘Dive’ 등을 작곡하며 존재를 알렸고 여러 싱글에 피쳐링으로 참여해 입지를 넓혀갔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2019년 서울재즈페스티벌의 기억으로도 익숙한 그에게 제63회 그래미 어워드 ‘송 오브 더 이어’(Song of the year) 후보에 오른 ‘If the world was ending’은 중요한 분기점이다. 캐나다 아티스트 JP색스와의 듀엣곡으로 작년 한 해 찬사를 받으며 완연해진 팝스타적 면모는 작곡가와 솔로 뮤지션 양쪽 진영을 오가며 연마한 공예품이자 < Not In Chronological Order >의 예고편이 된다.
이번 앨범은 담백한 악기 활용이 인상적이다. 묵직한 베이스 드롭이 주도하는 ‘Wrapped aruond’를 포함해 나른하게 깔린 인트로 기타 사운드가 어둡게 맥동하는 리듬으로 변조한 ‘All your exes’는 점진적인 전개가 매력적인 팝 펑크(Punk) 곡으로 히트메이커의 자질을 가늠할 수 있는 지점이다.
Pessimist’와 일렉트로닉 요소가 자리한 ‘Lie like this’처럼 주류의 팝 사운드를 차용해 느껴지는 관습적 문법은 독보적인 음색 아래 정체성을 부여한다. 전통적인 어쿠스틱 발라드 ‘That’s the kind of woman’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진부함을 벗어낸다.
반대로 고유한 문체를 지닌 점도 묻어난다. 영국의 음악 전문지 < NME >와의 인터뷰에서 비관적인 과거를 깨닫고 새로운 사랑과 함께하는 건강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던 그는 전체 작사를 도맡으며 개인적인 사연들을 주저 없이 써내려 간다. 앞서 언급한 ‘All your exes’는 자칫 차분한 듯 보이나 상대방의 모든 전 여자친구들이 죽은 세상에 살고 싶다며 신랄함을 드러내고 이별 후의 무기력감은 ‘Love is weird’에서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그와 대조적으로 ‘Little did I know’에는 염세적 태도를 고수한 지난날의 자신을 일깨운 사랑의 기록이 담기며 깊은 감상을 자아낸다.
앞서 발매한 3장의 EP는 줄리아 마이클스가 보컬리스트로서의 내구력을 다지는 기간이었다. 본래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간직하고 매료되는 표현력까지 겸비한 첫 번째 정규작인 이 앨범은 30분이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을 독무대로 만들며 응축된 내공을 여실 없이 증명한다. < Not In Chronological Order >라는 제목처럼 연대순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번 음반은 줄리아 마이클스가 전진해가는 순서의 한 과정이다.
-수록곡-
- All your exes
- Love is weird
- Pessimist
- Little did i know
- Orange magic
- Lie like this
- Wrapped around
- History
- Undertone
- That’s the kind of wo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