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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공간반응'(2021)

★★★☆
오로지 감각 그 자체로만 소통한다.

평가: 3.5/5

“무대를 잃고 여덟 명의 음악가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연주합니다.” 지난해 발매한 4장의 싱글을 바탕으로 진행한 한희정의 온라인 공연 < 공간반응 >은 감각의 새로운 공유 형태를 설계했다. 각기 다른 공간에서 연주하는 음악가들, 의성어와 의태어로 잘게 쪼개진 관객의 반응을 합쳤다. 그리고 그 매개가 되어준 싱글을 모아 동명의 앨범을 발매한다.

공연과 앨범이 본질적으로 같을 수는 없지만, 둘은 각자의 공간에서 ‘소리를 매개로 주고받는 비가시적 현상에 초점을 두었다’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마치 무대에 들어선 것처럼, 앨범을 재생하면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 한희정이 초대한 제3의 공간에 들어섰다는 느낌이 든다. 적막한 화이트 큐브에서 ‘Voice and piano’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음악에 감응하기 시작한다. 공간은 어떤 표상도 없는 소리로 채워지고 초대자와 청자는 오로지 감각 그 자체로만 소통한다.

‘In silence’와 ‘재구성 part 1’에서 현악기와 드럼, 피아노에 보컬 박민희의 목소리를 더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화음을 이루는 것 같지만 보컬보다는 하나의 악기로서 기능한다. 특히 ‘재구성 part 1’에서 가사를 완전히 배제하고 목소리를 현악기처럼 연주한다. 그리고 이는 같은 ‘시작-격정-반복’ 구성을 취한 ‘재구성 part 2’의 바이올린 소리와 대비된다. 이를 통해 언어적 표현에 의존하기보다 소리 자체에 집중하려는 의도를 느낄 수 있다.

한희정은 소리의 비정형성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감각을 일깨운다. ‘Another inspiration’의 서정적인 피아노 소리와 현악기 연주를 가볍게 즐기던 청자에게 건반을 내려치는 소리로 충격을 준다. ‘양배추즙’에서는 바이올린과 혀 차는 소리를 대비시킨다. 그 뒤, 일정한 박자 없이 연주하는 피아노와 현악기가 더해져 다시 한번 형식을 깨뜨린다. 이러한 장치들은  예상을 깨며 오직 양배추즙을 먹는 자신의 공감각에만 몰입하도록 돕는다.

멜로디와 가사로 이루어진 음악에 익숙한 귀에 < 공간반응 >은 다소 난해하게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한희정은 트위터에서 한 음원사이트가 노래 없는 곡이라는 이유로 ‘양배추즙’의 노출을 거절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천천히 그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비언어적이고 비가시적인 소통 방법을 찾고자 한 실험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소리를 온전히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험을 통해 ‘다시는 노래 부르지 않으리라’라는 한희정의 말속 진심을 깨닫는다. 오랫동안 음악가로서 우리의 곁을 지키고자 하는 그의 고민이 오롯이 담긴 앨범이다.

– 수록곡 –
1. Voice and piano 1
2. In silence
3. Voice and piano 2
4. 재구성 part 1
5. 재구성 part 2
6. Voice and piano 3
7. Another inspiration
8. 양배추츱
9. Voice and piano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