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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엘비 ‘독립음악’ (2021)

★★★★
보통 사람들의 ‘대중음악’.

평가: 4/5

보통 사람들의 ‘대중음악’

청춘 래퍼의 공감은 일상을 공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풋풋했던 < 오리엔테이션 >과 이별 후의 속앓이를 담은 < CC >에 기록한 대학 시절 경험담. 대학생이라면 충분히 겪을 법한 에피소드는 유쾌하면서도 쓰라린 직설로 대한민국 청년들과 유대를 쌓았다. 그렇게 젊은 날의 노래는 멈추지 않을 것 같았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최엘비도 서른을 앞두고 있다. 싱그러운 20대를 마무리하는 < 독립음악 > 역시 전작들처럼 개인적 회고를 써내려가나 파고드는 내면의 수심은 훨씬 깊다.

고등학교 동창인 비와이와 씨잼 그리고 제2의 음악 인생을 이끌어준 기리보이까지, 그의 곁엔 소위 잘나가는 힙합 스타들이 함께 했다. 강렬한 스포트라이트의 주변은 어두운 법. 세간이 주목하는 그들의 입지와 달리 그의 역할은 조연에 가까웠다. 자부심과 자괴감을 동시에 떠안은 엑스트라는 감정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직접 메가폰을 잡아 ‘독립’을 감행한다.

진정한 ‘나’를 보여주기 위한 여정은 처음부터 ‘아는 사람 얘기’로 둔갑한다. 털어놓기 쉽지 않은 개인사를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오디션이란 특수 환경을 설정함으로써 자신과 화자를 분리했다. 세 번의 테이크에 거쳐 뱉는 랩도 또렷한 발음과 라임 구성으로 울컥이는 기타 줄과 건반 위를 휘어잡는다. ‘항상 조연으로 살았던 애’가 묵혀뒀던 응어리를 집약한 곡은 자연스레 뒷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하는 훌륭한 오프닝이다.

단숨에 이목을 잡아끈 배우는 담백한 기악 프레임 안에서 열연을 펼친다. 재즈 피아노에 어우러진 크루 ‘섹시 스트릿’의 일화 ‘섹스’, 피아노와 첼로가 탁하게 터뜨리는 독립의 발단 ‘주인공’, 그리고 몽롱한 신시사이저에 울분을 토해내는 ‘독립음악’까지 이어지는 굵직한 전개. 꾸밈없는 처절한 독백이 십여 년간 건들지 않은 상처를 보듬는 장면은 모노드라마의 주요 순간으로 손꼽힌다.

오랜 단역 생활로 체득한 연출법 또한 극의 몰입을 강화한다. 비와이의 < The Movie Star > 속 ‘주인공’이 실제 모습과 꾸며낸 영화의 배역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했다면, 최엘비가 맡은 ‘주인공’은 오히려 ‘뒤 배경 속에 있는 사람’의 단상을 나열하다 직접 ‘독립음악’을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삶의 주체로 서고자 하는 목표는 동일하나 유명한 동료와는 다른 접근법으로 ‘누구누구 친구’라는 꼬리표를 세차게 끊어낸다.

앨범 제목에 걸맞게 타 아티스트의 참여도 없다. 물론 마지막 트랙 ‘도망가!’에 도움을 준 목소리는 예외다. 브로콜리너마저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던 < CC >의 끝에서 손을 잡아주었던 생명의 은인이다. 밴드와 함께하는 도주에 목적지는 없지만 닥쳐오는 현실을 피하기 위해 뜀박질을 멈출 수도 없는 상황. 시간을 벌기 위해 현재의 최엘비는 다음 주자인 30대 최엘비에게 바통을 넘기고 우상들과 다시 한번 손을 맞잡으며 모두의 뒤를 맡는다. 꿈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헌신은 매일같이 치여 사는 젊은이들에게 ‘죽음까지 막는 음악가’의 의지를 장렬히 전한다.

휴먼 다큐멘터리의 중심인물 최재성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도 모자라 내려놨다. 지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우는 걸 창피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탄하며 비관하는 일반적인 열등감의 서사도 아니다. 냉혹한 현실에 수긍하고 살아가야 하는 최엘비의 < 독립음악 >은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가장 보통 사람들의 ‘대중음악’이다. 부모님, 강아지, 햄스터 그리고 용궁으로 떠난 물고기까지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촬영한 스물아홉 살의 마지막 씬. 컷 사인과 동시에 눈물 섞인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 수록곡 –
1. 아는 사람 얘기
2. 마마보이
3. 섹스
4. 주인공
5. 독립음악

6. 살아가야해.
7. WYBH save my life but…
8. 최엘비 유니버스
9. 슈프림
10. 잘먹어/걱정마
11. 도망가! (Feat. 브로콜리너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