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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지노(Beenzino) ‘Nowitzki'(2023)

★★★★
그 어느 때보다 빈지노스럽다.

평가: 4/5

모호하다. 이십 대의 삶을 기록한 < Lifes Like >와 < 24 : 26 >의 치기 어린 화려함도, 트랩과 플렉스 문화의 취입으로 레이블의 성격을 규정한 < 11 : 11 >의 파격도, 미술과 패션의 시각적 요소를 음악으로 해석한 < Up All Night >과 < 12 >의 선명한 색감도, 이상하리만치 정규 2집 < Nowitzki >라는 흐릿한 독립체에는 어느 하나 쉬이 연결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기존의 서사와는 별개로 작동하는 거대한 농담집. 이 앨범은 디스코그래피의 연장으로 보기 힘들다.

모든 행보가 미지의 영역으로 장기 말을 착수하는 과정이었음에도 지금껏 빈지노에게는 커리어를 묶어주는 단단한 중력이 존재했다. ‘젊음’이 가진 종잡을 수 없는 무방향성, 그 곳에서 비롯되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번뜩임’이 근원이다. 많은 이들이 < Nowitzki >에서 정체 모를 공허함을 느꼈다고 진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느덧 삼십 대에 접어든 청춘의 아이콘은 더 많이 경험하고 가지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넓히기 보다, 가진 것을 다듬고 보관하는 데 집중해야 할 시기에 도달했다. ‘바깥쪽으로 시선을 두기보다 오롯이 내적으로 보면서 작업했다’는 인터뷰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팽팽한 긴장과 영감을 동력 삼아 영역을 확장하고 증명을 추구하던 기존 캐릭터와 달리, 작품은 오히려 ‘번뜩임’의 족쇄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움직임처럼 보인다.

동반자 격 프로듀서인 시미 트와이스나 피제이와 작별을 고하고 다양한 프로듀서진과 송캠프 작업을 거쳐 스타일의 탈피를 꿈꿨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작곡, 편곡 작업에도 직접 참여해 오롯이 본인 취향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도 눈에 들어온다. 확고한 콘셉트와 비유로 철학과 메시지를 담아내기 위해 골몰하던 서술가적 자세도 상당수 덜어냈다. 로파이한 비트 사이로 파편화된 노랫말이 의식의 흐름처럼 등장하는 오프너 ‘Stinky kiss (intro)’가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좋은 예다. 머릿속에서 방금 막 꺼낸 듯한 곡은, 세세한 단면보다 전반적인 어우러짐을 중시하며 청취감을 짙게 보존하려는 거시적 작법이 두드러진다.

수차례 지워내고 문지를수록 제약은 사라진다. 전화기 버튼음을 연사하며 전시장과 미술품 경매를 콘셉트를 가져온 ‘Monet’, 정반대 성격의 두 곡을 섞어 나른함과 취기라는 양상을 공존시키는 ‘침대에서/막걸리’, 캐치한 선율 가운데 독특한 일상 요소를 나열하는 ‘여행 again’, 가벼운 훅을 반복하며 몽롱한 감상을 가져오는 ‘990’ 등이 그렇다. 떠오르는 생각을 마음껏 담아내도, 근거 없이 전개를 풀어내도 아무렴 좋다. 의도한 분위기를 구현하는 필수 관절만 갖춘다면 고귀한 주제 의식이나 풍성한 음향 같은 미학적 구속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 논리다.

가벼운 전반부의 기조를 뒤집고 순식간에 주도권을 가져오는 지점은 반추와 회상으로 얼룩진 중반부 이후의 구성이다. 군 시절의 소소한 일화를 기상나팔 사운드와 함께 버무린 ‘Camp’, 김정미의 ‘햇님’을 샘플링해 조부모 산소에 다녀오던 기억을 그린 ‘Sanso (interlude)’,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하나둘 호출하는 ‘Change’에서 앞서 설계한 인상주의 작법이 극대화된다. 뒤이어 산뜻한 ‘Sandman’과 ‘Radio’를 배치해 추억 여행을 거친 뒤 안정에 접어드는 구성 역시 영리한 전략으로 보인다.

호불호가 갈릴 작품이다. ‘농담’의 이름을 하사받은 여러 새로운 시도들이 분명 남다른 감상을 자아내지만, 의도적으로 뭉개 직관을 제거한 추상적인 작풍은 난해함을 불러일으키고, 무작위 테마를 반죽해 18개의 트랙으로 펴 바른 구성은 산만해질 수밖에 없는 고질적 한계를 가진다. 또한 탈피적 정신을 과하게 투입한 ‘바보같이’와 ‘Gym’, 피처링 진의 네임밸류를 제외하면 특색이 부족한 ‘Crime’ 같은 곡은 몰입을 깨는 요소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청취 내내 놀라움을 자아내는 것은, 다름아닌 빈지노 특유의 ‘날 선 감각’이 가장 크게 기능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사실상 선율과 기승전결 같은 전통적 기능보다도 ‘센스’ 하나만으로 전반적인 흐름을 끌고나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브(vibe) 뮤직’이라는 소모적 방식을 택함에도 아티스트의 존재감이 뚜렷하다는 점에서 얼 스웻셔츠(Earl Sweatshirt)의 < Some Rap Songs >가 가져온 충격이 떠오르기도 한다. 고착화된 신에 새로운 흐름을 과감히 제시할 수 있는 베테랑의 수는 적지 않은가.

문장 하나하나를 고심해 가며 여러 장편 소설을 써내려 가던 작가는 어느 날 침대에서 떠올린 몽상과 농담을 엮은 갱지 더미를 들고 나타났다. 기상 직후 잠결에 읊조린 말들과 목적 없는 우스갯소리만이 가득한 현장. 여기에 젊음의 소리를 세상에 외치던 대변자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 Nowitzki >는 그 어느 때보다 빈지노스럽다. 여전히 특유의 필체가 살아 숨 쉬고, 올곧은 신념이 담겨있으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처음 언급한 문장에 설명을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이 앨범은 디스코그래피의 연장으로 보기 힘들다. 어쩌면 빈지노라는 규정 불가능한 세계를 연장하기 위한, 새로운 디스코그래피의 등장이라는 말이 조금 더 옳게 들린다.

– 수록곡 –
1. Stinky kiss (intro)
2. Monet
3. 침대에서/막걸리
4. 여행 again (Feat. Cautious Clay)
5. Dope as (interlude)
6. Coca Cola red (Feat. oygli)
7. 990 (Feat. 김심야)
8. Lemon
9. 바보같이 (Feat. Y2K92)
10. Trippy (Feat. Lance Skiiiwalker)
11. Crime (Feat. 백현진, 250)
12. Camp
13. Sanso (interlude)
14. Change
15. 단 하루
16. Sandman
17. Radio
18. Gy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