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갑작스럽게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가 세상을 떠났다.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그였기에 밴드의 이후 행보가 잠시 안개에 가려진 듯했으나 앨범의 제목처럼 푸 파이터스는 고난을 딛고 음악의 자리에 있길 선택했다. < But Here We Are >는 이처럼 큰 상실의 맥락 하에 있으며 그렇기에 슬픈 앨범이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여전히 앞으로의 삶을 향한다. 이 의지는 그들이 딛고 일어설 고통만큼 강하다.
음반에 몰입감을 더하는 특유의 은유적인 표현들이 눈에 띈다. 심리적 고통이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을 노래한 ‘Rescued’, 한계와 초월을 그린 ‘Beyond me’ 등에서 이러한 메시지가 도드라진다. 또한 누군가를 기리는 듯한 내용도 귀에 들어온다. 물론 이번 앨범의 모든 내용을 상실의 고통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But here we are’, ‘The teacher’ 같은 곡에서 어떤 흔적들이 묻어날 뿐이다. 전작들에 비추어 생각해 본다면 이 모호함은 분명 의도된 결과다.
열 개의 트랙은 풀 레인지로 들었을 때 명확한 음악적 서사를 띈다. 장조 선율의 ‘Under you’와 이후 트랙들이 선명한 멜로디를 전달하다가 어쿠스틱 사운드의 ‘The glass’에서 숨을 고르고, 후반부 ‘The teacher’와 ‘Rest’의 절정까지 달리며 역동성이 가득한 감상의 순간을 연출하는 데에 성공한다. 이는 이 음반이 어떤 사건에 의해 갑작스럽게 주조된 것이 아니라 퍽 오랜 기간 완성도 있는 앨범을 만드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작업한 결과물임을 방증한다.
2005년 이후 처음으로 리더 데이브 그롤의 이름이 올라간 드럼 크레딧은 밴드의 이전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운드 유사성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 But Here We Are >는 편곡적인 측면에서 < In Your Honor >나 < One By One >에서 시도된 음악적 결과물들에 터를 잡고 있다. 여기에 다소 신경질적인 감성이 덧입혀져 묘한 방식으로 밴드의 스트레스를 새롭게 승화한다. 다분히 록 뮤지션 다운 선택이다.
애석하게도 데이브 그롤에게 있어 주변인의 죽음은 늘 따라다니는 그림자였다. 커트 코베인의 죽음이 그랬고, 지금은 테일러 호킨스와 어머니의 죽음이 맴돈다. 이런 순간에도 그는 담담하게 음악으로 향한다. 밴드의 음악이 순전한 애도만으로 해석되는 것도 차분하게 거부하며 꿋꿋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행한다. 이는 그가 겪은 슬픔에 대한 나름의 극복 의지이며, 팬들에게 건내는 푸 파이터스만의 위로다.
-수록곡-
1. Rescued
2. Under you
3. Hearing voices
4. But here we are
5. The glass
6. Nothing at all
7. Show me how
8. Beyond me
9. The teacher
10. 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