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Low’ (1977)

평가: 5/5

베를린 3부작 : 천재에서 예언자로

1976년 데이비드 보위는 향락에 가득했던 하얀 백작 시대를 폐기하고 스위스 제네바 호수에서 안정을 취했다. 수많은 가십과 당시의 상황이 대변하듯 그는 정상이 아니었고, 마약이 할퀴고 간 심신은 풀 한 포기 나지 않을 정도로 황폐해져 있었다. 공허한 상업적 성공을 뒤로하고 그가 찾은 탈출구는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악명높은 ‘육지의 섬’ 서베를린이었다. .

< Station To Station >으로 깔아놓은 변화의 촉매제는 1970년대 한창 부상하던 크라우트 록이었다. 히피 시대의 허망함을 채운 화려함이 글램이었다면 그 이후 해체주의, 전위주의의 포스트 모던은 독일의 실험적이면서도 난해한 일렉트로닉-신스팝으로 발현했다. 최첨단 과학 기술을 빌려 과학 기술을 비판하는 현대적인 전자음악은 이전부터 보위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어 있었다.

흔히 이런 독일의 일렉트로닉 때문에 보위가 서베를린으로 건너갔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지만 사실은 다르다. 1970년대 당시의 서베를린은 동독으로부터 둘러싸인 ‘육지의 섬’이었고 미군의 조달 물자에 의존하는 도시였으며, 게다가 노이나 크라프트베르크 같은 팀의 본거지는 서독의 손꼽히는 부유한 도시 뒤셀도르프였다. 사실 서베를린 선택은 쾌락에 중독된 미국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고립된 환경에서 작업에 집중하려는 의도가 컸다.

지친 과거의 스트레스를 승화라도 하듯 보위는 ‘육지의 섬’에서 심혈을 기울였다. 완벽한 실험의 결과를 위해 보위는 명실상부한 음악 실험자이며 디자이너인 브라이언 이노를 초청하였고 글램 록 시기 영광을 함께했던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를 다시 불렀다. 자칫 거칠고 소외될 수 있었던 실험을 깔끔한 배치와 구조로 잡아내며 3부작에 불멸을 부여했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3인조가 향한 곳은 중세시대 영주의 성을 전위 음악가 미셸 마네가 개조한 프랑스의 스튜디오, 샤또 드 에후빌이었다.

황량한 감정에 오싹한 ‘초자연적인 경험’까지 더해진 < Low >는 이미 발매 당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혁신으로 중무장한 앨범이었다. 그런데도 난해하기는커녕 기존 보위 스타일을 이어가며 새로운 요소들을 맞춰가는 ‘지속 가능한 진화’의 모습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진입 장벽 낮추기는 사이드 A면에 집중되는데, 2분에서 3분 내외의 구성, 인스트루멘탈과 가사의 왕래를 통해 유기적인 흐름을 형성한다.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알로마의 진한 기타 솔로를 통해 어두운 감정을 형상화한 ‘Breaking glass’와 특유의 경쾌한 피아노 연주로부터 출발해 강렬한 로큰롤을 뽑아내는 ‘Be my wife’ 등은 기존 팬들에게도 익숙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특히 펑크(Funk) 기타 리프에 소울 풍의 보컬을 더한 ‘Sound and vision’은 이 시기 데이비드 보위를 대표하는 싱글 중 하나다.

브라이언 이노의 신시사이저는 때로는 공허하게, 때로는 활기차게 곳곳에 배치되지만, 전체 그림을 깨지 않을 정도의 기막힌 균형을 맞춘다. ‘What in the world’의 리드 부분에서 오묘함과 기괴함을 더하면서도 훅 부분에서는 절묘하게 자리를 비울 줄 알고, 익살스러운 멜로디를 전개하면서도 밥 딜런 스타일의 보컬에 마약 중독 시기 실화를 노래하는 ‘Always crashing in the same car’의 중간 부분에서는 비장미를 가득 품는다. 제목 그대로가 데이비드 보위의 상황을 상징하는 ‘A new career in a new town’은 하모니카 연주와 더불어 약간의 설렘과 자유로운 분위기를 투영한다.

사이드 B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미니멀리즘 실험을 집대성한다. 브라이언 이노의 무의식과 데이비드 보위의 치열한 곡 설계로 꾸며진 6분짜리 아트 록 교향곡 ‘Warszawa’는 그야말로 압권으로, 100가지 버전의 목소리와 네 장의 파트, 신비로운 노랫말을 담은 베를린 3부작의 하이라이트다.

여기에 반복적인 신시사이저 루프가 짙게 내려앉은 ‘Art decade’, 가곡 ‘Scarborough fair’의 멜로디를 창의적으로 변용한 ‘Weeping wall’, 재즈 색소폰 연주와 대비되는 비장미의 ‘Subterranean’의 앰비언트 3형제가 실험을 무사히 호위한다.

< Low >는 대중이 기대하는 팝과 아티스트 본연의 실험 정신을 한데 버무려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당대의 미학 기조와 철학계의 기조까지 부합했다. 핑크 플로이드의 프로그레시브나 성난 펑크 록 대신에 보위는 앰비언트를 설정했고 펑크 사후의 포스트-펑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80년대의 뉴 웨이브와 1990년대 암울한 앰비언트, 일렉트로닉, 트립합 등은 모두 이 앨범의 녹을 먹었다.

피폐한 정신의 천재 백작이 육지 한가운데 차가운 냉전의 섬에서 예언자로 거듭난 것이다. 글램 록 시대 이후 데이비드 보위 앨범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며, ‘베를린 3부작’ 중에서도 가장 큰 의미를 지닌다.

– 수록곡 –
1. Speed of life 
2. Breaking glass 
3. What in the world
4. Sound and vision 
5. Always crashing the same car
6. Be my wife 
7. A new career in a new town 
8. Warszawa 
9. Art decade
10. Weeping wall 
11. Subterraneans

게시자: 김도헌

IZM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