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뜻밖인 듯 보이지만 < Heroes >의 마지막 트랙에서 예고된 변화일지도 모른다. 디스코 기타 리프를 바탕으로 이국적인 리듬을 그린 ‘The secret life of arabia’의 연장선처럼 느껴지는 이 앨범은 데이비드 보위의 13번째 정규 앨범이자 ‘베를린 3부작’의 대단원이다. < Low >와 < Heroes >의 발매 이후 월드 투어와 그 실황 앨범 < Stage >를 거친 그는 투어가 끝나고 1년간, 영혼의 단짝인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 브라이언 이노와 서둘러 < Lodger >의 작업을 진행했다.
절반이 연주곡으로 채워진 두 전작에 비해 < Lodger >는 접근하기 쉬운 3-4분 남짓의 짧은 곡으로 구성되었다. 이전까지 보여준 독특한 콘셉트와 긴 대곡 대신 일관적으로 빽빽한 노래들을 택한 구성은 보위가 내린 또 하나의 변화다. 언뜻 대중친화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의 변신 본능을 다 가리진 못한다. 카탈로그에서 가장 많은 장르가 시도된 앨범은 다양한 스타일의 접목이 빛나는 ‘월드 뮤직’의 향연이다.
으스스한 분위기의 ‘African night flight’는 케냐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아프리카풍의 타악기와 리듬을 입혔다. 톡톡 튀는 훅이 돋보이는 ‘Yassassin’은 은근한 레게 리듬의 활용이다. 그 외에도 영국 싱글 차트 7위까지 오른 히트곡 ‘Boys keep swinging’에서는 기타, 베이스, 드럼의 변칙적인 배합으로 마르지 않는 창의력을 증명하며, 특유의 중후함을 담아낸 ‘Fantastic voyage’는 묵직한 반주에 깊은 목소리로 빚어낸 스탠다드 팝이다.
세계적인 장르의 포용에도 앨범이 ‘베를린 3부작’으로 묶일 수 있는 건 독일의 음악 스타일을 가져온 덕이다. 발칙한 맛으로 흥겨운 ‘DJ’는 독일의 전자 샘플로 비트를 꾸몄고, 브라이언 이노가 대부분을 작곡한 ‘Red sails’도 < Low >와 마찬가지로 독일 밴드 노이(Neu!)의 크라우트 록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1976년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한 독일의 전자 음악 스타일로 트릴로지의 마지막 장을 흩트림 없이 장식했다.
< Lodger >는 두 전작에 비해 음악적 쇠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앨범을 둘러싼 월드 뮤직의 향기는 낯설었고, < Low >의 압도적 실험 정신에서 온 영향력이나 < Heroes >가 냉전 당시 베를린 모습을 반영하며 보여준 깊은 시대감각 같은 파급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작을 끝으로 보위와 작별한 브라이언 이노도 “< Lodger >를 통해 베를린 3부작이 작아졌음을 느꼈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음반은 영국 앨범 차트 4위라는 준수한 성적과 짧고 개성 있는 팝 넘버들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무엇보다 레게, 알앤비, 펑크(Funk)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실험성은 여타 아티스트는 흉내 낼 수 없는 보위만의 위업이다. 변화를 시도하면서도 본연의 개성을 잃지 않는, 음악가로서의 가장 큰 요구를 보위는 이 앨범에서도 완벽하게 충족했다.
점잖은 포크 뮤지션과 화성인, < Aladdin Sane >의 중성적인 페르소나와 퇴폐적인 신사 씬 화이트 듀크(Thin White Duke)를 거치며 늘 변화무쌍하던 보위에게 < Lodger >는 1970년대 끝자락을 마무리하는 성과다. 상업적 최전성기를 이루는 1980년대를 맞기 이전 카멜레온이 감행한 작지만 강한 변화였다.
-수록곡-
1. Fantastic Voyage
2. African Night Flight
3. Move On
4. Yassassin
5. Red Sails
6. DJ
7. Look Back In Anger
8. Boys Keep Swinging
9. Repetition
10. Red Mo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