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무쌍 ‘록 카멜레온’의 줄기세포
1972년 영국, 글램 록의 시대가 열렸다. <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Spiders From Mars >로 지구에 강림한 외계인 데이비드 ‘지기 스타더스트’ 보위가 충격적인 바이섹슈얼적 분장과 기괴한 퍼포먼스로 영국 록 시장을 강타했다. UK 앨범 차트 1위는 지난해에 이어 티렉스(T.Rex)의 < Electric Warrior >였고, 야심만만한 마크 볼란이 닦아놓은 길에 후발 주자 지기 스타더스트는 더욱 큰 자극으로 무대를 물들였다.
신선한 창조에 경도된 대중은 뒤늦게 보위의 디스코그라피를 훑었다. 싱글 차트 3위까지 올랐던 ‘Space oddity’를 기억하는 이들은 소수였고, ‘The man who sold the world’의 헤비함은 블랙 사바스와 레드 제플린, 딥 퍼플에 한참 밀려있었다. 철저한 무명이었던 보위 음악의 재평가는 바로 그다음 앨범이자 지기 스타더스트로부터 1년 전, 기상천외하고 잠재력으로 꽉 채워진 < Hunky Dory >를 통해 이뤄졌다.
스물네 살 데이비드 보위의 모든 지식과 사상이 총동원된 앨범은 기상천외한 헌사와 번뜩이는 창의적 시선,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이 녹여진 종합 선물 세트다. 당대의 우상들에게는 후배의 겁 없는 트리뷰트부터 날카로운 사회 비판, 날 선 사운드부터 인간적인 면모까지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을 아우른다. 변화무쌍한 ‘카멜레온’ 데이비드 보위의 야심 찬 출사표이자, 앞으로의 커리어를 모조리 예고한 청사진이다.
‘신비한 매력에 매혹당하고 / 빨라지는 변화 속으로 들어가네.’를 활기차게 내뱉는 ‘Changes’는 앞으로 보위의 변화무쌍한 40년을 예고하는 성명서다. 1972년 한 해 늦게 빌보드 싱글 차트에 모습을 드러낸 이 곡은 전에 없던 생기발랄한 에너지가 귀를 사로잡는다. 피아노 한 대와 목소리로만 빚어낸 ‘Oh! you pretty things’는 심오한 가사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더없이 경쾌하며, 1970년대 닐 영 풍의 어쿠스틱 트랙 ‘Kooks’에는 아들 던컨 존스의 탄생을 기뻐하는 따뜻한 인간미가 담겨있다. 변신의 첫 발걸음이 산뜻한 셈이다.
숨겨진 닐 영뿐만 아니라 앨범은 전체적으로 수많은 아티스트들에 대한 헌사를 대놓고 (혹은 여전히 은밀하게) 표방한다. 트리뷰트로 가득한 LP 뒷면의 문을 여는 것은 실제 곡의 주인공은 듣고 기겁했다는 ‘Andy warhol’, 밥 딜런의 1962년 작 ‘Song to Woody'(Woody Guthrie)를 적절히 패러디한 ‘Song for Bob Dylan’이다. 특히 루 리드의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옮겨온 ‘Queen bitch’는 기타리스트 믹 론슨의 날카로운 기타 연주가 주도하는 앞으로 글램 록 시대 보위 음악을 정확히 예고했다.
이러한 명곡의 홍수 속에서도 ‘Life on mars?’의 독보적인 아우라에 맞설 트랙은 없다. 같은 프랑스 아티스트의 원곡을 두고 만들어진 프랭크 시나트라의 앤섬(Anthem) ‘My way’의 완벽한 대척점인 이 곡은 1970년대의 ‘성난 예언자’가 바라본 제국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화성보다도 메마른, 삭막한 현실과 통제되는 대중의 비참함이 고스란히 담긴 이 곡은 데이비드 보위의 비범한 철학과 핵심을 찌르는 시각을 투영한, 시대를 빛낸 명곡이다.
1960년대 히피 무브먼트의 소멸로 갑작스레 텅 비어버린 음악계에 보위는 그야말로 혜성 같이 나타났다. 글램 록 시대 표면적 인기는 티렉스가 더 많았지만, 최후의 승자는 사색적인 이들까지도 끌어당긴 보위의 마법이었다. < Hunky Dory >는 그 모든 기본기를 담은 만능의 줄기세포다.
– 수록곡 –
1. Changes
2. Oh! you pretty things
3. Eight line poem
4. Life on mars?
5. Kooks
6. Quicksand
7. Fill your heart
8. Andy warhol
9. Song for Bob Dylan
10. Queen bitch
11. The Bewlay brot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