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 후 10년 동안 가을방학의 음악에는 변함없는 가을 내음이 가득하다. 꾸밈없는 노래와 듣는 이를 다독이는 따뜻한 억양, 언제든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친구처럼 편안하면서도 호소력 강한 목소리. 팀이 다져온 이러한 문법은 새 정규작 < 세상은 한 장의 손수건 >에서도 여전하다.
철새가 날아오르듯 활기를 머금은 ‘새파랑’이 기분 좋은 포문을 연다. 차분한 기타 스트로크를 시작으로 차곡차곡 악기를 쌓아가는 노래는 지난날보다 나아진 현재의 나를 마주하며 개운한 긍정으로 가득하다. 이어지는 음반의 타이틀 ‘세상은 한 장의 손수건’은 효과음 섞지 않은 전자 기타를 중심 삼은 예스러운 밴드 사운드가, 짙은과 함께한 ‘반얀나무 아래’는 어쿠스틱한 보사노바 정서가 개개의 개별성을 지닌다. 끝자락 리드미컬한 선율이 두드러지는 ‘루프탑’으로 중독성을 이끄는 구성도 첫인상의 만족도를 높이는 지점.
은은한 피아노 선율 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짝사랑을 노래한 ‘사랑없는 팬클럽’에는 2010년 < 가을방학 >의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식 아련함이 서려 있다. 앞서 언급한 개성 강한 트랙보다 팀에게 대중적 호응을 안긴 익숙한 발라드 작법을 녹여낸 선택이 반갑다. 또한 ‘성주간’에서 들을 수 있는 곡 흡수력도 상당하다. 4분의 짧지 않은 재생 시간을 하나의 절로 이어감에도 흐트러짐 없는 곡조와 목소리의 호흡은 언어를 생생하게 귀에 스며들게 한다.
편안한 서행이 간만에 안정적인 울림을 주는 음반이다. 낙차 없는 전개와 단일한 기악 편성은 심심하게 다가오나, 작품의 또 다른 머릿곡 ‘끝말잊기’와 3박자 왈츠 리듬의 ‘아픈 건 이쪽인데요’에서는 인상적인 시적 비유도 들린다. 이들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어린아이가 부르는 동요처럼 외연이 순수하지만 그 내용은 지극히 어른의 것이다. 번뜩이는 콘셉트보다 계절의 온도에 어울리는 노래들을 한데 엮은 소박한 모음집.
– 수록곡 –
1. 새파랑
2. 세상은 한 장의 손수건
3. 설탕옷
4. 끝말잊기
5. 사랑없는 팬클럽
6. 그대로, 그대로(remastered)
7. 반얀나무 아래(Feat. 짙은)
8. 한 권도 줄지 않는 정리의 마법
9. 아픈 건 이쪽인데요
10. 나미브
11. 성주간(Semana Santa)
12. 루프탑(remaste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