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의 < Los Angeles >가, 혹은 썬더캣(Thundercat)의 < Where The Giants Roam >이 떠오른다. 부드럽게 조율된 피아노와 현악기의 선율 사이로 날카로운 소음, 땅을 기는 둔탁한 타격음, 그리고 부피와 탄성을 지닌 웡키(Wonky) 사운드가 조립되는 선과 악의 공존. 비앙(Viann)은 보편적인 일상의 기본 물질과 죄악을 지닌 비주류의 원소를 한 데 모아 해체, 분석, 그리고 재배열을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연옥을 설계한다. 그야말로 신의 신성한 과업, 창조주가 펼치는 ‘베이킹’이다.
개인의 능력을 감추기 보다, 오히려 최전면에 내세우며 존재감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여러 재료를 능란하게 다뤄온 본인 실력에 대한 믿음과 작품의 주체를 자신으로 여기는 데서 나오는 당당한 자신감이다. 이는 작중 솔로 파트로 입증되는데, ‘Color me bed’의 변칙적인 트랩 비트에서 ‘시가렛’으로 이어지는 워프 레코즈(Warp Records) 풍의 베이스 사운드, 위협적인 전자음이 날뛰는 ‘Hub’와 ‘막내’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렉트로니카와 재즈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현란함은 같은 계열의 익스페리멘탈(Experimental) 힙합을 지향하는 아티스트 ‘XXX’의 날카로운 청적 쾌감보다는 조금 다른 결인, 미묘하고도 아늑한 안정감이다.
피처링 선택 또한 매우 탁월하다. 아티스트 특성에 맞게 변모하는 비트 메이킹이 작품 전반에 드러날뿐더러, 그의 위대한 천지창조 과정에 기꺼이 참여한 인물들 또한 날렵한 솜씨로 비트와 시너지를 이루는 모습이다. 진보의 그루비한 감각을 부각하는 ‘Got it all’, 후디의 차분한 기조를 따라가는 ‘0과 1 사이’, 그리고 수민의 몽환적인 음색을 팝 사운드로 구현한 ‘4ㄹ5’는 색채를 대상에 일치시킴과 동시에 몰입도를 깨트리지 않고 이어 나간 사례다. 랩의 영역 또한 건재하다. 이현준의 격한 래핑을 온전히 담는 ‘시가렛’과 쿤디 판다의 박자감을 스타가토 형식으로 돋보인 ‘Menace’, 특히 비와이의 화려한 랩 기술이 드러난 ‘Golden Fleece’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비트가 화룡점정을 찍는다. 트랙이 거듭함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조합법이 쉬지 않고 등장하는, 실로 놀라운 현장이다.
비앙은 앨범에 ‘매슬로(Maslow) 5대 위계질서’ 이론을 콘셉트로 잡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기본 욕구부터 자아실현에 이르는 단계까지, 트랙을 나아갈수록 더 이상의 것을 갈망하는 진취적 태도와 거친 표면을 점차 세련되게 다듬어 나가는 서사가 그렇다. 이는 마치 진정한 예술가로 승화하려는, 숭고한 포부이자 음악적 욕구 해소다. 게다가 다소 거창한 주제임에도 접근성 좋은 재즈 요소와 앨범을 하나로 관통하는 메시지로 기반을 다진 덕일까, 내용물이 화려함에도 난잡하지 않고, 자극적이지만 쉬이 피로해지지 않는다. 쿤디판다와 합을 맞춘 < 재건축 >에서 동양적이면서도 신묘한 프로듀싱으로 이름을 알린 비앙, 그는 < The Baker >로 한 명의 아티스트이자, 동시에 내로라하는 국내 프로듀서 반열에 쐐기를 박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수록곡 –
1. Color me bad
2. Cigarette (Feat. 이현준)
3. Got it all (Feat. JINBO The SuperFreak)
4. Menace (Feat. Khundi Panda)
5. 차원 (Feat. HYNGSN)
6. 우리 집
7. 4ㄹ5 (Feat. SUMIN & Khundi Panda)
8. HUB
9. Jealousy (Feat. HYNGSN)
10. Golden Fleece (Feat. BewhY)
11. 막내 (Feat. NOT EASY)
12. TEST. (With. Eden Highway)
13. 말 한마디로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 Your Truth (Feat. Noogi)
14. 0과 1 사이 (Feat. Hoody)
15. 돈 (With. FR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