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Leeee >는 무채색의 영역에 맞닿아 있다. 흰 배경과 흰 티셔츠, 컴퓨터로 모델링 된 무표정의 사내는 깔끔하고 순수한 첫인상을 자아낸다. 표지부터 의도적으로 강조되는 무색, 백(白)의 반복은 단조로운 무개성의 의미가 아니다. 기교 한 줌 섞이지 않은 담백한 음색으로 다양한 색을 포용하겠다는 포부이자, 어느 물감이든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는 백색의 도화지다.
죠지는 백지 위로 먼저 자신의 작업 세계에 영향을 준 아티스트들의 선으로 도안을 그린다. 가볍고 나른한 포크 멜로디의 첫 트랙 ‘Idkyet’가 그렇다. 흐릿하지만 ‘Nike shoes’가 연상되는 리듬과 ‘Aqua man’의 가사 ‘헤엄, 헤엄, 헤엄’을 작게 읊조리는 부분은 평소 자주 듣고 좋아하던 가수인 빈지노에 대한 오마주다. 빈지노의 랩 스타일을 고스란히 차용했던 초창기 작품 ‘The bottom of the sea’와는 다르다. ‘Idkyet’은 그의 모습을 자연스레 녹여내고 소화하는 데 집중한다.
차분한 어쿠스틱 스타일로의 편곡을 거친 ‘하루종일’ 또한 기리보이의 원곡이 청사진이다. 기존의 팝적인 면을 모두 덜어내고 기타만 남긴 간결한 악기 구성은 죠지의 군더더기 없는 수수한 보컬에 오롯이 집중하도록 길을 터준다. 그가 구상하는 형태는 단순 복제가 아니다. 타인의 스케치를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닌, 포인트를 집어내 온전히 자신의 그림체로 바꾸는 영리한 재창조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죠지만의 색이 첨가된다. 전작 싱글 ‘Boat’에서 선보인 특유의 가사 센스가 그 정체다. 상투적이지 않으면서도 다분히 현실적인 단어와 일상에서의 면밀한 관찰로 얻어낸 표현은 청자에게 보편적 공감을 유도한다. 각자 삶에 부딪혀 서먹해진 가족의 단면을 풀어낸 ‘족보의 몰락’를 보자. 덤덤한 어투로 ‘이름도 몰라, 성도 몰라, 얼굴도 몰라, 아마도 족보의 몰락’을 읊조리는 훅은 가벼운 말장난이지만 소소한 조소와 위트 있는 인상을 남긴다.
일률적인 태도로 선과 틀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사회를 노래한 ‘어쩌면’은 구어체를 중심으로 한 노랫말이 핵심이다. 곡은 담화에 가까운 차분한 어조로 진행되지만, 그 내용은 젊은 세대의 허무주의를 관통하는 진지한 감상이 채워지며 조금은 뼈아픈 기시감을 선사한다. 차밍 립스(Charmimg Lips)의 사무치듯 울리는 기타는 넉넉한 에코를 조성하며 분위기에 걸맞은 오묘한 공허함을 구현한다. 이는 가사와 교묘히 배합되며 몰입감을 올리는 요소다.
다섯 곡이라는 아기자기한 규모에 전반적으로 심심하고 무난한 프로덕션은 전작 < Cassette >의 작품을 대표하는 몽롱하고 신비로운 풍경과 돋보이는 개성의 경지에 미치지 못하지만, 여전히 즐길 거리가 다분히 포진된 작품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 Leeee >는 여러 스타일을 본연의 것으로 둔갑시킬 수 있는 자신의 장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그려낸 조그만 화폭이다. 어느 색으로도 칠해질 수 있는 백의 정체성을 지닌 죠지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있다. 그저 단순한 사랑 노래를 흐느끼는 흔한 알앤비 아티스트가 아닌 우리네 삶과 밀접해 있는 가장 보통의 위치에서 말이다.
– 수록곡 –
1. Idkyet
2. Aura (Feat. 샘 킴)
3. 족보의 몰락
4. 어쩌면
5. 하루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