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예은의 폭은 넓다. 사극 OST를 통해 널리 사랑받은 ‘홍연’, ‘상사화’ 같은 노래가 주는 짙은 인상으로 인해 그의 음악적 토양을 그 언저리로 한정 짓는 사람이 많을지라도 그게 결코 그의 전부는 아니다. 그는 앞서 서술한 사극에 잘 어우러지는 화려한 현악기와 쨍한 보컬을 강조한 곡을 쓰고 발라드를 쓰고 후크송을 쓴다. 음악이 주는 느낌에 따라 시대적 배경을 그려보자면 그의 가용 범위는 고대와 현대를 넘나든다.
일정 부분 이 다양성이 안예은 표 앨범의 집중도를 흩으려 왔다. 허나 2년 만에 발매된 이번 정규 3집에 또다시 반복되는 이러한 다양성을 마주했을 때 이는 더 이상 응집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머물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그것을 뛰어넘는 싱어송라이터의 기질이 살아 숨 쉰다. 비슷한 장르에 따라 세 묶음으로 뚝뚝 끊어 구성을 나눴는데 이게 각각 저마다의 자리에서 쫀쫀하게 제 역할을 해낸다.
‘속삭임의 회랑’은 안예은의 전형이다. 현악기로 선율을 박차고 나가며 활강하듯 현을 타고 오르는 멜로디와 상상력을 가득 담은 가사가 사극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타이틀 ‘Kakotopia’는 한 술 더 나간다. 디스토피아를 형상화한 곡이라더니 과연 팽팽하게 잡아 당겨 진 기타 줄 마냥 질긴 고음이 화려하게 곡을 잡는다. 재즈적인 피아노가 서사를 끌고 가는 ‘도깨비’ 역시 마찬가지다.
2막은 현대적인 발라드다. 고독한 내면의 슬픔을 풀어낸 것만 같은 ‘꿈’은 피아노를 중심으로 ‘모두의 시선이 차게 꽂힌다.’ 노래하고 연장 선상에서 ‘배’는 이러한 감성을 정점으로 끌어 올린다. 얼핏 사랑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쓴 노래 같으나 쉬이 그 화살이 자신으로 향하는 게 느껴지는 이 곡은 섬세한 가사와 점점 확장되는 감정선이 일품인 이 음반의 화룡정점이다. ‘난 뭍으로 가고 싶어 / 항해를 끝내줄래’란 글에 응축된 외로움이 안예은에게 고착된 어떤 인상의 제약을 풀어낸다.
끝으로 후크. 지난 정규 2집 < O >처럼 음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동요같이 쉽고 따뜻한 노래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의 유쾌함을 대변한다. 소포모어에서 ‘홀로봄’이 그 역할이었다면 신보에서 그 자리는 ‘문어의 꿈’과 ‘품행제로가’ 맡는다. 이렇듯 구성만 놓고 보면 폭은 넓고 주제는 많고 음반을 꾸린 얼개 자체도 계속해서 과거와 반복된다.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이 형형색색의 찡함이 모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잘 쓰고 잘 부른다. 허물없이 벗겨놓은 자유로운 이야기와 그가 사용하는 음악적 도구들이 꾸지람에도 꿋꿋이 제 역할을 해냈다. 여기서 안예은의 세계관을 본다. 그의 당찬 서사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 수록곡 –
1. 속삭임의 회랑
2. Kakotopia
3. 도깨비
4. 꿈
5. 배
6. Loop
7. 빛이라
8. 문어의 꿈
9. 품행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