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의 티파니에서 본명의 마지막 글자인 ‘영’을 더해 티파니 영으로 새로 출발한 음반은 미국 활동의 첫 지향을 잘 드러낸다. 이름은 길어졌고 정체성은 확실해졌다. 이전까지의 화려함을 걷어내고 본인의 생각과 삶을 오롯이 적어낸 이 앨범은 상업적 성과와 혹은 요새 미국에서 인기 있는 음악들과 거리가 있을지언정 솔직하고 무엇보다 잘 다듬어진 팝 트랙들이 담겨있다.
본국인 미국에서 첫 솔로 커리어 시작을 알린 ‘Over my skin’, ‘Teach you’와 같은 싱글은 펑키했고 반짝였으나 ‘Twinkle’ 시절의 태티서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후 발매한 ‘Peppermint’ 또한 마찬가지다. 약간의 트랩 비트와 래핑으로 소녀시대의 아우라에서 비켜난 듯했으나 미국 활동의 당위성을 전달할 정도는 아니었다. 뮤지션 티파니 영의 존재감이 부족했던 탓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EP는 티파니 영 주도적이다. 베이비 페이스와 함께한 마지막 곡 ‘Runaway’를 제외하고 전곡 작사 작곡에 참여한 점도 그렇고, 자전적인 메시지와 가치관을 정확하게 적어낸 점 역시 그 장악력을 증명한다.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게 바치는 ‘The flower’는 ‘너의 꽃병에 꽃이 되겠다’ 노래하고, ‘나는 바비 인형이 아니다, 내가 다른 것에 대해 사과할 필요는 없다’ 말하는 ‘Not barbie’는 아이돌로 십여 년을 살아온 티파니의 서사와 맞들어 한층 깊은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작품이 ‘Born again’ 할 수 있는 지점은 이 음반이 지극히 한국적이지도 미국 우호적이지도 않다는 점에 있다. 뚜렷하게 들리는 훅 중심에 맛깔나는 보컬. 소위 말하는 뽕끼가 사라진 5곡의 트랙들이 한국형 음악이라기에는 밍밍하다. 즉 한국의 수요층을 공략하고 있지 않다. 미국에서는 어떨까? 현재 빌보드 차트를 주름잡는 간결한 러닝타임은 있을지언정 그 흔한 트랩 비트도 없고 그렇다고 할시처럼 여성 주도적 색채를 강하게 내세운다거나 혹은 두아리파의 매혹적인 사운드 메이킹이 자리하는 것도 아니다. 엄청난 예산을 들인 대대적 홍보 또한 없었다. 한 마디로 자신이 하고 싶은, 자신의 것을 담백하게 들려준다는 것이다.
선명하지 않은 사운드를 중첩하는 가운데 어쿠스틱 기타로 상승구조를 만든 뒤 이를 터트리지 않고 오히려 절제해 부르는 ‘Born again’, 볼륨 있는 신시사이저로 사랑의 달콤함을 전해주는 ‘Lips on lips’, 컨트리풍의 기타 사운드로 문을 여는 ‘Not barbie’를 포함해 베이비 페이스와 함께한 포근한 알앤비 트랙 ‘Runaway’까지 깨끗하고 정제된 사운드로 현재의 티파니 영을 보여주는 < Lips On Lips >. 전성기 시절에 비해 차트와 대중의 관심은 적어졌을지라도 충분히 번듯한 앨범이다. 휩쓸리지 않고 미국 활동의 첫 디스코그래피를 적어냈다.
-수록곡-
1. Born again
2. Lips on lips
3. The flower
4. Not barbie
5. Runaway (Feat. Babyf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