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들인 성장, 반짝이는 서사
2011년 즈음 홍대에 발을 들인 이후 줄곧 ‘코스모스 슈퍼스타’로 활동하던 그가 본명인 ‘한정인’으로 첫 번째 정규 음반을 냈다. 앞서 발매한 2개의 싱글 ‘Extra’, ‘슬픔의 맛’을 포함한 총 14개의 수록곡. 음반은 긴 시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정성을 대변하듯, 많은 곡 수와 꾹꾹 눌러 담은 감정들로 용솟음친다. 한 곡, 한 곡, 탄생 내막을 묻게 하는 노랫말. 매끄럽게, 또 때론 예상 밖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곡 배치도 힘 있다. 한정인이 주도권을 쥐고 듣는 이의 호흡을 이끈다.
전자음을 중심으로 어둡고 맑은 신시사이저를 교차하며 선율을 뽑았다. 이는 전작 < Eternity Without Promise >(2019)와 비슷한 구성이나, 그는 신보에서 목소리를 보다 앞으로 끌어온다. 어둡고 몽롱한 꿈속 한 가운데를 헤엄치던 것 같던 과거의 보컬 사용에서 탈피, 선창하듯 제 색을 내는 목소리의 운용은 더 이상 음악 뒤에 숨지 않으려는 뮤지션의 의지로 읽힌다. 이 의지는 외로움, 두려움, 괴로움, 사랑 등의 감정을 적극 드러내는 노래 속에서도 천명한다.
‘네가 원하는 것은 친구가 아닌’ ‘특별한 단 한 사람’이라 말하는 ‘Listen & repeat’. 경계에 서 있는 것만 같은 불안한 삶을 고백하는 ‘Borderline’,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슬픔의 맛’을 노래하는 ‘슬픔의 맛’ 등 곡 안에서 한정인은 노래와 함께 실컷 나를 풀어낸다. 이 적극적인 고백의 기조가 특히 돋보이는 지점은 타이틀 ‘Wallflower’에서 ‘Badluckballad’를 지나 ‘도시전설’로 이어지는 전반부.
레트로한 댄스팝 ‘Wallflower’는 중무장한 대중 선율로 듣는 이를 댄스 플로어 위로 데려간다. 땀 흘리며 흠뻑 뛴 후 음반의 정체가 이 흥겨움 속에 놓여 있는가 할 때, 무너져 내리는 어두움으로 가격하는 ‘Badluckballad’가 흐르고, 반전되는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새침한 어조의 ‘도시전설’이 재생된다. 종잡을 수 없는 항해가 쫀쫀하고 쫄깃해 음반 단위 청취의 즐거움을 높이 끌어 올린다.
‘인디 음악’으로 통용되는 오늘날 인디씬에 내 색으로 내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살아가고 있다. 긴 시간 공들여 쓴 이 음반으로 한정인은 자신이 독보적으로 맑고 청아한 창법에 뒤통수를 때리는 멜로디로 삶의 양가감정을 노래하는 음악가임을 증명한다. 그 제목도 웅장한 ‘Badluckballad’에서 ‘불행한 미신’에 의해 ‘행운을 불러온다는 미신을 믿는 마음’을 잃게 된 그가 앨범명을 Spells 즉, ‘주문들’로 지은 이 간극을 깨달을 때까지 앨범을 두 손에 꽉 쥐어 보길 추천한다. 그 의미를 깨달았을 때, 무엇을 시작할 수 있는가.
– 수록곡 –
1. Extra (Feat. 이이언)
2. Listen and repeat
3. Wallflower
4. Badluckballad
5. 도시전설
6. 차라리
7. Festival
8. Borderline(Feat. 천미지)
9. The boy named luke and the girl named lily(Feat. 김사월)
10. One second time machine (Prod. Piano Shoegazer)
11. 나나의 졸업식
12. 슬픔의 맛(remastered)
13. 하지
14. 묵시록(Feat. 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