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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무비즘] 컨트롤

스물 셋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 이안 커티스의 회광반조를 그린다.

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의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일곱 번째는 스물 셋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 이안 커티스의 회광반조를 그린 전기영화 < 컨트롤 >이다.

대중음악 격동의 시기였던 1970년대, 펑크(Punk)는 현학을 추구하고 엘리트주의에 좌지우지되는 음반시장에 반기를 들며 나타났다. 비록 짧은 집권기에 불과했지만 응축된 젊음의 분노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기에 충분했고, 그 잔해 더미 위로 얼터너티브 정신과 뉴웨이브 등 방법론을 가미한 새로운 씨앗들이 멀리 흩뿌려졌다. 에토스를 본받은 ‘포스트 펑크’의 흐름은 여기서 태어난다. 그리고 < 컨트롤 >(2007)은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을 즐겨들으며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을 보러 다니던 한 청년의 일대기이자 포스트 펑크 역사상 위대한 밴드 중 하나로 꼽히는 조이 디비전의 보컬, 이안 커티스의 이야기다.

회색빛 담배 연기 사이로 데이비드 보위의 < Aladdin Sane > 바이닐과 짐 모리슨을 추모하는 스티커, 벽에 붙은 루 리드의 포스터가 차례로 스쳐간다. 1956년 영국의 메이클즈필드의 한 노동계급 가정에서 태어난 이안 커티스는 어릴 때부터 시에 재능을 보였고 학교에서는 여러 학술상과 장학금을 받을 만큼 우등생이었지만, 늘 마음 한편에 예술을 향한 강한 열망을 담아두고 있었다. ‘컨트롤’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이안의 삶은 통제할 수 없는 이끌림과 그로 인한 고뇌, 좌절의 연속으로 대변된다.

문학과 음악을 탐닉하기 시작한 그가 점차 공부와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필연과도 같았다. 고리타분한 학교 수업은 그의 관심 밖이었으며, 노인의 집을 방문하는 사회봉사 프로그램에서는 처방 약을 훔쳐 달아나 복용하기 일쑤였다. 결국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고용센터의 직업 상담소 직원으로 일하게 된 것, 그리고 운명의 동반자 데보라 우드러프를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 역시 이 시기의 일이다. 소꿉친구로 시작해 사랑을 싹 틔운 둘은 열아홉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결정하여 소소하게 가정을 꾸려나갔다.

신혼 생활에도 이안의 음악에 대한 열의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그는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에서 동네 친구였던 베이스의 피터 훅, 기타의 버나드 섬너와 함께 밴드에 대한 논의를 나눈 뒤, 이후 드러머 스티븐 모리슨을 투입하여 팀을 결성하게 된다. 본래 밴드 이름은 데이비드 보위의 < Low >에 수록된 ‘Warszawa; 바르샤바’였으나 최종 단계에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1955년 소설 < 인형의 집 >에 나오는 사창가 이름에서 따온 ‘조이 디비전’으로 결정하고 EP 작업을 통해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 나가기 시작한다.

밴드는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다. TV 진행자 토니 윌슨의 프로그램에 전파를 탄 것을 계기로 그의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투어를 기획하는 등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불행도 소리 소문없이 코앞까지 찾아왔다. 공연을 위해 지역을 이동하던 도중 심한 발작 증세를 일으켜 응급실로 직행한 이안은 1978년 간질과 뇌전증 진단을 받는다. 약의 부작용으로 직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동시에 밴드 생활을 겸하는 것에 무리를 느낀 이안은 결국 안정된 수입원인 직장마저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점점 빠르게 움직여 / 이제는 내 통제를 벗어나고 있어
불빛은 번쩍이고 차들은 충돌하고… / 이 모든 것들이 점점 잦아지는 듯해’
 – Disorder 中

딸 나탈리의 출산 소식은 그가 밴드의 성공에 더욱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했다. 이안을 둘러싼 우울과 불안, 초조함을 예술의 극치로 승화시킨 희대의 명반 < Unknown Pleasures >의 탄생 배후에는 이러한 복잡한 배경이 자리한다. 낮게 침잠한 채 몽롱함을 극대화하는 베이스와 차곡차곡 리듬감을 적립하는 기계적인 드럼, 이에 침울함과 환각성을 흘려보내는 날선 기타와 신시사이저 멜로디, 염세적이고 시적인 가사를 읊조리는 중저음의 보컬은 차후 포스트 펑크의 효시와 고딕 록을 정립하는 위대한 교과서로 남아있다.

누군가에게 쫓기는듯한 두려움이 서린 눈빛과 그를 괴롭힌 발작을 연상케 하는 기이한 막춤 모두 흥행 요인이 되었다. 마틴 해넷이 프로듀싱을 맡은 1집의 흥행 이후 조이 디비전은 점차 컬트적인 인기를 얻게 되며 거대한 팬덤을 이끄는 영국의 대표 밴드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벨기에 대사관 출신의 저널리스트 아닉 오노레를 만나 첫눈에 반한 것을 기점으로 혼란했던 이안의 삶은 파멸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기 시작한다. 홀로 아이를 돌보는 아내에 대한 죄책감과 새로운 연인을 향한 통제할 수 없는 이끌림, 그리고 밴드의 성공에 대한 부담감이 서로 뒤엉키며 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과정이 스크린 속 고요히 진행된다.

훗날 아닉은 그와의 관계가 불륜이 아닌 플라토닉에 불과하다고 밝혔지만 정확한 사실은 이안 본인을 제외하고 누구도 알 수 없는 사안일 것이다. 영화 < 컨트롤 >이 독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조이 디비전과 연이 있었던 감독 안톤 코빈의 차분한 연출은 극적인 부담을 줄이면서도 이 부분을 깊게 조명하여 그의 내면세계를 심층적으로 파헤친다.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이 무렵 시도 때도 없이 공연 도중 발작을 일으키고 관객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할 정도의 정신적 압박과 건강 악화를 겪은 과정을 자연스레 체득할 수 있다.

1980년 5월 18일 미국 진출 순회공연을 앞둔 어느 날 밤, 스스로 목을 매단 이안의 시신을 데보라가 발견하고 오열하는 것으로 영화는 처연히 막을 내린다. 불과 스물셋의 나이었다. 사랑만이 인류를 구원해 줄 유일한 해답이라는 통속적 진리와 다르게, 이안은 마지막까지 ‘Love will tear us apart(사랑이 우리 둘을 찢어놓는다)’를 토로하며 비극으로 얼룩진 삶을 종결지었다. 그의 죽음 이후 3개월 뒤 발매된 2집이자 유작인 < Closer >의 가사 곳곳에 자살에 대한 고민과 암시가 가득했다는 사실은 당시 멤버들과 많은 팬이 오늘날까지 안타까움과 애도를 표하는 이유 중 하나다.

두 장의 정규작만을 지닌 조이 디비전이지만, 그 파급과 영향은 후배들의 자양분이 되어 생명력을 뻗어나갔다.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한 축을 일군 인터폴과 그들의 스타일을 위시한 에디터스, 그런지 흐름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운드가든이 이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평단의 극찬을 받은 래퍼 대니 브라운의 앨범 < Atrocity Exhibition >은 이들의 수록곡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멤버라도 불가피한 사정으로 팀을 나가게 된다면 그룹의 이름을 바꾸자는 오랜 철칙에 따라 조이 디비전은 비록 해체의 뒤안길을 걸었지만, 남은 세 멤버가 새로 결성한 전설적인 신스팝 그룹 ‘뉴 오더’가 또 다른 신기원을 이어가기도 했다.

모노 톤의 라디오 전파 그림을 담은 형이상학적 형태의 유명한 앨범 커버처럼, 무겁고 탁하지만 늘 항상 어둠 속 찬란한 구원의 빛을 기도하던 < Unknown Pleasures >와 < Closer >가 지닌 명암처럼. < 컨트롤 >은 흑백 영화의 포맷으로 이안 커티스의 강렬했던 일대기를 파노라마처럼 나열한다. 이제는 바이블이 되어버린 두 장의 앨범과 함께, 짧지만 강렬하게 불타올랐던 그의 아이코닉한 삶을 다시금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
1. Drive-in saturday – 데이비드 보위
2. 2HB – 록시 뮤직
3. The jean genie – 데이비드 보위
4. Sister midnight – 이기 팝
5. Problems – 섹스 피스톨즈
6. No love lost – 이안 커티스
7. Evidently chicken town – 존 쿠퍼 클라크
8. Leaders of men – 조이 디비전
9. Boredom – 버즈콕스
10. Digital – 조이 디비전
11. Transmission – 조이 디비전
12. Insight – 조이 디비전
13. She’s lost control – 조이 디비전
14. Candidate – 조이 디비전
15. Warszawa – 데이비드 보위
16. Autobahn – 크라프트베르크
17. She was naked – 슈퍼시스터
18. Love will tear us apart – 조이 디비전
19. Isolation – 조이 디비전
20. Dead souls – 조이 디비전
21. What goest on – 벨벳 언더그라운드
22. Disorder – 조이 디비전
23. Atmosphere – 조이 디비전
24. Shadowplay – 조이 디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