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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주파 ‘곡면'(2019)

록의 묵직함을 재현해 듣기 쉬운 국악을 만들든, 사이키델릭함을 추구하며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든 어느 한쪽도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동양고주파가 마주한 딜레마다.

평가: 2.5/5
  1. 동양고주파. 이들이 어떤 소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는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핵심에는 피아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중세 아시아의 타악기 양금과, 이를 연주하는 윤은화가 있다. 그와 함께,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의 일원으로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한 최우영의 베이스와 장도혁의 퍼커션은 동양적인 록밴드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조선 말 전통음악에 쓰이던 악기로 록을 연주하는 실험정신은 흥미로운 만큼 쉽지 않은 선택이다. 첫 정규앨범 < 곡면 >으로 이들은 록과 국악에서 각각 가져가고 버려야 할 부분을 가늠하고 있다. 다만 아직 해답을 찾은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첫 곡 ‘파도’부터 마지막 곡 ‘잠’까지, 모든 곡에 가사가 없다. 그나마 ‘모서리’의 코러스를 제외하면 사람 목소리도 찾을 수 없다. 자연히 악기들 간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그 이음매는 베이스다. ‘상자’를 보자. 묵직한 메탈의 에너지를 가져오면서도 양금의 멜로디 라인을 함께 연주하며 따라가거나, 퍼커션의 리듬을 그대로 받쳐준다. ‘파괴’와 ‘먹이’ 같은 긴장감 넘치는 트랙에서도 그 역할이 두드러지고, ‘과거’의 펑키한 베이스라인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나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떠오를 정도다.

    그럼에도 역시 귀를 사로잡는 것은 동양의 소리, 양금이다. 사다리꼴의 상자 위에 얹은 금속 줄을 가느다란 대나무 채로 두드리며 소리를 낸다. 이 서정적이면서도 사이키델릭한 소리에 베이스와 퍼커션이 자리를 내줄 때 그 신선함은 빛을 발한다. ‘샘’에서는 피아노와 같은 차분함을, ‘노니’에서는 톡톡 튀는 퍼커션에 힘입은 발랄함을 느낄 수 있다. 점묘화를 그리듯 짧게 음을 연타하는 양금의 특성상, ‘은하’나 ‘섬’의 생동감보다는 ‘잠’에서 연출하는 신비감이 놀랍다. 바이올린이나 기타와 대비되는 단단한 질감의 소리로도 이와 같은 역할을 해낸다.

    아쉬운 점이라면 퍼커션이다. 양금의 날카로운 소리와 베이스의 묵직함 사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강렬한 곡들의 에너지가 반감된다. 새로운 악기의 조합에 어울리는 스타일의 작곡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올만한 단점이다.

    < 곡면 >은 이 맥락 속에서 바라보자면 의미 있는 앨범이다. 다양한 장르를 결합하며 서사적인 성격을 띠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연장선에 있고, 국악을 통해 록의 ‘진보’를 동쪽으로 끌고 오려는 시도 역시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그만큼 동양고주파는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록의 묵직함을 재현해 듣기 쉬운 국악을 만들든, 사이키델릭함을 추구하며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든 어느 한쪽도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동양고주파가 마주한 딜레마다.
  • – 수록곡 –
    1. 파도
    2. 그때와 지금
    3. 상자
    4. 밝은 산 
    5. 먹이
    6. 샘
    7. 은하
    8. 터널
    9. 과거
    10. 모서리
    11. 파괴
    12. 노니 
    13. 섬
    14. 잠